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를 두고 방송과 매체는 ‘비극’또는 ‘비극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오늘날의 묻지 마 살인사건 등은 고대 그리스 작가들이 사용했던 ‘비극’이란 단어와 같은 의미일까? 하긴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신화를 무대극으로 만들어, 아테네인들을 공포 속에 고민하게 만들긴 했었다. 그리스에서 자연 재해 등 끔직한 피해가 발생하면, 티브이 방송국 자막에는 이 같은 상황을 ‘비극’(τραγωδία)이라고 적고 있다.
[미션저널] ‘비극’(τραγωδία)의 탄생: ‘파르마코스’ ‘카타르마’ 그리고 ‘호모 사케르’ » 김수길 선교사 » 그리스 이야기(32회) » 매년 그리스에 여름이 오면 시내의 극장과 대중 관람 시설에는 찾는 사람이 없기에 문을 잠근다. 대신 야외에 극장을 열거나 가까운 유적지의 원형극장에서 한밤에 열리는 공연을 보게 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더운 날씨 탓이기도 하리라, 오래된 유적지 안의 원형 극장에서 공연되는 그리스의 비극의 무대에 빠지다 보면 고대극을 진행하는 공연자와 그 위에 비추는 달빛과 조명은 참석자 모두를 모두 취하게 만든다. 과거와 현실을 구분 짖기 어려운 상황 아래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착. 하. 게 살자는 비극의 카타르시스(κάθαρση)를 느끼는 것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그리스 문학은 호메로스(Όμηρος호머)의 일리아드를 상징하는 서사시와 올림피아의 영광을 노래하는 판달로스(Πάνταλος)의 서정시가 있다. 서사시 서정시와 더불어 비극의 작품들이다. 오늘까지 전해져 오는 비극의 작가는 ‘그리스비극 3대작가’라 부르는 아이스킬로스(Αισχύλος), 소포클레스(Σοφοκλής), 에우리피데스(Ευριπίδης) 이다. 이들로부터 전해지는 비극은 32편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의 원고가 불타고 현재는 겨우 몇 편만이 남아있다.
그리스어로 비극(τραγωδία)은 “뜨라고디아”라고 한다. 즉 염소(τραγως)와 노래(Ode)의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현대어로 뜨라구디아(τραγουία)는 노래이다. 가수는 뜨라구디스띠스(τραγουδιστής) 라고 부른다.
뜨라고디아가 염소들의 노래라는 뜻이기에 그리스 신화 속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 라틴어로는 바카스(Βάκχος)와 연관을 짓는다. 신화는 그가 어릴 때 염소의 모습으로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즉 비극 뜨라고디아는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제의로서의 노래라는 의미다. 기원전 5세기 경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무대극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아테네가 제 2차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후 아테네는 로도스 섬에서 델로스 동맹(Δηλιακή συμμαχία)을 맺고 최고의 시대를 누렸다. 비극의 내용은 아테네 사람들이 그들과 적대 관계에 있던 지역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함, 저주와 몰락들이 주 소재였다.(심심풀이 땅콩 같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30년 전쟁에서 패한 후 주도권을 빼앗기는 시점까지 유지되었다.
’비극‘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소재를 가져 오기에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 인가. 이것이 비극의 근본적인 요소다. 그래서 작가들은 무대 위에 오르는 비극의 배경은 신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극적으로 드러내어야만 했다. ‘비극‘은 앞서 말한 3대 비극 작가들에 의하여 그 체계가 정립되었고, 오늘날까지 공연 문화 형식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플라톤(Πλάτων)은 비극이 최고의 대중적 지지와 인기를 누리더라도 이데아(ιδέα)적인 현실을 왜곡한다면 비극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Αριστοτέλης)는 스승에게 반박하는데 비극의 공연은 아테네 사회를 안정 시키는 기능과 개인적으로 극한 상태의 감정을 순화시킴이 필요하고, 이 순화 적 요소를 그는 카타르시스(κάθαρση) 라고 했다.
