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계발] 율법과 은혜 사이: 바울의 복음과 바리새주의 전통의 재조명-13 » 부제: 힐렐과 샴마이의 율법 해석과 예수님의 율법 완성 이해 비교 연구 » Between Law and Grace: A Reexamination of Paul’s Gospel and the Pharisaic Tradition » Subtitle: A Comparative Study of Hillel and Shammai’s Interpretations of the Law and Jesus’ Fulfillment of the Law
Contents
- <글을 시작하면서>
- <바리새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패러독스>
- <유대인의 눈으로 다시 보는 사복음서, 그리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 <랍비 문헌 속에서 다시 드러나는 예수님의 메시아성>
- <바리새인, 오해와 진실: 예수와 바울 사이에 선 유대교 운동>
- <바리새인과 함께 등장한 유대교의 다종파 시대>
- <예수와 힐렐, 샴마이의 해석학적 조우>
- <세 랍비의 길: 예수, 힐렐, 샴마이의 율법 해석과 자비의 본질>
- <율법 해석의 차이점>
- <바리새파의 형성과 힐렐-샴마이의 전통>
- <신약성경과 바리새파>
- <예수님과 힐렐·샴마이의 만남?>
- <자비와 율법의 긴장: 세 랍비의 가르침 비교>
- <세 랍비의 율법 해석 비교: 공의와 자비 사이>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 랍비의 비전>
- <세 랍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 비교>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 랍비의 시선>
- <세 랍비의 제자도>
- <세 랍비를 통해 구현된 탈미딤과 공동체>
- <율법 즉 할라카에서 은혜로의 도정>
-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 율법에서 은혜로>
- <글을 맺으며>
<글을 시작하면서>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신실하고 존경받는 종교 그룹 중 하나는 바리새파였습니다. 그들은 토라와 전통을 사랑했고, 율법을 삶의 중심에 두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가장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열심 자체가 아니라, 외형적 경건과 내면적 위선의 간극 때문이었습니다. 본 글은 바리새 전통을 단순히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그들을 꾸짖으셨는지를 조명하며, 그 안에서 은혜의 복음이 어떻게 율법을 완성하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또한 바리새주의 기원과 뿌리와 관련하여 예수님과 동시대 인물이면서도 일반인에게도 익히 알려진 랍비 힐렐과 샴마이를 예수님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가르침이 어떻게 바리새주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살펴 보고자 합니다. 특히 힐렐의 손자로 사도행전에도 나오는 가말리엘(실제로는 가말리엘 1세)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의 회심과 신학을 다룸으로 바리새주의 문제와 핵심 논점도 다루고자 합니다.
<바리새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패러독스>
인류의 역사는 종종 “오해”로 시작하여 “편견”으로 자라고, 결국 “폭력”과 “비극”으로 끝맺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세속 정치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신앙과 종교의 역사 안에서도 이러한 반복은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 내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한 집단에 대한 오해, 곧 바리새인에 대한 편견은 단지 신학적 오류가 아니라 역사적, 인류학적,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 주제입니다.
1. 바리새인에 대한 기독교적 편견
많은 그리스도인은 “바리새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즉시 “위선자”, “율법주의자”, “독사의 자식들”(마 23:33)이라는 단어와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러한 매우 부정적 이미지는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판적 언급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비판이 문맥을 잃고, 마치 모든 바리새인이 본질적으로 악한 집단인 것처럼 일반화된 데 있습니다. 이는 신약의 서술 의도를 왜곡하는 해석일 뿐 아니라, 유대교 전체에 대한 오해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런 편견은 단순히 해석의 오류를 넘어서, 반유대주의적 정서로 이어졌고, 20세기 유럽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2. 오해와 편견이 만든 역사적 비극들
(1)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수세기 동안 “예수 살해자”라는 잘못된 낙인이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에게 씌워졌습니다. 중세 유럽 교회는 유대인을 “하나님의 저주받은 민족”으로 묘사했고, 이는 차별과 폭력, 격리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세기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습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이 조직적으로 학살된 이 참극은 신학적 편견과 정치적 증오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2) 르완다의 투치 학살
1994년, 르완다에서 단 100일 동안 약 80만 명의 투치족이 후투족 민병대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이 폭력의 이면에는 뿌리 깊은 부족 간 편견과, 식민지 시대 유럽 제국이 조장한 인종 위계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타자를 제거해야 할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3) 일본의 조선인 학살과 만행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들끓었고, 이에 수천 명의 조선인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했습니다. 이 또한 한 민족에 대한 오해와 공포, 증오가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아직도 일본 사회에 남아 있는 혐한 사상의 기저에는 깊은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은 난징 대학살(30만 명 학살), 마루타 생체실험(731부대), 조선인 강제 징용과 위안부 동원 등 상상을 초월하는 전쟁 범죄를 자행했습니다. 타자에 대한 비인간화는 그 어떤 민족도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 근본에는 선입견과 편견이 주는 강력한 일본식 집단주의의 잔혹성을 보여 줍니다.
(4) 미국의 일본계 강제수용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은 본토에 거주하던 수십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하고 강제수용소에 격리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이 사건은, 선진국조차도 편견 앞에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5) 스탈린 시대의 고려인 강제이주
1937년, 소련은 연해주 일대에 거주하던 약 20만 명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첩자”라는 근거 없는 혐의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또한 국가 권력과 편견이 결합하여 타민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사례입니다.
3. 신앙 안에서의 반성과 회복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바리새인들과 교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계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불렀고(행 23:6),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고백합니다(빌 3:6). 하지만 위선과 외식, 사람을 억압하는 율법 적용에는 단호하셨습니다.
문제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언제나 “편견”과 “권력화된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이용해 백성을 억압하고 경제적 수단으로 삼은 것을 고발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위선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곧 우리입니다. 외적인 경건, 율법적 엄격함, 경계 짓기의 유혹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 공동체에 늘 존재합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이 말씀(요 8:7)은 단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던 이들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오늘, 우리 모두에게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돌은 누군가의 죄를 향한 심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성찰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바리새인을 정죄하면서, 정작 우리 안의 바리새적 태도는 보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종교적 언어에 익숙하고, 교리와 전통에는 정통하지만, 정작 믿음과 사랑, 긍휼과 겸손은 실종된 신앙생활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요? 신실한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는 ‘종교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믿음이 없는 자”, “선택받지 못한 자”라고 낙인찍습니다. 구원론이라는 깊은 신학의 신비마저도, 때때로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 받았다는 우월감으로 오용되고, 타인에 대한 정죄의 근거로 왜곡됩니다. “나는 구원받았고, 너는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교만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꾸짖으셨던 바로 그 정신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패러독스입니다. 바리새인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처럼 되고, 은혜를 말하면서도 정죄하고, 구원을 노래하면서도 배타적인 심판자가 되어버린 우리 자신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오해와 편견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교회 안에, 우리의 마음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을 향한 것이었고, 때론 이슬람을 향한 것이며, 때로는 다른 교파,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 혹은 아무 신앙도 가지지 않은 이들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모든 편견과 오해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포함해, 사두개인도, 에세네파도, 세리와 죄인도, 병자와 나병환자도 초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 모두를 정죄가 아닌 회개와 생명의 길로 초청하십니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그 돌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답해야 합니다.
“그 돌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누구를 향한 돌인가?
“그들”이 아니라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을 때(요 8:7), 그 말씀은 단지 한 여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 그리고 우리가 늘 던지려는 그 돌을 내려놓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바리새인에 대한 신학적 편견을 넘어서, 우리는 이 시대의 반유대주의, 반이슬람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문화적 우월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편견”에 맞서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회개와 치유의 길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눈으로 다시 보는 사복음서, 그리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시대의 복음서는 단순한 구원의 메시지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과의 근본적인 충돌을 드러냅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모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셨음을 증언합니다(마 23장, 눅 11장). 하지만 이 비판은 단순한 반대 세력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같은 전통 속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으나 방향을 잃은 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절망이 섞인 질책이었습니다.
1. 바리새인: 예수님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어진 자들
바리새인(Perushim)은 제2성전기 후기 유대교 내에서 대중적 지지를 가장 많이 받던 학파였습니다. 그들은 힐렐과 샴마이의 두 주요 학문 전통을 계승하며 구전 율법(Torah she-be’al peh, תּוֹרָה שֶׁבְּעַל פֶּה)을 강조하였고, 경건한 일상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추구하였습니다. 탈무드와 미드라쉬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예배, 식사 규범, 안식일 준수, 정결례에 엄격하였습니다(Sotah 22b 참조).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과 빈번히 충돌하셨습니다. 단지 율법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율법이 형식주의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회칠한 무덤”이라 칭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모욕이 아닌, 외면은 경건하나 내면은 죽음으로 가득한 신앙의 부패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이었습니다.
히브리대 레이첼 엘리오르(Rachel Elior) 교수는 “제2성전기 후기에 바리새인들은 토라 중심의 신앙보다는 종파의 해석 권위를 신성시했으며, 그로 인해 예언자적 음성을 억눌렀다”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미드라쉬 에가 라바 1:1에서는 “율법을 아는 자들이 거짓으로 정의를 판단하고, 자기 이익에 따라 토라를 왜곡한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2. 왜 바리새인은 예수를 거부했는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많이 말씀하신 주제는 긍휼 (라함임, mercy, רַחֲמִים, raḥamim)과 회개(테슈바 תְּשׁוּבָה, teshuvah)였습니다. 예수님은 은혜, 겸손, 연민, 그리고 긍휼(라함임, רַחֲמִי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회개(테슈바, תְּשׁוּבָה)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정결의 도구로 삼았고, 그것은 곧 이방인·죄인·여인·병자 등을 하나님 나라 바깥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사야 58장에서 하나님은 “금식보다 공의와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시지만, 바리새파는 종교적 경건을 외적인 표식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2-3에서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들의 말은 따르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 능력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해석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을 지적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장 비판한 것은 ‘자기 의’였습니다(눅 18:9-14). 이는 마치 미드라쉬 다바르임 라바(Devarim Rabbah)에서 “자신을 높이는 자는 랍비가 아니라, 우상을 만든 자다”라고 한 고대 랍비 전승과도 맥이 닿습니다.
