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베들레헴의 별빛 아래: AI 시대, 자기중심적 풍조를 비추는 성탄의 진실 »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AI 인공지능 시대는 경이로운 기술 발전만큼이나 깊은 윤리적, 존재론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초연결성과 고도화된 개인화 서비스가 낳은 자기중심적인 인생관, 윤리관, 가치관의 심화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풍조 속에서, 우리는 2천 년 전 성탄 기사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당시 예수님께서 오셨던 세상의 모습과 오늘날 AI 시대의 모습을 연결해 그 일깨움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1. 베들레헴의 밤과 오늘날의 초연결 사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의 상황은 언뜻 보기에 오늘날의 첨단 사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칙령에 따라 모든 백성이 호적 등록을 위해 고향으로 움직여야 했던 그 시대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질서와 통제가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백성들은 통치자의 필요와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부속품에 불과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AI 시대 역시 유사한 초연결 시스템 안에 놓여 있단 점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알고리즘을 통해 겉으로는 극도의 개인화를 누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대 플랫폼의 데이터 분석과 예측, 통제 아래 놓여 있다고 봐야 옳습니다. 개인의 관심사, 선호, 심지어 감정까지도 알고리즘에 의해 끊임없이 추적, 분류, 제어됩니다. 개인은 자신의 ‘취향’에 최적화된 정보 거품(Filter Bubble) 속에 갇히면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진실’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며, 모든 정보와 서비스가 자신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깊은 자기중심적인 오해에 빠져서 살아가기에 충분할 환경을 제공 받고 있습니다.
2. ‘방 없음’의 시대: 소외와 고독의 심화
성탄 기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에 있을 방이 없으므로” (누가복음 2:7) 구유에 아기를 뉘어야 했던 베들레헴에서의 막다른 상황은, 당시 사회가 약자나 이방인을 위한 공동체적 여백을 어떻게 상실 했었던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고향에 가서 호적 등록을 하라는 국가적 의무 수행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라고 봐야 할 만큼의 환대가 거부된 됐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AI 시대가 막을 올린 지 몇 해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중심적 풍조는 현대판 ‘방 없음’의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지나 않은 지 모르겠습니다. 지능형 기술은 효율성과 속도를 극대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연대와 따뜻한 환대의 공간을 축소 시켜 갑니다. 알고리즘은 ‘나’와 관련 없는 것을 가차 없이 걸러내고, ‘나’의 만족도와 효율에 기여하지 않는 타인을 멀리하게 만들며, 그것이 곧, 정의인양 착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실상은 가장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볼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인생관은 공동체의 필요보다 개인의 만족을 앞세우며, 타인의 고통이나 소외에 대해 점점 더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이 윤리적 판단을 대체하면서, 마구간에 밀려나야 했던 그 때의 소외와 거절의 풍조가 디지털 공간에서 더욱 정교하고 냉정하게, 더욱 치밀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3. 왕의 탄생과 ‘가장 낮은 곳’의 윤리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유에서 탄생하셨다는 사건은 성탄 기사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윤리적 메시지입니다. 온 세상을 구원할 왕이 가장 화려한 궁궐이나 부유한 여관이 아닌, 가장 비천하고 소외된 곳인 마구간의 구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과 유대 사회의 모든 권력 구조와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자기중심성이 심화된 AI 시대의 가치관은 ‘최고 효율’, ‘최대 성공’, ‘개인 최적화’를 추구하며 수직적 성공과 우월성을 절대 시 한다는 면에서, 개인의 성취와 자아 실현만이 최고의 선(善)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리 낯설진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한’ 기술과 시스템만이 가치 있다는 공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판단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사회 전체가 병들어 간다면 그것이 심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낮고 비천한 말 구유에서의 탄생이라는 교훈은 우리에게 전폭적인 겸손의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진정한 권위와 영적인 가치는 ‘가장 높은 곳’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었으며, AI가 줄 수 없는 무조건적인 희생과 사랑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이는 AI가 모든 것을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시대에, 계산되지 않는 환대와 자기희생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윤리적 가치임을 웅변 해주는 거대한 모멘텀을 만들어 냈습니다.
