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내비게이션

내 인생길 왜 우리가 염려합니까? 왜 방황하고 주저합니까? 하나님이 나의 길 되시고 생명 되시고 진리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이름을 주신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더 확고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스피릿저널] 인생의 내비게이션 » 요한복음 14:1~6 » 

살아 계신 주님께서 일곱 별을 오른손에 붙들고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분이 지금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앞뒤 좌우를 보시며 서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인사를 나누시겠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는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도로 사정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제대로 알지 못해도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동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만 입력하면 우리가 가는 길을 정확하게 안내해주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가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공위성에서 전파를 가지고 얼마나 섬세하게 안내하는지, 그 안내 말만 잘 들으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요즘은 두 여성의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합니다. 첫째는 집안에 있는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두 번째는 자동차를 탔을 때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고집 피우지 않고 가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길은 복잡한 것도 많고 힘든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만남을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삶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에 의해서 나의 삶도 많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인생 길의 네 가지 유형과 바른 길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는 감초 역할을 하는 감초맨입니다. 이 감초맨은 중요하고 필요할 때 밝고 적절한 이야기를 적재적소에서 잘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는 썰렁맨이 있다고 합니다. 이 썰렁맨은 모임에서 이야기만 하면 분위기가 가라앉고, 뜨거웠던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며, 잘 나가던 분위기를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결혼식에서 죽음 이야기를 하는 주례자가 있다면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부정맨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썰렁맨은 부정맨보다는 낫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너무 부정적인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면, 자기 혼자 마음속으로는 ‘내 이론과 생각은 아무도 깰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굽히지 않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것이 모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부정적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가 발전하지 않고 성숙할 수 없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굳게 결심하고 다짐했던 것들조차도 억제당하고 마음의 상함을 얻습니다. 모든 긍정적인 가능성이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로 긍정맨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으며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문제는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 때문에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철저히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문제 아닌 것을 문제시하고 문제로 삼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결코 세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도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의 길을 잡아가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금은 어려움도 고난도 역경도 있을 수 있지만, 결코 그것이 우리 길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지혜와 방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갑니다.

감초맨, 썰렁맨, 부정맨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스스로가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자기 나름의 의견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2. 복음의 길과 십자가의 길

여러분은 성향이 어떻습니까? 그중에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아무래도 밝고 규모가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배우자 상을 물었더니, 유머가 있는 사람,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을 사람들은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답답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속 시원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 앞이 뻥 뚫린 대로가 열려 있는 것도 아니요, 어느 때는 막혀 있는 것 같고 답답함을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가 웃으면서 기쁘고 즐겁게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길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염려할 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조금 다른 생각을 우리에게 가지도록 합니다. 말씀에 보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인생의 시각이나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명확한 길을 네가 알고 자신 있게 용기 있게 소신껏 갈 수 있느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길을 뻔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 길이 험악하고 고생할 수는 있을지라도 지혜롭게 목적지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길은 그 길의 끝을 알고 이끄는 사람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복음에는 바른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福音)’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이라는 말로,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모두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이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 특정 성향이나 기질을 가지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복음은 명확한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딱 두 가지 길만 가면 됩니다. 하나는 복음의 길이요, 하나는 복음의 길을 감에 있어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오늘이나 내일 바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가야 하는 길이 바로 복음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분위기를 두려워합니다. 십자가 생각만 해도 무거워집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는 좋아하고 감격하지만,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는 어렵고 힘들며 고통스럽다는 선입견 때문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겁내며 주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십자가의 길에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그 길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가고자 하는 목표와 길이 다르기 때문에 괴리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대동소이하게 부유하기를 원하고, 불안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 가는 길은 건강한 길, 편안한 길, 부유한 길이라고 마음속에 목표를 둔 사람은 십자가의 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을 버리고 신앙을 떠나 인생길을 헤매면서도 모르는 길을 평안하게 살려는 길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이 넓고 평안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길입니다.