3. 랍비 문헌과 사해 문서가 증언하는 부패한 성전 체제
사해 두루마리 중 ‘사제 규율서’(1QS)와 ‘전쟁의 두루마리’(1QM)는 당대 성전 체제를 ‘어둠의 아들들’이라 명명하며, 그 부패와 타락을 폭로합니다. 또한 탈무드 ‘요마 8:9’에 따르면, 대제사장직은 정치적 거래로 인해 해마다 바뀌었으며(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20.179 참조), 이는 민수기 20장의 ‘제사장직은 죽는 날까지’라는 율법과는 전면 충돌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 칭하시며 채찍을 들어 상인들을 내쫓으신 장면(마 21:12-13)은 단순한 상업 행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 이름으로 행해진 종교적 착취와 권력 남용에 대한 신성한 심판이었습니다.
<랍비 문헌 속에서 다시 드러나는 예수님의 메시아성>
20세기 헝가리의 아이작 리히텐슈타인(Issac Lichtenstein) 랍비는 신약을 읽고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가시 대신 장미를, 증오 대신 사랑을, 노예 대신 자유를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메시아일 뿐 아니라, 온 세상의 구속자로 오셨다는 사실을 유대 전통 안에서 확인한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부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s) 학자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선지자이자 대제사장, 메시아 왕”으로 고백하며, 히브리 성경과 신약 간의 일치를 입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랍비 이츠학 샤피라(Rabbi Itzhak Shapira)는 예수님을 “파샷 하마쉬아 (פָּשָׁט הַמָּשִׁיחַ, Pashat HaMashiach: 고난받는 종 메시아)”로 인정하며, 탈무드 속 메시아 벤 요셉 개념과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연결을 설명합니다.
또한, 유대교에서 개종한 러시아 출신 신학자 아놀드 프루크텐바움(Dr. Arnold Fruchtenbaum)은 《Messianic Christology》에서 예수님을 히브리 성경의 예언적 성취로 해석하며, 구약의 여러 메시아 예언(특히 이사야 53장, 시편 22편, 스가랴 12장 등)과 예수님의 생애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분석합니다. 그는 “메시아는 먼저 고난받는 종으로 오시며, 훗날 승리하는 왕으로 다시 오신다”고 말합니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은 조나탄 칸(Jonathan Cahn) 목사입니다. 그는 유대계 배경을 가진 메시아닉 리더로, 《하르빙어》(The Harbinger), 《리턴》(The Return) 등의 저서를 통해 미국과 세계의 영적 회복을 유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예수님을 “예언의 성취이자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여신 메시아”로 선포합니다. 그는 성경의 희년(Jubilee), 유월절(Pesach), 속죄일(Yom Kippur) 등의 절기를 신약과 연결하여 예수님의 사역이 이스라엘 전통의 완성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은 단지 과거의 지도자들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한 경고이며, 모든 율법과 전통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의 자비, 정의, 진실을 따르려는 부르심입니다. 메시아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초청하는 길이며, 하나님 나라의 문은 지금도 자비로 열려 있습니다.
<바리새인, 오해와 진실: 예수와 바울 사이에 선 유대교 운동>
이처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종종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종교인”, 또는 “율법주의자”라는 표현이 바리새인을 연상시키며 사용됩니다.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라고까지 말씀하시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십니다(마 23장 참조).
하지만 이러한 혹평은 문맥 없이 절대화될 수 없습니다. 당시 다양한 유대교 분파들—사두개파, 헤롯당, 에세네파, 그리고 바리새파—가 존재했지만, 예수님께서 가장 자주 논쟁하시고 가까이 계셨던 집단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가장 많은 비판을 하셨을까요?
1. 바리새파와 예수님의 ‘신학적 근접성’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과 가장 빈번하게 충돌했던 바리새인(פְּרוּשִׁים, Perushim)은, 당시 유대 종파들 중에서 오히려 예수님의 신학적 주제들과 가장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두개인(צְדוּקִים, Tzeduqim)은 모세오경(תּוֹרָה, Torah)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부활(ἀνάστασις, anastasis)이나 천사(מַלְאָךְ, mal’akh; ἄγγελος, angelos), 영적 존재의 실재를 부정하였습니다(사도행전 23:8 참조). 반면, 바리새인들은 전체 히브리 성경, 즉 타나크 (תנ״ך, Torah, Nevi’im, Ketuvim)를 모두 정경으로 수용하며, 부활 신앙과 천사의 존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강한 믿음을 견지했습니다.
에세네파(אִסִּיִים, Essenes)는 사막의 쿰란 공동체처럼 세속 사회와 철저히 분리된 수도원적(ascetic) 생활을 추구하며 공동체 규칙(Serekh ha-Yahad)에 따라 엄격한 정결법을 지켰고, 헤롯당원들은 실용주의적으로 로마 제국과 정치적으로 협력하며 헤롯 왕가의 정치적 유지를 지지했습니다.
이에 비해 바리새인들은 일반 민중과 밀접하게 연결된 회당 중심(בֵּית כְּנֶסֶת, Beit Knesset)의 종교생활을 통해, 율법(תּוֹרָה, Torah)의 교육과 해석을 담당하는 대표적 해석 공동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조차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민중과 함께하셨다는 점에서 그 구조적 공통점이 뚜렷합니다.
바리새인들의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구조화되어 있었으며, 유대 교육 시스템인 베이트 세페르(בֵּית סֵפֶר, Beit Sefer), 베이트 탈무드(בֵּית תַּלְמוּד, Beit Talmud), 베이트 미드라쉬(בֵּית מִדְרָשׁ, Beit Midrash) 과정을 거치며, 성경 암송과 할라카(הֲלָכָה, Halakhah) 교육에 매우 정통한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예수님 시대의 갈릴리에서도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는 나사렛 예수 역시 해당 교육의 문화를 알고 계셨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가장 자주 비판하셨다는 사실은, 단순한 적대적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의 공통 기반 위에서 더 깊은 회개(תְּשׁוּבָה, Teshuvah)와 자비(חֶסֶד, Chesed)의 회복을 촉구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부활 신앙(마 22:31–32), 천국에 대한 기대, 회당 중심의 가르침(눅 4:16), 율법에 대한 깊은 해석(마 5–7장) 등을 포함하며 바리새인들의 신학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닙니다. 바울 역시 빌립보서 3:5와 사도행전 23:6에서 스스로를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밝히며, 회심 이후에도 이 정체성을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2. 예수님의 비판은 내부 개혁적 외침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강하게 비판하신 이유는, 그들이 거짓된 외식이나 형식주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으므로 그들의 말은 듣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 해석은 유효하지만, 그 삶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이 비판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실천의 불일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랍비 문헌인 미쉬나 아보트 1:17에서도 “행동은 적고 말이 많은 자를 경계하라”고 교훈합니다. 예수님의 비판은 랍비 전통 내의 자기비판과 일맥상통하며, 외식(히브리어: צביעות, tzviyyut)은 랍비 문헌에서도 주요한 윤리적 경고 대상이었습니다.
3. 바리새파는 예수 운동의 토양이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거나 최소한 호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를 찾아와 질문하며, 후에 예수님의 장례를 도왔습니다(요 19:39). 사도행전 15장에서는 바리새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여했고, 사도행전 5장에서는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보호합니다.
탈무드(Avot de-Rabbi Natan 37)에서도, 바리새파 내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었고, 자비로운 해석자들과 외식적 실천자들이 공존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비판은 바리새 전통 전체가 아니라, ‘율법을 명목으로 삼고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자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4. 바리새주의 내부의 긴장과 예수의 위치
예수님은 에세네파처럼 율법에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셨지만, 동시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해석한다고 지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쿰란 문서에서는 바리새인들을 “매끄럽게 만드는 자들(dor’shei halaqot)”이라 비판하며, 율법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해석한다고 공격합니다(4QMMT, 다마스커스 문서).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이 전통을 구실로 본래 율법 정신을 왜곡한다고 비판하셨습니다(마 15:3–9).
5.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의 재고
결국 “바리새인”이라는 단어가 현대에 와서 단지 ‘위선자’라는 의미로만 통용되는 것은 역사적, 신학적으로 부정확한 단순화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바리새파가 유대 종교 전통 중 가장 하나님께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그들에게 가장 높은 기대를 가지고 계셨고, 따라서 가장 강한 언어로 그들을 권면하신 것입니다. 진리에 가까운 자일수록, 더 깊은 교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6. 예수와 바리새인, 충돌과 접촉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는 분명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충돌은 타협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비슷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해석의 경쟁적 갈등이었습니다. 바리새주의는 예수 운동이 태어난 신학적 환경이었으며, 그 중 일부는 예수의 제자로 변화되었고, 교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을 단순히 비판적 상징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신약과 랍비 문헌 모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그들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함께 등장한 유대교의 다종파 시대>
예수님의 시대는 단순히 한 가지 형태의 유대교가 존재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 귀환한 유대인 공동체는 제2성전의 재건과 더불어 점차 내적 다양성을 띠게 되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헬레니즘의 영향 속에서 신정정치와 율법 중심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는 긴장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형성된 제2성전 후기 유대교는 단일하지 않은, 다종파적 유대교였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등장하지만 구약성경에는 언급되지 않는 이름들—사두개파, 에세네파, 서기관들, 헤롯당원, 열심당원—은 이러한 복잡한 시대적 배경에서 생겨난 각각의 흐름입니다.
