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 <글을 시작하면서: 파욧을 통해 여는 문>
- <창조의 넷째 날: 신학적 의도와 과학적 긴장 관계>
- <과학, 천체 발견, 그리고 창조 넷째 날에 대한 신학적 성찰>
- <넷째 날과 창조의 틀>
- <욥기에서 나타난 천체와 태양계의 창조에 대하여>
- <욥기가 다루는 천체>
- <하늘의 징조(Sign)의 의미: 창세기 1장 14절과 넷째 날의 신학적 함의>
- <계절, 기후, 그리고 창조 속 하나님의 질서>
- <시간의 정확성: 달력의 역사와 과학적 발전>
- <천체 관측이 주는 인류 문명사의 의미>
- 지구촌 고대 문명에서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하늘의 별들의 움직임과 별자리가 땅의 인류의 운명을 가늠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그 결과로 천문학의 발달과 과학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각 고대 문명이 지리상의 이유로 소통하지 않았음에도 천체 관측에 관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별 자리의 운행, 개기일식과 개기 월식 등은 태양계의 각 행성과 위성의 위치에 따른 변화를 탐구하게 했습니다. 달과 지구와의 관계는 바벨론 달력, 음력의 발전으로 연결됩니다. 달력의 진화: 음력에서 태양계로
- 달(Month)의 이름의 변화 로마의 영향 반영
- 그레고리력의 달 이름은 로마의 전통을 반영하며 중요한 인물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일곱 가지 주요 절기와 넷째 날의 표징>
- <글을 맺으며:>
창조의 넷째 날은 단순한 연대기적 표시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경첩과 같습니다. 하늘의 빛들을 창조하여 징조와 계절을 다스리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역사와 거룩함을 모두 지배하는 신성한 리듬을 우주에 새겨 넣으셨습니다. 이 천체들은 자연의 달력 뿐만 아니라 구원의 달력 역할도 합니다… <맺음 말에서 >
[영성계발] 창조의 네 번째 날: 우주의 질서, 신성한 시간, 그리고 신성한 지혜 » The Fourth Day of Creation: Cosmic Order, Sacred Time, and Divine Wisdom » 김종필 선교사 »
<글을 시작하면서: 파욧을 통해 여는 문>
욥기 38장 3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태양계와 그 행성들의 궤도를 알기도 전인 고대에, 하늘의 궤도를 알고 우주 전체의 운행의 법칙을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 번의 40일 금식 중에 욥기서를 묵상하다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달의 중력과 인력에 의한 조수간만, 침식(erosion) 방지를 위한 땅과 바다의 경계를 정하심과 천체의 운행 법칙 및 리워야단을 비롯한 자연계와 동물계의 창조와 힘의 원리를 말씀하는 부분에서, 부분을 통해 전체를 깨닫는 큰 우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두고 종종 “파욧(Payot, פְּיוֹת)이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파욧을 통해 광활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로 가는 여정을 열고자 합니다. 이는 고립된 창조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펼쳐지는 우주적 전례의 걸작으로서의 넷째 날을 탐구합니다. 창세기의 지혜, 욥기의 시적 위엄, 유대 전례의 리듬, 그리고 천문학의 계시를 바탕으로, 우리는 창조주께서 어떻게 시간과 공간의 구조 속에 징조, 계절, 날, 해를 새겨 넣으셨는지 이해하고자 합니다. 경이로움을 느끼며 우리는 별들을 따라갑니다. 단순히 하늘의 빛으로서가 아니라, 신성한 질서와 성스러운 언약의 증인으로서 말입니다.