플라톤은 개인의 감정은 이데아 보다 중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행위로 나타나는 표현 속에 인간의 성격이 투영됨으로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왜 서사시보다 우월한 지를 설명한, 그의 저서 “시학”(Περὶ ποιητικῆς)6장에서 “비극의 요소는 귀한 행동의 재현이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언어를 각기 작품의 종류대로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일방적인 나열하는 형식이 아닌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하여 연민과 두려움을 통해 이와 같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실현하게 한다.” 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대표작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Οἰδίπoυς τύραννoς)을 최고의 비극 작품으로 꼽았다. 후대사람들은 그리스어 ‘오이디푸스 티라노스’라는 말보다, ‘오이디푸스 렉스’(Oedipus Rex)라는 라틴어를 더 사용했다. 그리고 정신분석 학자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이 신화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를 좋아하는 무의식, 즉 남자 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본능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란 말을 사용하여 비극과 신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정신 분석학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비극의 대표적 인물 오이디푸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오이디푸스는 고린도의 왕자이자 테베(Θήβα)의 왕이다. 테베의 라이오스(Λάιος) 왕과 이오카스테(Ιοκάστη)왕비의 친아들이자 고린도의 폴리버스(Πολύβυς) 왕과 메로페(Μερόπη)왕비의 양자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자, 유명한 영웅 중 한 사람이다.
델피의 신전에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았다. 라이오스 왕은 이후 낳은 아들을 신하에게 넘기며 아기를 죽이라고 했다. 차마 아기를 죽이지 못한 신하는 아기의 발을 묶어서 짐승들이 다니는 길에다 아기를 버렸다. (이 부분은 신화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여러 버전이 있다. 그리스 중 고등학교에서 신화의 여러 버전을 가르치기도 한다.)
여러 버전 가운데서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쫒아 가면 아기가 없던 고린도의 왕 폴리보스와 메로페에게 입양되어 출생의 비밀을 모른 체 성장한다. 발견 당시 아기의 발이 부어서 그의 이름을 ‘부은 발’이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고 부르게 된다.
장성한 오이디푸스는 고린도 왕으로부터 꾸짖음을 당한 후 술에 취한 왕족 중 한 사람으로 부터 “너는 왕의 친자가 아니다” 라고 말을 듣는다. 당시 가장 용한 델피로 가서 자신의 출생을 알아보기를 원했지만 신탁은 질문과 다른 답을 준다. “너는 너의 아버지를 죽이고 너를 낳은 어머니와 동침한다.”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자라온 고린도를 떠난다.
친부인 라이오스 왕은 자신이 버린 아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 신탁을 받으려고 가던 중, 좁은 길에서 그가 버린 아들 오이디푸스와 마주친다. 서로 길을 비켜달라는 시비 끝에 오이디푸스는 상대가 누구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라이오스 왕과 그의 신하들을 죽이고 만다. 다만 왕의 마부만 살아서 도망을 갔다.
테베에 이르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수수께끼를 낸 후, 답을 맞히지 못한 사람들을 죽이는 스핑크스를 제거하는 사람에게 왕국과 왕위를 주고 과부가 된 왕비를 그의 아내로 준다는 소식을 듣고 스핑크스를 찾아간다. 오이디푸스는 그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알아내자 스핑크스는 수치심에 못 이겨 절벽에서 자살을 한다. 이 수수께끼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인 것은?”
테베(Θήβα)의 영웅이자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여전히 아름다운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폴리네이케스(Πολυνείκης)와 에테오클레스(Ετεοκλής) 쌍둥이 형제와 안티고니(Αντιγόνη), 이스메니(Ισμήνη)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자신은 몰랐지만, 오이디푸스에게 임한 모든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는 덕과 선정으로 통치하여 테베를 풍요한 나라로 발전시켰다.
