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나” 2025.11.15. 나의 생일 날 아침에

여러 나라( 스위스, 영국, 고국)에 거주하면서 잘 모르고 적응하지 못했던 혼돈과 가난의 시간들이 큰 차이를 내어 내가 봐도 이상하게 살아온 나였다. 이상하다기보다는 경이롭고 놀라운 세상( Wonderland)을 겪어온 , 땅속의 세상이 아닌, 땅 위에서 좌충우돌하며 거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천성, 하늘을 향한 작은 발자국들이었다.

[치유회복]  “이상한 나라의 나” 2025.11.15. 나의 생일 날 아침에 »  

“나는 어제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니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루이스 캐럴

해마다 생일이 더 빨리 돌아오는 것 같다.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것 같다. 인생에 만약 “if”이라는 말은 불가하다.
나도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기이한 세상이다. 아름답고 기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오늘의 내가 있기 까지 많은 이들의 수고와 땀과 눈물이 인내가 있어 왔음을 부인 할 수가 없다. 고마운 분들이 많다. 많은 형제 자매들의 섬김으로 오늘의 나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삼십여년을 살아온 영국 땅 나의 제 2의 고향인 런던을 떠나 주 장막터를 고국으로 옮긴 이래 난 또 다시 더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것 같다. 정상과 이상( Strange)함을 오가는 여행 , 이쪽에서는 정상이나 반대쪽에서는 다른( 때로는 틀린)…..

나도 모르게 자꾸 두 문화를 분석하고 비교하는 게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런던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소용이 없는 후회 만큼 깊은 것은 없다: 그 고통을 면하고자 한다면, 제 때에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난 후회할 일이 많은 건 사실이다. 즉시로 해야 할 일들을 무시하고 그 때를 놓치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 추하고 부끄럽고 후회막심스러운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잘 했다고 간주할 수 있는 기억보다도, 실수 했던, 혹은 미쳐 이루지 못한 꼭 해야만 했던 일들의 목록들이 기억의 창고에서 유리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흐른다. 마치 그 물방물이 나의 기억 속의 눈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빗방물 중에는 흐트러지고 왜곡된 비난의 돌맹이가 되어 마음의 상흔을 남겼던 기억들이 도리어 축복이 되어 소록소록 ‘추억의 도서관 진열대’에서 내 전두엽( Frontal Lobe)으로 전송 되어온다.

나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마냥 흑백 사진첩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여러 나라( 스위스, 영국, 고국)에 거주하면서 잘 모르고 적응하지 못했던 혼돈과 가난의 시간들이 큰 차이를 내어 내가 봐도 이상하게 살아온 나였다. 이상하다기보다는 경이롭고 놀라운 세상( Wonderland)을 겪어온 , 땅속의 세상이 아닌, 땅 위에서 좌충우돌하며 거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천성, 하늘을 향한 작은 발자국들이었다.

그건 역설( paradox)이며 반전, 역전( Reversal)의 고비를 넘기는 스릴 넘치는 여정, 모험( adventure)들이었다.

고국에서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아무런 재정적 보장이나 후원 교회 하나도 없이 사역을 하다가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서울 해선교회, 김영곤 목사) 무대포로 고국을 떠난 우리 가족은 한량 없으신 주님의 은혜로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나의 비 정상적?인 기이한 삶의 추억 중 하나를 오래전 일기장 속에서 옮겨보려고 한다.

1984년 부산 예수전도단에서 사역 하던 시절로 거슬러간다.

9월24일 사역 리더모임(지부장)으로 서울로 올라갈 때 잔돈 600여원을가지고 가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맘은 든든했다. 버스 터미널 앞 밤길에서 주운 1000원 짜리 한 장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공동 생활집 동천 아파트 501호의 밀린 관리비, 전기세, 전화비가 20여만원…. 부엌 천장은 폭우로? 배수 파이프가 터져 천장도 다 뜯어져있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데다가( 누수로 누전, 우리 집만 단전) 주방에서는 촛불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아내의 출산일도 멀지 않고 병원에 가본제도 오래다. 한번 쯤 가봐야하는데

10월 9일/ 한 밤중에 헛구역질이 나서 일어나 냉수를 벌꺽 벌꺽 들이켰다. 자고 있는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다. 임산모가 고기는 고사하고 쌀이 없어 며칠 째 분식이라니…. 그럼에도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자족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10.10/ 스티브 샴블린의 강의에 다녀오는 길에… 생각지도 못했던 건데… 선원 선교회의 태희형제로부터 사랑의 채움을 받았다.

딤후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며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10.11 / 하나님이 형제를 통해주신 돈으로 교회의원을 찾았다. 혈액 검사도하고… 모든 게 정상이란다. 태아가 제 자리에 있지 않아서“ 아기가 물구나무 서게 해주십시오, 주님!” 기도 했더니 함께 기도하던 아내가 웃길래 나도 함께 웃어버렸다. 머리가 아래로 내려가니까 맞는 말인데….

10.20 /부산 기독교 회관에서 화요 찬양 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니 … 아내가 배가 아프단다.

어제 밤에도 그러더니만 시간을 재어보니 5분 간격이다. ‘이슬’이란 게 나온다는 아내의 말.