<창조의 넷째 날: 신학적 의도와 과학적 긴장 관계>
네째 날 창조에 관하여 우리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왜 첫째 날 빛을 창조하고, 네째 날이 되어서야 천체들을 창조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입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 전체에서 단서가 될만한 내용이나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유대 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보고 있고, 천문학이 발달된 이후에 이에 대한 신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날 빛이 있으라는 부분에서는 Bing Bang과 관련된 많은 과학적 연구가 있었기에 비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네째 날의 창조는 과학으로 보면 빅뱅과 깊은 연관이 있을 정도로 바로 이어지는 어떤 단서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우주에 있는 광대한 그물망, 그리고 필라멘트, 초은하단, 은하단, 그리고 은하와 그 은하 속에 존재하는 모든 천체들이 빅뱅 이후 시간의 단절 없이 만들어졌다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빅뱅 이후 연속된 모든 우주의 역사 속에 특별히 천체와 태양계 만을 따로 애기할 만한 시간의 불연속성을 지적하는 천체물리학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천체 물리학에서는 첫째날의 빛과 하늘들의 창조와 네째 날의 별들과 태양계의 창조와는 어떤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빅뱅이 있은 후 한참 지난 지금, 지금으로부터 45억년 전 태양계가 만들어졌지만, 사실은 우주에는 태양계보다 훨씬 오래 된 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관측으로 130억년 된 별을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38억년 전과 45억 년 전의 괴리에 대한신학적, 과학적 견해를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넷째 날에 천체를 창조하셨을까요?
창세기 1장은 의도적인 문학적, 신학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1~3일은 환경을 형성하고, 4~6일은 그 환경을 채웁니다. 빛(1일)은 해, 달, 별(4일)보다 앞서 존재하며, 이는 천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빛과 생명의 근원임을 보여줍니다. 과학적 연대기로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최초의 빛이 시작된 빅뱅은 138억 년 전이며 태양계는 45억 년 전에 출현했다고 말합니다. 현대 우주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다시 말하면, 빅뱅은 138억 년 전에 일어났고 최초의 별(종족 III)은 약 2억~4억 년 후에 형성되었고, 태양계는 약 45억 6천만 년 전에 분자 구름으로부터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빅뱅과 태양계 형성 사이에 90억 년 이상의 엄청난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HD 140283(“므두셀라 별”)과 같이 130억 년보다 오래된 별들이 관측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천체물리학계의 관측에 대하여 창조론자들의 이 간격을 메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a. 젊은 지구 창조론 (YEC)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6,000~10,000년이라고 주장합니다. 빛이 지구로 오는 도중에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별빛은 이미 지구로 오는 도중에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앞선 글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다른 이들은 중력 시간 지연(gravitational time dilation)이나 가변 광속(VSL, variable speed of light)을 제안하는데, 특히 배리 세터필드(Barry Setterfield)와 러셀 험프리스(Russell Humphreys, 화이트홀 우주론White Hole Cosmology)가 그 예입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신학적 견해는 아담이 성인으로 창조된 것처럼, 별들도 이미 빛이 도착하는 성숙된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는 사실입니다.
b. 오랜 지구 창조론(OEC)
표준적인 우주론적 연대표를 수용합니다.창세기는 연대순이지만, 엄격하게 문자 그대로의 24시간 하루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두꺼운 수증기층 이론(thick vapor canopy theory)을 내세우는데 태양, 달, 별은 이미 존재했지만, 대기가 맑아지면서 4일째에 지구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c. 유신론적 진화론/진화적 창조론
창세기 1장을 과학적이 아닌 신학적 또는 시적 텍스트로 해석합니다. 1일째의 “빛”은 신적 질서를 상징하고, 4일째의 천체들은 통치를 상징합니다. 물질적 순서보다 기능적 창조를 강조합니다(John Walton, 존 월튼의 관점).
