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저널] 함께 격려하며 서로 세워가는 공동체 » 전도서 4:9~12 »
현대 사회는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 관계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저는 이 위기 속에서 ‘함께 격려하며 서로 세워가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교회는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고 비난 대신 사랑과 용서로 하나 되는 안식처가 되어야 하며, 삼겹줄처럼 굳건한 연대를 통해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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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의 늪, 관계의 파탄
디모데후서 3장 1절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는 예언이야말로 오늘날의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입니다. 그 첫 번째 징조로 ‘자기를 사랑함’이라는 이기주의의 팽배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사회 전반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마저도 불화와 고통의 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러한 말세의 현상 속에 놓여 있습니다. 비단 종교적인 관점을 넘어선, 현 시대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듯한 현대인의 모습은 고도화된 기술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분열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공동체의 가치가 희미해지고 개인의 성공만이 강조되는 풍토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관계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 공동체의 본질
그러나 절망적인 진단에만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필자는 전도서 4장 9-12절의 말씀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는 구절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갈 때 얻게 되는 시너지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라, 서로 돌아보라, 서로 힘을 합지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넘어짐’의 순간을 생각해 볼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일어섬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10)는 구절은 상호 의존성의 중요성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고난 속에서 홀로 서려 할 때 격게 되는 외로움과 좌절은, 손 내밀어 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훨씬 덜할 것입니다.
또한, “두 사람이 함께 누으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 4:11)는 말씀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혹독한 밤 추위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따뜻함을 넘어, ‘인생이라는 길은 너무나도 춥고 험하기 때문에’ 서로가 동반자가 되어 얻는 정신적, 정서적 지지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온기가 되고 의지가 되어주는 존재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 치유와 안식처로서의 코이노니아
‘함께 격려하며 서로 세워가는 공동체’의 핵심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솔로몬 왕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듯, 교회는 ‘서로 교제할 수 있는 코이노니아(Koinonia)’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코이노니아는 단순한 친목을 넘어 ‘삶의 참여’를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삶에 동반자가 되어 함께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 그것이 바로 코이노니아의 본질입니다.
특히 저는 교회를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부름받은 공동체”라고 정의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상처 있고 소외되고 지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세워주며 붙들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비난과 정죄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조차 비난과 정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1-2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처럼, 교회는 정죄가 아닌 치유와 용서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과 연민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을 때,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격려의 선순환과 삼겹줄의 시너지
저는 격려의 힘을 강조하며, 격려는 격려받는 자뿐만 아니라 격려하는 자에게도 유익을 주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타인을 격려하며 그가 힘을 얻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자신도 함께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두 사람을 함께 승리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또한, 이웃을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로 만들 때 “새로운 에너지가 창출”되는 “네트워크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의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은 공동의 힘과 승리를 예언합니다.
이 삼겹줄의 가장 은혜로운 해석으로 “믿음의 사람 두 사람이 함께하면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가세한 세겹줄은 결코 끊어질 수 없다”라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의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은 주님의 임재가 공동체에 더 큰 힘을 부여함을 약속합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적인 연합을 넘어선, 신앙 안에서의 강력한 유대감을 부여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실제적 적용: 목장 가족과 기도회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구체적으로 교회의 ‘목장 가족 모임’과 같은 소그룹 활동을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또한 ‘강단 기도회’와 같은 기도 모임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통해 성도들은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 관계의 위기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함께 격려하며 서로 세워가는 공동체’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개인의 강함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사랑과 격려로 하나 될 때 진정한 힘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교회가 진정한 안식처이자 치유의 공동체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희망과 회복을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겹줄처럼 굳건한 연대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제가 꿈꾸고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입니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youtu.be/XyhO4PkMBaU?si=wgtT0wWlWm6aXXhX
키워드: 코이노니아(Koinonia), 교제, 성령, 친목, 공동체
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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