엑스레이 촬영비 만원이 없어 못 찍었는데, 계속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는 가톨릭병원 (교회의원)- 우리 간사들과 매주 자원봉사로 자주 다니며 중환자들의 대변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빨고, 병실의 가득찬 소변통들을 비워드리고 대화하던, 기쁨을 경험했던 곳이다. 악취에 힘들어하던 자매 간사들도 있긴 했었다.

의사의 경고스런 말에 실망이 된다. 우리는 수술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할 수가 없다.

… 자정이 넘어 일신병원으로 전화를 하였다. 급히 오라는 데 지독히도 추운 밤 택시는 왜 그리 한 대도 안 오는지… 둘이서 길에서 덜덜 떨다가 겨우 잡은 택시, 숙달된  기사 아저씨의 첫 마디“ 와 일신 병원으로 모실 까예?”…. 진찰권, 검사비가 금방 57,000원이나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교회의원에서는 출산 비용이 65,000원이면 다 되는데 검사비만 해서도 육만원 돈이 나오니, 당황 할 수 밖에…. 웅급실에 들어가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었다.

오늘이 정확한 예정일이란다.

하나님은 참 섬세하기도 하셔라. 오묘한 생명의 탄생
어김 없이 제 날짜에…… 보호자 대기실에는 십여명의 보호자들이 쭈그리고 드러눕고….
가끔 울리는 벨소리,“ 000 보호자 이층 분만실로 가세요”
서둘러 뛰어가는 가족들.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은 벌써 아기를 낳는데 나도 자꾸 기다려진다.
딸이라고 살림 밑천이라고 하면서도 서운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책을 읽지만 잘 집중이 되질 않는다. 수술해야 할지 모르기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여성 의사의 말, 일단 보증금 30만원이 있어야 된단다. 우선 10만원이라도 있으면 보증금을 내라는 데 없어서 울쩍 했다. 한숨 반 찬양 반 ..출산비는 어떻게 할 까? 밤새워 조마조마 기다리며 계속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했다.

의료인 여러 명이 함께 나와서 수술을 종용 했다. 나는 월급 없이 봉사하는 선교단체 간사라서 수술할 재정이 없다는 무책임? 한 나의 말에 결국에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수술하지 않음으로 인해 산모나 태아에 사고가 생겨도 병원 측에서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난 한 없이 초라해지고 오그라지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 하면서 손지장을 찍었다.

내가 없으면 설마 보호자 허락(동의)없이 수술은 못하겠지?? 이른 아침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 도망치듯 병원을 나와 버렸다. 깜박 잠이 들었을 까.. 처제의 전화벨 소리에 눈이 번 쩍

84.11.21/ “아들을 낳았으니 빨리 오란다”

가방에 아기보, 기저귀 담고, 국화 한 송이를 100원, 150원에 우유 2개를 사서 서둘러 단숨에 달려갔다. 아기가 아직 씻기지도 않은 채 모로 누워 있었다. 시편 22: 9-10 절을 읽고 아내의 손을 잡고 기도 했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간호원, 의사들의 말에도 계속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견디어 냈다는 아내의 말. 그녀가 자랑 스럽다. 아내의 푹 꺼진 배가 신기하기만 하다. 아기가 보고싶단다.

내 어렸을 적 사진을 꼭 닮았다고 대견스러워하는 그녀….. 면회 시간이 어찌나 빨리도 끝나는지 …. 오대원 엘렌( David, Ellen Ross, 예수전도단 설립자) 사모님으로부터 축하 전화가 왔다. 경사가 겹친다고 구옥모 자매의 미국 비자가 나왔단다.

순산을 위해 기도해준 LTS( 지도자 훈련 학교) 지체들 순덕, 귀자, 소은, 희순 재매님들이 오셨다. 사랑의 카드와 헌금 91,400원을 주시며 울며 기도했다는 그들의 기도에 따뜻한 주님의 사랑의 맥박을 느끼고도 남았다. 주님 이렇게 귀한 지체들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 요란하게 ( 마치 아름다운 교회의 종소리를 연상하는) 자전거 벨을 울리며 공동 생활 집으로…..

그렇게 우리 첫아이( Honeymoon Baby) 정다윗은 난방도 보일러도 온수도 없는 이상한 공동생활집으로 왔다. 화장실 한 개,10 –12 명의 간사들이 방 두칸의 아파트에서 살아왔으며 자매 간사는 두발에 동상 까지 걸렸다. 산모에게만 특권이었던 일인용 전기 장판이 유일한 난방이었던 시절이었다. 둘째 아기(경민)가 태어 날 때까지 좁디 좁은 방( 화가 이중섭의 서귀포 다락방 크기)에서 아기는 좁은 책상 위에 뉘여서 키웠다.

출산 후 한 달 내내 국수로 연명하며 몸조리를 하였다. 아기는 늘 설사를 하였고

백일해로 정말 100일 동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기침을 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안타까워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뜨거운 아기의 볼에 내 뺨을 대고 몰래 울었던 시절이 이상하게도 그립다. 정말로 난 무책임하고 대책이 없는 무능하고 이상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재정적으로 돕는 교회, 후원자 단 한 명이 없이도 우린 이상한, 외로운, 아름다운 나라, 부산에서 견디며 기꺼이 헌신하고 대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며 즐거이 헌신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에서 끈질기게도 생존해 온 것이 기적과 같다.

정병산 선교사/ 본지 시사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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