• 사두개파(Sadducees)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제사장 계급과 깊이 결속된 종파로, 토라(모세오경)만을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고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 에세네파(Essenes)는 사막으로 물러나 정결과 금욕의 삶을 추구했던 공동체로, 사해문서의 저자들로 알려져 있으며 당대 성전 체제를 부패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 서기관(Scribes)은 율법 해석과 기록을 담당하던 해석 공동체로, 바리새인과 종종 겹치는 영역이 많았습니다.
• 헤롯당(Herodians)은 로마 제국과 결탁하여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정치 종파였으며,
• 열심당(Zealots)은 로마 제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무장 저항과 혁명을 주장했던 유대 민족주의
운동의 일파였으며, 예수님의 제자 중 시몬 젤롯(Simon the Zealot)이 이들과 관련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하게 분화된 종파들은 신약의 배경을 이루는 정치적·신학적 풍경이었고, 이들 간의 차이는 단지 신학적 견해 차이를 넘어서 권력, 민중, 성전, 로마 제국과의 관계 등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이 다종파 유대교의 중심에서 바리새인들은 율법 중심의 생활과 민중 교육을 통해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였습니다. 바로 이 바리새 운동 내부에서 두 위대한 학문적 흐름, 곧 힐렐 학파(Hillel)와 샴마이 학파(Shammai)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단순한 율법 해석가가 아니라, 바리새 전통 안에서 시대의 윤리와 율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 할라카적(법률적) 스승이자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바리새파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힐렐과 샴마이, 그리고 이들과 다른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해석과 실천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들 바리새 전통과 어디에서 접점을 이루고, 어디서 단절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곧 신약을 유대교의 맥락 안에서 바르게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예수와 힐렐, 샴마이의 해석학적 조우>
탈무드를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힐렐, 샴마이, 가말리엘 1세(보통 가말리엘로 불림), 그리고 랍비 아키바. 이들은 모두 랍비 유대교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유대 율법 전통의 해석과 전승을 형성한 사상적 기둥들입니다. 이 중 힐렐과 샴마이는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며,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스승으로 신약 성경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랍비입니다(행 5:34; 22:3 참조).
예수님은 복음서 전반에서 바리새인들과 자주 논쟁하셨고, 그들의 위선을 공개적으로 책망하시며, 율법의 본질과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해석하셨습니다. 이 바리새인 가운데에서도 율법에 가장 철저했던 바울은, 힐렐의 손자였다고 전해지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였습니다.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고백할 만큼 철저한 할라카 전통의 수련자였다는 점은,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단순한 교리적 전환이 아니라 존재론적 전복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힐렐과 샴마이, 그리고 가말리엘과 바울, 더 나아가 예수님 사이의 사상적 교차점과 차이점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을 넘어, 신약 성경을 보다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는 신학적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 자비인가, 공의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묵상이 아니라, 율법의 적용과 구원의 이해, 심판과 회복, 공동체의 윤리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만일 하나님의 공의가 우선한다면 율법은 엄격한 기준이 되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심판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자비가 먼저라면, 그 율법은 죄인을 향한 초대이며, 회개와 용서, 구원의 문이 열리는 계시가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바로 이 경계에서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지 않으셨지만, 자비를 율법의 본질로 재정의하셨습니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 9:13)는 외침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이해, 곧 자비에서 시작되는 공의, 회개에서 도달하는 구원의 질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동시대 인물이자, 바리새 전통의 양대 축을 이룬 힐렐과 샴마이를 살펴보며, 그들의 율법 해석과 하나님의 속성 이해가 예수님의 복음과 어떻게 교차하고 충돌하며, 혹은 예비하고 계승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길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왔는지를 통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랍비의 길: 예수, 힐렐, 샴마이의 율법 해석과 자비의 본질>
1세기 유대 땅, 로마의 압제가 짓누르던 시대. 그 속에서 율법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길을 찾던 세 명의 랍비가 있었습니다. 힐렐, 샴마이, 그리고 예수. 셋 모두 토라(율법)를 생명의 길로 이해했고, 하나님의 뜻과 자비의 실현을 추구했으며, 제자들을 양성하며 자신이 믿는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다르고, 그들의 해석은 깊은 차이를 가집니다. 이 글은 그 차이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탐구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자 합니다.
1. 힐렐: 자비의 토라와 관용의 전통
힐렐(Hillel the Elder, 약 BC 110 – AD 10)은 고대 바빌론에서 출생하여, 젊은 시절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가난한 목수였고 생계를 위해 나무를 하며 배움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산헤드린의 수장(나시)으로까지 이어졌고, 후에 ‘베이트 힐렐(Bet Hillel)’이라는 학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 학파는 그의 율법 해석 방식과 자비 중심의 신학을 이어받았습니다.
힐렐은 다음과 같은 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에게 미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 해석일 뿐이다. 가서 배우라.”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과도 비교됩니다. 그의 자비 중심 해석은 형벌보다 긍휼을, 배제보다 포용을 강조했으며, 율법을 일상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실천으로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예언자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바리새주의적 틀 속에서 인간 중심의 윤리와 토라의 자비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제자들과 후대 랍비들은 이 정신을 따라 유대교의 실천적 전통을 형성하였고, 후대 랍비 문헌에도 그의 영향력은 깊게 남아 있습니다.
힐렐은 율법의 목적이 인간의 회복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종종 샴마이와 대조되며, 율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온유와 유연함을 선택했습니다. 힐렐의 유산은 바리새파 내에서도 온건하고 포용적인 경향을 대표하였으며, 신약에서 예수님의 자비 중심의 가르침과 대화를 이루는 중요한 랍비적 흐름을 이룹니다.
2. 샴마이: 공의의 율법과 경건의 기준
샴마이(Shammai, 약 BC 50 – AD 30)는 힐렐과 동시대의 유력한 랍비로, ‘베이트 샴마이(Bet Shammai)’ 학파의 창시자입니다. 힐렐과 동시대를 살며, 산헤드린에서 힐렐과 함께 ‘쌍(זוגות, Zugot)’으로 불렸던 율법 학자입니다. 그는 건축가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엄격한 율법 해석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힐렐의 자비 중심 해석과 종종 대립하며, “베이트 샴마이” 학파를 형성합니다. 그는 힐렐과는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인물로, 율법의 엄격한 적용과 공의 중심의 해석을 강조하였습니다.
샴마이는 예를 들어 이방인의 개종 조건을 엄격히 제한했고, 유대 공동체의 정결과 경계를 철저히 강조했습니다.
샴마이는 바리새적 전통 속에서 율법의 권위와 절대성을 매우 중요시했으며,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의 순종과 경건이 우선시되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전해집니다:
“말은 적고 행함은 많게 하라. 모든 사람을 온유한 얼굴로 맞이하라.”
그의 엄격한 율법 해석은 종종 현실의 공동체 문제에 있어 힐렐과 대립각을 이루었습니다. 탈무드에는 그들의 해석 차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가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개종을 요청하며 “내게 토라 전체를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가르쳐달라”고 하자, 샴마이는 그를 거절하고 몰아낸 반면, 힐렐은 관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샴마이의 학파는 초기에는 영향력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힐렐의 자비 중심 해석이 주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샴마이의 정신은 바리새파 내 경건주의자들과 보수적 율법주의 흐름 속에서 계속 이어졌고, 예수님의 시대에 중요한 대립 배경을 형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당대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하신 여러 장면들은 샴마이 학파의 영향 아래 형성된 율법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의 해석 방식은 하나님의 공의에 집중하였으나, 예수님은 이에 자비와 회복이라는 또 다른 중심 가치를 제시하셨습니다.
그의 전통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내부의 율법 엄격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탈무드는 힐렐과 샴마이의 논쟁을 300여 회 이상 기록하고 있으며, 대개 힐렐의 해석이 채택되지만, 샴마이의 견해는 율법의 경계와 진지함을 상기시킵니다. 복음서 속 예수의 비판 대상과 유사한 사상을 반영합니다.
3. 예수 – 자비와 율법의 완성자
(1) 배경과 정체성: 갈릴리 랍비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은 기원전 4년경 갈릴리 나사렛에서 태어났으며, 목수의 아들로 성장했지만, 어느 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랍비로 불리며 제자들을 두셨고, 산상설교와 비유, 이적과 말씀으로 유대 땅 전역을 가르치셨습니다. 그의 활동은 갈릴리와 예루살렘, 그리고 수리아와 사마리아 지방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나사렛에서 자라났기에 “나사렛 예수”라 불렸습니다. 유대의 종교 권위자들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으며,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과 율법에 관한 해석에서 충돌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어느 누구보다도 율법을 사랑하셨고, 율법의 완성을 위해 오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마 5:17).
(2) 율법 해석: 문자에서 본질로, 공의에서 자비로
예수님의 율법 해석은 힐렐과 샴마이의 중간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예수남께서는 율법의 문자적 조항을 넘어 “율법의 정신” 곧 사랑, 자비, 정의를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7)
예수님의 해석은 단순한 규범의 지침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와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막 2:27)는 말씀처럼, 율법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려 하셨습니다.
