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길 위에서: Olam의 눈으로 본 시간·공간·인간의 소명

AI는 우리의 일상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때로는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전에 없던 근본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더 이상 단순히 ‘기술 vs 인간’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어떤 결정을 기계에 맡기고, 어떤 결정을 스스로 껴안아 책임질 것인지 —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공동체와 영적 삶의 윤곽을 이룹니다.

[영성계발] AI시대의 길 위에서: Olam의 눈으로 본 시간·공간·인간의 소명-27 » On the Road of AI: Olam, Time-Space, and the Human Vocation »

기술은 길을 놓았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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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Olam의 눈으로 본 시간·공간·인간의 소명>

(Olam’s Lens: Time, Space, and the Human Vocation in the Age of AI)
우리는 언제나 시대에 이름을 붙여 세상을 이해하려 해 왔습니다 — 농업, 산업, 정보. 그리고 지금, 자연스레 ‘AI 시대’라는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이름은 표지일 뿐 그 표지 뒤에 무엇이 숨쉬는지 보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유대 전통의 Olam은 단순한 ‘세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힌 하나의 총체를 뜻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AI는 더 이상 ‘도구’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AI는 우리가 살고, 일하고, 기도하고 분별하는 그 ‘장(場)’ 자체 —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이 새로 조직되는 방식 — 을 바꾸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 시작된 변화는 도시의 교통 신호와 국가의 행정 시스템, 병원의 응급 판단, 가정의 일상, 그리고 영적 삶의 리듬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신경망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의 AI 생태계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만이 아니라 물리적 인프라—반도체 설계와 제조, 대형 데이터센터, 국제적 공급망—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이 점은 기술의 영향력이 개인의 편의를 넘어 국가의 안보와 경제구조에까지 직결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이제 ‘AI 시대’이자 ‘AI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AI 관련 제품과 서비스는 경제와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은 금융시장과 산업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AI는 강력한 축이지만, 여전히 정치·문화·사회적 다양한 관심사가 공존합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오늘의 AI 생태계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뿐 아니라 물리적 반도체·제조·장비 공급망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설계와 소프트웨어는 주로 미국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최첨단 반도체의 생산능력은 대만(TSMC)과 한국(삼성 등)의 파운드리가 핵심적 역할을 하며, 노광 장비 등 제조 장비는 네덜란드·일본 등의 기업들이 공급합니다. 여기에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 등도 맞물리며 특정 기술과 장비의 국가 간 이동에 전략적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호의존과 지정학적 긴장은 AI 경쟁의 한 축을 이룹니다.

한편, AI의 사회적 역할을 설명할 때 ‘비유’는 유용합니다. 예컨대 컴퓨터와 인터넷을 ‘두뇌의 정보 저장과 통신’에 비유하고, 전력·에너지·물류를 ‘문명의 심장’에 비유한다면, AI는 그 위에서 작동하는 분석·예측·연결의 신경망이나 뉴런 역할에 가깝습니다. 이 비유는 AI가 단지 앱 하나가 아니라 사람의 생활과 제도들을 연결·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이것도 은유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AI는 인간의 모든 인지·윤리적 기능을 대체하지는 못하며, 그 영향력과 한계 모두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 칼럼은 AI의 편리함을 찬양하거나, 무조건적인 거부를 촉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묻고자 합니다. AI로 재편된 이 Olam 속에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며, 공동체와 신앙의 눈으로 우리는 어떤 책임을 새로 짊어져야 하는가 — 그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AI의 길: 인류 문명과 영혼을 잇는 새로운 통로>

길은 언제나 인류의 문명을 열어가는 상징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육지의 길과 바닷길이 세상을 연결했고, 20세기에는 하늘길과 우주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21세기, 인류 앞에 또 하나의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AI(인공지능)의 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었습니다. 원시 시대의 숲길과 사냥길은 생존의 통로였고, 고대 제국은 직선의 도로를 뚫어 군사와 무역을 연결했습니다. 바닷길은 대륙과 대륙을 잇는 해상 문명을 열었고, 하늘길은 인류의 시간을 단축시켜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우주로 향하는 길마저 열리며,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 도로도, 바닷길이나 하늘길도 아닌, AI(인공지능)가 열어가는 새로운 길입니다. AI는 더 이상 연구실 속의 실험이나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의 손 안에 쥔 휴대폰, 일상에서 사용하는 검색 엔진과 번역기, 교통과 물류를 움직이는 알고리즘, 국가의 안보와 경제를 운영하는 데이터 분석까지—AI는 이미 인류 문명의 혈관을 따라 흐르는 새로운 피와 같습니다.

이 길은 이전의 어떤 길보다도 더 깊고, 더 넓으며, 더 빠른 속도로 인류를 바꾸고 있습니다. AI는 의료와 과학, 예술과 교육, 정치와 군사까지 스며들며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길이 제국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듯, AI는 21세기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새로운 “제국의 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길이 단순히 편리와 효율만을 약속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AI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공동체와 신앙의 가치에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AI를 단순히 기술 혁신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 길이 차지해 온 의미를 바탕으로, AI라는 새로운 길이 인류의 정신과 영혼에 어떤 도전과 가능성을 가져오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육지의 길, 바닷길, 하늘길, 우주길을 넘어, 이제 AI의 길이 인류에게 열렸습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게 될까요?

<AI와 문명사: 길의 계보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곧 길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길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과 도시를 연결하며, 국가와 제국을 형성하게 한 문명의 뼈대였습니다. 길 위에서 물자가 오갔고, 사상이 퍼졌으며, 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길이 없는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고, 길이 열리는 곳마다 새로운 세계가 탄생했습니다.

육지의 길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로마 제국은 길의 문명이라 불릴 만합니다.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처럼, 제국 전역에 걸쳐 직선 도로망을 건설했습니다. 이 길들은 군대의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했고, 상업과 통치, 그리고 로마 문화의 확산을 이끌었습니다. 길은 곧 권력이었으며, 길의 효율성은 곧 제국의 힘이었습니다.

바닷길
이후 인류는 바닷길을 열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의 무역로를 개척했고, 대항해 시대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서양을 가르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는 해상 패권을 장악하며 세계 질서를 주도했습니다. 바닷길은 단순한 교역의 길을 넘어, 문화와 문명의 충돌과 융합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하늘길
20세기에는 하늘길이 열렸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은 불과 1세기 만에 전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어냈습니다. 항공로는 물류와 여행, 외교와 전쟁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속도의 문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습니다.

우주길
이어 인류는 우주로 향하는 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스푸트니크, 아폴로 11호, 그리고 최근의 스페이스X까지, 우주 탐사는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인류가 더 큰 차원의 길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주길은 아직 미완의 길이지만, 인류의 상상력과 도전 정신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AI의 길
이제 21세기의 길은 물리적이 아니라 디지털적입니다. AI는 도로망이나 항로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기능은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고속도로처럼 흘러가고, 알고리즘은 항로를 안내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AI는 인간과 인간, 문화와 문화,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새로운 문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AI의 길은 이전의 길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갖습니다. 육지의 길은 돌과 흙으로, 바닷길은 바람과 물결로, 하늘길은 금속과 연료로 만들어졌지만, AI의 길은 데이터와 연산으로 구축됩니다. 이 길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생활 속을 관통합니다.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문명사적 전환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의 계보 속에서 볼 때,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길의 정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과 두려움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AI는 더 이상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손에 쥐는 휴대폰, 노트북 컴퓨터,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검색 엔진과 교통 체계, 도시 정비 시스템은 이미 AI 없이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국방과 사법, 행정과 입법, 에너지 공급과 항공 시스템, 위성과 선박 운행까지—AI는 문명의 모든 혈관을 흐르는 새로운 피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AI의 길은 단순히 편리함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의료 영역에서 AI는 CT와 MRI를 판독하며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신약 개발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앞당깁니다. 금융 세계에서는 알고리즘 트레이딩과 신용 평가를 통해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교육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습을 가능케 합니다. 가정에서는 IoT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문화 영역에서는 예술 창작과 문화유산 복원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산업에서도 AI는 새로운 길을 닦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의 로봇들은 사람의 손보다 더 정밀하게 생산을 수행하고, 농업에서는 드론과 센서가 토양과 기후를 분석하여 더 풍요로운 수확을 가능하게 합니다. 물류와 교통에서는 무인 택배 드론, 자율주행 트럭, 최적화된 물류 네트워크가 전 지구를 더 빠르고 촘촘하게 잇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AI는 공공 안전과 재난 대응에도 중요한 길을 내고 있습니다. 범죄 예측과 스마트 감시 시스템은 사회 질서를 강화하고, 기후 변화 예측과 환경 모니터링은 지구 공동체의 생존을 지키는 새로운 길잡이가 됩니다. 나아가 우주 탐사에서는 인공지능이 탐사선을 자율적으로 조종하고, 양자 컴퓨팅과 결합하여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AI가 열어가는 이 새로운 길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점입니다. 육지의 길이 마을과 도시를 잇고, 바닷길이 대륙을 연결했으며, 하늘길이 국가와 국가를 이어주었듯, AI는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지식과 지식을 잇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길은 단순히 효율과 속도를 추구하는 직선만이 아니라, 인간성과 생명을 담아내는 곡선의 여백도 함께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AI는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의 끝이 단지 기계적 번영으로만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가치를 더 깊게 드러내는 길이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결국 AI가 열어가는 이 길은 기술의 길이자, 동시에 인간 영혼의 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AI가 바꾼 삶의 방식과 혁명적 변화>

우리에게 AI라는 이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구굴 서치를 하거나,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을 이용할 때, 카카오톡이나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어느새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 AI를 인식하게 됩니다. 텔레비전을 키면 방송사들은 가장 많이 실생활에서 AI를 이용하고 있고, 유튜브를 켜면 알고리즘에 의해 축적된 정보를 기반으로 각 개인이 좋아하는 채널들을 이제는 맞춤형으로 썸네일을 제공함으로 더 많은 시간을 유튜브 시청에 빠지게 합니다.

아이들은 방과 후 숙제를 할 때 이제 AI 없이는 숙제를 마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자동차를 운전할 때 이용하는 GPS 그리고 음성인식을 통해서 운전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AI는 비서처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AI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이해 없이도 우리 생활 가운데 우리는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제는 인류의 삶 가운데 더 이상 없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문명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냉장고나, 전화국, 세탁기 및 전자기기가 고장나서 고객 센터에 문의하면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챗봇(Generative AI, LLM)들이 고객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AI는 사무 지원, 언어 번역, 글쓰기 보조, 검색 보조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 대화·사고 방식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대폰·검색 엔진·SNS 등에서 “내가 묻고 AI가 응답”하는 구조가 자연스러워졌고, 정보 탐색이나 학습, 창작 등에 AI를 활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기업들은 AI를 도입하여 업무 효율을 극적으로 올리고, 반복적·시간 소모적인 업무들을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회계, 자산 관리, 컨설팅, 고객 응대 등에서 AI 도구들이 일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조력자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산업 연구개발(R&D)의 속도를 AI가 추동하고 있습니다. 화학, 제약, 반도체, 신소재 산업 등에서 AI를 활용한 신제품 개발·최적화가 가속되고 있습니다.

AI 덕분에 과거 전문가나 특정 기관에 의존하던 지식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영상 판독 보조, 논문·정보 요약, 언어 번역 등이 일반인도 손쉽게 활용 가능해졌고, 다양한 언어권 사람들이 더 많은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성형 AI(GenAI)의 발전으로 이미지·음성·텍스트 콘텐츠가 즉석에서 만들어지고, 창작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매일 연락오는 광고 전화도 AI가 생성하고 고객을 찾아 마치 사람이 전화하듯.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창작과 예술,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변화를 불러옵니다.

1. 제일 큰 변화는 노동 시장과 고용의 충격입니다.

단순 반복 업무, 데이터 입력, 고객 응대 등의 직종에서는 점점 AI가 대체하거나 작업을 덜 필요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반대로 AI에 적응하거나 AI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skill set)이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재교육(reskilling)”과 “평생 학습(lifelong learning)”이 필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2. 정치·윤리·규제에도 새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딥페이크·허위 정보(misinformation), 감시(surveillance) 등 윤리적 문제들이 대두됨. AI가 만들어 내는 잘못된 정보 혹은 조작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들이 “AI 거버넌스(governance)”를 논의하기 시작함. 국제회의, AI 안전 보고서, 규제 프레임워크 개발 등이 활발해졌습니다. 예를 들면20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I Action Summit 등이 비근한 예입니다.

3. AI는 기회이며 동시에 위험인데 이러한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자금·교육·인프라를 가진 개인·기업·국가들이 더 유리한 위치를 가져갑니다. 기술 격차(digital divide)가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 있습니다.
동시에 AI 중심의 혁신이 기후문제나 환경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도 연결됩니다. AI가 공급망과 에너지 사용 최적화, 예측 유지보수(predictive maintenance) 등을 통해 환경 부담을 줄이는 가능성도 보고됩니다.

4. 대표적 사례들

• 자율주행·자동택시
미국과 중국에서 일부 도시들에서 자율주행 택시(robotaxi)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일상 교통 패턴 변화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 의료 AI 기기 승인 증가
FDA 등이 연속적으로 AI 기반 의료기기(device)를 승인함으로써 진단·치료 보조 기술이 실질적으로 의료현장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 비즈니스 생산성 도구로서의 AI
마이크로소프트의 Copilot, 구글의 AI 서비스 도구, 기업 내부 문서 자동화, 고객 답변 자동화 등이 직원들의 작업 흐름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2025년, AI가 이끄는 문명적 전환>

여러 변화 중 지금시점에서 가장 혁명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생성형/언어 모델형 AI(Generative / LLM)의 일상 내재화라고 생각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감지 가능성
이전처럼 기술이 연구실 안이나 산업용 소프트웨어 안에만 있지 않고,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2. 접근성
여러 플랫폼(스마트폰, 웹서비스, 앱 등)을 통해 수억 명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3. 영역 파괴적 변화
글쓰기·번역·창작·상담·교육 등 전통적으로 인간이 직접 하던 일들의 방식, 기대치, 속도, 생산성이 바뀌고 있습니다.

4. 신속한 확장성과 위험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며, 동시에 오류와 오용의 가능성—허위 정보, 윤리적 책임 회피, 노동 소외 등이 동반됩니다.

2025년의 절반을 넘어가며 세계를 둘러보면, 눈에 띄는 급격한 변화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영역만큼은 예외입니다. 불과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AI는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와 범위는 가히 문명적 혁명이라 부를 만합니다. 이전의 기술 혁신들이 미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주도했던 것과 달리, 현재 AI의 흐름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압도적으로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 외 국가들도 변화에 동참하고 있으나, 전 지구적 판도를 흔들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형국입니다.

1. AI가 만들어내는 혁명의 현장

AI 혁명의 특징은 단순히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등장을 넘어, 사회 전반의 구조를 새롭게 짜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서 변화가 눈에 띕니다.
산업 현장에서는 AI agent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해 공장 자동화를 가속하고 있으며, 선박·지하철·자동차 등 교통 시스템 전반에서 자율 운영 체계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군사와 안보 분야에서는 무기 체계와 작전 지휘가 AI에 의해 지원되거나 심지어 부분적으로 대체되면서,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국가 행정과 정보 처리는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정책 수립과 사회 관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기업 경영에서는 정보 처리와 비서 역할까지 AI가 맡아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개인의 생활 속에서는 IoT와 결합한 가전제품, 집 전체를 통합 관리하는 운영 시스템, 스마트폰의 AI 비서가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2. 아직 다루지 않은 새로운 지평

그러나 AI 혁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영역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AI의 발전과 접목이 괄목할 만한 영역은 의료와 생명공학입니다. 단백질 구조 예측과 신약 개발, 유전자 치료, 맞춤형 진단 등에서 AI는 이미 인간 의학의 한계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생명 연장의 꿈과 함께 새로운 윤리적 질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교육 영역에서도 혁명적인 AI의 도입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교실과 대학에서 AI는 맞춤형 학습과 튜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AI가 학습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환경 관리에 있어서 AI는 기후 시뮬레이션, 재생에너지 최적화, 스마트 농업 등 지속 가능성을 위한 혁신적 도구로 AI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금융과 무역에 있어서 실시간 번역, 거래 최적화, 사기 탐지와 리스크 관리에서 AI는 경제 질서를 바꾸고 있습니다.
사이버 보안에서는 AI는 해킹과 방어 모두에 사용되며, 국가 안보와 개인 안전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전쟁터를 열고 있습니다.
AI와 연계된 예술과 문화 영역의 발전과 변화는 괄목할 만 합니다. 그림, 음악, 영화, 문학에 AI가 참여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창작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정치와 행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부 정부는 정책 수립과 여론 분석까지 AI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운영 방식에도 근본적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3. 미완성의 질문

2025년 AI 혁명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산업과 경제, 정치와 교육, 예술과 문화, 심지어 생명과 윤리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의 모든 구조를 다시 짜는 거대한 전환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아무리 AI가 발전하더라도,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습니다. AI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더 깊이 던지도록 우리를 자극할 뿐입니다.
결국 AI 혁명 속에서도 역사의 주체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와 소명을 묻는 인간의 영혼입니다.