천체물리학이 말하는 우주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필라멘트와 공극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그물 (Cosmic web of filaments and voids)
초은하단과 은하단 (Superclusters and clusters of galaxies)
우리 은하수와 같은 은하들 (Galaxies such as the Milky Way)
별과 행성계 (Stars and planetary systems)
이러한 구조는 천체물리학에서 잘 확립되어 있으며 태양계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은하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신학적으로 “별들도 만드셨다”(창세기 1:16)라는 구절은 광활한 우주가 나중에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신적 위대함을 드러낸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시편 19:1 참조). 태양 이전의 빛은 하나님이 자연에 의존하지 않으심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넷째 날은 창세기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풍부하고 과학적으로 복잡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창세기와 천문학 사이의 긴장은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해석 모델을 제시합니다. YEC, OEC, 지적 설계, 또는 유신론적 진화론 중 어떤 것을 채택하든, 핵심은 창세기가 우연이나 필연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지배되는, 목적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의미 있는 우주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태양계를 포함한 우주를 인식하고 관찰하면서 인류가 새롭게 과학적 인식체계와 가치 변화는 너무나 크고 광대합니다. 우리가 육안으로만 관찰하던 천체를 보고도 얼마나 많은 철학과 과학과 천문학과 점성술이 생겨나고 또 첨가되었는지 모릅니다. 근대 과학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 전환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서구권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의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며, 태양과 별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과학, 그 중에서도 물리학과 천체 물리학, 천문학이 주는 영감과 새롭게 재해석해야 할 창조론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의 틀 이론과 네째 날의 천체 및 지구와 태양계 창조와 관련하여, 기독교인들이 갖추어야 할 과학을 보는 자세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로 이해하는 천체 발달의 역사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과학, 천체 발견, 그리고 창조 넷째 날에 대한 신학적 성찰>
특히 천문학, 물리학, 우주론 분야에서 과학적 사고의 발전은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맨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영적인 존재나 신으로 상상했던 시대부터, 우리의 우주관은 관찰, 측정, 그리고 이성을 통해 혁명을 거듭해 왔습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단순한 과학적 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전과 교회의 권위에 뿌리를 둔 수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지구 중심적 사고를 뒤흔든 신학적, 철학적 지진이었습니다.
뉴턴 역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허블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통해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엄청난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우주론이나 근대 이전의 우주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문화적 서사와 종교적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과학이 창조의 장엄함에 대해 제공하는 심오한 통찰력에 대한 노출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고대 우주론적 관점과 현대 과학적 이해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는 심각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특히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 모델과 같은 성경의 전통적인 해석에 도전하는 과학과 진화하는 우주관에 대해 기독교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넷째 날과 창조의 틀>
창세기 1장 14-19절은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언뜻 보기에 별과 은하가 지구보다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현대 과학의 연대기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빅뱅은 약 138억 년 전으로, 은하수는 132억 년 전으로 추정되지만, 지구와 태양을 포함한 태양계는 약 45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창조론적 해석은 이러한 명백한 모순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앞서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젊은 지구 창조론자(YEC)는 문자 그대로 6일의 기간 틀을 주장하며, 하나님이 첫째 날에 빛을, 그리고 넷째 날에 천체들을 성숙한 형태로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그 빛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지구에 즉시 나타났더라도 말입니다. 옛 지구 창조론자(OEC)와 기본 틀 가설 지지자들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창조의 날들을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틀 가설에서 창조 이야기는 시적이고 문학적인 구조로 이해됩니다. 1~3일은 공간(빛과 어둠, 하늘과 바다, 땅과 식물)을 준비하고, 4~6일은 그 공간(빛, 물고기와 새, 동물과 인간)을 채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넷째 날은 반드시 해와 별의 첫 번째 창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통치자이자 시간 측정자로 임명된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현대 우주론 사이의 긴장은 모순이 아니라 목적과 메커니즘의 대립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창조론은 신학은 과학을 거부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충실한 통합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늘의 창조는 빛의 속도나 별까지의 거리를 안다고 해서 경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공”이 셀 수 없이 많은 은하와 영광의 무게 아래 휘어지는 공간을 포함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사역의 위엄이 더욱 커집니다. 따라서 창조의 넷째 날은 단순히 천상의 발명의 순간이 아닌 것으로 보는 창조론의 견해도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 공간, 그리고 현실의 구조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에 종속되어 있다는 신학적 확언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대 우주론의 발견을 성찰할 때, 그들은 두려움이나 혼란이 아닌 경외심으로 초대받습니다.
