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저널] 시대를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 마태복음 16:1~4 »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들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우리 주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하심을 믿으시면 “아멘”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향하여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인사를 나누시겠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대를 분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그룹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들이고, 또 하나는 사두개인들입니다. 1절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간절히 간청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유대의 대표적인 분파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장로교, 순복음,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분파가 있듯이, 유대교에도 하나는 바리새인 파, 하나는 사두개인 파, 하나는 에세네 파라고 하는 세 분파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주의자들이며 대단히 율법적이고 보수적인 단체인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당시 지배 세력인 로마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입니다. 반면, 에세네 파는 여러분이 잘 아는 세례 요한이 속해 있으며, 금욕주의를 주장하고 매우 보수적이며 극단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이나 입는 의복조차도 특별히 남달랐습니다.
이 둘(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항상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마치 원수처럼 지내던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를 대적하는 일에 갑자기 친구가 되는 장면이 누가복음 23장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는 일에는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을까를 보여주는 모습이 오늘 본문 1절에 기록된 것에 우리는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이 하늘로부터 온 메시아임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좀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과연 표적을 보여주면 믿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들은 표적과 상관없이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 올무를 걸기 위한 것입니다.
2. 믿음의 근원: 표적이 아닌 말씀
저들의 속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속을 환히 들여다보시고 탄식하십니다. 마가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님은 그 심정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표적을 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더 다른 표적을 요구한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습니까? 수없이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이전에 말씀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있었습니까? 나병 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었을 때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말씀으로 꾸짖게 하시고 잔잔하게 하시고 멈추게 하셨습니다. 각종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치유하고,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치료해 주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음에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말씀하시더니만 그를 살려내셨습니다. 말 못 하는 벙어리를 치료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의 기적까지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표적을 더 요구합니까? 저들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다면 벌써 믿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바로 표적이 믿음을 갖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본 사람이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기적을 본 사람들은 다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7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그렇습니다.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아무리 확실한 표적을 많이 보여줘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고자 하는 사람들은 표적을 보지 않아도 믿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주면 내가 믿겠다”, “이번 일만 해결되면 나는 반드시 예수 잘 믿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세는 의심만 가중시킬 뿐이지 참 믿음을 갖게 하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기적을 보고 믿었습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하나님을 믿었습니까? 그런 것 없어도 우리는 믿었습니다. 그것이 참 믿음이요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고 이야기하던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내 손을 보고 내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셔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에 네가 못 자국도 보고 있지 않느냐, 창으로 찔린 자국조차도 만져보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보고 믿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믿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도다 하시니라.” 우리는 보지 않고 믿으니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표적을 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을 보고 만지는 감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학문 지식이 깊어서 믿음이 강하고 담대한 것도 아니요,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굳세게 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요 선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자꾸 들으면 믿음이 자꾸 생겨나는데, 이 믿음이 강하게, 담대하게, 능력 있는 믿음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가끔 제게 “나는 왜 자꾸 믿지 못할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많이 보고, 믿고, 묵상하고, 아멘 할 때까지 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듣고, 믿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삶을 반복해서 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다친 마음으로 들으면 안 됩니다. 아멘을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먹이를 받아 먹을 때 얼마나 맛있게 받아먹습니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말씀을 보고,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반복되는 삶을 통해 성령이 역사해서 생긴 믿음이 참 믿음이며, 그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하고 인생을 바꿔 놓을 줄 믿습니다.