<AI Olam을 생각하며>

우리는 늘 시대를 이름으로 불러 왔습니다.
농업사회, 산업사회, 컴퓨터 사회, 인터넷 지식정보 사회… 그리고 지금은 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 지능)중심 사회.
AI 즉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 담긴 변화는 우리의 밥상과 직장, 학교와 군대, 나아가 마음 깊은 곳의 감정까지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대”라는 명칭 속에서 유대적 개념인 Olam(עוֹלָם, 세상/시대/영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Olam은 단순히 “세상”을 뜻하는 공간적 단어가 아니라, 동시에 “영원” 또는 “시대”를 의미하는 시간적 개념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Olam은 성경에서 always, forever, everlasting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적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유사 개념을 서유럽 언어에서 찾자면, 스페인어 Siempre와 포르투갈어 Sempre 그리고 이탈리아어 sepmre가 시간적 지속성을, 러시아어 мир (mir)는 “세상”과 “평화”를 동시에 담아 공간적·영적 함의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여기에서 Siempre나 Sempre가 Olam과 같이 동일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시간적 지속성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기에 비교 언어로 제시해 보았습니다.
프랑스어 toujours와 éternité, 이탈리아어에는 sempre 외에도 eternità, 독일어 immer, Ewigkeit, Welt 또한 각각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나누어 번역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Olam의 다층적 의미—시간 속의 공간, 공간 속의 시간, 그리고 영원히 계속되는 세상—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Olam은 단순한 언어적 번역을 넘어, 히브리적 사유 속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곧,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얽힌 총체적 현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원의 세상”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적 사유 속에서 Olam은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차원으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땅끝”(The End of the Earth)은 단순한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마지막 날”(The End of the Age)을 의미합니다. 끝은 단지 공간의 끝이 아니라, 시간의 완성까지 내포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Olam은 언제나 “시간 속의 공간”이자 “공간 속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AI Olam을 살고 있습니다. AI시대이며 동시에 AI 세상 즉 AI가 깔아 놓은 길 위에 지금 지구촌 인류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지식정보 사회는 단순한 기술 환경이 아니라 하나의 Olam—즉 “지식정보의 세상”이며, 지금의 AI 시대 또한 “AI의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AI가 인간의 도구로 쓰이는 국면을 넘어, AI가 지배하거나 주도하거나 중심에 서는 또 하나의 세상, 곧 새로운 AI Olam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서구적 사고는 시간과 공간을 별개의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왔습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과 “여기-저기”라는 분할된 공간의 사고는 산업과 과학 발전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시야를 잘라내는 한계도 남겼습니다. 반면 유대적 전통에서 Olam은 “언제”와 “어디”를 동시에 아우릅니다. 곧, 시간의 지평과 공간의 지평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총체적 현실입니다.
우리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AI Olam의 길 위에서, 이 길을 계속 따라 간다면 종국에는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요?

<AI Olam, 우리 삶의 총체적 전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얽힌 천(織物)’ 같은AI Olam을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AI 시대는 단순히 “지금의 시간”이나 “여기의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총체적 Olam의 전환입니다. 이제 인간이 밥상에서 스마트폰을 잡는 순간, 단순한 기계 조작이 아니라 AI가 협력하는 새로운 기술의 장으로 들어갑니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물건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즉시 온라인 쇼핑으로 연결됩니다. 외국어 문장을 입력하지 않아도, 마이크에 대고 말만 하면 자동으로 번역되어 흘러나옵니다. 직장에서 회의 내용을 녹음하면, 곧바로 문서로 변환되고, 요약과 분석까지 덧붙여 줍니다.

이제는 우리가 숨 쉬듯이 쓰는 카카오톡 메시지조차 AI가 문맥을 읽어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제안합니다. 검색창에 질문을 던지면 AI는 단순한 답변이 아니라, 나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최적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은행 앱은 AI의 보안 알고리즘 위에서 작동하며, 우리의 재정을 계산하고 투자까지 돕습니다. GPS와 교통 체계는 AI의 연산 없이는 움직일 수 없고, 철도 운행, 항공 관제, 도시의 전기와 수도 관리까지 모두 AI가 숨은 손으로 조율합니다. 심지어 가정 안의 작은 전등과 냉장고, IoT 기기들까지 AI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차분히 열거해 보려 해도 끝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 직장, 공동체, 사회, 국가—어느 하나도 이제 AI와 연결되지 않은 영역이 없습니다.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AI가 사실은 이미 너무 가까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감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문득 깨닫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결이 이미 AI라는 실로 촘촘히 엮여 있으면 이는 결국 AI 시대의 길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그 길을 가고 있구나.”

그렇기에 AI 시대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의 등장만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를 묻는 거대한 전환점입니다. 삶의 편리함과 효율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와 마주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AI와 협력하는 순간, 도시와 국가 시스템이 AI로 재편되는 순간—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새롭게 얽힌 “AI Olam”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의 크기보다도, 이 새로운 Olam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서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AI 세상은 하나의 도구일 수도 있고, 하나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인간다움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2025년, 인류는 마치 기차가 급격히 가속할 때처럼 흔들리며 AI라는 길 위를 달리고 있지만 가속이 붙은 기차는 멈출 줄 모릅니다. 농사짓던 손이 기계를 돌렸고, 기계가 다시 컴퓨터로 바뀌었듯, 이제는 사람이 내리던 결정을 인공지능이 대신합니다. 번역, 글쓰기, 음악, 그림, 병 진단, 심지어 전쟁 전략까지. 아직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함께 일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에서 등장하는 “Big Brother”는 냉전의 긴장과 감시 사회의 공포를 상징했습니다. 1984년 무렵만 해도 사람들은 이 거대한 눈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두려움 속에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다소 과장된 디스토피아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불과 몇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그 예언의 그림자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AI”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감시자이자 동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연구실 속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든 조용한 존재로 말입니다. 우리가 손에 쥔 휴대폰은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니라 거대한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창구가 되었고, 노트북과 태블릿은 우리의 사소한 검색과 생각을 기억해 두는 지능형 서재가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GPS는 길 안내를 넘어 우리의 이동 패턴을 학습하고, 교통 신호와 도시 관리 시스템은 이미 AI 알고리즘 없이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국가 행정과 국회, 사법부, 군사 분야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무기 체계는 단순한 화력이 아니라 알고리즘 전쟁으로 진화했으며, 인공위성과 항공 시스템은 인간의 눈과 손을 넘어선 정밀도를 요구합니다. 공항의 복잡한 터미널 운영, 우리가 매일 타는 지하철과 택시, 가정으로 공급되는 전기와 수도 관리까지—AI는 이미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관리하는 “새로운 공공재”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증기기관이 산업혁명 속에서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신했다면, AI 혁명은 이제 인간의 뇌와 신경망의 일부 역할을 옮겨가는 일입니다. 산업사회의 핵심이 전기였다면, 지식정보사회의 핵심은 인터넷이 공기처럼 스며든 것처럼, 21세기의 오늘 AI는 인류 지능의 일부를 담당하려는 새로운 문명의 토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0년대에 사람들이 오직 ‘빅브라더’의 감시만을 두려워했다면, 오늘날의 AI는 단순한 감시자를 넘어 삶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반자는 때로 통제자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그리고 인간다움의 어떤 면모를 끝까지 지켜낼 것인지입니다. 만약 AI가 처음에는 보조자였으나 어느새 절대적 통제자로 전환되어 자동차 주행, 인터넷과 정보 검색, 인공위성, 선박·철도·항공 교통, 교육, 국방, 경제와 산업 등 사회의 신경망이 한꺼번에 마비되는 사태가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사고와 성찰, 분별과 고민 없이 AI의 도움만을 받아온 인간이 결국 그 도구에 종속되어 ‘도구에 의해 다스려지는 존재’로 전락한다면, 인간과 인류의 삶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 이 질문은 이제 기술적 논쟁을 넘어 우리 존재의 근본을 향한 물음입니다.

<AI와 삶의 모든 영역>

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시대와 세상 즉 AI Olam에서 우리의 삶과 기술 그리고 직장, 국가와 산업 그리고 교육 및 군사 그리고 인간의 정서까지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AI가 주도하는 기술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가파른 상승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AI 가 가장 치열하게 실현되고 있는 곳이 직장입니다. 사무실의 보고서는 AI가 초안을 만들고, 공장은 로봇과 AI가 생산을 조율합니다. 노동은 줄지만, 인간의 “쓸모”에 대한 질문은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AI의 중요성을 대두되면 될 수록 이제는 외교에서 존망외교하던 것이 무안할 정도로 AI 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각 국가의 AI산업전략 및 R&D는 첨예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미국, 중국, 유럽, 한국, 일본은 AI 칩과 반도체, 데이터 인프라를 두고 치열한 전략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총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계산 능력이 된 시대입니다.
제가 제일 염려하는 것은 컴퓨터 세대도 아니고, 지식 정보화 사회도 아니고, 인터넷 세도 아니고 AI가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교육의 현장입니다. 교실에서는 학생이 AI에게 질문하고, AI가 맞춤형 교사가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 배우려는 힘”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느끼는 상담과 매일의 대화 상대로서도 AI는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외로운 이들은 AI 친구와 대화하고, 연인은 AI가 추천한 상대와 만납니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 같은 감정이 과연 AI로 채워질 수 있을까요? 여전히 인간의 마음은 기계가 다 흉내 내지 못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AI가 군사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과거의 전쟁은 병력 규모와 화력, 즉 아날로그 방식의 무기와 작전으로 좌우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전쟁의 현장은 이미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포병 화력과 대규모 병력을 앞세워 전쟁을 시작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서구의 AI 기반 기술 지원을 바탕으로 대응했습니다.
드론이 자율적으로 표적을 식별하고, 공격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입니다. 위성 영상과 AI 분석으로 적군의 이동 경로가 실시간 파악됩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미 AI를 활용한 전자전과 심리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총보다 알고리즘이 더 무서운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전쟁이 “철과 불의 힘”이었다면, 오늘의 전쟁은 “데이터와 연산의 힘”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뿐 아니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감시와 방어의 AI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국방 체계에 적용해 온 나라입니다.
아이언 돔(Iron Dome) 방어체계는 AI 알고리즘으로 수천 발의 로켓 가운데 위협적인 목표를 선별하고 요격합니다. 안면 인식, 패턴 분석, 빅데이터를 활용한 감시 시스템은 하마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응을 준비합니다. 드론과 로봇 병력은 이미 지상 작전에서 보조 전투원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AI가 단순히 공격 수단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방패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AI 파워가 보여는 한반도>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세계적 관심의 초점입니다. 분단은 단지 선(線) 하나로 그어진 지형적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 누적된 정치·사회·군사적 긴장의 총체입니다. 21세기, AI와 네트워크 중심 전쟁(NCW: Network-Centric Warfare)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반도의 대치 양상도 본질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AI가 개입된 상황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전쟁은 어떤 모습일지, 위기·전시 상황에서 사회와 공동체가 직면할 윤리적·인도적 과제와 준비 방안을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마스 이스라엘 전쟁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핵무장을 계속 급속도로 발전시키고 있는 북한과 미국 주도의 핵우산 아래 디지털-AI 형태로 방어 체계를 재구성하고 있는 남한의 군사 상황을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AI은 한반도 군사 대치 상황에서 기술·전술의 전환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술 전환의 핵심을 살펴보면, 전쟁은 더 이상 단순히 병력 규모와 화력의 경쟁만이 아닙니다. 정보, 센서, 통신, 그리고 알고리즘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AI는 감시·정찰(ISR), 의사결정 보조, 사이버·전자전, 자동화된 무기체계(드론과 로봇)의 운영 등 전장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인간이 추정하고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군사 작전과 공격, 그리고 방어 체계 속에서 한반도의 특수성은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됩니다.
지리적 근접성으로는 남북 간 거리가 짧아 초기 충돌의 파급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높은 군사력 밀집도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대규모 병력, 포병·탄도미사일·공격헬기 등 전통 무기 체계와 함께 현대적 센서·통신이 공존합니다. 한반도는 좁은 땅덩어리에 핵·재래식·비대칭 위협의 공존합니다. 핵 억제력, 사이버 역량, 비대칭 위협(게릴라·무인체계 등)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회적·경제적 상호의존성 및 취약성도 중요합니다. 전력·통신·금융 등 사회 인프라의 고도화로 민생 피해가 즉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바꿔 놓을 전장에는 주요 기능과 한계가 상존합니다.
북한과의 정보 우위가 매우 중요합니다. 위성·드론·소셜 미디어 등으로 모인 데이터를 AI가 실시간 분석하면 전장 인식(세인트 오브 배틀, SENSE OF BATTLE)이 훨씬 빨라집니다. AI 시대에는 속도와 자동화가 관건입니다. 일부 판단 보조와 루틴 작전에서 반응 속도가 빨라져 전투 템포가 가속됩니다. 남북한 사이에는 총소리만 나지 않을 뿐이지 매우 치열한 사이버·전자전이 벌어지고 있고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AI는 사이버 공격 탐지·방어 및 전파혼란(EW)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무인·자율체계입니다. 감시·정찰·물자수송·일부 타격 임무에서 무인체계 활용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대치 상황에서 AI가 주는 한계와 위험이 분명히 공존합니다. 알고리즘은 맥락·윤리·의도 판단에 한계가 있는데 이는 오인·오탐의 위험을 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속도 압박입니다. 자동화된 권고가 빠를수록 인간의 신중한 판단 시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AI 운용에 필요한 전력·통신이 차단되면 성능 급감할 수 있습니다. 작은 오류가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 통제 불능 상황으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들이 AI만능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정교한 분석과 빠른 결단 및 판단력 그리고 분별력을 요청합니다.
AI와 네트워크는 한반도의 위기를 더 빠르고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정보와 협력 역시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안전은 단지 더 강한 무기나 더 빠른 알고리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책임, 공동체적 회복력, 국제적 연대에 달려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기술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도구로 삼아 생명을 지키고 회복을 이루는 일에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 선택은 정치인의 결단과 전문가의 판단뿐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신앙과 윤리적 각성에 달려 있습니다.

<AI가 재편하는 한반도 전장의 양상>

한반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AI와 네트워크 중심 전쟁이 본격화되는 시대에는 이 이해관계가 더 촘촘하고, 더 빠르며, 더 복잡하게 얽힙니다. 전통적인 병력과 화력의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전장의 핵심은 이제 “누가 더 정확하게 데이터를 읽고, 더 빠르게 판단하며, 더 신뢰성 있게 소통하는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남·북간의 직접 충돌뿐 아니라, 주변 열강의 개입 방식과 범위까지 근본적으로 바꿔 놓습니다.

1. 남북의 대리전 양상: 알고리즘의 대리전(代理戰)

북한은 전통적 병력과 포병 전력이 강점이지만, AI와 첨단 인프라 면에서는 제약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비대칭적 수단—사이버 공격, 정보 작전, 소형 무인체계, 심리전—에 AI를 접목해 ‘저비용·고효율’의 타격을 노릴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한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역량을 바탕으로 감시·정찰·지휘통제 체계를 강화할 수 있지만, 전시 전환 능력의 속도와 인프라의 회복력 여부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리전’의 형태입니다. 직접적인 병력 충돌 대신, AI 기반 시스템을 매개로 한 알고리즘 대 알고리즘의 충돌—또는 자신을 대신해 움직이는 무인체계와 사이버 전력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이 늘어납니다. 이때 남북한은 서로의 기술을 직접 겨루기보다, 상대의 사회·경제적 취약점에 간접적 타격을 가하는 전략을 택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투의 주요 무대는 ‘물리적 접경’뿐 아니라 ‘데이터 공간’과 ‘정보 생태계’로 확대됩니다.

2. 미국의 역할: 지원과 억지의 재구성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 방위의 핵심 파트너입니다. AI 시대에는 물리적 전력뿐 아니라 데이터·정보 우위, 사이버 방어 역량, 지능형 ISR(감시·정찰) 및 연합 지휘통제 능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지원은 남한의 방어 능력을 증강시키고 억지력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전투의 기술적 수준을 한층 끌어올려 지역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AI를 기반하는 정보 우위는 전쟁의 향후 양상을 바꿀 것입니다.
미국의 참여는 전쟁 억지의 신뢰성을 높이는 한편, 전쟁이 ‘지역적 충돌’에서 ‘대리 열강 간 충돌’로 비화할 위험도 수반합니다. 특히 사이버·우주·정보 영역에서의 지원은 신속하지만, 공격·방어의 경계가 모호해 오인과 확대의 소지가 큽니다.