그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셨으며(요 8장),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고(눅 19장), 율법이 금지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고치셨습니다(눅 13:10–17). 이것은 율법의 본래 목적이 생명을 살리는 것임을 드러낸 행동이었습니다.
(3) 자비의 구현과 하나님 나라의 비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기존의 할라카 중심 질서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것은 회개한 죄인,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린 자, 평화를 만드는 자들에게 열려 있는 나라였습니다(마 5장).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마태복음 9:13)
그분의 자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끌어안고 회복시키는 구속적 행위였습니다. 여인의 피 묻은 손이 옷자락을 만졌을 때, 율법은 부정함을 선언하지만 예수는 거룩함으로 정결하게 하셨습니다(막 5장).
그분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자비의 정의를 세우셨습니다.
(4) 예수님의 영향력과 공동체의 탄생
예수님의 영향력은 죽음 이후 더욱 커졌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유대교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복음이 퍼지게 하였고,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더 이상 할라카 중심의 율법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공동체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랍비가 아니라,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토라의 성취자이자 하나님의 자비의 화신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3. 세 길, 하나의 질문
세 사람 모두 율법을 사랑했지만, 무엇을 중심에 두었는가?
• 힐렐은 자비를 토라의 요약으로 보았고,
• 샴마이는 정결과 경계를 중심에 두었으며,
•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자비의 실현을 몸으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힐렐과 많은 부분에서 공명하지만, 그를 초월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힐렐은 “사랑하라” 했고,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힐렐은 “이웃을 네 자신같이”라 했고, 예수는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율법을 해석한 자가 아니라, 율법을 이루신 자로서의 예수.
오늘, 우리는 어느 랍비의 길을 따르고 있을까요?
샴마이의 엄격함, 힐렐의 자비, 예수의 하나님 나라.
그 길은 우리의 신앙의 지형을 비춥니다.
<율법 해석의 차이점>
베이트 힐렐, 베이트 샴마이, 그리고 예수의 말씀 속에서 드러나는 율법 해석의 세 길
1세기 유대 사회는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각 학파의 정체성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힐렐과 샴마이의 해석은 당시 유대교의 두 축이었으며, 예수의 가르침은 이 두 흐름과 긴장하거나, 때로는 그 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1. 샴마이의 길: 엄격한 구분과 경계의 율법
샴마이는 율법의 정확성과 구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토라는 거룩한 경계를 지키는 성벽이었고, 그 벽을 무너뜨리는 어떤 해석이나 행위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 개종자에 대한 태도: 한 이방인이 샴마이에게 “토라 전체를 한 발로 서서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샴마이는 그를 쫓아내 버립니다. (Shabbat 31a)
• 혼인 및 안식일 규정: 샴마이 학파는 예배와 의식에서 세밀한 규정들을 강조하며, 심지어 전통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샴마이의 길은 유대 정체성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으나, 때로는 자비와의 충돌을 불러왔습니다.
2. 힐렐의 길: 자비와 융통성의 율법
힐렐은 율법의 본질을 자비와 공감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율법의 문자보다 정신을 중시하며,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는 유연한 접근을 추구했습니다.
• 같은 이방인에게 힐렐은 말합니다: “네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전 토라의 핵심이고, 나머지는 그 해석이다.” (Shabbat 31a)
• 결혼, 안식일, 제사법에 있어서도 그는 인도적이고 포용적인 해석을 따랐습니다.
• 의도와 동기의 강조: 힐렐은 형식보다 마음의 동기를 중시하며, 인간 내면의 회개와 사랑을 중요시했습니다.
힐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 없으면 누가 나를 위해 주겠는가? 그러나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한다면 나는 누구인가?” (Pirkei Avot 1:14)
3. 예수님의 길: 율법의 완성, 그리고 새로운 질서
예수님은 율법을 부정하거나 폐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율법의 근본적 의미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빛에서 그 정신을 완성시키려 했습니다.
• 산상수훈에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 그는 마음의 의도, 자비의 실천, 정결한 내면을 강조합니다:
살인을 금한 계명을 넘어 분노 자체를 죄로 보고, 간음의 행위보다 음욕의 생각을 책망합니다.
• 안식일에 대해서도 그는 말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막 2:27)
이 해석은 샴마이의 엄격함을 넘어서고, 힐렐보다 더 급진적인 자유와 회복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사랑, 자비, 정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새롭게 재정의합니다.
4. 세 길의 교차점과 갈림길
세 랍비, 곧 샴마이, 힐렐, 예수님의 길은 유사해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지점에서 교차하거나 갈라집니다. 이들의 해석은 각기 다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 차이는 실천적 삶의 기준과 신학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샴마이는 율법 해석에 있어서 경계와 구별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이방인에 대해서는 배척적인 태도를 취했고, 안식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할 규정으로 강조했습니다. 그의 계명 이해는 철저히 ‘행위 중심’이었습니다.
반면, 힐렐은 자비와 융통성을 중심으로 해석했으며, 이방인에 대해 열려 있는 환영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안식일도 인도적인 해석을 따랐으며, 계명 역시 ‘동기 중심’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둘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율법의 완성을 선포하고 인간 내면의 변화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신앙과 회개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안식일을 ‘사람을 위한 날’로 해석했습니다. 그의 계명 이해는 ‘마음과 존재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 랍비의 길은 율법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따라 갈라졌으며, 오늘날 우리 신앙에도 여전히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바리새파의 형성과 힐렐-샴마이의 전통>
1. 바리새파의 역사적 형성
바리새파(פרושים, Perushim)는 마카베오 시대(주전 2세기)에 등장한 유대 종교 운동으로, 제사장 중심의 사두개파에 반대하여 평신도 중심의 경건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구전율법(Torah she-be’al peh, 구전 토라)을 서면 율법과 동등하게 여겼고, 일상 삶 속에서 토라의 적용을 강조했습니다.
2. 힐렐과 샴마이: 바리새 전통의 양대 축
• 힐렐 학파 (Beit Hillel): 율법의 자비로운 해석, 이방인에 대한 포용, 율법보다 인간 생명을 우선하는 유연성을 강조했습니다.
• 샴마이 학파 (Beit Shammai): 율법의 정결과 경계를 강조하며 엄격한 적용을 주장했습니다. 이방인, 죄인, 안식일 규례에 대해 강경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 두 학파는 바리새주의의 중심을 형성하며 후대 랍비 유대교의 기초가 되었고, 복음서 시대에 그 영향력이 뚜렷했습니다.
3. 예수님과 바리새인: 충돌의 핵심 주제들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간의 빈번한 충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규례 논쟁을 넘어서 율법의 본질과 하나님 나라의 비전 자체에 대한 치열한 신학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 율법 해석에 대한 충돌
• 바리새파: 외적 규범과 정결 규례를 통한 거룩함 유지 강조 (예: 손 씻음, 안식일 규정, 십일조, 금식 등)
• 예수님: 율법의 목적은 자비, 정의, 신실함이라고 주장 (마 23:23). 안식일도 “사람을 위한 날”이라고 해석(막 2:27).
2) 정결 규례와 죄인/이방인에 대한 태도
• 바리새인들은 죄인, 세리, 이방인을 회당과 공동체 밖으로 배제.
• 예수님은 오히려 이들을 찾아가고 함께 식사하며, 치유와 회개의 기회를 제공함.
3) 구원과 의로움에 대한 길
• 바리새파: 율법 준수와 조상 전통을 통한 의로움 추구.
• 예수님: 마음의 변화와 하나님의 자비를 통한 구원 강조. 바리새인의 외식(hypocrisy)을 가장 강하게 책망(마 23장).
예수 당시 주요 유대교 종파였던 바리새인들 역시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했지만, 그들의 기대는 예수님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킬 더욱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인물을 꿈꿨습니다.
엄격한 율법 준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토라)과 그들의 전통을 엄격히 고수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때로는 지나치게 율법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이한 해석:
일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에 열려 있었을 지 모르지만, 많은 바리새인들은 특히 그분의 신성 주장과 율법 해석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론 때문에 그분을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의 주장: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과 같은 그분의 행위를 신성모독이며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배척:
결국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배척하고 그분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관여했습니다.
주요 차이점과 유사점
1. 메시아적 개념
핵심적인 차이점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의 차이에 있습니다. 메시아적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영적이고 구속사적인 방식으로 예언을 성취하셨다고 믿는 반면, 바리새인들은 대체로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를 기대했습니다.
2. 율법 준수
두 집단 모두 토라를 소중히 여겼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사랑, 연민, 그리고 영적 변화를 강조하셨습니다.
3. 죄 사함
바리새인들은 죄 사함이 희생 제사와 율법 준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지만,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속죄 희생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4. 예수의 신성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신성 주장을 대체로 거부했지만,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5. 이방인 수용
바리새인들은 주로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반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구원 메시지가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본질적으로 성경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예언과 전통의 성취로 보는 반면, 바리새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해의 차이로 인해 예수의 사역 당시에 그와 바리새인들 사이에는 복잡한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4. 사도 바울의 증언: 바리새인에서 복음의 사도로
(1) 바리새적 열심
• 바울은 자신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빌 3:5), “율법에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언급합니다.
• 그는 가말리엘 학파에서 교육을 받았으며(행 22:3), 스데반 순교 당시 그 현장에 있었고(행 7:58),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며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 추적했습니다(행 9장).
