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성지행전, 바울의 바닷길 로도스, 고스, 가우다-2

파도와 바람에 잠식당하던 순간, 그 작은 섬은 하늘이 내린 마지막 방패처럼 서 있었다. 섬의 바위와 숲, 그리고 바람 부는 항구는, 절망 속에서 꺼지지 않던 불빛이 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이 땅에 “사도 바울이 머물렀다”라는 기억을 새겨 넣었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믿음의 서사가 교차하는 곳 가우다는...

[미션저널] 新성지행전, 바울의 바닷길 로도스, 고스, 가우다-2 » 김수길 선교사 » 그리스 이야기(39회)  »

로도스 섬을 찾은 것은 내 생애 처음으로 크루즈 여행을 했을 때였다. 미국에서 우리를 방문하신 일행과 우리 가족도 함께, 동행한 지중해 크루즈였다. 이 유람선은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거쳐 터키까지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여행 전까지 나는 청년 시절에 보았던 영화배우 안쏘니 퀸(Anthony Quinn)이 주연한 ‘나발론의 요새’(The Guns of Navarone)가 실제 로도스 섬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딸에게도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 유명한 군사기지였어! 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러나 현지 가이드는 내 생각을 살짝 바로잡아 주었다. 나발론의 요새는 실제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촬영지는 바로 이곳, 로도스가 맞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반쯤은 틀리고, 반쯤은 맞은 셈이었다. 속으로 웃으면서 나는 내 모습에서 로도스를 배경으로 한 이솝 우화가 생각났다.

여기가 로도스(Ρόδος)다.

이 표현은 아이소포스(Aἴσωπος 이솝)의 우화 ‘허풍선이 사나이’(Ἀνήρ κομπαστής)에서 비롯한다. 우화의 주인공은 아테네의 한 펜타슬론(πένταθλον 5종 경기) 선수였다.
무능한 선수였던 그는 언재나 경기에서 실력이 없어서 늘 조롱을 받고 살아왔다.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온 뒤 자신이 다른 도시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했다. 나는 로도스 섬에서 올림픽 우승자들조차 못 해낼 만큼의 엄청난 점프 기록을 세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못 믿겠으면, 그곳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도 자신 있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모래 위에 Ρόδος(로도스)라고 쓰고는 말했다.
“자,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αὐτοῦ γὰρ καὶ Ῥόδος καὶ πήδημα)
사실 로도스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이지만 이 표현은 너무도 유명한 로도스의 상징어가 되었다. “말은 쉽지, 당장 증명해봐.” 이제 로도스를 증명하려고 한다.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오늘날에도 도데카네사(Δωδεκάνησα) 제도의 행정 중심지이자 관광의 핵심지로 자리하고 있다. 도시는 크게 구시가지(Old Town)와 신시가지(New Town)로 나뉘는데, 중세 성 요한 기사단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구시가지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로도스의 구시가지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이다. 14세기 성 요한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이 도시를 요새로 재건한 것이다. 이곳은 당시 동지중해에서 십자군 기사들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시가지 안에는 기사들의 거리 (Street of the Knights)의 돌길을 따라 기사단의 숙소들이 마치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벽과 문들 약 4km에 달하는 두꺼운 성벽과 7개의 문은 로도스를 강력한 요새 도시로 만들었다. 구시가지 바깥으로는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만드라키(Μανδράκι)항구는 전설에 따르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로도스의 거상(Κολοσσός της Ρόδου)이 이곳 입구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항구 입구 양쪽에 사슴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 몬테 스미스(Monte Smith) 언덕에 오르면, 고대 로도스 아크로폴리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아폴론 신전의 기둥과 경기장, 그리고 극장이 여전히 이곳에 서 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수천 년 전에도 지금처럼 푸르렀을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신화와 바다가 만나는 마을, 린도스(Λίνδος)