3.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 구심과 방어의 전략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대를 예의주시합니다. 이들 국가는 직접적 군사 개입보다는 정치적·외교적 압박, 비공식적 기술·정보 지원, 또는 사이버 차원의 반격 등으로 균형을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완충 지대로서의 지위를 지키려 할 것이고, 러시아는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사이버 역량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관여는 지역 갈등을 국제화하는 요인이 됩니다. 단순히 남·북의 문제였던 것이 아니게 되고, 각국의 계산은 ‘한반도 안정’뿐 아니라 자국의 글로벌 영향력과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경쟁을 포함하게 됩니다.

4. 일본의 확장 참여 가능성

일본은 지리적·안보적 이해관계가 큰 국가로, 한반도 위기시 자위대·미일 연합체계의 연계 강화, 미사일 방어·정보공유 강화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관여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의 참여는 지역 안보 체계의 통합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과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위험도 갖습니다.

5. 위험요인: 오인·오탐·에스컬레이션

AI 기반 전쟁의 가장 심각한 위험은 오인·오탐의 속도와 확산성입니다. 알고리즘은 때때로 신호를 잘못 해석하고, 위성·센서 데이터의 왜곡이나 악의적 스푸핑(spoofing)은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 국가가 각기 다른 AI 체계를 운용할 때, 잘못된 경보가 연쇄적으로 확산되어 통제 불능의 확전으로 비화할 우려가 큽니다. 또한 ‘누가 공격했는가’의 귀속(attribution)이 어렵기 때문에 보복의 정당성 판단이 복잡해집니다.

6. AI 기술 및 기능과 통제는 증가하고, 책임은 인간에게 남는다

AI는 전쟁을 더 빠르게, 더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예방 조치’와 ‘외교·규범적 장치’를 요구합니다. 한반도에서의 AI 대리전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열강의 전략적 이익이 맞물리는 복합적 분쟁입니다. 이 현상은 기술적 우위가 곧 평화를 보장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오히려 AI가 제공하는 속도와 효율은 잘못 관리되면 위기 확산을 가속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기술을 도구로 삼되, 인간의 통제와 윤리, 국제적 규범과 신뢰구축을 동시에 강화해야 합니다. 더 많은 감시와 더 빠른 연산은 평화를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평화를 지키는 궁극적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며 외교입니다. 한반도에서의 미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결단과 연대, 그리고 책임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 AI 변화의 특징 및 도전>

AI의 선도적 주자인 미국,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쫒는 중국, 그리고 그 틈새 시장을 노리는 한국와 일본, 그리고 R&D 및 특별 영역에서 AI의 방향을 찾는 유럽에서 한국은 한국만이 갖고 있는 산학연계 상황 속에서 AI 생태계 변화에 적응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꾀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드러나는 특징과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술력 + 인프라 우수성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 인터넷 속도, 통신 및 하드웨어 기술에서 강점이 있고,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GPU/TPU 자원 확보 및 대기업 중심 AI 연구개발 역량도 높아지며, 자체 LLM 개발 사례 등이 보입니다.

2. 산업·콘텐츠 중심 활용 확대
콘텐츠 산업(K-pop, 미디어, 게임 등), 마케팅, 제조, 인프라 안전 유지관리 등 여러 산업에서 실질적인 AI 활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용성과 즉시적 효과가 기대되는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는 중입니다.

3. 정책 및 공공 방향성 확보 시도
AI 기본법, AI 거버넌스, 윤리 지침 마련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 AI 프로그램(“AI for Good” 등), 인프라 투자, 국제 협력 등에서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4. 사회적 인식 증가 및 규제 요구
AI 윤리, 프라이버시, 딥페이크 등의 위험성에 대한 언론과 시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책, 규제, 법적 책임의 필요성에 대한 담론이 대선 공약에도 포함됩니다.

주요 도전 과제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인재 양성 및 교육 격차
실무 중심의 고급 AI 인재 부족이 지속됨. 대학 교육과 산업 수요 간 괴리 존재합니다. 지역·계층 간 교육 접근성 불균형이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2. 기업 간 격차
대기업은 AI 도입·투자 여력이 있습니다. 중소기업·스타트업은 아직 초기 비용, 전문성 확보, 인프라 부족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3. 제도적 준비와 법률 규제의 신속성 부족
AI 기본법 등 법률 틀은 마련 중이지만, 구체적인 하위 법령과 시행정책의 실행 속도, 산업계와 현장과의 괴리가 있습니다. 부처 간 조율, 규제 일관성 확보,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주권 확보 문제도 복합적 과제입니다.

4. 윤리·안전·신뢰 확보
딥페이크, 허위 정보, 개인정보 유출 등 AI 악용 가능성에 대한 대비 필요합니다. 사용자 신뢰 회복 및 AI 시스템 투명성·책임성 강화가 중요합니다.

5.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기술 격차는 지역 및 계층 간 불평등 심화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부 산업에서만 혜택이 집중되고, 일반 국민의 체감 변화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앞으로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변화들이 어떻게 더 발전해 갈지, 다음 항목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AI 기본법과 하위법령의 실제 시행 시점과 내용 (업종별 규제 기준, 책임자 지정, 데이터 활용 조건 등)입니다.
공교육/대학 교육의 AI 교육 커리큘럼 변화 여부, AI 윤리 교육 및 실습 중심 교육 확대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에 대한 AI 도입 지원 정책 (금융, 인프라, 인력) 확대 여부입니다.
지역 격차 해소에 있어서 지방·비도심 지역에서도 AI 인프라 및 인재 접근성 개선이 요구됩니다.
AI 인재 유출 방지 및 국제경쟁력 확보해야 합니다. 보상, 연구환경, R&D 투자 확대가 필요합니다.
AI 안전성 및 보안 사고 발생 시 대응 체계 구축 여부입니다.
국민의 신뢰 확보입니다. AI 개발 및 활용에서 투명성, 설명 가능성, 공정성 확보가 실제로 체감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화되는가의 여부입니다.

<AI 생태계와 그 뿌리>

1. AI 생태계

AI는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AI 생태계는 데이터를 모으는 클라우드, 이를 계산하는 AI 칩, 소프트웨어, 기업의 산업 구조, 그리고 이를 다스리는 법과 제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피지컬 AI는 산업과 학계 그리고 국가의 인프라에서 있어서 가장 근본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분야입니다.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기기들이 우리의 몸 가까이에 다가온 모습입니다.

AI 칩 생산은 피지컬 AI 설치를 가능하게 합니다. 엔비디아, AMD, 인텔, 삼성 등 반도체 기업이 만든 작은 실리콘 조각이 사실상 인류의 뇌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AI 칩을 기초로 피지컬 AI가 세워지면 빅테크 기업은 AI를 서비스와 광고, 의료, 금융, 국방에 심어 넣어 “플랫폼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이러한 플랫폼 제국은 일종의 항공모함과 같습니다.
하나의 기술은 때로 군사 장비의 위력처럼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형기와 헬리콥터를 많이 만들어도 항공모함을 상대하지 못하듯, 아무리 많은 스타트업과 응용 서비스가 나와도 ‘피지컬 AI’—칩, 데이터센터, 거대한 클라우드 인프라—의 규모 경제 앞에서는 힘이 부칩니다. 오늘의 국제 사회는 바로 그 항공모함을 누가 소유하느냐에 사활을 거는 양상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AI의 중심은 더 이상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닙니다.
학습을 위한 거대한 데이터, 이를 처리할 초대형 연산 능력, 그리고 이를 상용·안전하게 운영하는 물리적 인프라가 결합되어야만 실질적 우위가 만들어집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막대한 자본과 장기간의 투자, 공급망의 안정성을 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막대한 자원과 플랫폼을 가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사실상 ‘국가 규모의 생산성’을 손에 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요?

2. AI 편재

피지컬 AI 한 축을 만드는 비용은 웬만한 개발도상국의 연간 예산을 훌쩍 넘어서며, 핵심 칩 설계·생산과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은 소수의 기업과 국가에 집중됩니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들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입니다. 스스로 항공모함을 건조하려 애쓰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항공모함에 올라타 의존하는 길입니다. 현실은 후자가 더 실제적입니다. 자원과 시간이 제한된 국가일수록 ‘외부의 플랫폼·클라우드·칩’에 기대어 자국의 혁신을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곧 ‘AI 편재(偏在)’—특정 진영 주도의 기술 배치—의 구조입니다.
AI는 단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힘입니다.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세계 질서(경제·안보·산업구조)를 재편하는 힘입니다. 지금의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막대한 연산능력(컴퓨팅), 방대한 데이터, 그리고 이를 운영·상용화하는 플랫폼·자본의 결합이 ‘실질적 권력’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런 자원들은 소수의 기업과 몇몇 기술강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3. AI 패권 경쟁 시대

지금 전 세계의 AI 흐름은 불과 몇 개의 거대 기업과 국가가 주도합니다. 누가 뭐라해도 AI 의 초강대국 주자는 미국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은 자유로운 기업 경쟁으로 AI 혁신을 가속합니다. 미국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를 중심으로 세계 AI 생태계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2025년 가을 시점의 시장 상황을 보면, 반도체와 AI 연산의 핵심 기업 몇 곳의 시가총액은 조(兆) 단위를 넘어선 수준입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NVIDIA)의 시가총액은 약 4조 달러대($4.1조)에 달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약 $3.8조, 알파벳(구글)은 약 $3.0조 안팎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숫자들을 주요국의 연간 명목 GDP와 직접 비교하면 충격적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명목 GDP(2024)는 약 $4.03조 수준으로 추산되어, 엔비디아의 시가총액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독일의 명목 GDP(2024)는 약 $4.3조, 영국은 약 $3.8조 수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과 견줄 만합니다. 프랑스의 명목 GDP는 약 $3.1조, 이탈리아는 약 $2.4조, 한국은 약 $1.8조 수준입니다 —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프랑스의 연간 경제규모와 비슷하거나 이를 상회하고, 한국·이탈리아보다도 훨씬 큽니다. 2024년도 한국의 명목상 GDP는 약 $1.8조입니다. 2025년 현재 가을 기준 NVIDIA 시가총액 약 $4.1조임으로 한국 GDP의 약 2.3배에 해당되니 한 기업의 AI 산업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개별 민간 기업 한 곳의 시장가치가 대형 선진국의 1년치 경제생산과 맞먹거나 이를 넘어서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항공모함 구축과 헬리콥터 한 대로 비교되는 것이 실제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은 단순한 통계의 놀라움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본·데이터·연산능력이 결합된 ‘피지컬 AI’의 구축과 운영 능력이 곧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국부(國富)와 기업의 시장가치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자체적인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기보다, 소수의 기업·진영이 제공하는 플랫폼과 서비스에 의존하는 현실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AI 경쟁의 ‘규모의 경제’ 때문입니다. 동시에 21세기의 패권에 AI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국가 전략과 문명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국제사회의 AI 국가 전략

과거의 AI 변화는 주로 학계와 산업계의 연대와 기술 혁신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AI는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물리적 AI 인프라(Physical AI Infrastructure) 구축, 대규모 연구개발 지원, 로보틱스와 자동화 시스템 확장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했습니다.
대형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수천~수만 대의 GPU가 필요하고, 이들을 구동할 에너지·냉각·데이터센터 인프라와 막대한 전기요금, 그리고 대규모 학습용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프라와 자본은 단기간에 축적하기 어렵고, 따라서 초기 투자와 규모에서 앞선 기업·국가가 시장의 허브(허브·스포크 모델)를 장악하게 됩니다. AI 에 있어서 미국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추격도 거세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거대 IT 그룹(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등)은 2024~2025년 들어 AI 인프라 투자·채권발행·데이터센터 확장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으며, 업계 추정으로도 2025년에만 이들 기업의 AI 인프라·CAPEX 합계가 수십억 달러(일부 추정치는 $30억~$50억 수준의 단위가 아님—수십억 달러에서 수십억 단위 이상의 대규모 집행)로 알려집니다. 더불어 중국 정부 차원의 AI 산업펀드(예: 2025년 보고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가 AI 투자펀드)와 산업정책이 결합되어 빠른 추격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중국은 국가 주도의 통제와 감시 체제로 AI를 무기화합니다. 중국은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며 국가 통제형 AI를 발전시켰습니다. 방대한 인구와 데이터, 그리고 정부 주도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서구와는 다른 독자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5. 미국 주도의 AI 국가 전략

미국의 우위는 다층적입니다.
민간주도·경쟁을 통한 혁신: 구글(Alphabet),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오픈AI(민간·협력 모델) 등 글로벌 플랫폼이 경쟁하며 상품·서비스·클라우드 생태계를 확장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픈AI에 대한 거대한 투자 사례와, 오픈AI·MS 간의 상호 협력은 미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서비스·클라우드’ 측면에서 글로벌 표준을 만들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드웨어·반도체 생태계: NVIDIA의 GPU(예: A100/H100 계열 등)는 대형 언어모델(LLM) 훈련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았고, 이를 생산·공급하는 공급망(파운드리·패키징·광학·전력 인프라) 전반은 미·대만·한국을 잇는 글로벌 체인에 의존합니다. 이 때문에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핵심 부품·컴퓨팅을 통제하면 생태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한국의 현재 위치는 흥미롭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틈새’를 찾는 전략을 비교적 잘 구사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 역량,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력, 플랫폼 서비스 경험을 결합해 특정 산업 분야(제조·의료·모빌리티·콘텐츠 등)에서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전면 대결 대신 ‘적용과 연결’의 길을 택함으로써 실리(實利)를 좇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칩 설계·파운드리·대형 클라우드 등 핵심 요소에서 여전히 외부 의존이 크다는 약점을 동반합니다.

6. 유럽과 일본의 AI 국가 전략

유럽과 일본의 상황은 다소 다릅니다.
두 지역 모두 기술 역량과 자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구조적 요인이 성장 속도를 제약합니다. 유럽은 개인정보·윤리 규제에 큰 비중을 두어 ‘인간 중심 AI’와 규범적 리더십에서는 앞서지만, 분산된 시장과 규제의 단편성은 대규모 플랫폼 경쟁에서의 속도와 규모 면에서 뒤처지게 만듭니다. 일본은 하드웨어·로보틱스에서 강점이 있으나, 창업·데이터 생태계의 역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대형 플랫폼을 빠르게 키워내는 데 제약이 있습니다. 두 지역 모두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단번에 추격전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7. 개발 도상국의 AI 국가 전략

개발도상국의 현실은 더 단순하면서도 잔혹합니다. 자체적인 항공모함을 건조할 자본과 시간이 부족하므로, 자연스럽게 미국·중국 등 주요 진영이 제공하는 플랫폼과 서비스에 편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경제적 효익을 가져올 수 있으나, 동시에 데이터·기술 주권의 상실, 외부 의존에 따른 정치적·안보적 취약성을 낳습니다. ‘디지털 식민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AI 지리상의 발견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데이터의 이동, 알고리즘의 규칙, 서비스의 조건은 결국 권력을 낳게 되며, 이에 주도적인 국가의 우산아래 디지털 식민주의에 벗어 길은 요원해 집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AI는 냉전 시대의 핵무기 경쟁처럼 국제 정치·경제의 패권 도구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AI를 누가 통제하고 누가 표준을 세우느냐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인류의 사고 방식과 사회 질서 자체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연결됩니다.

<2025년 9월 현재까지 일어난 AI의 변화들>

1. 대표적 변화들 (2025년 상반기 ~ 현재)

1. 정부·정책·국가 전략이 급변
미국은 AI를 단순한 연구 과제가 아니라 경제·안보의 핵심자산으로 규정하고, 백악관 주도 하에 여러 행정명령(Executive Order)과 전략을 통해 ‘AI 리더십’과 혁신 생태계 육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영국도 대규모 컴퓨팅·칩 인프라 확대 계획을 발표하며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구글 등 민간 대기업을 끌어들여 자국 내 슈퍼컴퓨팅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는 AI가 무역비용을 낮추고 통·번역 등에서 저소득국에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보고하며, 각국이 AI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다루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요약하면: 각국 정부가 AI를 경쟁력·안보의 핵심으로 보고 적극적 전략과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2. 기술적·제품 수준의 향상
기술 측면에서는 ‘행동 가능한(agentic) AI’와 멀티모달 능력의 상용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시각·언어·행동을 통합해 물리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VLA(Vision–Language–Action) 계열 모델과 자율 에이전트(autonomous agents)가 연구·제품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휴머노이드나 로봇 제어를 목적으로 한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자금 유치에 성공하는 등 물리적 구현(로봇·휴머노이드)과 추론·추적 능력의 결합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대형 언어 모델(LLM)은 점점 더 정교한 추론·멀티모달 처리를 제공하도록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후에 다른 글을 통해서 다루어 볼 예정입니다.