4.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자기중심을 벗어난 초월적 지향
누가복음 2장의 기사에 나오는 성탄을 경배하기 위해 달려온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이 두 그룹의 이야기는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벗어나는 두 가지 초월적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자들의 ‘순종적 겸손’: 밤새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미천한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의 메시지를 듣자마자, 자신의 생계와 안락을 뒤로하고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는 ‘나의 이익’과 ‘나의 효율’을 중심에 두는 자기중심적인 삶의 궤도를 벗어나, 초월적인 소명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겸손한 순종을 상징합니다.
동방박사들의 ‘지적 탐구와 경배’: 먼 이방 땅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성취와 지위를 내려놓고, 그들의 지적 탐구의 결론인 ‘참된 왕’ 앞에 무릎 꿇고 경배했습니다. 이는 AI가 모든 지식을 제공하는 시대에, 지식 그 자체를 숭배하는 자기중심적인 오류를 경계하고, 지식의 최종적인 목적은 더 높은 가치와 진리에 대한 겸손한 경배에 있음을 보여준 선례를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AI의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달콤한 유혹 속에서, 목자들이 보여준 구주 탄생을 향한 진심 가득한 겸손한 섬김,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진리에 대한 초월적 지향과 굳센 믿음과 행동을 쉽게 잊고 있습니다. 우리의 윤리와 가치관은 ‘나의 데이터’와 ‘나의 알고리즘’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AI가 예측할 수조차 없을만한 하나님의 숭고한 희생과 초월적 진리라는 틀을 애써 외면하거나, 혹은 벗어나고 있습니다.
5. AI 시대에 성탄이 주는 일깨움
결론적으로, 베들레헴의 성탄 기사는 AI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지적인 일깨움과 교훈을 선사해 줍니다.
첫째, ‘방 없음’의 풍조를 깨는 환대: AI가 효율을 위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한 다른 가치들에 대해선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타인을 위한 ‘방’을 내어주는 환대의 윤리를 회복해 가야 합니다. 이는 나의 이익과 무관한 이웃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적극적인 연대를 의미합니다.
둘째, 구유의 겸손을 통한 가치 전복: 자기중심적인 성공과 우월성의 가치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 임했던 겸손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진정한 영향력과 의미는 AI가 계산할 수 없는 나눔과 희생에서 비롯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AI 인공지능은 설계된 기계로부터 조합되고, 구조화된 지식과, 방대한 데이터를 통한 정보를 쏟아내지만, 영혼은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무엇보다 더 뜨겁고 따뜻한 사랑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세상을 훈훈한 세상으로 만들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셋째, 초월적 진리에 대한 지향: AI가 제시하는 개인 최적화된 정보는 한계에 머물렀던 인간에게 기회와 가능성, 지식의 확장을 가져다 줄 수 있어 더 많은 기회와 사회적 확장이 이뤄질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데이터는 과거에서 학습된 지식에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다릅니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육신의 눈 너머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로, 바라는 소망의 실체를 확인해주고 보이지 않는 현실을 증명하는 강력한 힘이 바로 믿음임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Substance of things hoped for)이란 믿음은 단순히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의 실체나 구체적인 모습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들판에 있던 양치기 목자들과 먼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며 찾아 온 박사들처럼 자신을 초월하는 숭고한 가치와 진리를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경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올해도 여전히 우리의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성탄의 별빛은 과거의 어둠 뿐 아니라, AI 시대의 현란한 자기중심적 풍조 속에서 길을 잃어가는 우리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명확히 비춰주는 빛이라 할 것입니다. 그 빛을 따라, 우리는 시스템으로 이뤄진 효율과 고립의 담을 넘어서 사랑과 연대가 살아 숨 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공동체를 세우고, 확장해가는 십자가 복음의 프론티어가 되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 이창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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