<욥기에서 나타난 천체와 태양계의 창조에 대하여>
네째 날 창조에 관하여 가장 깊게 다루고 있는 성경은 욥기입니다. 달의 인력에 의한 조수 간만, 묘성과 각 별들에 대한 천체 운행, 별을 공중에 매달았다는 표현 등은 별들이 공처럼 둥근 것과 우주가 질서 있게 운행되고 있으며, 심지어 태양계에서 태양과 기타 행성 및 은하의 별들 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욥기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흥미롭고 신학적으로 풍부한 천체 현상 묘사를 담고 있습니다. 욥기는 우주에 대한 시적인 통찰을 제공하는데, 그중 일부는 놀랍게도 후대의 천문학적 발견과 일치합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주요 천체 관련 내용과 그에 대한 신학적, 과학적 해석, 그리고 역사적 설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욥기에 등장하는 과학적 천체와 현상
1. 허공에 매다시며: 지구의 공간 속 부유 (Suspension of Earth in Space, 욥기 26:7)
“그는 북녘 땅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허공에 매다시니.”
“He stretches out the north over the void and hangs the earth on nothing.”
많은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지구를 하늘 허공에 메달아 달았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현대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태양계의 위치가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에서도 비교적 변두리에 해당합니다. 북녘 하늘에 매달았다는 표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우주의 구조에 대한 고대 문헌에서 가장 놀라운 진술 중 하나입니다. 3천 년 이상 전, 즉 현대 천문학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쓰인 이 구절은 지구가 어떤 물리적 구조물에 의해 지지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떠 있다는 것을 시적이고 심오하게 확언합니다. “땅을 허공에 매다시며”라는 구절은 지구는 진공 상태의 우주에 매달려 있으며, 보이지 않는 중력에 의해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어떤 물리적 기반 위에도 놓여 있지 않음을 밝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우주론에서는 지구가 기둥, 거대한 거북이, 또는 우주의 물 위에 떠 있다고 상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욥기는 현저하게 다르고 놀라울 정도로 진보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어 학자들은 히브리어 “bĕlîmā(בְּלִימָה, 무(無) 위에 또는 무로부터)”가 문자적으로 “아무것도 없이”를 의미하며, 완전한 정지 상태를 의미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는 모호한 시적 이미지가 아니라, 물리적 지지에 대한 구체적인 부정이며, 이러한 점에서 욥기 26장 7절은 고대 문헌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선견지명을 지닌 구절입니다.
2. “북쪽을 허공 위에 펼치시며”: 천문학적 해석
이 구절의 앞부분인 “그가 북쪽을 허공 위에 펼치시며”는 모호하며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 유대교 및 기독교 학자들은 이 구절을 미지의 세계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묘사하는 시적 이미지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일부 현대 해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천문학적 상관관계를 고려해 왔습니다. 우주적 방위로서의 북쪽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서 히브리어에서 “북쪽”(צָפוֹן, tsaphon)은 종종 나침반의 방향 뿐만 아니라 신비, 은밀함, 그리고 하나님의 현존의 영역을 가리킵니다(예: 이사야 14:13). 그러나 우주론에서 “북쪽”은 우주의 방위 또는 공간적 위치를 암시할 수 있습니다.
은하 구조에서 보겠습니다. 우리 태양계는 은하수 중심에서 약 27,000광년 떨어진 오리온 팔이라고 불리는 바깥쪽 나선 팔에 위치해 있습니다. 만약 “북쪽”이 은유적으로 지구가 바깥쪽 영역(즉, 중심이 아닌)에 있는 우주적 위치에 적용된다면, “공허 위의 북쪽”을 광활한 성간 공간 속 지구의 상대적 위치와 시적으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북녘의 위치를 목동자리 공허(The Boötes Void)로 말하기도 합니다. 일부 창조론자와 변증론자들은 우주에 있는 광활하고 거의 텅 빈 영역인 소위 “목동자리 공허”가 이 성경 구절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추측에 불과하며,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종종 방향 감각을 상징적으로 사용합니다.
3. 신학적 의의
“북쪽”이 문자적으로 은하계에서 지구의 위치를 가리키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 구절은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력하게 증거합니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지구는 자립할 수 없으며, 그 존재는 하나님의 유지하시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골로새서 1:17).