3.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 위해 표적을 구하는 것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십니다. 2절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절에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굳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도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를 분별할 줄 모르느냐? 이것은 날씨를 예측하는 것보다 시대를 분별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TV를 켜고 기상 캐스터를 통해 일기 예보를 듣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정보를 빨리 알려주어 날씨뿐만 아니라 일주일, 한 달 치까지 예고해 줍니다. 우리는 이런 예보를 듣고 대비합니다. 일기 예보 외에도 현대인들은 자기 관심 분야의 모든 동향을 알고 싶어 합니다. 주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가 동향, 경제에 민감한 사람은 경제 동향, 물가 동향, 정치 상황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분별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여기에 대책을 세우고 간구하며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이 시대를 분별했다 할지라도 대처 방안을 마련해 처리하지 않으면 더 큰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역주행하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큰 화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그런 예들이 있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만 팔려 노아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다가 모두 물 심판을 당하여 멸망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고 콧방귀를 뀌다가 불과 유황불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민감한 사람입니다. 목회자는 성경을 늘 묵상하고,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이 시대가 말씀대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연구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해 주십니다. 시대의 흐름, 역사의 흐름, 사람들의 심령을 아는 것입니다. 저는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려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붙드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눈치를 보면서 “이 말을 하면 성도들이 시험 들 텐데” 하고 말을 주저하는 목사는 목사가 아닙니다. 잘못되어지는 줄 알면서도 묵과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혼한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 입장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도적이 오는 것을 보면 도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짖어대는 강아지처럼 말씀해 드려야 하는 것이 진정한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당히 편식주의자들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아멘” 합니다. 싫으면 입을 딱 다물고 이를 갈거나, 뒤에 가서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씀의 예보를 통해서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종말의 징조와 요나의 표적
특별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종말의 때이며, 그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빈발하는 지진, 가뭄, 기근, 전쟁의 소문들은 중요한 시대의 징조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것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데, 우리는 무감각해져 안일불감증(安逸不感症)에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정치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백성들의 귀를 가려 놓고, 보아야 할 백성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선동과 거짓의 보도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언론과 방송이 부패했습니다.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몇십만 원씩 준다” 하니 좋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 주님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지금이 이런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살만하다고,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느냐며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치 솥에 개구리를 잡아놓고 불을 떼니, 따뜻한 기운에 자기가 죽어가는 줄 모르고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면, 철책을 철거하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NL(북방한계선)을 한강 하구까지 양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풍력발전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을 무비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근본이 바뀌어야 합니다. 중국 사람이 공공장소에 배설물을 쌌는데 벌금 5만 원이고, 그 중국 사람을 비난하면 2년 내지 5년형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목사는 성도들의 영혼을 지켜내라고 하나님이 세워주셨듯이,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 한 사람 한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낼 사명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계엄 선포를 두고 내란 모의를 한다고 언론이 몰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예산이 빵원이다. 대한민국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적폐 세력 척결과 하이브리드 전쟁을 이겨내고 부정 선거를 잡기 위해 국회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더 많은 군인을 파송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언론이 이를 내란 모의로 몰아가니 진짜 내란인 줄 압니다. 내란은 더불XXX당 이XX이 저지르는 일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해서 감옥에 갈 수도 있지만, 바른 것은 바르게 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헌법이 무너졌습니다. 국회 의석 192석의 여당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행정과 입법부를 장악하고 사법부까지 장악하려고 합니다. 한 사람을 위한 헌법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헌법이 만들어지고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는 헌법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국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국회는 헌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준수하는 곳입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자유를 갈망하다가 짐승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살겠다고 귀순한 두 사람을 눈을 가리고 수갑을 채운 채 판문점에서 북한으로 넘겨주어 살해당하게 한 것은 정권이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영적 징조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에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 7절에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12절에는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5절에 말세의 고통하는 때에 사람들의 심령 상태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완악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를 비춰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징조가 보이면 “인자가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시대를 분별할 줄 모르고 대비하지 않다가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어떤 예측보다도 시대를 분별하고 대처하여 지혜롭고 정의롭게 말씀 따라 살아가는 평택순복음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표적 중의 표적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 있었다가 살아난 표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요나의 이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5. 십자가와 부활: 새로운 삶의 근거
예수님은 “너희들은 십자가에 나를 죽이고 무덤에 장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요나처럼 3일 후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다시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고 살아나셨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14절, 15절에는*”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대신하여, 대신하여, 대신하여’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대속하시려고 대신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세례 문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예수님께서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일러준 대로 “우리 며느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까? 며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나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세우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헬라어 원어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는 상업적 용어로 ‘다 갚았다’는 말입니다. 나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 대신 계산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고 감사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님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교주들은 다 무덤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 희생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가리켜 영어로 History(His Story, 그분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이전(BC, Before Christ)과 이후(AD, Anno Domini)로 역사가 나뉩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자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시대를 분별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주님 오실 그날에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i8nZMGs6Bs
핵심 키워드:
시대 분별, 요나의 표적, 믿음의 근원. 종말의 징조, 십자가와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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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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