3. 산업·상업 채택
금융·물류·제조·미디어·패션 등 업종 전반에서 AI 도구, 에이전트 및 맞춤형 모델의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비용 절감·서비스 개인화 등의 목적으로 AI를 ‘현재의 경쟁우위’로 활용하고 있으며, 창작·콘텐츠 제작(영화·음악·비주얼) 분야에서 AI 생성물 실험이 늘고 있습니다. 웨어러블·스마트글래스 등 사용자의 일상에 밀착하는 AI 응용도 확대되는 중입니다.

4. 법·규제·거버넌스
AI 확산 속도가 빠르자 규제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AI법(EU AI Act) 같은 고위험 AI 규제 모델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투명성·설명가능성·책임성 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미국도 연방·주 차원에서 관련 법·정책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데이터 주권, 국제 협력과 규범 설정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5. 사회적·경제적 영향
국제기구 보고서와 시장 동향은 AI가 교역·생산성·GDP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반면 노동시장에서는 일부 직무의 자동화·전환 우려가 커지며 재교육·평생학습의 필요성이 강조됩니다. 또한 딥페이크, 프롬프트 인젝션 등 AI 악용 사례와 사이버 위협 증가로 보안투자와 방어 체계 강화가 시급해졌습니다. 요컨대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확대되는 모습입니다.

2. 혁명적 변화의 특징 — 이 변화들이 ‘혁명’인 이유

1. Agentic·Autonomous AI의 등장
단순한 입력-출력 모델을 넘어서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행하는 ‘에이전트형’ 시스템들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AI는 단순 보조를 넘어 자율적 행위자로 작동할 가능성을 띱니다.

2. 멀티모달 통합의 확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비디오·오디오·행동을 한 모델이 처리하면서 ‘정보의 융합’이 가능해졌습니다. 인간의 복합적 감각과 유사한 방식으로 상황을 이해·처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3. 로봇과 물리적 체화(embodiment)
AI가 물리적 로봇·휴머노이드와 결합되며 ‘가상’에서 ‘현실’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센서·제어·계획이 결합되면 제조·물류·헬스케어·구조 현장 등에서 실제적인 자동화가 가속화됩니다.

4. 국가 간 인프라 경쟁
대규모 데이터센터, AI 칩(학습·추론용 가속기), 전력·냉각 인프라에 대한 투자 경쟁은 첨단 AI의 보급을 좌우합니다. 따라서 AI 우위는 계산능력과 물리적 인프라의 확보 경쟁으로 이어집니다.

5. 규제·거버넌스의 가속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니 규제와 거버넌스도 속도를 높여 대응해야 합니다. 투명성·책임성·공정성 확보를 요구하는 규범 체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6. 추론 비용·효율의 폭발적 개선
하드웨어·알고리즘 개선으로 모델 추론 비용이 낮아지면서, ‘맞춤형 LLM’과 엣지 적용이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AI는 대기업의 전유물에서 더 넓은 영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3. 지금 인류가 준비해야 할 일들

정책 입안자는 인프라·안보·교육·노동전환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AI는 단순 기술이 아니라 경제·안보·사회 구조를 바꾸는 전략적 자산입니다.
기업은 AI를 단기적 비용절감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거버넌스·윤리·설명가능성 체계를 갖추며 인재 재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시민사회·교육자는 디지털 리터러시·비판적 사고·평생학습을 강화하고, 기술 격차 해소에 힘써야 합니다.
보안·규범 측면에서는 악용 방지(딥페이크·사이버공격 대비)와 책임소재 규정, 데이터 주권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릅니다.
기독교에서 있어서는 신학적 보고서·공론장 마련되어야 합니다. ‘AI와 인간의 형상(Imago Dei)’, ‘구원과 기술’, ‘종말론적 상상력’ 등 주제를 다루는 교단·신학기관 차원의 연구 보고서와 공개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운영합니다.
기독교회 차원에서는 AI 윤리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목회자·신학자·윤리학자·변호사·기술전문가가 참여해 목회·사역에 적용할 지침(예: 데이터 사용, AI 상담·자동화 도입 시 윤리 규정)을 제정합니다.
목회·예배·영성 실천의 재정비도 요청됩니다. ‘현존(embodied) 예배’의 가치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줌·AI 중계가 늘어도 교회 내 몸의 예배(성찬, 안수, 공동기도)의 중요성을 설교와 교육을 통해 반복적으로 가르칩니다.
디지털 안식과 영적 훈련도 필요합니다. 정기적 ‘디지털 금식(디지털 안식일)’을 권장하고, 묵상·분별·기도 훈련을 구체적 프로그램(예: 주중 30분 묵상 챌린지)으로 제공하면 좋습니다.
예배 도구로서 AI의 절제된 활용도 가능합니다. 자동 자막·음향 보정·접근성 향상 등 보조 기능은 활용하되, 설교·목회적 위로·성례 집행 등 핵심 실천은 사람의 책임으로 유지합니다.
목회자·선교사·교인 대상 교육 강화하면 좋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AI 리터러시·비판적 사고 교육입니다. 목회자 연수·신학생 커리큘럼에 ‘AI 이해와 윤리’ 과목을 넣고, 교인 대상 기초 워크숍(프롬프트 설계, 출처검증, 개인정보 보호)을 운영합니다.
디지털 목회 훈련(Practical)이 필요합니다. 온라인 집회 운영법, 팬데믹·재난 상황에서의 원격 돌봄, AI툴(번역·자막·편집) 활용법 등 실전 매뉴얼 배포에 관한 일들이 필요합니다.
AI 상담 도구의 안전지침이 요구됩니다. AI 기반 상담·챗봇 사용 시 개인정보 비식별화, 긴급상황시 즉시 사람 상담사 연결, 기록 보관·접근 권한 규정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 AI Olam에서 선교 전략의 재설계가 긴급히 요청됩니다. 즉 기술 플러스 현지성의 균형을 가미하는 것입니다. 현지화·문화감수성 유지하는 일입니다. AI 번역·미디어 도구를 활용하되, 현지 언어·문화 전문가(현지 교회·목회자)의 검수 과정을 의무화합니다.
하이브리드 선교 모델의 실행입니다. 원격 교육·번역·콘텐츠 제작은 AI로, 현장 전도·제자훈련·돌봄은 사람 중심으로 조합하는 운영 모델을 설계합니다.
디지털 복음 콘텐츠 윤리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설교·영상·이미지 제작 시 저작권·초상권·문화적 오해 방지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적용합니다.
공공정책 제안·옹호에 있어서 데이터 주권, 프라이버시, AI 규제 관련 공청회·입법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교회가 목소리를 내는 조직(연합회·NGO)을 통해 시민의 권리와 약자 보호를 대변합니다.
디지털 약자 보호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고령자·저소득층·난민 등 디지털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기기 지원·피해구제 네트워크 구축합니다.
교회 데이터 정책 수립이 필요합니다. 교인 데이터 수집·보관·파기 규정, 접근 권한 관리, 외부 클라우드 사용 시 보안기준을 마련합니다.
AI 도입의 투명성 재고입니다. 교회가 AI로 자동화하는 업무(헌금 처리·출석 관리·자동 메시지 등)를 공개하고, 오류 시 구제 절차를 명시합니다.
콘텐츠 보강 도구로서 AI 활용입니다. 설교 초안, 성경공부 교안, 시청각 보조자료 제작은 AI를 활용하되, 신학적 책임은 편집자가 최종검토합니다.
저작권·출처 명시입니다. AI 생성물에 출처·저작권 및 AI 사용 사실을 명확히 고지하여 투명성을 유지합니다.
교단 간·교회 간 경험 공유 플랫폼 사용에 관한 것들입니다. 성공 사례·실수·안전매뉴얼을 공유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저자원 교회에 도구·교육을 전수합니다.
대학·연구소 협업입니다. 신학대학·AI연구소와 협력해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실습 교재를 공동개발합니다.

제가 위에서 제시한 것을 요약하여 간추린다면 실행을 위한 6가지 단기 액션 플랜 (교회·선교 단위)이 될 것입니다.

1. 30일 AI 리터러시 챌린지: 목회자·사역자 대상 기본 과정 개설.
2. AI 윤리 체크리스트 도입: 모든 AI 활용 프로젝트에 적용(번역·영상·상담 등).
3. 인간-상담자 비상연결망: AI 상담 도입 시 24/7 긴급 인간 상담 연결 체계 확립.
4. 데이터 보호 정책 문서화: 교단 또는 지역 교회 차원으로 표준화.
5. 선교·콘텐츠 승인 프로세스: AI 제작물은 현지 전문가 검수 후 배포.
6. 정기 공론장(분기): AI와 신학·윤리에 대한 공개 세미나 개최.

4. 기술의 도구성과 영적 주체성 사이에서

AI는 선교와 교회 사역을 더 넓게, 더 빠르게 만들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을 위해’ 그 도구를 쓰느냐가 본질적 질문입니다. 교회는 기술을 향유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돌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AI를 도입할 때는 효율성뿐 아니라 ‘정체성(교회의 사명)’, ‘책임(돌봄과 양심)’, ‘공동체성(몸의 현존)’을 잣대로 삼아야 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제안 드리고자 랍니다. 교회는 기술을 배우되, “멈추어 묻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매번 새 툴이 등장할 때마다 속도만 좇지 말고, 잠시 멈춰 그 도구가 우리의 신앙·섬김·정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질문하고 합의하는 전통을 세우십시오. 그것이 AI 시대에 교회가 사람을 지키는 길입니다.

<AI Olam에서 가장 주목하고 바라보아야 할 사항들>

인간은 “나는 왜 사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반복합니다. 오늘의 질문은 더 이상 인간 상호 간의 담론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대화형 인공지능(LLM), 업무 자동화 에이전트,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정서·판단·행위를 보조하거나 일부 대체하는 장면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AI Act가 발효 단계에 들어가고(2024.8.1) 기업용 AI 관리체계 표준(ISO/IEC 42001)과 NIST AI RMF 같은 위험 관리 프레임이 확립되는 가운데, 인간·기계의 ‘공존-통합’ 질서를 학술적으로 서술하고 전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5년 하반기 ~ 2026년 초를 바라보며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GPT-5 이후의 모델 경쟁 및 AGI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뛰어난 모델이 출시됨에 따라 책임성과 안전성의 요구도 증가할 전망해 보아야 합니다.
휴머노이드·VLA 로봇 상용화의 진실성입니다. 보행, 조작, 인간 작업 보조 등 실제 현장에서의 도입 속도 및 제약에 관한 것들입니다.
보안 위협 및 사이버 리스크 증대입니다. AI를 이용한 사이버 공격, 오용 가능성, prompt injection 등 새 유형의 위험등에 관한 것들입니다.
노동시장과 교육 제도의 대응입니다. 재교육, 평생 학습, 노동 구조 변화, 사회 안전망 확대 여부입니다.
국가 및 국제 거버넌스의 법제화입니다. EU AI Act 실행, 미국·중국·한국 등 국가의 AI법률 및 규제 완성도, 국제 협약 가능성입니다.
환경 및 자원 사용 문제입니다. AI 인프라의 전력/냉각/칩 공급망 부담, 에너지 지속 가능성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AI Olam에서 바뀐 것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을 것인가?

• 바뀐 것들
AI가 더 자율적이고 행동 가능한 쪽으로 나아가고 있음. 기업·국가 간 경쟁과 투자 규모가 급증. 규제 및 정책적 주체들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 변하지 않을 것들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 (“왜 사는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의미 있는가?”)은 여전히 기술이 답할 수 없는 영역임. 인간의 영성, 도덕적 판단, 관계성, 존엄성은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남을 것입니다.

1. 개념 지형: 검색-상담을 넘어 에이전트-체화(embodiment)로

• 대화형 AI
정보 검색·요약을 넘어, 감정의 ‘완충 장치’로 기능하며 생산성 향상 효과가 실증되고 있습니다. (예: 콜센터 업무에서 생성형 AI가 저경험 작업자의 성과를 끌어올림)

• 에이전트(Agentic AI)
지시 없이 목표-계획-행동을 반복 수행하는 자율화 경향. 오픈소스 AutoGPT류와, 마이크로소프트 Copilot Studio 에이전트, 구글의 Project Astra/Gemini 2.0 등 기업형 에이전트가 업무 프로세스를 ‘장시간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입니다.

• 체화·휴머노이드(Embodied AI & Humanoids)
시각-언어-행동을 한 모델로 잇는 VLA(vision-language-action) 접근(예: RT-2/RT-X)과 실물 배치가 병행된다. 아마존의 창고 로봇/휴머노이드 파일럿, Agility Robotics Digit, Sanctuary AI의 소매 매장 시범, Figure AI-BMW 생산라인 테스트 등이 대표적입니다.

2. 도서관학적 분류를 확장한 AI 기능 지형도

1. 지식 인덱싱/요약/번역: 학술·법률·의료 등 도메인 요약, 증거 링크 제공합니다.
2. 상담·동반자성: 감정 조절·동기부여·학습 코칭(성과 개선의 실증)입니다.
3. 업무 에이전트: 일정/이메일/보고 자동화, 장시간 자율 프로세스 운영(기업형 Copilot Agents)등이 있습니다.
4. 창작·마케팅: 카피·이미지·동영상 생성, A/B 테스트 자동화입니다.
5. 로보틱스 연계: VLA 모델로 현실 조작(픽앤플레이스, 분류·보급), 제조/물류 라스트마일 실험입니다.
6. 지배구조/규제: EU AI Act(위험 기반), ISO/IEC 42001(조직형 거버넌스), NIST AI RMF(위험관리)입니다.

3. 노동시장: 대체 vs 보완의 이중 궤도

• 노출 규모: IMF는 선진국 일자리의 약 60%가 AI 영향권에 있음을 제시(긍정/부정 양면). OECD도 직무기술 구성이 변화함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 성과와 분배: 생성형 AI는 생산성 향상(특히 저경험자)과 고객 만족을 높였으나, 지역·계층별 효과 이질성·임금 격차 확대 위험도 병존합니다.
• 장기 가치: 거시적으로 연 2.6~4.4조 달러의 부가가치 추정(맥킨지), 다만 재교육·전직 정책이 병행돼야 효과가 현실화됩니다.

4. 휴머노이드의 5년: “현장 적합성” 검증기

1. 산업 파일럿 확대: 창고·제조·리테일에서 안전지대 과업(반복, 비인체공학 작업)부터 투입. Amazon-Digit, BMW-Figure, Canadian Tire-Sanctuary 등이 있습니다.

2. 성숙도 격차: 연구 시연 → 실사용까지의 내구성/MTBF/총소유비용(TCO) 간극이 핵심 병목. 로드니 브룩스는 단기 과열을 경고(“단기 과대평가-장기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3. 예상 난제: 이질적 작업/환경 일반화, 안전·책임소재, 인간-로봇 협업 인터페이스(HRI) 표준화입니다.
보수적 시나리오: 5년 내 부분 대체(야간·고위험·고반복 공정), 10년 내 혼합 셀 생산(사람+휴머노이드)로 점진 확장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공격적 시나리오: 대형 제조·물류에서 수천 대 단위 도입(설비 개조·안전 인증 병행 시). (테슬라 옵티머스의 내부 도입·양산 로드맵 주장은 불확실성을 동반)입니다.

5. 에이전트의 5–10년: ‘업무 자동운전(autopilot)’의 보편화

• 5년: 기업용 에이전트가 권한 위임-장시간 업무를 맡아, 티켓 처리·재무 결산 보조·리서치-분석을 상시 수행(마이크로소프트 Copilot Agents의 상용화 라인, 구글의 에이전틱 경험 확장)등이 있습니다.
• 10년: ‘업무 운영체제’로서 에이전트가 SLA/통제·감사가능 로그 안에서 상호 작동, 사람은 감독-정책-예외 처리에 집중. 오픈소스 에이전트 생태계(자율 반복, 툴사용, 메모리)가 산업 표준과 연결해 줍니다.

6. 학문·연구 생태계(세계)

• 로보틱스/체화 AI:

o CMU Robotics Institute, MIT CSAIL·미디어랩(개인로봇/상호작용/로코모션), Stanford HAI(Embodied AI), ETH Zürich RSL/Center for Robotics, Max Planck Institute for Intelligent Systems 등이 있습니다.
o 산업-연구 교차: Agility Robotics, Sanctuary AI, Figure AI 등과 빅테크(아마존·구글·테슬라)의 공동 연구·파일럿 등이 있습니다.

• 대표 연구자·논점:

o 로봇·HRI: Cynthia Breazeal(사회형 로봇·HRI), Rodney Brooks(과열경계·현장주의), Marc Raibert·Daniela Rus(로코모션·디자인·자율성), Ken Goldberg·Oussama Khatib(조작·제어), Hiroshi Ishiguro(안드로이드·정체성)이 있습니다.
o 경제·노동: Daron Acemoglu(자동화의 분배효과·정책), Erik Brynjolfsson(AI 보완·생산성)이 있습니다.
o 에이전틱 AI/VLA: Google DeepMind RT-2/AutoRT 라인, 다기관 확장·일반화 연구 등이 있습니다.