(2) 회심 이후의 신학 변화
• 율법의 의에서 그리스도의 의로 전환(롬 3:21–26).
•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도구이며”,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 선언(롬 10:4).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동시에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롬 5:8; 갈 2:16).
5. 예수 vs 바리새파: 가장 큰 신학적 차이점
예수님과 바리새파는 신학과 실천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 율법 중심성에 있어서 바리새파는 행위의 정확한 실천과 조상 전통의 철저한 유지를 강조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율법의 본래 목적이 자비, 정의, 그리고 진실에 있음을 강조하며, 형식보다 본질을 중시했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크게 다릅니다. 바리새파는 정결한 자들이 도래할 미래의 메시아 왕국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지금-여기 임하는 자비의 통치와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셋째, 자비와 심판의 관계에서 바리새파는 하나님의 공의를 우선시하고 자비를 제한적으로 적용했지만, 예수님은 자비가 공의보다 앞선다고 하시며 죄인 구원에 중심을 두셨습니다.
넷째, 이방인에 대한 태도에서도 바리새파는 경계와 구별을 유지하며 공동체 바깥에 두었지만, 예수님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건의 표현에 있어 바리새파는 외적 규례와 전통의 엄수를 중시한 반면, 예수님은 내면의 변화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경건의 핵심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의 갈등은 단순한 율법 해석의 차이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해석의 충돌이었습니다. 힐렐은 자비를 강조했고 샴마이는 경계를 강조했지만, 예수님은 자비와 진리를 십자가 안에서 하나로 이으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충돌의 극한에 있었던 인물로, 바리새적 열심에서 예수의 자비와 은혜의 복음으로 극적으로 전환한 인물입니다. 이 전환은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구원의 문을 여시는가?
<신약성경과 바리새파>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은 본질적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반대나 오해 수준을 넘어, 타나크(히브리 성경), 토라(율법), 그리고 할라카(율법 실천 체계)에 대한 깊이 있는 신학적 관점과 기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신학적·율법적 이유들입니다:
1. 메시야 기대의 충돌: 다윗적 왕 vs. 고난받는 종
바리새인들은 타나크의 메시야 예언을 주로 정치적 해방자,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왕적 메시아로 이해했습니다 (예: 예레미야 23:5, 이사야 11장).
그러나 예수는 고난받는 종으로 오셨으며 (이사야 53장),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비폭력적·자기희생적 메시야상은 바리새인들의 기대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2. 율법 해석의 차이: 외면적 행위 vs. 내면의 변화
바리새인들은 미쉬나 전통을 기반으로 구전율법(토라 쉐바알 페, תּוֹרָה שֶׁבְּעַל פֶּה)까지 포함해 정결, 안식일, 식사법 등 세세한 규례를 중시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은 사랑, 자비, 정의에 있다고 보며, 외적 행위보다 마음의 동기와 존재의 변화를 강조하셨습니다 (마 23:23, 마 5:21-48).
예수의 가르침은 바리새적 할라카의 권위를 위협하는 새로운 율법 권위 선언으로 보였습니다.
3. 율법의 중심에 대한 신학적 긴장: 자비 vs. 공의
예수님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호세아 6:6 인용, 마 9:13; 12:7)고 하시며 자비가 율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경계 짓기와 규례 엄수가 필수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균형을 깨뜨리는 급진적인 자비 중심 신학으로 보였고, 이는 바리새적 신학체계를 위협했습니다.
4. 성전과 정결법에 대한 도전
예수님은 성전보다 자신의 몸을 참된 성전이라 선언하셨고(요 2:19), 성전 장사꾼을 쫓아내심으로 기존 종교 질서에 도전하셨습니다. 또한 부정한 자들(나병환자, 이방인, 창기 등)과 교제하심으로 정결 규례를 상대화하셨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유지해온 성별과 정결 중심의 율법 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습니다.
5. 율법의 완성자 선언과 권위 충돌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마 5:17)고 하셨지만, 바리새인들 입장에서는 예수의 행동과 가르침은 율법의 폐기 혹은 상대화로 느껴졌습니다.
예수는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고 반복하며 스스로 권위를 가지신 해석자로서 모세보다 큰 권위자로 행동하셨습니다. 이는 바리새적 권위 질서에 심대한 도전이었습니다.
6. 새로운 공동체의 출현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기존 유대 공동체가 아니라, 믿음과 회개로 들어오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공동체는 출신, 정결 상태, 할례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포용적 회복 공동체였습니다 (눅 15장, 마 21:31).
이는 바리새적 엘리트 중심 공동체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충돌했습니다.
<예수님과 힐렐·샴마이의 만남?>
복음서나 랍비 문헌 어디에서도 예수와 힐렐, 혹은 샴마이가 직접 대면했다는 역사적 근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 힐렐은 대략 주후 10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따라서 시간상 직접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 샴마이는 힐렐과 동시대 인물로, 힐렐 사후에도 산헤드린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예수님 생애 중후반부까지 생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에서는 샴마이라는 인물이 직접 등장하지 않으며, 둘 사이의 교류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시간상 힐렐은 예수보다 앞선 세대, 샴마이는 동시대이지만 복음서에 그와의 만남이나 교류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1.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을 가능성을 알아 보겠습니다.
직접 언급은 없지만, 상호 인지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이지만 종종 예루살렘에 올라와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산헤드린의 여러 분파들과 논쟁을 벌이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등). 이는 그가 당시 종교권 내에서 상당히 알려진 인물이었음을 뜻합니다.
샴마이 학파는 특히 엄격한 할라카 해석으로 알려졌고, 예수님의 비판이 자주 겨냥하는 바리새파 내 엄격주의 성향은 샴마이의 전통과 유사합니다.
랍비 문헌이나 탈무드에는 예수님에 대한 직접 언급이 많지는 않지만, 기독교 운동이 유대교 내에서 하나의 갈등 요인이 되었음은 명확하며, 양측이 서로를 의식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2. 힐렐과 샴마이의 가르침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요?
힐렐과 샴마이의 가르침은 주후 200년경 완성된 미쉬나(Mishnah)를 비롯한 랍비 문헌 속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기록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힐렐과 샴마이의 가르침은 단순한 개인의 견해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며 체계적인 전승의 과정을 거쳐 유대교 율법의 중요한 기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전승의 흐름은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1단계: 구전 전승
처음에는 힐렐과 샴마이의 할라카, 즉 율법 해석과 가르침이 제자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당시의 율법 교육은 철저히 암송과 반복을 통한 구전(口傳)이 중심이었고, 힐렐과 샴마이의 권위는 이 구전 전통 속에서 공고해졌습니다.
2단계: 학파 형성
시간이 지나면서 힐렐과 샴마이의 제자들이 각각의 가르침을 계승하면서 ‘베이트 힐렐’과 ‘베이트 샴마이’라는 두 학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학파들은 종종 서로 다른 할라카를 주장하며 토론과 논쟁을 벌였고, 그 과정 속에서 율법의 해석과 실천이 더욱 세분화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3단계: 미쉬나 편집
기원후 약 200년경, 랍비 유다 하나시(Rabbi Yehudah haNasi)가 중심이 되어 미쉬나(Mishnah)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미쉬나는 이전 세대의 랍비들이 전해 온 가르침과 율법 논의를 문서화한 최초의 기록물로, 힐렐과 샴마이는 ‘조상 랍비들’(Zugot, זוגות)로 자주 등장하며 그 영향력을 남깁니다.
4단계: 게마라 해석
이후 수세기에 걸쳐 바벨론과 예루살렘에서 미쉬나에 대한 해설이 발전하며 게마라(Gemara)가 형성됩니다. 이 미쉬나와 게마라의 결합이 곧 우리가 아는 탈무드(Talmud)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힐렐과 샴마이의 가르침은 다시금 해석되고 적용되며 유대 율법 전통 속에 살아 숨쉬는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전승 구조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에도 힐렐과 샴마이의 목소리를 미쉬나와 탈무드 속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록 동기와 목적:
• 율법의 혼란 방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AD 70), 구전 전통이 사라질 위기에서 율법을 보존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 종교 공동체의 재건: 성전 없는 시대에 회당 중심 공동체를 위해 말씀의 해석권을 랍비들에게 집중시켰습니다.
• 로마 압제하 자긍심 회복: 유대인의 정체성과 언약 의식을 지키기 위해, 힐렐과 같은 위대한 랍비들의 말을 신적 권위로 계승하였습니다.
3. 복음서와 랍비 전통의 다른 기록 경로
1. 기록 시점의 차이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은 대략 AD 60년에서 1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한 세대 이내에 문서화된 것입니다. 반면 힐렐과 샴마이의 가르침은 그들이 살았던 1세기보다 훨씬 뒤인 약 AD 200년경 이후에 미쉬나를 통해 문서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 기록 목적의 차이
복음서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따라서 내러티브와 신앙 고백 중심의 문체가 많습니다. 반면, 힐렐과 샴마이의 전승은 유대 율법을 보존하고, 성전이 무너진 이후 유대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3. 중심 인물의 차이
복음서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의 제자들과 초기 교회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반면, 랍비 문헌의 중심은 힐렐과 샴마이를 비롯한 여러 랍비들과 그들이 세운 학파 전통입니다.