린도스는 로도스 섬 동해안 크라나 곶 (Akrotírio Krana)에 자리한 전통 마을로, 로도스 시에서 약 55km 떨어져 있다. 하얀 집들이 언덕 비탈을 따라 층층이 늘어서 있고,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과 자갈 모자이크로 장식된 작은 마당, 그리고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창들은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마을 위로는 웅장한 린도스 아크로폴리스(Ἀκρόπολις Λίνδου)가 솟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남쪽 에게해와 성 바울 만(Όρμος Αγίου Παύλου)의 옥빛 바다, 그리고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린도스의 신화(神話)와 역사(歷史)

린도스의 기원은 전설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양신 일리오스(Ἥλιος)와 바다의 여신 로도스(Ρόδος)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이 세운 도시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아르고스(Ἄργος)의 영웅 다나오스(Δαναός)의 50명의 딸들이 이집트에서 건너와 아테나(Ἀθηνᾶ) 신전을 세우며 마을을 세웠다고도 한다.
고대에는 도리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해상 무역과 식민지 개척으로 큰 번영을 누렸다. 린도스는 고대 7현인 중 한 명인 클레오불로스(Κλεόβουλος), 세계 7대 불가사의 로도스의 거상을 만든 조각가 카리스(Χάρις), 그리고 스토아 철학을 로마에 전한 철학자 파나이티오스(Παναίτιος)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린도스는 세계 최초의 해양법 중 하나인 로도스 해상법(Ναυτικὸς Νόμος Ῥοδίων)이 탄생한 곳이다. 이 법은 선원과 선박, 해상 무역과 보험, 그리고 항해 중 발생하는 공동 위험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어 고대의 바다를 지배한 법전으로 불렸다.

⛪ 아크로폴리스와 문화유산

린도스 아크로폴리스는 마치 역사의 타임캡슐 같다. 고대 그리스인, 로마인, 비잔틴, 성 요한 기사단, 오스만 제국까지 수많은 문명이 이 작은 언덕에 흔적을 남겼다. 아테나 신전의 기둥, 로마 시대 건축물, 비잔틴 성벽, 기사단 요새가 층층이 겹쳐져 하나의 거대한 역사박물관을 이룬다. 마을 중심에는 지금도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으며,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거나 당나귀를 타고 아크로폴리스까지 오르는 체험이 이곳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바울 사도와 로도스 섬

“그 후 우리가 배를 타고 떠나 곧 로도스에 이르고 거기서 바다라에 이르러…” (사도행전 21:1) 사도 바울은 제3차전도 여행(사도행전 21장)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도스 섬에 들렀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로도스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짧은 언급이지만, 그가 이 섬을 지나며 복음의 발자취를 남겼다는 사실은 로도스인들 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성경에는 바울이 로도스에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지의 전승과 교회 역사에 따르면, 바울은 로도스 시에 잠시 머물며 현지인들과 교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린도스의 바울만(灣)은 바울이 로도스에 도착한 장소로 전해지며, 지금도 작은 예배당(성 바울 교회)이 세워져 있다.
로도스는 예로부터 해양과 무역의 중심지였고, 바다의 여신 로도스와 태양신 헬리오스의 전설이 깃든 섬이다. 이 섬에 바울의 배가 닿았다는 사실은,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복음의 세계가 만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린도스의 성 바울만을 찾는다.
푸른 바다와 고대 성채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바울이 걸었던 그 길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살아 있는 신앙의 장면이다.

고스(Κως) 성경과 역사의 섬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고 거기서 바다라에 이르러…” (사도행전 21:1) 성경은 단 한 구절로 사도 바울이 고스를 거쳐 간 사실을 기록한다. 머물렀다는 흔적도, 전도의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그 짧은 언급만으로 이 섬은 성경의 지도 위에 새겨졌다. 바울의 여정 중 잠시 스쳐 지나간 항구였을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 위의 한 점으로 남았다.
우리는 그 짧은 구절 앞에서 멈춰 선다. 성경 속에 단 한 번 등장하는 이름조차 하나님의 섭리 속에 기록되었다면, 내 인생의 작은 순간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심을 깨닫게 된다.