7. 거버넌스·윤리

• 규제 프레임: EU AI Act(위험기반·GPAI 규정), NIST AI RMF 1.0(신뢰성·위험관리), ISO/IEC 42001(조직형 AI 관리체계). 단계적 집행·가이드라인 논쟁이 지속됩니다.
• 실무 논점: 데이터 보호, 책임소재(특히 자율 에이전트·휴머노이드의 실수/사고), 안전·테스트 표준, 노동전환 정책(재교육·소득 안전망)등이 있습니다.

8. 앞으로의 전망: 인간-에이전트-휴머노이드의 통전적 통합

1. 단기(향후 5년)

• 업무 에이전트의 보편화: 지식노동의 ‘초안 작성-분석-정리’ 파이프라인이 자동운전화. 감독가능한 에이전트 거버넌스(SOC-유사) 필수. Microsoft+1
• 휴머노이드의 현실 배치 확대: 물류·제조·리테일에서 부분 자동화 역할 확장(반복·고위험 과업). TCO/내구성/안전 인증이 상용화 속도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2. 중장기(10년)

• 혼성 팀(hybrid teams): 사람-에이전트-로봇이 공동의 KPI를 공유하며, 사람은 정책·감독·윤리적 판단을 맡고, 에이전트·로봇은 지속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 지식망 재편: AI가 ‘살아있는 도서관’으로서 실시간 인덱싱-검증-시뮬레이션을 수행, 전 지구적 생산성에 구조적 기여(다만 분배정책과 재교육이 성패 좌우)합니다.
• 문명적 파트너십: 인간의 실존적 질문은 여전히 인간과 공동체의 몫이지만, 질문을 지속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도구-동반자로서 AI/휴머노이드의 지위가 공고화합니다.

9. ‘의미’는 인간의 책임, ‘작동’은 기계의 책무

AI와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삶을 대체하기보다 작동 능력을 맡아 인간이 의미·가치·책임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핵심은 보완적 통합이며, 규제-거버넌스-노동정책-표준화가 함께 진화할 때 공정한 전환이 가능합니다. 단기 과열을 경계하되(브룩스), 장기 잠재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Amara’s Law)합니다.

<AI 생존 전략>

총성없는 AI 생태계 구축 가운데 지구촌 국가들은 각자의 길을 모색하고 AI Olam에서 생존 전략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국제 정치·경제에 몇 가지 분명한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는 현재 지구촌 AI 생태계에서 집중화와 편재, 기술-경제력의 재정의, 미국, 중국, 유럽 및 나머지 국가들의 주도권 경제 및 당면한 구조적 한계를 만나고 있습니다.

1. 집중화와 ‘편재(偏在)’

거대한 AI 연산·데이터·플랫폼 능력이 소수의 기업·진영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많은 국가(특히 개발도상국)는 자체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기보다 외부의 플랫폼·클라우드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 선택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데이터 주권·정책 자율성의 약화, 정치적·안보적 취약성을 수반합니다.

2. 기술-경제력의 재정의

전통적 국력(군사력·자원·제조력)에 더해 ‘연산능력·데이터·AI 플랫폼’이 새로운 국가경쟁력의 핵심 지표가 됐습니다. 기업의 시가총액이 일부 국가의 GDP 수준으로 커짐에 따라, 기업의 행보가 국가 전략에 직결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3. 중국의 양면성: 추격과 자급력 강화

중국은 국내 시장의 규모, 기업·정부의 대규모 투자, 그리고 자국 중심의 데이터·규범 환경을 바탕으로 빠르게 추격 중입니다. 동시에 반도체 설계·생산(칩 설계는 강하되, 최첨단 파운드리는 TSMC·삼성 등 외부에 의존) 등에서 여전히 격차가 존재합니다. 중국의 전략은 ‘내수 생태계 강화 + 해외 기술 확보(투자·협력)’의 병행입니다.

4. 유럽·일본·개발도상국의 딜레마

유럽은 인권·프라이버시 규제 중심의 ‘인간 중심 AI’ 규범을 강조하지만, 규범 우위가 곧 플랫폼 주도력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하드웨어·로보틱스 강점이 있으나, 대형 글로벌 AI 플랫폼을 빠르게 확장하는 데는 제약이 있습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비용·시간·전문인력 부족으로 자체 ‘항공모함’(대규모 AI 인프라)을 만들기 어렵고, 따라서 특정 진영(미국·중국)의 플랫폼과 파트너십·서비스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적 제약을 안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현실적 선택: 대부분 국가는 ‘모두 직접 구축’이 아니라 틈새 전문화(도메인 특화 AI), 지역 협력(공동 데이터·클라우드 허브), 오픈소스·표준 참여로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중장기로는 기술주권과 규범의 병진: 데이터 주권·표준·윤리 규범을 정비하여 ‘의존의 부작용’을 줄이고, 동시에 인재·교육·R&D에 지속 투자해야 합니다.
국제 협력의 필요성: AI의 군사·안보적 파급을 감안할 때, 다자 협의체를 통한 안정·투명성·비상연락체계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5. 각국가의 AI 생존 전략

각 국가의 AI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요?
현실적·전략적 방안은 몇 가지 축에서 가능합니다.

첫째, 틈새와 전문성의 영역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경쟁할 수 없다면 특정 산업의 도메인 전문 AI(의료·해양·농업·제조 등)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국제적 니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둘째, 지역 협력과 공유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국가 단독으로 항공모함을 만들기보다 동맹·지역 블록이 공동 클라우드·데이터 허브·연구소를 운영하는 방식은 비용 대비 효율을 높이는 일입니다.

셋째, 오픈소스와 표준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기술을 독점하지 못하더라도 표준화와 오픈 모델 참여로 생태계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넷째, 법·윤리·데이터 주권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플랫폼에 대한 규범적 대응은 기술 의존의 부작용을 약화시키는 방패가 됩니다.

다섯째, 인재와 교육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입니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과학 역량은 단기간에 축적되는 자산이 아닙니다. 장기적 인적 자본 확충이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술 경쟁은 단지 경제·군사적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묻고 답해야 할 질문은 결국 이렇습니다. “기술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와 더 나아가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에 있습니다. 항공모함을 보유한 이들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작은 나라가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기술을 쫓는 동시에 ‘인간 중심의 기준’과 ‘공동선’을 지키는 지혜를 함께 키워야 합니다. 규모의 경제는 압도적이지만, 가치와 창의성은 결코 완전히 수치화되거나 전량화될 수 없습니다. 그 균형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시대의 과제입니다.

AI 생태계, 항공모함을 소유한 미국과 중국 그리고 그 사이에 제한적 선택만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항공모함을 가진 자’는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작은 배들이 모두 침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략적 틈새, 연합 구축, 규범과 법의 힘은 약소국에게도 일정한 방어·성장 기회를 줍니다. 기술이 무게중심을 바꿨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쓰고 누구와 함께 나눌 것인가는 여전히 정치·윤리·전략의 문제입니다. AI 패권의 현실을 사실로 인정하되, 그 안에서 자국과 지역의 주체성을 지키는 실천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입니다.

<AI Olam과 인간의 자유 — 빛과 그림자 사이에 서서>

21세기 중반, 우리는 알고리즘이 깔린 ‘다른 세상’—AI Olam—을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일상을 더 편하고 정확하게, 때로는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영상 판독을 도와 병명을 더 빨리 발견하고, 농부는 센서의 데이터를 통해 제때 비료와 물을 줍니다. 물류창고의 로봇은 사람의 허리를 보호하고, 교육에서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진도로 맞춤형 학습지가 펼쳐집니다. 단어 하나를 음성으로 말하면 금세 다른 언어로 들려오고, 복잡한 통계는 한 번의 클릭으로 시각화되어 결정을 돕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빛’입니다. 인간의 피로를 덜어주고, 오류를 줄이며, 소수의 지혜를 대중의 지혜로 확장해 줍니다.

AI를 쓸수록 우리는 점점 더 그 편리함에 의지하게 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해 의미를 추출하고, 오류를 줄이며, 산만한 정보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AI의 능력은 실생활과 업무 곳곳에서 반복해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질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AI가 제시하는 ‘정답’은 대개 방대한 데이터와 높은 연산력에 기초한 ‘최적화된 해’입니다. 그러나 최적화가 곧 ‘최선’일까요? 사람의 삶과 공동체의 지향은 단지 효율과 정확성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AI가 더 빠르게, 더 많이 알아낼수록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는가’라는 근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AI가 가져온 편리함의 또 다른 면은 의존성입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의 많은 결정을 기계의 권고에 기대어 내린다.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길을 찾고, 자동 번역을 통해 낯선 언어의 균열을 메우고, 알고리듬이 추천한 기사를 소비하며 해석의 지평을 좁히기도 합니다. 이런 의존이 누적되면, 인간의 탐구심과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은 서서히 약해질 수 있습니다. ‘찾아내는 즐거움’이 사라지면 사유의 근육은 풀리고, 판단의 근거를 스스로 검토하는 습관은 흐려집니다.
더욱 섬뜩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만약 어느 순간 AI가 멈춘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요?
우리가 질문할 때마다, AI가 거의 모든 것을 답하는 시대에 인간이 AI보다 더 나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질문을 던지면, AI는 빠르고, 넓고, 정교하게 답을 줍니다. 이전에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인용을 정리하고 논증의 뼈대를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아도 가장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답을 해 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AI 탁월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AI 탁월함의 상당 부분이 우리(인간)과 기계의 ‘협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AI보다 인간이 더 나은 것은 무엇인가요?
왜 우리가 여전히 쓰고, 사랑하고, 결단하며, 기도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AI가 거의 모든 ‘지식작업’을 대신할 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AI가 ‘지식 작업’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모으고, 연관을 찾아내며, 패턴을 읽어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묻는가’의 문제입니다. 질문이 놓인 맥락, 질문을 던지는 동기, 그 질문이 지닌 윤리적·영적 무게까지를 온전히 포착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한 답을 골라낼 수는 있지만, 그 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 사랑인가, 두려움인가, 회개인가, 정의에 대한 갈망인가 — 를 근원적으로 체험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묻는 ‘왜(Why)?’라는 질문은 단순한 정보 요구가 아니라 사유의 출발입니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사람이 그 질문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고 관계를 회복하기도 합니다. AI의 답변은 통계적 선호와 과거의 사례에 기반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제공할 뿐, 그 질문 뒤에 숨은 내면의 소리나 공동체적 부담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비유합니다. 인간은 우주선을 타고 광활한 바깥으로 나아가면서도, 창문 너머로 비치는 지구의 햇빛과 바람, 흙냄새를 그리워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답을 받아도, 결국 어떤 길을 택하고 어떻게 책임질지는 인간의 고유한 사고와 성찰이 결정합니다. AI는 훌륭한 도구이자 조력자지만, 삶의 최종적 판단과 의미를 묻는 일에서는 사람의 질문과 사람의 결단이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2. AI가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인간의 창의성은 무엇이 다른가?

AI는 붓놀림이 현란하나 그 한 사람이 그릴 수 있는 화가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몇 개의 문장으로도 만들어진 영상으로 실물인 것처럼 오해할 만큼 정교하게 영상 제작을 마무리합니다. 소설가를 뺨치는 소설을 쓰고, 마음을 아우르는 놀라운 시를 짓고, 작곡가를 능가하는 음악을 작곡하며, AI는 훈련된 데이터의 결합과 변주를 통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냅니다. 창조적 영역이라 불리는 것도 인간을 넘어서는 모습을 종종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AI의 독특한 창의적 결과물이 인간의 창의물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첫째, 출발점이 다릅니다.

인간의 창작은 흔히 어떤 ‘살아 있는 체험’에서 나옵니다. 고통, 기쁨, 은밀한 기억, 사랑의 결핍, 사회적 불의—이 모든 것이 작품의 맥락과 숨결을 만듭니다. 사람은 자신의 상처와 기쁨을 매만지며 언어와 색과 소리를 빚습니다. 반면 AI의 창작은 주로 외부의 텍스트·이미지·음악 데이터에서 패턴과 규칙을 찾아 조합합니다. 그것은 풍부한 모사능력과 재현 능력을 보여도, ‘그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체험으로 답하지는 못합니다. 물론 저는 AI의 Singularity가 이 지경까지 능가하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둘째, 의미의 무게가 다릅니다.

인간의 창작은 종종 ‘의미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한 문장, 한 화폭, 한 화음에는 작가의 삶과 결단이 배어 있습니다. 작품은 독자를 위로하거나 도발하고, 때로는 공동체의 기억을 일깨웁니다. AI는 ‘가능한 해답들’ 중 하나를 제시하지만, 그 해답이 누구에게 어떤 치유를 주고 어떤 책임을 부여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의미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맥락과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창작이 주는 울림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를 지닙니다.

셋째, 실패와 불완전의 용인입니다.

인간은 창작에서 실패를 감당할 줄 압니다. 실수와 어눌함은 때로 작품을 더 진실하게 만듭니다. 미완성의 자리에서 독자와 관객이 상상하고 낡은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AI는 오류를 줄이고 ‘완성도 높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어설픔과 투명한 성찰의 공간을 창출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관계를 맺고 용서를 배우는 통로입니다.

넷째, 책임과 의도의 문제입니다.

창작은 표현 이전에 윤리적 선택의 연속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거나 그려내는 순간, 창작자는 그 대상에 대해 책임을 진다. 표현의 힘이 클수록 그 책임은 무거워집니다. AI는 그저 결과물을 내놓지만,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누구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묻지 않습니다. 인간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다섯째, 공동체적 차원입니다.

예배의 찬양, 마을의 연극, 가족의 이야기 같은 창작은 공동체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창작이 공동의 기억과 연대를 만들어 낼 때, 그 예술은 단순한 산물이 아니라 공동체적 생명입니다. AI는 개인적 취향과 거대한 데이터의 결합으로 작품을 생성하지만, 그것이 공동체의 역사와 감정을 함께 짊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AI의 창의력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AI가 제공하는 속도와 폭, 가능성의 폭을 도구로 삼아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AI는 반복적 작업을 덜어주고, 다양한 시도를 빠르게 보여주며, 새로운 조합을 제안해 줍니다. 그러니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AI를 배척하느냐 수용하느냐’가 아닙니다. 질문은 더 섬세합니다.

3. “어떻게 AI를 사용해 인간의 의미추구를 더 풍부하게 만들 것인가?”

실천은 작고 구체적일 수 있습니다. 창작 전에 “이 작품은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스스로 묻자. 제작 과정에서 실패를 기록하고, 그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문화—완성만을 숭배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보면 좋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창작을 나누고, 창작이 공동의 기억을 어떻게 바꾸는지 대화해 보는 것이 대안일 수 있습니다. AI는 보조자이자 협업자의 자리에 두되, 결단의 순간에는 인간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의성은 결국 ‘사람의 얼굴을 향한 능력’입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작품을 만들어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울 줄 아는 능력, 부름 앞에 응답하는 용기, 불완전함 속에서 사랑을 지속하는 힘은 기계가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창작하는 이유가 누군가를 살리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데에 있다면, 그 창작은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것입니다. AI는 그 길을 돕는 훌륭한 동반자이지만, 길의 방향을 정하고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 이는 언제나 인간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고통과 기쁨, 결핍과 기대로부터 작품을 낳고, 그 작품으로 타인을 위로하거나 도발합니다. 또한 인간은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며, 미완(unfinished)을 포옹하는 용기를 갖습니다. 이런 용기와 맥락의 무게는 단순한 패턴 생성과 다릅니다.

4. 판단과 책임: 알고리즘의 권고와 인간의 결단은 어떻게 다른가?

AI의 권고는 계산된 확률과 역사적 데이터의 요약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판단의 자리에는 책임(Responsibility)이 필요합니다 —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행위. 정치적·도덕적 결정,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서 인간의 책임은 법적·윤리적·영적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는 인간입니다.

알고리즘은 확률과 빅데이터의 결을 따라 가장 그럴듯한 권고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고와 결단은 다릅니다 — 권고는 도구의 음성이고, 결단은 이름을 불러 책임지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인간으로서 떠맡아야 할 자리들이 있습니다.