4. 문헌의 종류와 구성
예수님의 이야기는 신약성경 안의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서신과 같은 문서들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 문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신학 형성의 기초가 됩니다. 반면, 힐렐과 샴마이의 이야기와 그 가르침은 미쉬나(Mishnah), 토세프타(Tosefta), 탈무드(Talmud) 등에서 전해집니다. 이 문헌들은 유대교의 율법과 해석 전통을 정리한 집대성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일지라도, 각각의 전승 방식과 신학적 배경, 기록 목적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문헌의 내용과 형식은 뚜렷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자비와 율법의 긴장: 세 랍비의 가르침 비교>
율법은 경계이고, 기준이며, 정의를 담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삶에 적용할 때, 자비는 언제나 질문을 던집니다: “이 기준은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짓누르는가?” 샴마이, 힐렐, 예수—세 랍비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
1. 샴마이: 정의는 자비를 제어해야 한다
샴마이의 율법 해석은 정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은 고정된 기준이며, 그 기준을 흐리는 어떤 동정심도 율법을 훼손하는 위험을 동반한다고 보았습니다.
샴마이는 미쉬나에서 반복적으로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죄의 경계에 관하여, 율법은 단호해야 하며, 감정적 연민은 때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샴마이의 자비는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공정한 자비”였습니다.
이는 성전의 정결과 제의적 정결, 이방인과 죄인의 경계, 그리고 산헤드린에서의 판단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2. 힐렐: 자비는 율법을 살리는 숨결이다
힐렐은 자비를 율법의 핵심이자 목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율법은 인간을 얽매기 위한 규범이 아니라, 인간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미쉬나 아보트(Pirkei Avot)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율법으로 인도하라”고 말합니다. 힐렐의 법해석은 율법의 본질을 자비에서 찾았고, 모순 상황에서도 인류애적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겸손한 힐렐”이라는 별명은 그의 자비로운 인격과 학문적 겸허함을 동시에 반영합니다. 그의 자비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 환대하는 데에, 율법을 풀어내는 모든 지점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3. 예수: 자비는 율법의 완성이다
예수님은 자비를 단지 따뜻한 마음이나 윤리적 태도 이상으로 보았습니다.
그에게 자비는 하나님의 성품이며, 율법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호세아 6:6, 마 9:13).
이 말씀은 그가 단순한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구약의 예언자적 전통을 계승하며 율법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간음한 여인의 사건에서, 예수는 율법을 폐하지 않지만 자비로 재해석합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는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면서도,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합니다. (요 8:7,11) 예수님의 자비는 이방인, 병자, 죄인에게까지 확장되며, 이는 힐렐보다도 급진적인 은혜의 확대였습니다.
4. 자비를 향한 세 시선: 샴마이, 힐렐, 예수님의 관점 비교
샴마이는 자비를 경건한 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였으며, 정의(공의)를 자비보다 앞세우는 해석을 따랐습니다. 율법의 정결함과 경계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힐렐은 자비를 보다 인간 중심적이고 포용적으로 이해하였으며,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비와 율법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였고, 유연한 해석으로 많은 이들에게 열린 길을 제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비를 하나님의 본질로 보셨고, 자비야말로 구원의 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의 자비는 죄인, 병자,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었으며, 자비를 통해 율법을 완성하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비가 단지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세 시선의 차이는 자비의 정의, 적용 범위, 그리고 자비와 정의의 긴장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어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힐렐처럼 자비를 강조했지만, 힐렐보다도 더 급진적이었습니다. 그는 자비를 “율법의 요약”으로 보았으며, 자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드러냈습니다.
<세 랍비의 율법 해석 비교: 공의와 자비 사이>
1. 율법 해석의 방향성: 문자 vs 정신, 공의 vs 자비
• 힐렐은 율법의 핵심을 자비와 사랑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인간을 위한 율법의 목적을 강조하며, 관용과 포용을 통해 율법을 해석했다. 힐렐의 황금률은 그 중심을 대변합니다: “네가 미워하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전부요, 나머지는 해석일 뿐이다. 가서 배우라.” (탈무드 바빌로니아, 샤밧 31a)
이는 율법의 정신을 내면화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긍휼을 우선하는 해석이었습니다.
• 샴마이는 힐렐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정밀한 적용과 경건한 규율을 중시했으며, 토라의 권위와 거룩함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어떤 이방인이 율법을 짧게 요약해달라고 요청하자, 샴마이는 그를 쫓아냈습니다(샤밧 31a). 그의 율법 해석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본질을 성취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율법 해석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으로 삼았습니다. 산상수훈(마 5–7장)은 단순한 규범 제시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와 하나님 나라 윤리의 구현을 강조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는 원하지 아니하노라.” (호세아 6:6, 마 9:13 인용)
2. 하나님의 속성 해석: 공의 중심의 율법 vs 자비 중심의 율법
• 샴마이의 전통은 하나님의 공의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규례의 적용은 죄와 부정을 멀리하게 했고, 이는 공동체의 정결성과 신성함을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 힐렐은 자비와 사람 중심의 토라 해석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도구라는 점에서, 힐렐의 해석은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을 드러냈습니다.
• 예수님은 공의와 자비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자비를 통한 공의의 실현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 네 이웃이냐”라는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로 답하며, 율법의 본질은 경계를 넘는 긍휼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문자적 해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성품 자체에 뿌리내린 해석입니다.
3. 율법 해석의 결과: 공동체 형성의 방식
• 힐렐의 방식은 후대 랍비주의 유대교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유대교 전통에서 베이트 힐렐의 온건함은 존중받습니다.
• 샴마이의 해석은 점차 공동체적 실천에서 멀어졌고, 탈무드에서도 그의 판결은 소수의 목소리로 남습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혀 새로운 공동체, 곧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죄인과 의인을 아우르는 자비의 공동체(에클레시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는 율법이 경계를 만들던 시대에서, 자비가 다리를 놓는 시대로의 전환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 랍비의 비전>
율법, 자비, 구원의 지평은 어디로 향하는가
세 랍비—샴마이, 힐렐, 예수—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과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어떻게 임하고, 누구에게 열리는가에 대한 관점은 현저히 달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를 넘어서, 구원과 회복,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1. 샴마이의 하나님 나라: 정결한 자의 공동체
샴마이는 하나님 나라의 경계를 명확히 했습니다.
• 그는 이방인과 죄인을 배제했고, 율법적 정결을 지키는 자들만이 그 나라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 그의 율법 해석은 탈무드에서도 엄격한 선민주의적 시각을 반영하며, “거룩한 공동체”라는 틀 속에서만 구원을 이야기했습니다.
• 샴마이에게 하나님 나라는 정결과 순종의 열매, 즉 ‘선민의 철저한 구분’ 위에 서 있는 폐쇄적 나라였습니다.
2. 힐렐의 하나님 나라: 환대와 교육의 나라
힐렐은 하나님 나라를 보다 넓은 차원으로 보았습니다.
• 그는 이방인에게도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며, 하나님 나라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힐렐의 가르침은, 그 나라가 사랑과 교육을 통해 확장된다는 믿음을 반영합니다.
• 그는 선민 의식을 고수하면서도, 자비로운 교화와 포용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공동체의 삶 속에 실현되는 가치’로 제시했습니다.
3.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모든 이에게 열린 회개의 나라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열리는 구원의 세계였습니다.
• 예수님은 병자, 이방인, 세리, 창기 등 당대 사회의 ‘경계 밖’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눅 17:21)는 말씀처럼, 그분의 나라는 ‘현재 속에 임한 은혜의 통치’였습니다.
•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제의적 정결보다 마음의 정결, 율법적 규정보다 자비와 회개의 실천으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세 랍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 비교>
샴마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정결한 유대인”으로 한정지었습니다. 율법에 철저히 순종하고 이방인과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이 나라의 문을 통과하는 기준이었으며, 이러한 태도는 폐쇄적인 선민 사상에 기반해 있었습니다.
힐렐은 회개한 이방인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고 보았고, 율법 교육과 자비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산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나라는 포용적이며, 교육과 인격 수양을 중심으로 구성된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서, 회개와 은혜를 수용하는 자에게 열린 급진적 구원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폐쇄성이나 점진적 교육보다 즉각적인 회심과 하나님의 은총을 중심으로 확장됩니다.
이 세 랍비의 나라관은 단순한 해석 차이를 넘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신학적 비전을 드러내는 핵심 주제입니다.
세 랍비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샴마이는 율법의 장벽을, 힐렐은 자비의 문을, 예수는 십자가를 통해 그 나라를 향했습니다. 결국 예수는 ‘율법과 선민’이라는 담을 넘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세 랍비의 시선>
― 힐렐, 샴마이, 예수님이 설파한 공동체
1. “나라”에 대한 유대적 개념: 정치인가, 영성인가?
1세기 유대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מַלְכוּת שָׁמַיִם, מַלְכוּת אֱלֹהִים)는 단지 종말론적 개념이나 천상의 이상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의 압제하에 있는 현실에서 현세 정치와 신적 권위가 만나는 절박한 주제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랍비들은 메시아를 통한 정치적 해방을 꿈꿨고, ‘나라’란 곧 율법이 통치하는 질서를 의미했습니다.
2. 힐렐: 조용한 변혁, 토라의 확장을 통한 하나님 나라
힐렐에게 하나님 나라는 즉각적 혁명이나 정치적 반란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율법을 따르고 자비를 실천하는 삶 안에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원한 것이다.” (미쉬나 아보트)
그의 하나님 나라는 관용과 인내, 끊임없는 학문과 전승 속에 심겨지는 지혜의 공동체였습니다. 힐렐의 비전은 ‘유대 율법 중심 질서’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교육적 재건에 있었습니다.
