뇌 썩음 (Brain Rot)

불필요한 과다 정보보다는 질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부모들의 책임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요즘이다. 생각의 폭과 세계관, 의식구조가 편협된 자들이 너무 많은 시대가 아닌가 한다. 나 자신도 쉽게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빠지는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이기에 생각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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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 생애는 개인의 안전에 대한 염려와 삶을 위한 준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실재로는 지금 현재를 위한 삶을 전혀 살지 않습니다.” < 나의 종교>에서 레오 톨스토이

선물< Present>라는 책이 있다. ‘가장 큰 선물은 지금이라는 현재(Present)의’ 라는 의미가 담긴 글이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 가야 한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어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가 없다. 흘러간 물로 물래방아간을 돌릴 수 없듯이, 과거의 영광에 묻혀 살지 말고, 매일매일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미래가 있다. 오늘날 내가 심은 것을 내일 먹는 것이다.

오늘의 나의 모습은 지난날의 나의 결과물이다. 영국 교단의 총회장이신 죤 목사는 팔순 생일 파티에서, “세월을 아끼라(구속하라)는 권면을 남기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대화 중에도, 쉴 틈이 없이 핸드폰에서 눈을 못 뛴다. 식사 중에도 아예 전화기를 곁에 켜 놓고 보면서 식사하는 분들도 보았다. 당연히 집중을 하지 않고 의미 있는 대화도 불가능하다. 빨리 모임을 끝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보였다. 사고가 분산 되어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 있는 주제를 논할 수 있겠는가? 나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차후 모임은 주저가 되고 괜히 귀한 시간을 낭비하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품위가 있는 어떤 사업가는 업무상 국제 전화가 오기로 예정 되어있어 죄송하다고 식당 밖으로 나가 통화한 뒤에도 사과를 연이으신다. 어떤 이들은 식사 중에도 끊임 없이 타인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면전에서 식사 중에도 아무렇지 않게 별로 중요한 내용도 없어 보이는(들리는) 시시 콜콜한 내용의 통화를 줄 곳 해 댄다. 입에서 이물질이 나오기까지 하는 데도 절제를 못한다.

런던 버스나 지하철 내에서도 끊임 없이 소리 질러가면서 까지 여러 군데에 전화를 줄 곳 하여 주변 승객들을 소음으로 인상을 찌프리게 하며 머리를 아프게 까지 하는 인간들이 많다. 인도인, 흑인, 중국인들이 주로 그렇다. 캐나다에서도 비슷하였다.

한국에서도 유사하다. 오죽 하면 대학생들에게 강의 중에 공공 장소에서 습관적으로 오래 통화하는 친구나 교재 하는 이성 친구와는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 적도 있었다. 버스, 지하철 내에서 숏폼( 짧은 동영상 콘텐츠)을 큰 소리로 들으며 영상 통화를 그칠 줄 모르는 이민자들, 관광객들, 노령으로 난청이어서 크게 듣는 어르신들…….

누군가가 자제를 요구하면 인종 차별이라고 알레르기성 반응을 한다. 남들에 대한 배려, 에티켓, 공중 도덕 의식의 결여가 사회문제가 되어왔다. 금년 여름 영국이 분노하였다. 난민들을 위한 국가의 과도한 세금 낭비, 혈세로 누리고 악용하는 가짜 난민들 복지 정책으로 몸살을 앓던 해였다.

나도 많은 난민들을 돕고 섬겨온 경험상, 난민 보트를 타고, 버스나 유로스타로 런던에 무작정 온 경제 난민? 그들은 거의 다 한결 같이 최고가의 최신형 핸드폰을 쥐고 다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다.

영국 정부도 대단하다. 그들을 다 수용하고 호텔에 재워주며 차비 생활비 의료비까지 국가 예산으로 지불해주니 이런 파라다이스가 어디 있겠는가? 유럽의 많은 난민들은 대다수가 영국행을 선호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란 그런 글을 톨스토이가 쓴 걸로 기억이 된다. 식사 중이거나 대화 중엔 핸드폰을 자제하고 면전의 사람을 존중하는( 집중하고 들어주며 대화하는) 습관이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같이 앉아서 얘기 하자면서 다른 이들과 계속 통화하거나 핸드폰만 쳐다볼 거라면 굳이 왜 만나자고 한 건가? 전화로 통화하면 될 터인 데 말이다.

예배 중에도 성경도, 카톡, SNS를 하면서 어찌 예배에 집중할 수 있단 말인지? 자극적이고 짧고 도발적인 뉴스, 동영상, 설교 등에만 반응하며 중독 되어가는데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뇌를 ‘팝콘 뇌( Popcorn Brain) 라고 까지 부른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작년에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을 선정하기 까지 하였겠는가?

대화를 해봐도 MZ 세대들은 앞뒤 디테일이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단 답형으로만 소통하고, 얼굴을 보지 않고 바로 옆에서도 SNS로 주고받으며 사회성이나 만남의 교감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자세한 긴 문장의 글을 귀찮아한다. 성경 책 들고 교회 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세대이다. 모바일 폰에 다 들어 있어 가볍고 편리한 면은 있다.

소셜 미디어에 익숙해진 세대들은 독서보다는 동영상, 재미 자극적인 것에 더 익숙해왔다. 생각이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도 적지 않다. 어린아이들도 예배 시간에 동영상 보여주는 엄마들, 유모차에서도 동영상.. 게임, 만화 등에 삼매경인 아이들…. 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책 읽는 아이들 보는 걸 볼 때마다 그들이 너무 귀해 보인다.

금년 여름 8년만에 방문한 캐나다에 거주하는 장남의 손자들에게도 책을 자주 읽어주고 가지고 간 마술(Magic)도 손수 보여주고, 함께 그림을 그린 연유가 있다. 가족 여행을 가면서 테블릿을 안(못)가지고 가게 끔 까지 하였다. 어린 손주들에게 테블릿을 포기한다는 것은 크나큰 희생이어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 없이도 함께 즐거이 놀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컵, 돌, 나무 위에 캔버스에 금년 여름에 만도 백 여 개의 그림을 유화로 파스텔로 그리고 또 그렸다. 함께 다녀온 나이아가라 폭포도 같이 그렸다. 자연 숲 속, 개울가 호수 주변을 자주 걷고 축구도 차고, 수영도 씨름도 하며 8년간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니 헤어지기 어려운 친구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자기 달라고 하였다.

그림 그리는 내 옆에 앉아 ’같이‘ 그리는 시간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가치‘가 높다. 함께 가본 장소를 공유하며 종이 위에 그리면서 소통을 하는 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의 초상화도 그려준 손자의 작품은 내게 귀한 선물이 되었다.

불필요한 과다 정보보다는 질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부모들의 책임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요즘이다. 생각의 폭과 세계관, 의식구조가 편협된 자들이 너무 많은 시대가 아닌가 한다. 나 자신도 쉽게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빠지는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자이기에 생각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은혜로 만이 가능하오니 우리의 좁아지는 마음을 넓혀 주소서! 아멘

정병산 선교사/ 본지 시사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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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원익

    귀한글 감사합니다 ~ 요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꼭 명심햐야 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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