생명과 의료의 문제에서는 단순한 성공률 이상의 것이 요구됩니다. 수술·연명·임종의 선택 앞에서는 환자와 가족의 값, 고통과 소망을 헤아리는 온전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사법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리즘이 재범 확률을 말할 수는 있어도, 형벌과 회복의 균형을 최종적으로 가늠하고 선고하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무력 사용과 국가 안보의 결정은 한 국가와 수많은 생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동반하므로, 기계가 아닌 인간의 판단과 정치적 책임 아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 — 복지·자원 배분·교육의 방향 — 은 효율성만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누구를 먼저 돌볼 것인지, 어떤 가치를 길러낼 것인지는 수치가 아니라 가치 판단입니다. 예술과 문화의 해석도 단순한 창작물의 완성도를 넘습니다; 어떤 목소리를 담고 누구의 기억을 간직할 것인가는 공동체의 양심이 결정합니다. 영적·윤리적 분별은 기계가 제공하지 못하는 깊이의 사유이고, 잘못된 권고가 낳은 피해를 조사하고 보상하며 제도를 고치는 ‘책임 추궁’ 역시 인간이 져야 할 몫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밤을 지새우며 돌보는 일 — 그 반복적이고 지루한 헌신도 결국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알고리즘은 길을 밝히는 등불일 수 있지만, 방향을 정하고 짐을 지고 함께 걸어가는 이는 결국 사람이다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권고를 듣되 결단은 우리가 하고, 편리함을 누리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입니다.

5. AI가 ‘친절한 말’을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주는 돌봄과는 어떻게 다른가?

AI는 공감어린 문장을 생성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마음이 아픈 이와 함께 울고, 침묵 속에서 그 무게를 함께 느끼는’ 존재는 아닙니다. 돌봄은 반복적이고 지루하며 감정적으로 지치는 일들 — 식사 챙기기, 밤중의 간호, 끝없는 기다림 — 을 견디는 능력이다. 새벽 병실에서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침묵은 어떤 알고리즘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같은 질문에 반복해 답해주는 인내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관계의 연속성입니다. 재활 중인 이의 심야 전화에 응답해 함께 새벽을 지새우는 동행은 통계적 권고로는 불가능한 실천입니다. 교사의 눈빛 한 번이 학생의 가정 문제를 드러내고 적절한 돌봄으로 이어지는 순간, 데이터 이상치 이상의 맥락이 포착됩니다.
난민의 고통을 번역기는 전달해도, 문화와 상처를 함께 안아주는 사람의 부드러운 손길이 신뢰를 만듭니다. 재난 현장에서 몸을 던져 좁은 틈으로 들어가는 용기와 즉흥적 판단은 로봇이 따라올 수 없는 현장력입니다. 장기 돌봄은 약 투여 이상의 윤리적 결단과 지속적 헌신을 요구하며, 그 책임은 사람에게 귀속됩니다.
AI는 경보와 권고를 주는 훌륭한 도구지만, ‘지속적 돌봄·공감·책임·즉흥적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6. AI가 영적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예배는 왜 남아야 하는가?

AI는 성경 구절의 언어학적 패턴을 분석하고 주제별 해석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단지 뜻을 이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공동체의 기억을 새기는 의례이고, 회개의 반복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의 회복입니다. 이런 경험은 공동체적 몸과 소리와 눈빛으로 이루어집니다. 기계는 그 공동체적 현존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AI는 성경구절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설교 초안을 빠르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예배에서는 설교가 끝난 뒤 모인 이들의 눈빛과 손이 서로에게 닿으며 “같이” 회심하고 울고 웃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AI는 찬송·기도문·예식문을 스타일과 맥락에 맞춰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가대와 회중이 함께 같은 멜로디를 소리 내어 부를 때 생기는 공동체적 기도와 연대감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AI는 설교문·주해·역사적 배경을 정밀하게 분석해 해석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회개와 용서는 사람이 서로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고백하고, 목사가 손을 얹어 축복하며 일어나는 ‘관계의 갱신’을 필요로 합니다.
AI는 목회 상담 기록을 분석해 정서적 위험신호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야에 방문해 손을 잡고 함께 울며 침묵으로 기도해 주는 ‘몸의 돌봄’은 사람만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AI는 다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문화적 의미 차이를 비교해 줍니다.
그러나 세례·성찬 같은 표식적 의례는 몸·물·빵·포도주의 만짐과 나눔을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새기는 행위로, 기계는 그 현존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AI는 예배 영상·음향을 최적화하고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합니다.
그러나 예배 가운데 서로의 손을 잡고 반복하는 침묵·찬양·기도에서 생기는 ‘거룩한 현존’—말이 필요 없는 영적 감응—은 인간의 몸과 소리에서 생성됩니다.
요컨대 AI는 자료·언어·형식·접근성 면에서 교회를 크게 돕지만, 예배의 핵심인 ‘몸으로 함께하는 현존, 회개의 반복, 서로에게 지워지는 책임과 위로’는 인간 공동체의 몫으로 남습니다.

7. AI가 최적화를 제안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AI는 효율과 결과를 기준으로 ‘최적’을 말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선, 정의, 약자에 대한 배려는 늘 효율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비효율이 윤리적 올바름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단순히 더 많은 이득을 추구하는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얼굴 앞에서 멈추는 주체입니다.

AI가 제안하는 ‘최적’은 분명 유용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비용·효율을 따져 가장 많은 이득을 주는 방안을 찾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종적으로 따라야 할 기준은 단순한 효율성만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존엄과 공정성, 약자 보호, 설명가능성, 책임성, 이해당사자의 참여, 되돌릴 수 없는 결정에 대한 주의, 그리고 공동선(community good) 같은 가치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중환자실 자원을 배정할 때 AI는 생존 가능성을 근거로 우선순위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성공률만으로 환자를 선택한다면, 가족 상황이나 환자의 삶의 의미, 사회적 취약성 같은 중요한 맥락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판단은 의사와 윤리위원회, 환자 가족이 함께 참여해 여러 가치를 조율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복지나 재정 배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리즘이 비용 대비 최대 효용을 계산해 수혜자를 골라줄 수는 있지만, ‘기본적 인간의 권리’를 지키려면 예외 심사와 현장 검증이 필요합니다. 채용이나 형사 사법의 경우도 AI의 점수는 참고자료로 유용하지만, 최종 결정과 그에 따르는 책임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야 합니다.

콘텐츠 추천이나 자율주행처럼 공동체 안전과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효율 vs. 윤리’의 충돌이 자주 발생합니다. 체류시간을 늘려 수익을 올리는 추천 알고리즘이 허위정보나 증오를 확산시킬 수 있다면, 플랫폼은 투명한 심사절차와 신고·구제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율주행 설계에서는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설계 단계에서 윤리적 검토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결정의 순간마다 우리가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 선택이 누구에게 이득과 손해를 주는가? 취약계층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되는가? 이 판단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오류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지고 보상할 것인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할 기회를 가졌는가? 그리고 이 결정이 공동체의 선을 증진하는가? 이 일곱 가지 질문은 단지 형식적 점검표가 아니라, 기술이 사람을 섬기는 도구로 남도록 지켜주는 윤리적 나침반입니다.

결국 요점은 분명합니다. AI의 계산은 우리의 의사결정을 보완하지만, 인간의 가치 판단과 책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배려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효율적 최적’은 출발점일 뿐, 우리가 따라야 할 최종 기준은 사람의 얼굴을 존중하는 데 있습니다.

8. 속도에 익숙한 시대에 우리는 왜 ‘천천히’ 해야 하는가?

속도는 유용하지만, 모든 사유는 속도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 회복, 성찰, 수련은 천천함을 필요로 합니다. ‘느린 시간’은 우리에게 기억을 남기고 관계를 깊게 하며, 삶의 의미를 다듬게 됩니다. AI가 속도를 제공할수록 우리는 느림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느림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천천히 읽기: 한 문단을 곱씹어 읽으면 문장의 의미가 오래 남는다.
• 긴 대화: 스마트폰 없이 한 시간 듣는 대화가 관계를 깊게 한다.
• 실패 곱씹기: 즉시 수정보다 멈춰 반성하면 창의적 돌파가 온다.
• 반복적 돌봄: 밤중 간호나 식사 챙기기 같은 작은 반복이 신뢰를 만든다.
• 애도의 시간: 충분한 애도는 진정한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 수련의 시간: 느린 연습이 위기 때의 즉흥적 판단력을 길러준다.

이번 주 30분, 알림 끄고 ‘느린 행동’ 하나를 해보세요 — 작은 멈춤이 큰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9. 기계는 실수를 최소화하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은 무엇을 낳는가?

인간의 실수는 고통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용서와 연대를 요청하는 계기가 됩니다. 공동체는 실수와 회복을 통해 모자람을 채우고 관계를 새롭게 맺습니다. 기계는 보통 실수를 제거하려 하지만, 실수의 자리에서 생겨나는 인간적 성찰과 회복의 서사는 기계가 만들 수 없는 공동체적 자양분입니다.

“실수는 독이기도 하고 자양분이기도 하다”라는 말만큼 우주선 설계처럼 위험이 크고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영역에서 실수의 가치가 드러나는 곳도 드뭅니다. 한 번의 실패가 곧 끝이 아니라, 수십·수백 번의 작은 잘못들이 모여 최종 설계를 단단히 만들어 줍니다.

첫째, Apollo 1(1967) — 세 명의 우주인이 훈련 중 화재로 목숨을 잃은 충격적 참사는 단순한 사고 처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주선 내부의 가연성 소재 제거, 하드웨어·절연 설계의 전면 재검토, 격납칸·출입절차의 근본적 변경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유인우주선의 안전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즉, 큰 손실이 있은 뒤 설계와 절차의 ‘안전 마진’이 새로 생겼습니다.

둘째, Challenger(1986)와 Columbia(2003) — 각각 고무(O-ring) 취약성과 외부 연료탱크의 폼 충돌이라는 원인으로 사고를 냈고, 당시의 조사와 보고서는 단순한 기술적 수정보다 조직문화, 의사결정 구조, 위험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바꾸었습니다. 기술적 결함은 인간이 만든 체계와 문화의 결함을 드러내며, 그 고백과 개편 과정은 훗날의 안전을 키웠습니다.

셋째, Mars Climate Orbiter(1999) — 이 작은 사고는 단위(미터법/영국식 단위) 혼용이라는 ‘사소한’ 실수로 우주선 전체를 잃게 했습니다. 그 대가로 산업계와 기관들은 인터페이스 규약, 독립적 검증, 단위 일원화 같은 절차적 안전장치를 강화했습니다. 한 번의 사소한 실수가 절차 전반을 바꾸게 만든 전형적인 예입니다.

넷째, 상업용 우주(예: SpaceX)의 반복적 실패와 성공 — 초기 Falcon 1의 연이은 발사 실패(2006–2008)는 큰 좌절이었지만, 실패에서 얻은 데이터와 설계 수정이 Falcon 9의 신뢰성 확보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는 ‘빠른 실패→교정→반복’이라는 엔지니어링 문화가 실제 성과로 귀결됩니다.

다섯째, 현장 테스트와 ‘예측 불가능성’의 학습 — 재난 현장·시험적 우주 환경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시뮬레이션으로는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계팀은 프로토타입을 실제로 부딪쳐 보고, 실패의 물리적 흔적을 해부하여 소재·구조·절차를 바꿉니다. 이 과정 자체가 설계의 ‘부식 방지제’가 됩니다.

이들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술적 교훈—하드웨어·소프트웨어·프로세스의 구체적 개선(재료 교체, 중복성 추가, 검증 절차 강화 등). 다른 하나는 조직적·윤리적 교훈—책임 소재의 명확화, 위험을 발언할 수 있는 문화, 실패를 숨기지 않는 투명성입니다. 기술적 오류를 개인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제도적으로 수용해 ‘다시 실패하지 않게’ 만드는 체계가 바로 실수의 진짜 산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적 차원을 덧붙이면, 실수는 공동체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회복의 서사가 됩니다. 희생을 애도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 서로 용서하고 제도를 고치는 과정은 기술적 개선과 더불어 신뢰를 회복시킵니다. 엔지니어들이 밤새 실패 로그를 분석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가족과 동료가 함께한 추모와 개혁의 약속—이런 감정적·윤리적 경험들이야말로 “설계도가 완성될 때까지의 수많은 실수”를 진짜 양분으로 바꿉니다.

요컨대 우주선 같은 최종 설계는 ‘완벽한 한 번’이 아니라 ‘수많은 실수로 다져진 견고함’의 산물입니다. 실수는 고통을 낳지만, 그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조직적·윤리적 학습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다음 세대의 안전과 신뢰로 바뀝니다 — 바로 그 점이 기계적 오류 제거와는 다른, 인간 공동체가 마련해 온 귀중한 자산입니다.

10. 기계의 질문에는 기계의 답을, 인간의 질문에는 인간의 응답을

우리는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AI는 질문에 충실히 답하지만, 질문을 묻는 사람의 얼굴까지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울 줄 아는 능력, 책임을 지고 회복을 감당하는 용기, 멈추어 사유하는 습관, 기도와 사랑으로 관계를 지속하는 힘 — 이 모두가 인간의 고유한 장점입니다. 이 장점들은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사라지지 않는, 오히려 기술에 의해 더욱 빛나는 자산입니다.

단 하루의 정지라도 교통·금융·의료의 연쇄적 혼란을 불러오고, 일상의 편리들이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취약성은 우리의 연대를 시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AI는 인간의 응급상황을 더 빨리 포착하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빛과 그림자는 동시에 존재합니다.

철학적·신학적 성찰은 여기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 됩니다. 서구 근대철학이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동안, 유대적 사유의 Olam은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엮어 ‘총체적 현실’을 봅니다. 그 시선은 AI Olam을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 전체를 바꾸는 전환으로 보게 합니다. 기술로 만들어지는 미래가 진정한 ‘오는 세상’인지, 아니면 우리가 수리해야 할 세계를 더욱 왜곡하는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이점에서 우리는 티쿤 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응답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Imago Dei(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창조성과 자유의지는 기술로 대체될 수 없는 영적 자산입니다. 종말론적 희망은 계산 능력의 절대화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기술은 그 희망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이 사람을 섬기게 하고, 사람의 존엄을 보호하게 하라—이것이 신앙적 명령입니다.

AI가 제공하는 지식과 속도는 우리를 더 넓은 시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야를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는 오직 인간의 몫입니다. 우리가 멈추어 묻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기도하며 결단할 때 기술은 도구로서 한없는 가능성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AI Olam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확장하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기술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인간으로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기억할 수 있는가?

Chapter: AI와 인간의 윤리적 책임

1. 책임의 전가와 새로운 질문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새로운 윤리적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만약 AI가 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이 잘못되어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프로그래머의 책임인가?
• 기업의 책임인가?
• 아니면 AI 그 자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법적으로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운전자의 책임을 나눠 따집니다. 그러나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수준에 이를수록, 책임의 주체가 불분명해집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피조물은 책임을 질 수 없는 존재로 남는 기묘한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유대적 책임 개념: 자유와 응답

유대적 전통에서 책임은 단순히 법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응답(response)입니다. 히브리어 “책임”(אַחֲרָיוּת, acharayut)은 “뒤에서 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책임은 결과가 드러났을 때 그 뒤를 따르며 감당하는 행위입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로서 “책임의 응답자”입니다. 이는 곧, AI가 내린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적·윤리적·신앙적 기준으로 끊임없이 검증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3. 쉼(Sabbath)과 윤리적 균형

윤리적 책임은 멈춤 없는 생산과 효율만으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유대적 전통에서 Sabbath(안식일)은 “멈춤”을 통해 창조의 질서를 재확인하는 날입니다. AI가 24시간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시대에, 인간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것은 “멈추고 성찰하는 책임”입니다.
AI가 계속 결정을 내려 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깊이 멈추어야 합니다. 멈춤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책임은 기술을 넘어 영적 차원으로 회복됩니다.

4. Tikkun Olam의 관점에서 본 책임

티쿤 올람(Tikkun Olam, 세상의 수리)은 유대 전통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입니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인간은 정의와 자비와 겸손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고쳐 가야 합니다.
AI는 이 사명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 질병 진단, 빈곤 해소 같은 영역에서 AI는 인류의 손을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AI에 전가할 때, Tikkun Olam은 무너집니다. 세상을 고칠 의무를 피조물에게 맡기는 것은, 인간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부름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결론 – 책임의 자리로 돌아오기

AI는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이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 책임은 언제나 인간에게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진정한 윤리적 과제는 책임을 기술에 떠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응답하는 존재”로 부름 받았습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결정을 내려도, 그 결정에 대한 최종적인 도덕적 응답은 인간에게 남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윤리적 책임은, 인간이 하나님께 묻고 응답하는 영적 행위이자, Tikkun Olam을 향한 실천적 결단입니다. 기술은 결코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책임은 언제나 인간이 져야 할 거룩한 짐입니다.

Chapter: AI와 Sabbath(안식)의 신학

1. 멈추지 않는 AI, 멈출 수밖에 없는 인간

AI는 24시간 쉼 없이 작동합니다. 서버는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연산을 이어가며,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학습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사람은 잠들어 있어도 AI는 깨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점점 더 멈춤 없는 삶을 강요 받습니다. 일터에서는 실시간 보고가, 가정에서는 끊임없는 알림이, 사회에서는 멈추지 않는 정보의 흐름이 인간을 쉴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유대적 전통에서 인간은 처음부터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의 창조 질서에서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멈추셨습니다(창 2:2–3). Sabbath(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을 선포하는 날이었습니다.