3. 샴마이: 거룩한 질서로 수립되는 나라
샴마이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의 철저한 준수와 경건한 규율을 통해 도래하는 거룩한 질서였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자격이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암묵적 논리가 그의 가르침에 배어 있습니다. 샴마이의 나라 비전은 거룩함을 통해 도래하는 나라, 즉 율법과 경계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유지되는 성스러운 공동체였습니다.
4. 예수님: 지금 여기, 경계를 무너뜨리는 나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미래적 이상향이 아닌, “지금 여기” 임하는 현실적이고 선포된 질서로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그에게 하나님 나라는 사회적·종교적 경계를 넘어, 여인, 세리, 이방인, 병든 자에게까지 열려 있는 자비의 질서였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 율법의 목적을 성취한 자비의 공동체
• 죄인을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구원의 질서
• 예배와 정의가 함께하는 생명의 질서였다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린 자가 복되다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이 약한 자들 안에 임할 수 있다는 급진적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5. 세 랍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학적 비교
힐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자비와 토라 교육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산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관용과 인내를 중심 가치로 삼았으며, 전승을 통한 율법 교육이 나라의 핵심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그의 하나님 나라는 율법을 배우는 자들에게 열려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메시아는 조용히 회복을 가르치는 교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샴마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율법의 철저한 준수를 통해 질서를 구축함으로써 도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거룩함과 규율, 경계를 중시했으며, 정결한 자와 경건한 자만이 그 나라에 합당하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메시아 이해는 강력한 질서 회복의 왕으로, 정치적이고 권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여기” 임하는 자비의 통치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회개하고 믿는 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죄인과 이방인, 병자까지도 포함됩니다. 예수의 중심 가치는 자비, 회복, 그리고 율법과 전통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의 급진성이었습니다. 그가 선포한 메시아는 고난받는 종이자 십자가를 지는 왕으로, 세상의 질서를 뒤흔드는 구속적 통치자였습니다.
이와같이 세 랍비의 하나님 나라 개념이 단지 해석 차이를 넘어서, 각자의 신학적 중심축과 공동체 이해,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통합적으로 보여줍니다.
<세 랍비의 제자도>
― 베이트 힐렐, 베이트 샴마이, 그리고 예수의 제자 공동체
라반(רַבָּן), 라비(רַבִּי), 라보니(רַבּוּנִי): 스승을 부르는 이름
고대 유대 사회에서 ‘스승’(רב, Rav)을 지칭하는 라브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삶의 길을 인도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자, 그리고 율법의 체현자로 여겨졌습니다. 라브는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할라카(Halakhah, 길) 위를 먼저 걷는 자였고, 제자는 그 라브의 ‘뒤를 따르며 먼지로 덮이는 자’였습니다.
1. 라반 (רַבָּן)
‘라반’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인정을 받은 가장 고위의 랍비들에게만 붙는 호칭으로, 힐렐과 가말리엘처럼 존경받는 인물에게 부여되었습니다. 미쉬나(Mishnah)와 탈무드에서는 라반 가말리엘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그의 판결과 해석이 바리새 전통의 권위를 대표하는 사례로 제시됩니다.
예:
“라브(בן) 가말리엘은 회당에 늦게 들어온 자에게도 하나님께 기도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였으니, 이는 긍휼이 율법의 의무보다 앞섬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 Berakhot 27b
2. 랍비 (רַבִּי)
‘랍비’는 “나의 스승” 혹은 “내 선생”이라는 의미로, 보다 개인적이고 존경어적인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율법학자나 스승을 향한 존칭으로 사용되며, 예수님의 시대에 가장 흔하게 사용된 명칭입니다. 요한복음 1장 38절에서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며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묻는 장면은, 예수를 율법적 스승이자 해석자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명칭은 단순한 예우가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생을 걸겠다는 결단을 담고 있었습니다.
3. 라보니 (רַבּוּנִי)
‘라보니’는 ‘랍비’보다 더 강한 개인적 친밀성과 존경의 표현으로, “나의 참된 주 스승” 또는 “나의 주님이신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부른 호칭이 바로 이것입니다(요 20:16). 이 호칭은 단순한 교사 그 이상으로, 삶 전체를 맡기고 따르는 ‘구속자’로서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니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라보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 요한복음 20:16
랍비 문헌에 비춰 본 세 호칭의 차이
미쉬나와 탈무드에는 이러한 명칭들이 법적 권위, 제자 공동체, 그리고 인격적 관계의 차원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예컨대, 미쉬나 아봇 1:6은 “라브(רַב)를 만들고, 친구(חָבֵר)를 얻고,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라”고 가르칩니다. 이때 “라브”는 단순히 지식이 많은 자가 아니라, 도덕적 권위와 공동체적 지도력을 갖춘 자로 이해됩니다.
4. 라브 먼지를 뒤집어쓴 제자
미쉬나 아봇 1:4는 이렇게 말합니다:
“라비 요세 벤 요에제르는 말하였다. ‘라브의 먼지를 뒤집어쓰며 그 발 아래 앉아라. 그리고 그의 말을 갈망하듯 마셔라.’”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유대인 제자들은 실제로 랍비의 뒤를 따라가며, 그가 걷는 곳의 먼지조차 기꺼이 뒤집어쓰려는 삶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스승의 말과 행위, 식사 습관, 기도, 토라 해석 방식까지 모방하고 흡수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힐렐이나 샴마이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는 단지 랍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완성자, 하늘 아버지의 뜻을 몸소 보여주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세 랍비를 통해 구현된 탈미딤과 공동체>
힐렐과 샴마이는 탁월한 스승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지혜로운 해석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위대한 ‘랍비’였어도, 구원은 ‘라보니’로 고백된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도는 단지 가르침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랍비’로 부르고 있는가?
지식의 스승인가, 생명의 구원자인가?
유대 사회에서 스승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삶을 함께하는 모범이자 해석자였습니다. 힐렐과 샴마이, 예수는 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만 모두 탈미딤(Talmidim, 제자들)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 공동체의 성격은 매우 달랐습니다.
1. 랍비 힐렐: 관용의 길을 따르는 해석 공동체
힐렐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율법의 적용에 자비와 유연함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후에 베이트 힐렐(Bet Hillel)이라는 학파를 형성했고, 미쉬나와 탈무드의 온건한 해석을 이끌었습니다.
• 주요 제자: 요하난 벤 자카이, 가말리엘 1세 등
• 특징: 열린 토론, 해석의 다양성 수용
• 유산: 현대 랍비 유대교의 뼈대 형성
2. 랍비 샴마이: 경건과 경계를 중시한 엘리트 공동체
샴마이의 제자들은 율법의 엄격한 적용과 정결 규범을 강조하는 베이트 샴마이(Bet Shammai) 학파를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대 위기 속에서 유대 정체성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습니다.
• 특징: 경계 강화, 이방인 배척 경향
• 영향: 일부 격렬한 할라카적 분파 형성
• 한계: 과도한 엄격주의로 인해 주류에서 점차 밀림
3. 랍비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공동체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는 명령과 함께 삶 전체를 드리는 제자도를 요청하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의 삶과 죽음을 따르는 공동체, 곧 에클레시아(Ekklesia, 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 제자도 핵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 공동체 특성: 사랑, 회복, 용서, 공동체 중심
• 유산: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는 보편적 구원의 공동체
4. 세 제자 공동체의 결정적 차이
힐렐의 제자 공동체는 토라의 연구와 전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율법을 관용적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적용하는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이후 랍비 유대교의 주류를 형성하였고, 탈무드의 중심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샴마이의 제자 공동체는 율법의 정결 규범과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엘리트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며, 율법의 정결과 경계에 대한 철저한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샴마이 학파의 전통은 탈무드 내에서 일부 극단적인 해석과 규정에 영향을 끼쳤으나, 주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예수의 제자 공동체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따르는 것을 제자도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 공동체는 죄인, 병자, 이방인을 환대하며, 회복과 용서의 길을 열어주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이후 세계 교회 공동체의 기초가 되었으며, 복음서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지 율법 해석의 방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 공동체의 정체성과 사명, 그리고 역사적 유산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5. 오늘의 제자도에 주는 통찰
• 힐렐은 배움과 자비의 길을,
• 샴마이는 경건과 경계의 길을,
• 예수는 자기 포기와 사랑의 길을 제시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제자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이 세 랍비의 가르침 속에서, 율법과 자비, 공의와 구원의 균형을 다시금 고민하게 됩니다.
<율법 즉 할라카에서 은혜로의 도정>
1세기 유대 땅에는 세 명의 랍비가 있었습니다. 힐렐은 자비의 학문으로, 샴마이는 율법의 경계로, 예수는 은혜의 혁명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토라를 사랑했고, 제자들을 두었고, 하나님 나라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를 보는 눈과, 그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전혀 달랐습니다.
샴마이는 정결의 칼날로 그 문을 좁혔습니다. 힐렐은 자비의 손길로 경계를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로 그 담을 무너뜨리고, 죄인과 병자와 이방인, 여인과 아이들까지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습니다.
샴마이의 율법은 사람을 가르고, 힐렐의 율법은 사람을 가르치며, 예수의 율법은 사람을 구원합니다. 예수는 힐렐과 샴마이를 넘어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셨습니다(마 5:17). 그 완성은 글자의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호 6:6; 마 9:13)는 말씀의 실현입니다.
1. 율법을 넘어서, 은혜로—랍비 유대교의 한계를 넘은 복음의 길
바울의 회심은 단지 개인의 감정적 변모나 인생의 방향 전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1세기 유대교의 심장부인 할라카(הֲלָכָה)와의 근본적 결별이자, 그 완성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신학적 혁명이었습니다.
