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릿저널] 주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삶 » 고린도후서 3:4~11 »
최근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습니다. 소상공인들이 문을 닫고, 많은 가정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 만에 130조 원의 국채를 지게 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정부를 이끄는 이들은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만족도가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적,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들이 깨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이들이 많아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목사는 양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존재입니다. 양이 있는 곳에 목자가 있고, 양이 눕는 곳에 목자도 함께 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목자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목사가 도망갈 우려가 있다며 구금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영광을 위해 살고 영광을 위해 죽는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과연 바울이 말한 이 만족감을 누리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없고, 기도를 드려도 확신이 없으며,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형식과 위선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참된 만족의 근원: 오직 하나님
오늘 본문인 고린도후서 3장 5절 말씀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납니다.” 여기서는 ‘만족’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입니다.
같은 ‘만족’이라는 단어가 고린도후서 2장 16절에도 나옵니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이 말은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 핵심을 요약해 봅니다. 첫째, 만족할 수 있는 마음. 둘째, 감당할 수 있는 힘. 셋째, 확신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주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세상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권위를 주셔야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어깨가 으쓱하는 만족감에 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할 때, 그분을 의지할 때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 이 말은 오직 하나님만이 만족의 근원이 되시고, 힘의 근원이 되시며, 확신의 근원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만족’이라는 헬라어 원어 ‘히카노데스’는 바울이 사도직의 목적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만족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그가 행하는 모든 일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을 확신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만족’이라는 단어는 때로 ‘충분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가진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참된 만족은 오직 충분하신 분,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만 비롯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찾고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만족, 그 허무함에 대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욕구를 채울 때 임시적인 만족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만족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며, 보람과 행복의 결과입니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만족은 천부의 부”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서 만족을 누리며 감사하고 행복해하십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권력, 명예, 외모, 건강과 같은 것을 소유할 때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만족은 상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과 비교하거나 과거와 비교하여 얻는 만족은 곧 사라지기 쉽습니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소유하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진정한 만족을 찾기 어렵습니다.
플라톤은 완벽한 상태가 아닌, 조금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을 때 오히려 불안과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1등을 한 학생이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초조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적당히 모자란 부분을 ‘엘 샤다이’ 하나님이 채워주실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 가장 명예로운 사람이 가장 큰 만족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그룹의 정몽헌 회장, 노무현 대통령, 배우 마릴린 먼로가 스스로 생명을 끊은 사건은 그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솔로몬 왕도 결국 인생이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이기에 오히려 공허함을 남깁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목자이시니
그렇다면 참된 만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만족도, 기쁨도, 행복도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편 107편 9절은 “그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고 말합니다. 또한 시편 23편 1절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참된 만족의 근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 한 분뿐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자는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시고,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뉴욕 메츠의 유명한 투수였던 팀 버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연봉 28억 원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던 34살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그에게는 다섯 명의 입양한 자녀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아이들 모두가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온 심장병을 가진 딸, 과테말라에서 온 갑상선 질환과 정신 질환을 가진 아들, 오른손이 없고 심장과 간질 문제가 있는 한국인 딸, 다리에 장애가 있는 아들, 그리고 구순 구개열을 가진 딸이 그들이었습니다.
버크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면 죽을 아이들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오히려 우리의 운명을 바꿔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감사를 알게 해 주었고, 고통을 극복할 힘을 주었으며, 행복과 보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비록 환경과 여건이 어렵다 할지라도 참된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장 17절-18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신앙입니다.
저도 결혼 초에 다섯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시골 목회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분유를 살 돈이 없어 아이에게 보리차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반대로 입양도 하지 못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인생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주를 바라보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 여인은 세상에서 만족을 찾으려 다섯 남자를 만났지만 공허함만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남자와 함께 살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우물가에 왔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게 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자신이 만난 메시아를 증거했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어떤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6편 11절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만족, 행복, 보람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주님 한 분이시면 충분합니다. 주님 한 분이시면 만족하며 행복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 한 분이시면 감사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UXHznogMZYQ
핵심 키워드:
참된 만족, 하나님 경외, 다음 세대, 믿음의 전수, 기본과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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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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