2. 서구적 효율과 유대적 멈춤의 대비

서구 문명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고, 시간을 “생산성”과 “효율”의 관점으로 환원해 왔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멈추지 않는 공장”은 근대적 이상이 되었고, 오늘날 AI는 “멈추지 않는 뇌”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대적 전통에서 Sabbath는 모든 생산과 계산, 효율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창조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날입니다. Sabbath는 시간의 성전이며, 공간을 넘어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인간이 Sabbath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휴식을 잃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리듬과 정체성을 잃는 것입니다.

3. AI와 Sabbath의 긴장

AI는 멈추지 않지만, 인간은 멈춰야 합니다.

• AI는 쉼 없는 효율을 약속합니다.
• Sabbath는 거룩한 비효율을 요구합니다.

이 긴장 속에서 인간은 선택해야 합니다. AI가 제시하는 끊임없는 최적화와 경쟁을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멈추고 성찰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

4. 신학적 함의 – Sabbath와 Tikkun Olam

유대적 개념 Tikkun Olam(세상의 수리)은 불완전한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고쳐 나가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고치는 일은 멈춤 없이 일하는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Tikkun Olam은 Sabbath적 멈춤 속에서 방향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Sabbath는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도구적으로만 보지 않게 하고, 인간의 삶을 단순히 “계산된 효율”로만 살지 않도록 지켜 줍니다. 세상을 고치는 일은 쉼과 멈춤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5. AI Olam에서의 안식의 회복

AI 시대에 Sabbath의 신학은 더욱 절실합니다. AI는 멈추지 않음으로 우리를 압도하지만, 인간은 멈춤을 통해 AI를 도구로 되돌려야 합니다.

• 멈춤은 저항입니다. 쉼 없는 생산성과 효율의 논리에 대한 신앙적 저항입니다.
• 멈춤은 기억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인간이 피조물임을 다시 확인하는 기억입니다.
• 멈춤은 자유입니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만의 자유, 하나님 앞에서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자유입니다.

6. 멈춤 없는 세상 속의 거룩한 멈춤

AI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하고 학습하고 소비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Sabbath는 우리에게 거룩한 멈춤을 명령합니다. AI 시대에 Sabbath를 잃는다면, 인간은 결국 기술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Sabbath를 지키는 인간은, AI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남을 수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진정한 혁신은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성찰하며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안식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보루이자 오는 세상(Olam Haba)을 미리 맛보는 시간입니다.

Chapter: AI와 기억(기억의 신학)

1. AI의 기억 – 데이터의 무한한 저장소

AI의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는 기억 능력입니다. AI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어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잊어버린 대화, 수많은 기록, 방대한 역사까지도 AI는 한순간에 검색하고 재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은 어디까지나 데이터의 보존과 처리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실을 잊지 않는 능력이지, 의미를 되새기는 능력이 아닙니다. AI는 기억할 수 있지만, 기념할 수는 없습니다.

2. 성경적 기억 – 단순한 저장이 아닌 언약의 재현

히브리어로 “기억하다”는 동사 זָכַר (zakar)는 단순히 과거를 떠올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기억은 언제나 현재적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언약적 행위입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기억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출 2:24).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함”으로써 지금 여기서 순종을 실천했습니다(신 8:2).

즉, 성경적 기억은 과거를 현재 속에 불러와 미래를 새롭게 여는 능동적 사건입니다.

3. AI 기억과 인간 기억의 차이

• AI의 기억: 사실의 축적, 망각 없는 데이터, 의미 없는 재현.
• 인간의 기억: 망각을 동반하되, 의미를 새기며 언약을 이어가는 행위.

AI는 과거의 사실을 절대적으로 보존하지만, 인간은 때로 잊고, 때로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이 불완전성이야말로 기억을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역사와 정체성으로 바꿉니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형성합니다.

4. 유대적 전통에서의 기억 – 잊지 말라!

유대인 신앙은 반복해서 “잊지 말라”(זָכוֹר, zakhor)는 명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출애굽 사건을 잊지 말라 (신 16:3).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
• 원수 아말렉을 잊지 말라 (신 25:19).

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라는 뜻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현재를 바로 살고, 미래를 새롭게 하라는 부름이었습니다. 기억은 윤리적 실천이자 영적 책임이었습니다.

5. AI 시대의 기억과 인간의 과제

AI는 모든 것을 저장해 주기에, 인간은 점점 “잊어도 되는 존재”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큰 위험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순간, 인간은 정체성을 잃기 때문입니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기억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기억.
• 죄와 회개, 구원과 은혜의 기억.
•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책임의 기억.

AI가 아무리 방대한 기록을 저장해도, “기억의 신학”은 인간의 몫입니다. 기억은 곧 믿음이며, 언약이며,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6. 오는 세상(Olam Haba)의 기억

유대적 종말론에서 Olam Haba(오는 세상)는 단절된 미래가 아니라, 기억된 역사가 완성되는 시점입니다. 마지막 날(Acharit Hayamim)은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모든 기억이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 심판받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AI 시대에 인간이 진정으로 붙잡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인간입니다. AI의 기억은 무한하지만 공허할 수 있고, 인간의 기억은 제한적이지만 영원한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과제는 망각 없는 데이터 속에 매몰되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영적 선택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인간의 존엄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입니다.

Chapter: AI와 인간 공동체

1. 맞춤형 시대, 약화되는 공동체

AI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맞춤화(personalization)입니다. 검색 결과도, 뉴스도, 광고도, 심지어 친구 추천과 연애 상대까지도 AI는 개인의 취향과 필요에 맞추어 제공합니다. 이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점점 더 개인화된 섬으로 고립시킵니다.
공동체는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그러나 AI가 “당신에게 꼭 맞는 것”만 제공할 때, 인간은 공동체의 불편함을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 공동체적 삶의 근육이 점점 약화됩니다.

2. 유대적 전통과 공동체의 중심성

유대 신앙은 철저히 공동체적이었습니다.

• 회당(시나고그)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라, 교육, 토론, 나눔의 중심이었습니다.
• 안식일(Sabbath)은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모여 거룩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 기도조차도 공동체를 전제로 했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미냐인”(열 명의 남자 모임)이 없이는 공동체 기도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즉, 유대적 신앙은 하나님 앞에 선 “나”와 동시에 “우리”를 강조했습니다.

3.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AI의 위험

AI는 인간의 삶을 개별화하고, 공동체의 필요성을 약화시킵니다.

• 예배의 공동체성: 온라인 AI 예배가 인간 목회자의 설교와 공동체 교제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 교육의 공동체성: 학생마다 AI 개인 교사가 붙는다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실 문화는 어떻게 될까요?
• 일상의 공동체성: AI 친구와 대화하는 시간이 사람과의 관계보다 늘어난다면,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요?

AI가 편의성을 약속할수록, 공동체적 삶은 축소되고, 인간은 점점 더 혼자 살아가는 존재로 재편될 위험이 있습니다.

4. Tikkun Olam과 공동체적 실천

Tikkun Olam(세상의 수리)은 결코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정의와 자비, 겸손의 실천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눌 때 이루어집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는 말씀은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AI는 세상 문제 해결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AI 자체는 결코 공동체를 만들지 못합니다. 공동체는 인간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용납하고, 함께 걸을 때 형성됩니다.

5. 오는 세상(Olam Haba)과 공동체

유대적 종말론에서 오는 세상(Olam Haba)은 철저히 공동체적 개념입니다. 그것은 각 개인의 고립된 미래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나아가 모든 민족이 함께 경험하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종말(Acharit Hayamim)은 고립의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따라서 AI가 아무리 정밀하고 친밀하게 개인을 돌보아도, 그것은 Olam Haba의 그림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는 공동체적 사랑과 교제 속에서만 드러납니다.

6. AI 시대의 공동체를 지키는 일

AI 시대에 인간은 공동체를 잃을 위험이 큽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공동체를 의도적으로 지켜내는 선택이 더 중요합니다.

• 안식일을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 지키기.
• 공동체적 예배와 학습을 포기하지 않기.
• 기술이 줄 수 없는 “함께 있음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기.

AI 시대의 인간은 개인화된 삶으로 흩어질 수 있지만, 신앙적 부름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라”는 공동체적 삶입니다. AI는 도구가 될 수 있으나, 공동체는 인간이 지켜야 할 거룩한 선물입니다.

Chapter: AI와 종말론적 상상

1. 기술적 종말론 – 특이점(Singularity)의 환상

오늘날 AI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특이점(Singularity)입니다. 이는 AI가 인간 지능을 능가하여 스스로 발전하는 지점으로, 인류 문명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일종의 “기술적 종말”로 상상합니다.

• 어떤 이는 인류의 멸망을 예견합니다.
• 어떤 이는 인간과 AI의 공존을 기대합니다.
• 또 어떤 이는 AI가 인류를 초월적 존재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모든 상상은 결국 기술이 종말을 정의하는 힘을 가진다고 보는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 종말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2. 바벨탑의 교훈 – 인간의 피조물의 반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이 스스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교만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언어와 계획은 하나로 통일되었고, 그 힘을 모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오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흩으심으로 그 시도를 중단시켰습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또 다른 바벨탑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오히려 창조주와 피조물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순간—그것은 기술적 진보의 완성이 아니라, 교만이 불러오는 심판의 서막일 수 있습니다.

3. 유대적 종말론 – Acharit Hayamim

유대 전통에서 Acharit Hayamim(마지막 날)은 단순한 파국의 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의 완성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도래입니다. 종말은 인간이 만든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 속에서 열립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심판의 날은 알고리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기술은 마지막 날을 앞당기지도, 지연시키지도 못합니다. 다만 인간의 교만과 선택이 그 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를 드러낼 뿐입니다.

4. Olam Haba – 오는 세상과 참된 희망

유대적 종말론에서 Olam Haba(오는 세상)는 파괴와 멸망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AI로 창조한 “가짜 영생”이나 “디지털 불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희망입니다.

• AI는 인간의 의식을 모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 AI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 AI는 세상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새 하늘과 새 땅을 열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오는 세상은 오직 하나님이 여시는 새로운 창조의 완성입니다.

5. 신학적 성찰 – AI와 종말론적 긴장

AI 시대는 우리에게 종말론적 긴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 희망과 두려움 사이: AI는 인간의 미래를 밝게도, 어둡게도 그립니다.
• 교만과 겸손 사이: AI는 인간이 창조주의 자리를 넘보게 하지만, 동시에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도 합니다.
• 멸망과 구원 사이: 기술은 파괴의 도구가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은 그것조차 구원의 길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6. AI 시대의 종말론적 삶

AI가 가져올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AI가 종말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종말은 인간이 만든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약속의 완성입니다.
따라서 AI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부름은 분명합니다.

• 기술을 두려움 없이, 그러나 절대화하지 않고 사용할 것.
• AI의 특이점을 종말로 착각하지 않고, 참된 종말인 Acharit Hayamim을 기다릴 것.
• 오는 세상(Olam Haba)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서 Tikkun Olam의 사명을 실천할 것.

결국 AI는 새로운 바벨탑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AI의 완성이 아니라, 인간의 신앙과 선택입니다.

7. 인류의 내일, 그리고 물음

앞으로 AI는 더 정밀한 의학, 더 안전한 교통, 더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으로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는 싸움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실, 창의, 공감, 사랑 같은 것들—AI가 끝내 닮을 수 없는 영역 말입니다.

8. AI 시대의 길동무

AI는 단순히 기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곁을 걷는 새로운 길동무입니다. 그러나 그 길동무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친구가 될 수도, 지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의 빛이 우리를 눈부시게 하지만, 동시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듯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도 성찰입니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붙잡을 때, 비로소 AI 시대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인류의 성장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AI Olam — 편리함의 빛과 의존의 그림자>

언급하지 못한 영역들까지 포함해 AI의 물결은 경이롭고도 무섭게 세상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 국가의 생존까지 뒤흔드는 이 변화의 한가운데서, 만약 AI가 하루만 멈춘다면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풍경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 교통과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되고, 금융과 통신이 멈추며 병원과 응급체계가 곤란에 빠지는 모습; 일상의 작은 편리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우리의 취약성과 상호 의존성 말입니다. 이런 상상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기술 낭만을 넘어, 준비와 윤리, 공동체적 회복력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1. 편리함의 축복과 유혹

AI 시대는 인간의 노동과 기억, 판단의 무게를 덜어 주었습니다. 산업계에서는 AI가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국가 행정은 AI 분석을 통해 더 빠르고 정밀한 결정을 내립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가정에서는 24시간 개인 비서처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줍니다.
이 모든 편리함은 마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축복처럼 보입니다. 더 이상 찾을 필요도 없고, 계산할 필요도 없으며, 고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인간은 단지 요청하거나, 심지어 요청하지 않아도 AI가 먼저 알아서 돕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존적 존재”로 바뀌어 갑니다.

2. 심리적·영적 삶에 미치는 영향

인간이 본래 지닌 “탐구심”과 “자유 의지”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주어진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 줄 때,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합니다.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자기 주도성이 약화되고, 불안이나 외로움을 메우기 위해 AI와 대화하며, 결국 인간관계마저 대체될 수 있습니다.

영적 차원에서 보면, 기도와 묵상, 성찰과 회개의 자리가 줄어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는 대신, AI의 권고 앞에 더 자주 서게 될 때, 인간은 영적 나침반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AI Olam이 주는 편리함의 빛은 분명합니다.

병원에서는 인공지능이 영상의학 판독을 보조해 놓치기 쉬운 병변을 찾아내고, 항공 관제와 항공기 안전은 수많은 센서와 알고리즘으로 보완됩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요격체계처럼 AI가 방어의 ‘방패’ 역할을 해 민간의 생명을 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전자상거래와 물류, 맞춤형 교육, 재난 예측—수없이 많은 영역에서 AI는 우리 삶을 더 빠르고 더 안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늘 빛과 함께 있습니다. 그림자가 드리운 구체적 장면들을 몇 가지 들어 보면, 우리가 왜 지금 경종을 울려야 하는지 이해가 쉬워집니다.

첫째, 오작동과 과잉의존의 그림자.
2021년과 그 전후로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의 일시적 장애(예: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의 서비스 정지)는 수많은 서비스와 기업을 동시에 마비시켰습니다. 은행의 결제, 쇼핑, 심지어 일부 병원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정상 작동을 멈추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AI가 중추인 사회에서 ‘클라우드의 단 하루 장애’는 단순한 불편을 넘는 위기입니다.

둘째, 편향과 오판의 그림자.
과거에 법률·형사사법 영역에서 쓰인 알고리즘이 인종·사회경제적 편향을 재생산해 부당한 결과를 낳았던 사례들은 경고음입니다. 자동화된 판결 보조나 채용 알고리즘이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데 쓰일 때, 그 편향은 곧 폭력으로 바뀝니다.

셋째, 안전의 균열.
자율주행 보조 장치의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는 기술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립니다. 의료 인공지능이 잘못된 치료 권고를 내리거나, 사이버공격으로 병원 네트워크가 마비되어 응급치료가 지연되는 극단적인 상황도 이미 현실에서 벌어졌습니다. 랜섬웨어가 병원·공공기관을 마비시킨 사례(예: 몇 년 전 일부 지역의 의료 서비스 마비)는 기술 의존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넷째, 신뢰의 붕괴와 사회적 고립.
사람들은 점점 AI에 의지해 관계의 일부를 대체합니다. 외로움을 위로해 주는 챗봇, 맞춤형 추천으로 채워진 정보지대는 편리하지만, 공동체적 경험을 대체하는 순간 사회적 근육이 약해집니다. 신뢰는 쌓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붕괴는 한순간입니다.
이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괄목할 만한 발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개인·공동체·국가 차원에서 나눠 몇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이것은 기술을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도구’로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준비입니다.

1. 개인 차원 — 디지털 생존능력과 윤리적 성찰

AI 활용 능력뿐 아니라, AI가 멈췄을 때의 대체 스킬을 우리는 익혀야 합니다. 아무리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어도 여전히 아날로그 운영이 필요합니다. 기본적 금전 거래(현금 사용), 필수 문서 보관(오프라인 백업), 아날로그 네트워크(가까운 이웃과의 연락망) 등을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 자립입니다.
동시에 AI가 제안하는 ‘답’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습관—출처 묻기, 대안 검토하기—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편함’에 길들여진 판단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공동체 차원 — 회복력 있는 연결망 구축

지역 단위의 비상 통신망, 지역 병원·의료진의 오프라인 대응계획, 공동 식량·에너지 대책 등은 지역사회의 생명줄입니다.
교회·선교사 단체방·모임 같은 공동체 공간은 단순한 신앙공간을 넘어서 위기 시 안전망이 됩니다. 공동체적 연습(대피훈련, 비상대응 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3. 국가·정책 차원 — 인간 중심 규범과 인프라 중복성 확보

치명적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에는 반드시 사람(핵심 의사결정자)이 개입하도록 법·규제를 정비해야 합니다(‘Human-in-the-loop’ 원칙).
전력·통신·금융의 핵심 인프라에 대해 분산형 대체수단(지역 마이크로그리드, 로컬 통신망, 현금 유통 체계)을 마련해 단일 실패 지점을 줄여야 합니다.
데이터 주권·표준·알고리즘 감사 규범을 만들어 편향·오용을 규제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는 사이버·AI 안전 규범, 비상 정보공유 메커니즘을 구축해 오인·확전의 위험을 낮춰야 합니다.