랍비 유대교에서 할라카는 단지 법적 규정이 아니라, ‘걸어가야 할 길’이며(어근 halakh, ‘걷다’에서 유래),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삶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실천 체계입니다. 미쉬나(Mishnah), 토세프타(Tosefta), 탈무드(Talmud), 미드라쉬(Midrash) 등 수백 년에 걸쳐 정리된 이 법적-주석적 전통은 삶의 모든 영역—식사, 안식일, 정결, 재판, 기도, 제사 등—을 율법에 기반하여 구성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딪힌 메시아 예수의 현현은, 이 모든 율법의 도정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던 목적지(τέλος, telos)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롬 10:4). 바울에게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메시아 안에서 그 본래의 목적에 도달함으로써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랍비 문헌 속에서도 율법의 완성을 향한 갈망은 암시되어 있습니다. 탈무드 바블리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큰 것은 토라가 아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자다.”
— 바빌로니안 탈무드, 아보다 자라 17b
또한 미드라쉬 라바(창세기 라바 1:4)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토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토라를 지키지 못했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셨다.”
바울은 이 ‘말씀’(דָּבָר, logos)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요 1:14; 고후 3:6). 이는 단지 율법의 문자적 해석을 넘어, 율법의 영적 본질과 하나님 마음의 중심, 즉 자비와 은혜를 구현하신 분으로서 예수를 이해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자신이 철저히 율법에 정통했던 과거를 회고하면서도, 그것이 생명을 주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롬 7:10). 그에게 율법은 선하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 ‘정죄의 직분’이 되었다고 해석합니다(고후 3:7–9). 반면, 그리스도는 ‘영의 직분’을 가져오셨고, 이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납니다.
2. 복음은 새로운 할라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할라카, 즉 하나님의 나라로 걸어가는 새로운 길이 되셨습니다. 그 길은 율법의 규범을 넘어, 자비(חֶסֶד, chesed)와 진리(אֱמֶת, emet), 회개(תְּשׁוּבָה, teshuvah)와 믿음(אֱמוּנָה, emunah)로 인도합니다.
바울은 유대 랍비였지만, 이제는 ‘메시아의 종’(δοῦλος Χριστοῦ)으로서 은혜 안에 거하는 삶, 곧 halakha behesed—자비 가운데 걷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규범의 준수가 아니라, 은혜로 시작되고 은혜로 완성되는 삶입니다(엡 2:8–10).
3. 가말리엘과 초기 바리새인의 지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중에서도 예수 운동을 단호히 반대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4–39절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가말리엘(גַּמְלִיאֵל)은 공회 앞에서 다음과 같은 신중한 조언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을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가말리엘은 힐렐의 손자이며, 사도 바울의 율법 스승이었습니다(행 22:3). 이 말은 바리새인들 중에도 열린 태도로 예수 운동을 바라본 이들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바리새파 전체를 ‘위선자’로 일반화하는 것은 지나치며, 그 안에는 회개의 가능성과 복음을 향한 진지한 모색이 있었습니다.
4. 바울의 회심과 율법 이해의 전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5–9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이 구절은 바울이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체험하고, 구원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입니다. 율법은 목적지가 아니라 메시아로 인도하는 길(paidagogos, 갈 3:24)로 이해됩니다.
5. 은혜로의 여정: 바리새적 열심에서 복음의 자유로
바울의 전환은 단순한 사상적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 중심의 열심에서 은혜 중심의 자유로의 ‘존재의 변화’였습니다. 그 변화는 ‘종교’에서 ‘복음’으로, ‘율법 아래 있음’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9–21절에서 극적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진술은 단순한 신학이 아니라, 바리새적 정체성을 벗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한 인간의 영적 고백입니다.
율법의 조항을 하나하나 완벽하게 지켜야만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그러나 다메섹에서 그를 쓰러뜨린 빛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외웠던 조문이 아니라, 만난 주님을 전했습니다. 칼을 들고 박해하던 바리새인이, 눈물을 흘리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6. 우리 모두에게 주는 질문
오늘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 우리는 어떤 할라카 위에 서 있는가?
• 글자에 충실한 경건인가, 은혜로 자유케 된 복음의 길인가?
• 전통을 지키는 것에만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전통을 넘어 진리의 실현에 나아갈 것인가?
랍비 힐렐과 샴마이, 그리고 바울은 모두 토라에 헌신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성취자요, 은혜의 완성자이십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해야 할 규정’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것에 참여하는 자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율법에서 은혜로—그 길은 낡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완성하신 예수의 십자가로부터 시작됩니다.
세 랍비의 길은 역사가 되었고, 그들의 발자취는 지금도 우리 신앙의 물음이 됩니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자문하게 됩니다:
진정한 토라의 완성은 어디에 있으며, 자비의 본질은 누구를 통해 드러났는가?
예수의 길은 오늘도 제자들을 부릅니다. 율법 너머 자비로, 제의 너머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 율법에서 은혜로>
“나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립보서 3:5–6)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과거를 회상하며 기록한 간증입니다. 바리새파의 종교적 엄격성과 정통성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는, 그 누구보다도 율법에 정통하고, 철저하게 실천하며, 그것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빌 3:8).
1.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충돌: 율법의 해석인가 본질의 회복인가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일관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외식(ὑπόκρισις, 위선)과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는 종교적 가식(마 23장)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7). 예수님이 비판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외형만 강조하며 사람을 정죄하는 잘못된 종교 시스템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근본 이유는 그분의 메시아성보다는, 자신들이 구축한 종교적 권위와 시스템이 예수님에 의해 해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Teshuvah, תְּשׁוּבָה)와 자비(Chesed, חֶסֶד)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그들은 정결법과 금식 규율, 안식일 규례의 정통성에 더욱 집착했습니다.
2. 사도 바울의 회심: 다메섹 도상에서의 전환
바울(히브리 이름: 사울)은 바리새인 중에서도 가장 열심 있는 자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 있었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도 예수를 믿는 자들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행 9장). 이 만남은 단순한 ‘종교 개종’이 아니라, 율법 중심의 신학에서 은혜 중심의 복음으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바울은 ‘율법 수호’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박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회심은 바울의 신학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율법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구원을 보았습니다(갈 2:16).
3. 율법과 은혜의 경계 위에 선 사도 바울의 복음
바울의 신학은 율법과 은혜, 유대인과 이방인, 바리새주의와 복음 사이의 경계에서 고뇌하며 형성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등을 통해 인간이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일관되게 설파했습니다.
“율법으로는 내가 죽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19–20)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τελος)이라고 표현하며(롬 10:4), 율법이 지향해왔던 모든 예언과 계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밝힙니다. 바울은 율법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이 구원의 길이 될 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전파했습니다.
4. 예수님의 포세크(Posek)로서의 권위
바리새인들은 할라카(Halakhah)의 해석자, 즉 포세크(Posek)로서의 권위를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주인’으로서 단지 해석자 이상의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너희는 이렇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며(마 5장), 모세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힐렐과 샴마이, 가말리엘 같은 랍비들이 아무리 위대한 해석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거절한다면 구원의 문은 그들에게도 열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5. 율법의 영광을 넘어 은혜의 빛으로
예수님은 율법을 무효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형식이 본질을 가릴 때, 그 본질을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비판은 사랑 없는 종교, 생명 없는 의식, 자비 없는 판단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였습니다. 그 속에서 바울은 회심했고, 은혜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을 무조건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었던 진지한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율법에 대한 경외심을 이해해야 합니다. 동시에, 율법주의가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진리를 더욱 선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율법의 완성이자 은혜의 주이신 메시아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깨달은 바리새인 바울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구원을 누려야 합니다.
<글을 맺으며>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마태복음 5:17). 이는 단지 율법의 조항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깊은 의도와 하나님의 뜻—곧 긍휼(라함임, רַחֲמִים)과 자비(חֶסֶד, chesed)와 돌이킴, 회개(תְּשׁוּבָה, teshuvah)—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적 실행에 열심을 냈지만, 하나님의 극률과 관계 중심의 언약적 신실함이라는 율법의 핵심 정신을 종종 간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바리새적 전통 안에서 철저히 훈련 받았지만(빌립보서 3:5-6),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율법의 참된 완성과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롬 10:4)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율법의 완성(갈 5:14; 롬 8:4)을 선포하며, 율법의 그림자가 실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되었음을 증언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와 유사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열심이나 종교적 형식성으로 측정될 수 없으며, 타인에 대한 심판적 태도는 복음의 자비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예정론에만 기반하여 타인의 구원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태도는 은혜의 보편성과 복음의 능력을 왜곡할 수 있으며, 반대로 자유의지에 대한 과신 또한 인간 중심의 구원론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대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되, 회당에서 가르치고, 그들과 식사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자비로운 메시야로 다가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무효화하거나 단순히 윤리적 가르침으로 환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의 본래 목적과 하나님 나라의 뜻을 드러내며, 그 율법 자체를 자신의 몸과 사역 안에서 성취하신 분이셨습니다.
힐렐도, 샴마이도, 가말리엘도—그 누구든지—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면 율법으로도, 전통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율법과 전통은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예비 길(propaideia, 준비 교육)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구원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종말(τέλος νόμου, 롬 10:4)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구속의 주이십니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되고, 전통은 복음을 향해 이끌려야 하며, 십자가에서 이루신 은혜의 복음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 길입니다.
2025년 6월 26일 이른 새벽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