3. 십자가의 길: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로 사는 삶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은 좁고 험악한 길이라고 하셨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은 넓고 평안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고 계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길의 종착역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길이 되고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의 길은 무엇입니까? 복음이라고 하는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확실히 믿고 붙잡고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구원으로 우리 자신을 구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고 자신의 주인으로 삼아 드리는 모든 사람만이 자신들의 죄와 상관없이 천국 백성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24절을 보십시오.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우리 죄인임을 지적합니다. 근데 24절에 가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가 있기에 죄가 사라진 것이고, 십자가가 있기에 고난을 이길 수 있으며, 십자가가 있기에 다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이 복음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복음만이 사는 길이고, 복음만이 능력의 길이며, 복음만이 영생의 길이고, 복음만이 소망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길이란 무엇이냐?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이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재산도 버리고 기쁨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심지어 생명도 버려야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아는 눈이 뜨여져야 하고, 주님과 사랑에 빠져야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재산이나 성공에 매이지 않게 되고, 심지어 생명도 아깝지 않게 되는 것은 주님의 사랑에 빠져본 자만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복되고 사랑스러운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니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불행이 아니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고난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매여 십자가를 기쁨으로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하기 싫은 일, 부담스러운 일, 고통을 주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교사의 아내가 남편의 팔뚝을 물어뜯을 정도로 성격이 거칠더라도, 그 아내 자체가 십자가가 아닙니다. 팔뚝을 물어뜯는 아내라도 여전히 사랑하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 아내를 사랑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품어 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음에서 함께 죽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내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나의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완전히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십자가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며 순교자인 **본회퍼(Bonhoeffer)**는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것은 나와 함께 죽자고 초청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자아의 지정의(知情意)를 완전히 파쇄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가 살고, 예수가 살 때 내가 사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가르마에서 잡힌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들을 때처럼, 마리아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와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용서하시는 복음이지만, 거기서 끝나는 복음이 아닙니다. 반드시 삶의 변화와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는 능력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인 줄 믿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자가 누리는 은혜요 영광인 것입니다.

17세기 영향력 있던 목회자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가 져본 짐 중에서 가장 달콤한 짐이다. 그것은 마치 새에 달린 날개와 같고 배에 달려 있는 돛과 같아서 나를 내 목적지에 이르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무거운 새의 날개가 새로 하여금 날게 하고, 거추장스러웠던 돛이 배로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와 바른 길을 찾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십자가와 복음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만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말고, 내가 져야 할 이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영광의 길, 평강의 길, 은혜의 길, 능력의 길, 변화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5. 예수님만이 인생의 내비게이션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너희가 영원히 머물 곳을 준비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영광의 나라) 셋째, 너희는 내가 가는 길을 잘 알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곁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주님이 알고 인도해가시니 너희는 그 길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길이 험하고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개의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제자들은 침울한 분위기에서 주눅이 들어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도마가 다시 묻습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6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우리에게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그 길 가운데 계시며, 그 길 끝에는 하나님 아버지, 능력의 주님, 창조의 주님,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길잡이는 보혜사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방향도, 목표도 정확히 설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길이 되어 주시고 진리가 되어 주시고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길 왜 우리가 염려합니까? 왜 방황하고 주저합니까? 하나님이 나의 길 되시고 생명 되시고 진리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이름을 주신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더 확고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여러분은 분명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하나님을 배울 것입니다. 그 길은 그 끝이 정해진 길이요, 검증된 길입니다. 인생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길을 함께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서, 한 사람도 낙오됨 없이 모두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 나라까지 변함없이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이 길을 또한 우리는 제시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소개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을 나타내 보여 줄 줄 알아야 합니다. 내비게이션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람들은 좀 더 정확하고 분명한 것을 선택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분을 여러분 마음속에 확신하십시오. 여러분 가정에 확신하십시오. 개인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경건해야 하고, 가정적으로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갔던 고넬료처럼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 충만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번 따라서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www.youtube.com/live/pSOXNQsPaaw

핵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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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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