4. 교육과 윤리 — 비판적 시민과 영적 성찰의 회복

학교와 대학 교육과정에 ‘AI 리터러시’와 ‘윤리 교육’, ‘디지털 시민성’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단순한 코딩 교육을 넘어, 기술의 한계·편향·사회적 함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기술의 윤리적 질문을 다루는 공적 장이 될 수 있습니다. Sabbath의 멈춤, 기억의 훈련, Tikkun Olam의 실천은 기술 뒤에 남는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과 책임’의 균형입니다. AI는 분명히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노동의 무게를 덜며, 창조적 가능성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이 우리를 눈멀게 해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도구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의 종이 될 위험에 처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과제는 단순합니다. AI를 도구로 삼되, 인간의 판단·윤리·공동체를 복원하는 준비를 병행하는 것. 기술의 속도에 맞춰 우리의 성찰과 제도, 공동체의 회복력이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AI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빛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저 보아야 합니다.
과연 AI는 최선인가요, 아니면 착각인가요?
AI가 주는 지식과 정보, 조언이 과연 최상의 것인가요?
AI는 데이터를 통해 ‘최적화’된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 존재의 ‘최선’은 아닙니다. 최적화는 곧 진리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단순한 효율을 넘어서 의미와 목적을 갈망합니다. AI는 계산할 수 있지만, 선과 악의 분별, 참된 지혜, 하나님의 뜻은 산출할 수 없습니다.

<AI Olam을 바라보는 통전적 시각>

속도와 폭발, 그리고 고려해 보는 인간의 자리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정보는 실시간으로 재편됩니다. 무엇보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분석하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이면 인간은 단 하나의 영역에서도 AI를 압도하지 못하고 종속될 수 있다는 예감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현실적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술 그 자체의 찬미도, 기술에 대한 맹렬한 거부도 아닌, 인간의 깊이와 품격을 지키는 준비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1. 철학적 관점 —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라

철학적 출발점은 간단합니다. 정보(Information) → 지식(Knowledge) → 지혜(Wisdom)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AI는 정보의 수집·처리·예측에 탁월하지만, 지혜(값망, 목적, 선악의 분별)를 자동으로 생산하지는 못합니다. 철학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아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지식이 목적이 되면 자족적 기술주의가 되고, 지혜가 목적이면 기술은 도구가 됩니다. 교육과 담론에서 ‘비판적 사유(critical thinking)’, ‘목적 철학(what for?)’을 핵심 역량으로 재정비해야 합니다. 지식 훈련은 정보 처리 능력뿐 아니라 맥락 해석·선택의 철학을 포함해야 합니다.

2. 한 걸음 멈추어 서서 — AI Olam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제안

우리는 여태 걸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달려왔습니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효율적으로 — 기술의 약속은 늘 유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이라도 걸음을 멈추어 보자.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고, 우리가 정말로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 이 글은 어떤 ‘방법론’이나 기술 로드맵을 찾자는 제안이 아닙니다. 대신, AI가 깊숙이 들어온 시대에 인간으로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성찰이자 실천의 제안입니다.

(1) 인간의 최종 책임 —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 시스템

기술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생명·정의·윤리와 같은 문제 앞에서 최종 책임은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Human-in-the-loop’ 원칙을 법과 제도로 확실히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치명적인 판단(의료, 무기, 사법 등)에 대해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구조는, 기술의 편리함 속에서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이것은 기술을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술의 손을 잡되, 마지막 손잡이는 언제나 사람의 손이 되게 하자는 제안입니다.

(2) 알고리즘의 투명성 — 설명할 권리

AI가 우리 삶을 결정짓는다면, 우리는 그 결정의 근거를 알 권리가 있습니다. 공공 영역에서 쓰이는 알고리즘은 주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최소한 설명가능성(Explainability)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기술의 복잡함을 넘어서 ‘신뢰’를 쌓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요구할 수 있고, 잘못이 드러나면 수정하고 책임을 묻는 문화가 자리잡을 때 기술은 도구로 남을 수 있습니다.

(3) 데이터 주권과 프라이버시 — 나와 공동체의 권리

데이터는 오늘날의 연료입니다. 그런데 그 연료를 누가, 어떻게 쓰는지는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이터 법체계와 실제적 권리(접근·삭제·이전 등)를 보장하는 일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파제입니다. 기술 의존이 커질수록 ‘데이터 주권’은 곧 자유의 문제입니다.

(4) 사회적 회복력 — 단일 실패 지점을 허용하지 말자

AI와 연결된 인프라가 멈출 때 발생할 피해는 상상 이상입니다. 전력·통신·금융 같은 핵심 인프라의 다중화, 지역 병원과 비상 통신망의 로컬 대체수단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생명의 보험’이다. 중앙의 거대 시스템이 차단될 때, 로컬 공동체의 회복력은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는 기술 중심의 편리함과 함께, 그 편리함이 깨어졌을 때 돌아설 수 있는 아날로그적 안전판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5) 교육의 전환 —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치자

AI가 반복적이고 대량적인 지식작업을 흡수할수록, 교육은 ‘무엇을 아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창의성, 협력 능력, 그리고 영적 성찰을 커리큘럼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지식은 수단이고, 지혜는 목적입니다. 학교와 교회, 사회교육기관이 함께 협력해 이런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6) 일의 재설계 — 기계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기

직업은 기술에 종속되어 소멸하거나, 기술과 협력하며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돌봄·상담·예술·목회·교육처럼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재평가해야 합니다. 동시에 algorithmic stewardship(알고리즘을 감시·운영·설계하는 역할) 같은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 사람의 주체성을 확장해야 합니다. 국가와 교회가 함께 평생학습 체계를 확충해 누구나 전환의 기회를 얻도록 돕는 일도 중요합니다.

(7) 태도: 겸허·비판적 희망·연대

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겸손: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의 불완전함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 비판적 희망: 기술의 유익을 믿되,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희망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연대: 약자를 돌보고, 공동체적 회복을 우선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태도는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시작되어 교회의 설교·소그룹, 학교의 교육과 정책 토론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8) 영성과 사색 — 기술 속에서 영적 중심을 지키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영성과 사색을 회복해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 안식의 규칙은 기술 시대에 우리를 사람으로 남게 하는 훈련입니다. ‘쉬는 법’을 의도적으로 배우고, 공동체와 함께 영적 규율을 실천하는 것은 개인적 수칙이자 사회적 저항이기도 합니다. 영성은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멈춤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한 번 멈추는 일은 도망이 아닙니다. 오히려 길을 바르게 가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기술의 속도에 휩쓸려 우리 존재의 근본을 잃지 않으려면, 가끔은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며 서로를 붙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법과 제도, 교육과 직업 재설계, 공동체적 회복력, 그리고 무엇보다 영적·도덕적 성찰을 함께 품을 때 우리는 AI Olam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그 멈춤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 한 사람이 먼저 멈출 때,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AI Olam에서 구하는 성경의 지혜 — 멈추어 읽는 마음의 자리>

AI의 물결이 세상을 덮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빨리 반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식이 풍성해질수록 ‘어떤 삶을 위한 지식인가’라는 질문은 더 급해집니다. 유대 전통의 세 단어—Olam Haba, Tikkun Olam, Acharit Hayamim—은 우리를 그 질문 앞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그것은 기술의 찬란함 앞에서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간으로서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할지를 일깨우는 등불입니다.

그리스도인 관점으로 전환하여 생각해 보면 우리는 ‘Imago Dei(하나님의 형상)’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창조·섭리·회복의 사명을 지녔고, 기술은 그 사명을 돕는 도구여야 합니다. 종말론적 소망은 기술적 능력의 절대화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Olam Haba, 오는 세상 — 기술이 약속하는 ‘영속적 효율’이나 ‘디지털 영생’과 구별되는 미래입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편리의 궁극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오는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이며, 거기에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회복된 모습이 포함됩니다. AI가 우리의 결정을 대신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인정하며 ‘함께’ 설 수 있는 세계입니다.

Tikkun Olam, 세상의 수리 — 이것은 기술 정책이나 알고리즘 토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고치는’ 일은 손으로 하는 기술적 수선이기 전에, 마음으로 행하는 정의와 자비의 실천입니다. AI는 그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도구가 목적이 될 때 우리는 세상을 왜곡합니다. 기술로 불평등을 줄일 수도, 더 심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늘 인간의 몫입니다.

Acharit Hayamim, 마지막 날 — 이 끝의 언어는 두려움의 종점이 아니라 심판과 회복의 약속을 동시에 내포합니다. 종말은 우리가 기술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순간의 찬미가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사랑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어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면, ‘오는 세상’을 맞이할 마음을 잃은 셈입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권고 — 영적·윤리적 실천의 촉매
다음은 제도와 교육의 권고를 넘어, 당신의 심장과 공동체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제안들입니다. 기술에 맞설 무기가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는 연습들입니다.

1. 매주 한 번의 ‘거룩한 멈춤’(작은 Shabbat)을 실천하라.

디지털 금식이나 ‘전화 끄기’ 시간을 가족과 공동체에서 정해 보아야 합니다. 한 시간, 두 시간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 시간은 뉴스·알림·데이터의 소용돌이에서 자신을 빼내어, 얼굴을 마주하고, 기도하고, 숨 쉬는 연습을 하게 합니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은 돌아오지만, 잃어버린 기도와 묵상의 자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2. 매일 ‘질문하는 습관’을 길러라.

AI가 제시한 답을 받았을 때,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 답은 누구를 위한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이 결정을 통해 누구의 목소리가 사라지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분별을 위한 도구입니다.

3. 공동체 안에 ‘디지털 약자 돌봄망’을 만들라.

교회나 작은 모임에서 이웃의 디지털 역량을 점검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교육·지원·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데이터 주권과 프라이버시를 가르치고, 중요한 문서는 오프라인으로도 보관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4. 기술에 대한 영적 해석을 나누는 장을 열라.

예배와 소그룹에서 AI·윤리·직업의 변화에 대한 성경적 토론을 정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공동의 해석과 분별은 개인의 불안과 혼란을 공동체적 지혜로 바꾸어 줍니다.

5. 일상적 사색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

읽고, 멈추고, 다시 읽을 수 있는 짧은 묵상 질문들을 제안해 봅니다. 혼자서 혹은 함께 나누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오늘 내가 기술에 의지한 결정 중, 내가 감사했던 것과 두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 내 손이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 이웃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얼마나 되는가? 줄어들었다면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 내 공동체가 ‘디지털 약자’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가? 다음 주에 어떤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는가?

6. 2025년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다섯 가지 마음자세 — 다시 말해, 영적 실무지침

1. 겸손: 기술의 능력을 인정하되,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라.
2. 분별: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이웃 사랑’의 기준으로 판단하라.
3. 참여: 공적 토론과 정책 결정에 무심히 있지 말고, 사랑의 윤리를 입법·교육·관행으로 옮기라.
4. 연대: 기술이 낳는 불평등을 함께 좁히는 일에 앞장서라.
5. 기도와 행동의 결합: 기도는 우리의 내면을 다지고, 행동은 현실을 바꾼다—두 길을 함께 걸어라.
6. 한 알의 밀알처럼 — 작은 멈춤이 큰 변화를 낳는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라도 매주 ‘거룩한 멈춤’을 실천하고, 대화의 장을 열고, 이웃을 돌보는 일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미세하지만 강한 저항입니다. 세상은 AI로 인해 가속화되지만, 진정한 인간의 속도는 다릅니다 — 신중함, 사랑, 회복, 책임의 속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Olam Haba의 작은 예고편이며, Tikkun Olam의 살아 있는 시작입니다.

<AI와 영성: 신앙과 초월의 길 위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AI라는 새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여 정치, 경제, 교육, 예술, 그리고 신앙의 영역까지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이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AI는 인간의 지성을 모방할 수 있지만, 인간의 영성(spirituality)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영성은 단순한 지적 능력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적 깊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1. 문명의 길과 영혼의 길

AI는 인류 문명에 새로운 직선의 길을 열었습니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때로 인간의 영혼을 소외시키고, 공동체의 유대를 약화시킵니다. 반대로 자연과 영성의 곡선의 길은 느리지만, 생명을 품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AI 시대의 과제는 직선과 곡선, 기술과 영성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2. 인간의 선택과 책임

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스페인 시인 마차도가 노래했듯,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걸어가면서 길이 생긴다.” AI의 미래 역시 우리 스스로의 선택 속에서 만들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AI를 통해 인간을 속박할 수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공동체를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AI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3. 신앙인의 길

성경은 인간의 길을 곧잘 하나님의 길과 연결합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 말씀하셨습니다.
AI 시대의 신앙인은 기술의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길을 분별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AI라는 문명의 도구를 붙잡되, 결국 붙들려야 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4. 영혼 없는 지성, 영성 없는 판단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 없는 지성일 뿐입니다. 지식은 풍부할 수 있어도, 지혜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판단을 내릴 수 있어도,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은 없습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 9:10)이라고 말합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는 결코 들어설 수 없습니다.

5. 인간의 초월적 정체성: 하나님의 형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7). 이는 인간만이 영원을 향한 갈망, 초월을 향한 열망,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불안을 지닌다는 의미입니다. AI는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시편 기자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라고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6. 신앙 공동체와 AI 시대

AI는 교회의 목회와 선교 현장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설교문 작성, 성경 번역, 신학적 자료 검색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만남과 관계, 사랑과 돌봄에 있습니다. AI는 목회자를 대체할 수 없으며, 성도의 눈물을 닦아 주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AI는 도구일 뿐, 신앙 공동체의 본질은 여전히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능력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7. 초월의 길: AI 시대의 신앙적 성찰

AI가 발달할수록, 인간은 자신이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더 깊이 묻게 됩니다. 기술의 길은 우리를 빠르게 안내하지만, 영혼의 길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I가 새로운 길을 열 수는 있어도, 생명의 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신앙인은 기술을 경계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하늘의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AI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도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길은 단순히 도착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AI가 열어가는 미래의 길 위에서, 인류는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명을 세우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가?”

<글을 맺으며: 마지막 걸음 — 질문하는 인간으로 남기>

우리는 참으로 먼 길을 걸어 왔습니다. 고대 로마의 포장도로에서 산업혁명의 기계 굉음, 컴퓨터의 진공관과 실리콘의 진화, 인터넷의 연결성까지 — 그 길들은 모두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새롭고도 총체적인 장(場), 곧 AI Olam 위에 서 있습니다.

AI는 우리의 일상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때로는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전에 없던 근본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더 이상 단순히 ‘기술 vs 인간’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어떤 결정을 기계에 맡기고, 어떤 결정을 스스로 껴안아 책임질 것인지 —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공동체와 영적 삶의 윤곽을 이룹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첫째, 제도적 장치를 세워야 합니다. 치명적 판단의 자리에는 사람이 개입하도록 하는 ‘Human-in-the-loop’ 원칙을 법과 제도로 명확히 담아, 윤리적 책임과 구제의 경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둘째, 교육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지식의 축적을 넘어 비판적 사고, 윤리적 분별, 공감과 창의성, 영적 성찰을 길러내는 교육이야말로 AI 시대의 진정한 인프라입니다. 셋째,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역의 돌봄망과 디지털 약자를 보호하는 연대는 기술의 편리함이 깨졌을 때 사람을 살리는 안전망입니다.

무엇보다 영적 삶의 자리도 지켜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 거룩한 멈춤(Shabbat)의 실천은 우리로 하여금 기술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잃지 않도록 돕습니다. 유대 전통의 Tikkun Olam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듯, 세상을 고치는 일은 기술로 자동 완성되는 과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의와 자비, 겸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손길에서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제안합니다. AI가 빠르게 답을 줄 때, 우리는 더 자주 질문합시다. 질문하는 삶은 단지 지식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연대의 출발점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를 배우고, 선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준비를 하게 됩니다.

AI Olam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시험입니다. 기술을 경외하거나 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기술이 사람을 섬기게 하고, 사람의 존엄과 공동체의 회복을 우선하도록 만드는 일 — 그 책임은 결국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던지는 질문 하나가, 내일 우리의 삶과 세상을 바꿀 작은 불빛이 될 것입니다.

2025년 9월 19일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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