어느 날 전염병이 테베를 뒤덮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자 왕비의 오빠, 즉 자신의 친 외삼촌인 크레온(creon)을 델피에 보내어 해결책을 찾기를 원했다. 내려진 신탁은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살인범이 테베를 떠나지 않는 한,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신탁을 듣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선 왕을 죽인 살인자를 찾으면 그의 눈을 멀게 하겠다고 다짐을 한 후, 장님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Τειρεσίας)를 통해서 살인자를 찾기 시작한다.
결국 자신이 왕을 죽인 사람인 것이 드러난다. “누군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근친상간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고, 진실 앞에 힘들어하다, 결국 목을 매 자살한다. 이오카스테의 죽음 앞에 절망하던 그는 약속대로 자신의 두 눈을 뽑아 장님이 된다.

오이디프스 이미지 ◙ Photo&Img©ucdigiN
실명한 오이디푸스는 왕위를 ‘클레온’에게 이양하고 두 딸(안티고네, 이스메네)과 함께 떠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패륜아라며 사람들로 부터 갖은 모욕을 당하며 죽었다고 한다. 왜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죽어야 했을 까? 그리고 왜 이 죽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내용보다 비극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영향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전달 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오이디푸스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오이디푸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비극’을 통해 두려움과 연민을 느낀다면 그는 안정됨(카타르시스)을 누릴 수 있고, 결국은 카타르시스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보았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정의 할 때 그는 이미 사용되고 있었던 한 단어를 가져온다. ‘카타르마’는 이 말은 당시 신에게 제물을 드릴 때, 제물에서 쓸모없는 불순물 등을 일컫는 말이었다. 버려도 아깝지 않은 존재들이 ‘카타르마’였다.
현대 그리스어는 버리는 물건을 ‘뻬따마’(πετάμα)라고 하고, 버릴 때는 ‘뻬따오’(πετάω.)라고 한다. 이 단어들은 ‘카타르마’의 변형이다. 쓸모없는 것들, 즉 카타르마’는 희생 제의에서 선택된 인간 제물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카타르마’와 같은 의미의 ‘파르마꼬스(φαρμακως)’는 고대 그리스(기원전 8세기 5세기)에서 전염병이나 기근, 외세의 침입, 내부 불만으로 인한 갈등과 재앙이 왔을 때, 사회를 안정시키는 행위로 인간 희생제물을 사용했다. 파르마코스는 그리스 내부에 위기가 왔을 때 마다 희생양 목적으로 관리했던 제의적 인간 희생양들이었다.
‘파르마코스’를 직역하면 제대로 사용할 경우 약이 되고 오남용 할 경우 독이 된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약국’을 ‘파르마키오’(φαρμακείο)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러나 당시 널리 쓰이는 의미는 ‘인간 희생양’이다. 희생을 당하더라도 보복의 위험이 없는 부랑자, 장애인,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 선택하였다.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파르마코스는 어떤 불확실한 인간의 ‘죄악’을 대신하는 속죄 양이 아니라, 집단 내부에 잠재 되어 있는 언제든지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폭력을 상징적인 폭력으로 해소하는 역할을 떠맡은 희생물이다.” 라고 했다.
신화와 비극은 끝없는 카타르시스를 요구한다. 로마제국 역시 폭력적이고 피의 카타르시스로 정치를 해왔다. 황제들은 정치에 불만인 사람들을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의 피로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정신을 돌렸다. 로마법으로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던 존재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 (초기 기독교인들처럼 힘없고 아무 때나 죽일 수 있었던)의 희생으로 로마 시민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로마제국의 안정(Pax Romana)을 누렸다.
신화와 비극에는 반드시 카타르시스가 필요로 했다. 그러나 십자가에는 카타르시스가 없다. 단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만 있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일시적인 삶의 카타르시스인가?
카타르시스를 요구하는 사회를 향한 사랑과 용서인가?
글쓴이: 김수길 선교사/ 본지 미션 칼럼니스트
필자의 지난 글 읽기: 신화와 역사의 고향 델피 (Δελφοί)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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