배가 천천히 고스 섬을 향해 다가갈 때, 푸른 에게 해(海) 위에 떠 있는 하얀 집들과 오래된 성벽이 가장 먼저 시야를 채운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는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사도 바울도 이 바다를 건너, 저 항구에 발을 디뎠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이 섬을 바라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분명 이 땅의 공기와 바람을 스쳤다.
오늘의 나는 그 발걸음을 따라 항구에 들어서며, 시간의 간격을 넘어 한 신앙인의 여정을 곁에서 느낀다. 성경 속 짧은 순간이 나의 발걸음 속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고스는 단지 성경 속 섬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곳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πποκράτης)의 고향이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플라타너스 나무가 광장 한복판을 지키며 섬의 상징처럼 서 있다. 두껍게 뻗은 줄기와 넓은 그늘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를 품어 왔다.
신화속의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에이온(Ἀσκληπιεῖον)의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치유의 성소로, 병든 자들이 몸과 마음을 고치고자 모여들던 곳이다. 층층이 쌓인 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황홀하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영육간의 연약함을 치유하시는 참된 의사가 바로 주님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항구를 지키는 네란차 성(Κάστρο Νεράντζας)은 중세 기사단의 요새로, 굳건한 성벽은 지금도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음악당, 체육관, 로마의 주택과 같은 로마 시대의 흔적들은 고대 사람들의 일상과 예술의 감각을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 준다.
하지만 고스는 단지 과거의 섬이 아니다. 오늘날 이곳은 자전거의 섬이라 불릴 만큼 섬 전체를 자전거로 누빌 수 있다. 항구에서 광장으로, 해변에서 유적지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여행자는 바람을 맞으며 섬의 리듬과 호흡을 함께한다. 바닷바람에는 소금기와 함께 올리브 향이 섞여 들어와, 자연의 선물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바울사도는 고스를 단지 잠시 들렀던 항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나에게는 신앙과 삶이 만나는 자리다. 삶의 항해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라 여기는 시간들을 만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 어떤 순간도 헛되지 않다.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 우리의 짧은 만남과 머묾조차 주님의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다. 고스의 자연은 그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디카이오스 산(Όρος Δίκαιος)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파노라마 같은 바다는, 우리의 인생이 한순간에 다 보이지 않지만 결국 큰 그림 속에 있음을 보여 준다. 지아(Ζία)마을의 노을빛은 하루의 끝조차 은혜로 물든 순간임을 가르쳐 준다. 바닷가의 온천에서 피로를 풀 때, 주님의 위로가 내 영혼에도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고스는 단순한 그리스의 예쁜 섬이 아니다.
이곳은 역사와 일상, 신앙과 여행, 기억과 현재가 만나는 자리다. 바울이 지나간 발걸음을 따라 걷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믿음의 여정은 거대한 사건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섬에 잠시 들르는 그 순간까지도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가우다 (Γαύδος) 바람과 추방의 섬

바람이 멎는 날, 지중해의 남쪽 끝에 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한없이 이어지는 리비아 해이다. 바다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푸르며, 그 수평선은 손에 닿을 듯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은 도달할 수 없는 경계선일 뿐이다.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대륙이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언제나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대인들은 이 작은 섬을 칼립소의 섬(Το Νησί της Καλυψούς)이라 불렀다. 호메로스(Όμηρος)는 오디세우스(Οδυσσέας)가 바람에 휩쓸려 이곳에 표류했다고 서사시에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 섬의 본래 이름은 오기기아(Ογυγία)섬이다. 그 전설은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여전히 바다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던 길에 유라굴로(Εὐρακύλων)를 만나 이곳에 피난했고, 이집트에서 온 성인들과 사도 요한 역시 바람에 떠밀려 이 섬에 도달했다고 전해진다. 16세기에는 오스만 튀르크의 바르바로사(Μπαρμπαρόσα)와 같은 해적들이 은신처로 삼았다, 미노아 시대의 유물과 도기들이 발굴된 사실은 이곳의 역사가 단순히 전설에 머무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가우다의 땅과 숲과 바다는 신화와 역사와 전설이 뒤섞인 층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흔적은 지금도 섬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섬의 이름은 오랫동안 낭만보다 고통과 더 가까웠다. 사람들은 가우다를 ‘악마의 섬’이라 불렀는데,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유형되어 고립과 굶주림, 그리고 질병 속에서 생을 이어가야 했던 현실 때문이다. 1930년대 그리스 메탁사스(Μεταξάς)독재 시절, 그리고 내전 중에 정치범과 노동운동가, 사상범으로 분류된 이들이 이곳으로 추방되었다. 풀과 나무 열매로 연명하며 버텨야 했고, 말라리아는 약도 의사도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쓰러뜨렸다. 외부와 이어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들어오는 작은 배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날씨에 따라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우다는 그들에게 감옥이자 망명지였고, 동시에 바다 위에 떠 있는 철창 없는 형무소였다.