창조는 혼돈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질서를 이루고 있습니다(잠언 8:27). 고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우주의 신비는 창조주께서 이미 알고 계셨으며, 인류에게는 점차적으로만 드러났습니다(욥기 38:4-7).
4. 유대교와 기독교 해석
유대교적 관점에서 보면 랍비 전통은 종종 욥기의 시를 우주론적 과학보다는 고상한 지혜 문학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마이모니데스와 같은 중세 유대 주석가들은 이러한 구절들의 과학적 깊이와 이성 및 자연법과의 양립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들은 이러한 구절들을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했습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기독교 변증론자들은 욥기 26장 7절을 성경이 주의 깊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과학적 발견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증거로 지적해 왔습니다.
욥기 26장 7절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시적이면서도 놀랍도록 심오한 진술입니다. 현대 우주론을 고대 문헌에 과도하게 적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이 구절이 인간의 이성이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과학적 진리를 예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땅을 허공에 매달았다”라는 구절은 성경적 세계관의 영감받은 장엄함을 드러냅니다. “공허 위의 북쪽”이라는 개념은 은하계 위치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우주의 장엄한 광대함과 구조를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창조주를 가리킵니다.
<욥기가 다루는 천체>
뉴턴의 중력 이론보다 훨씬 이전에, 이 시적 묘사는 지구가 눈에 보이는 지지대 없이 공간에 떠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지구가 기초, 바다 생물, 또는 기둥 위에 놓여 있다고 가정했던 대부분의 고대 우주론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바빌로니아인과 같은 고대 문화권에서는 지구가 기둥 위에 떠 있거나 원시 바다에 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욥기는 수 세기 전에 태양 중심설 또는 중력설을 예고합니다.
욥기는 조류를 명시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욥기 38장 8-11절은 바다의 경계에 대해 시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달의 중력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바다의 경계를 정하고 문과 빗장을 설치한 자가 누구냐? 누가 문으로 바다를 가두었느냐? 내가 그 경계를 정하고 문과 빗장을 설치하였느니라.”
현대 과학은 달이 중력을 통해 지구의 조류를 지배한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경계”에 대한 이러한 암시는 지구 생명의 리듬을 유지하는 달과 바다의 복잡한 움직임을 예고합니다. 욥은 별자리와 천체 질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가 묘성(Pleiades,母星)의 사슬을 묶을 수 있으며 오리온의 끈을 풀 수 있느냐?” (욥기 38:31)
“네가 마짜로트(Mazzarot, מַזָּרָה, 한글 성경은 별자리)를 제 때에 인도할 수 있으며, 곰과 그 새끼들을 인도할 수 있느냐?” (욥기 38:32)
이 구절들은 알려진 성단들을 언급합니다. 여기에서 묘성은 단단히 결합된 성단으로, 상호 중력에 의해 함께 유지됩니다(분광학과 궤도 역학을 통해 확인된 과학적 사실). 오리온좌는 “띠”가 시각적으로 일직선으로 정렬되어 있지만, 별들의 거리가 서로 다른 별자리입니다. 마짜로트는 천문학계에서는 zodiac 즉 별자리 황도 십이궁도(황도대 별자리)라고 주장하며, 별자리의 계절적 흐름을 나타냅니다. 곰(물푸레나무/큰곰자리, Ash/Ursa Major)은 유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여러 고대 문화에서 인정됩니다.
욥에게 하신 하나님의 질문은 수사적이며, 우주의 역학에 대한 하나님의 통제를 강조합니다. 이 질문들은 인간의 교만에 도전하고 창조의 위엄을 드러냅니다.욥기서에는 별들의 노래와 천상의 찬양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외쳤느니라”(욥 38:7)
시적이기는 하지만, “노래하는 별들”은 현대 천체물리학과 묘하게 공명합니다. 별들은 진동을 통해 주파수를 방출하는데, 이는 오늘날 성진학을 통해 관측됩니다. NASA의 케플러와 TESS 임무는 별의 진동을 “듣고” 데이터를 소리로 효과적으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태양계를 창조한 이루 형성된 날씨와 우주 법칙에 관한 말씀도 있습니다.