사라키니코 해변의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은 단지 한때의 흔적이 아니라, 꺾이지 않은 의지의 증언이 되었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파도에 씻기면서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날 가우다를 찾는 이들은 해변에 누워 햇살을 즐기고, 향나무 숲 그늘에 텐트를 치고, 저녁이면 붉게 물드는 일몰에 매혹된다. 사라키니코(Σαρακήνικο)와 트리피티 곶(Ακρωτήριο Τρυπητή) 같은 곳에서 여행자는 자연의 장엄함에 압도되며, 이곳을 여름의 낙원으로 기억한다. 전체 인원은 백 명 남짓한 인원이 산다, 이 섬의 한 명뿐인 경찰은 택시 기사를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적은 주민들 때문에 여객선은 관광객이 모이는 한여름에만 운행한다.
하지만 가우다는 단순히 유럽의 끝자락에 놓인 외딴 섬이 아니다. 그것은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장소이며, 인간의 존엄과 저항, 의지와 믿음이 증명된 공간이다. 신화는 역사가 되었고, 역사는 다시 전설이 되었으며, 그 모든 층위는 이 섬의 흙과 숲과 바다에 스며 있다. 오늘날의 여행자가 이곳을 찾을 때,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인간의 힘과 약속, 그리고 꺾이지 않는 정신이 남겨놓은 가장 고귀한 보물이다.

가우다와 사도 바울

로마로 압송되던 사도 바울은 폭풍에 휘말려 항로를 잃는다. 배는 거친 물살에 떠밀려 나아가다가, 마침내 크레타 남쪽의 작은 섬, 오늘날 지명은 가브도스(Γαύδος)라 불리는 가우다에 구사일생으로 도착했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룻배를 잡아 끌어올리고” (행 27:16) 성경은 이곳을 가우다(Γκούντα)라 기록했지만, 세월은 이름을 바꾸었고, 전승은 이곳을 바울의 섬으로 남겼다.
그날 바울과 동행한 이들에게 가우다 즉 가브도스는 단순한 지리적 피난처가 아니었다. 파도와 바람에 잠식당하던 순간, 그 작은 섬은 하늘이 내린 마지막 방패처럼 서 있었다. 섬의 바위와 숲, 그리고 바람 부는 항구는, 절망 속에서 꺼지지 않던 불빛이 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이 땅에 “사도 바울이 머물렀다”라는 기억을 새겨 넣었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믿음의 서사가 교차하는 곳 가우다는 그렇게 단순한 섬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와 인간의 의지가 만나는 경계로 남았다.
끝없는 바다 위에서 한순간 숨을 고르게 해 주었던 땅, 가우다는 지금도 여전히 고난 속에서 빛을 잃지 않는 신념의 상징으로 서 있다.
이곳에서 사도는 설교를 하거나 전도의 기록은 없지만, 가우다는 그들에게 폭풍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른 피난처였다. 후대의 전승은 이 사건을 기려, 가우다를 “사도 바울의 섬”, “구원의 땅”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글쓴이: 김수길 선교사/ 본지 미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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