“너는 하늘의 법칙을 아느냐? 네가 그 법칙을 땅에 확립할 수 있느냐?” (욥기 38:33)
이 구절은 천상의 법칙, 즉 오늘날 우리가 행성 운동(뉴턴, 케플러), 중력, 열역학, 양자역학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마치 알려진 법칙인 것처럼 이 법칙들을 언급하시며, 자연법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욥의 천상 지혜에 대한 역사적 해명은 수천 년 동안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욥기의 천상 언어에 감탄해 왔습니다.
유대 학자들 중에는 라시와 마이모니데스는 욥기의 시적 장엄함과 철학적 깊이를 인정했습니다. 특히 마이모니데스는 욥기를 자연신학의 걸작으로 여겼습니다. 기독교 사상가들 가운데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들과 장 칼뱅과 같은 후대 종교 개혁자들은 욥기를 자연 속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여겼습니다. 현대 과학자들 가운데 창조론자이며 천문학자인 휴 로스처럼 욥기를 성경의 “과학적 예지”의 한 예로 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욥기를 과학적 진리를 우연히 반영하는 은유적 시로 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욥기는 과학 이전의 계시로서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반증하기에 충분합니다. 욥기는 우주적 규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시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를 통해 욥기는 합리적으로 질서 정연한 우주에 대한 경외심 가득한 비전을 제시하며, 이는 경외와 경이로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욥기를 하나님의 계시로 읽으면서도, 영감 받은 시로 읽을 수 있음은 욥기의 통찰은 인간이 과학을 통해 최근에야 확인한 바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욥기 자체는 지난 몇 세기 동안 과학이 밝혀내기 시작한 중력, 별의 운동, 그리고 우주 질서에 대한 진실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징조(Sign)의 의미: 창세기 1장 14절과 넷째 날의 신학적 함의>
네째 날의 창조에서 말하는signs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유대인의 인식과 적용, 그리고 신학적으로 signs을 말하는 별들의 관측과 관계된 사실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또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히브리어에서 “징조”를 뜻하는 단어는 ‘오토트(אוֹתֹת)’로,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언약, 개입, 계시에 대한 신성한 표식, 상징, 또는 증거를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 개념은 단순한 시간 측정을 넘어 우주적 목적과 영적 지향의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하늘의 빛, 즉 해, 달, 별은 낮과 밤을 구분하거나 농업 및 시민 달력을 조절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의미와 기능을 담고 있는 우주의 이정표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분의 질서 있는 창조를 지탱합니다.
유대력은 이 구절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태음태양계(lunisolar system)로서, 달의 주기에 따라 달을 표시하고 주기적인 윤달을 통해 태양년에 맞춰 조정합니다. 따라서 넷째 날의 천체 리듬 확립은 안식일, 절기(모에딤), 그리고 거룩한 모임(레위기 23:2)을 지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히브리어 단어 모에딤은 창세기 1장 14절과 레위기 23장에 모두 등장하며, 이스라엘의 언약 생활을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달력을 확증하는 언어적, 신학적 연결 고리를 형성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이러한 “징조(signs)”를 하나님의 논리와 지혜의 계시로 해석했지만, 마이모니데스와 같은 중세 현자들은 점성술을 거부하고 천상 질서에 대한 신학적 메시지를 긍정하는 신중한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랍비들의 저술은 경외심과 신중함을 모두 반영합니다. 별은 신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봉사합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Shabbat 156a)에서 행성의 영향력을 둘러싼 논쟁은 고대 우주론과 유일신 신앙 사이의 이러한 긴장감을 반영합니다.
신학적으로, 넷째 날에 창조된 빛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의 이교 우주론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오히려 이 빛들은 창조주의 주권을 반영합니다. 시편 19편 1절은 이를 아름답게 포착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바실리오 대왕의 저서 『헥사메론』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신의 도성』을 비롯한 교부들은 별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긴다고 강조했습니다.
“징조(signs)”은 또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시간을 표시합니다. 구원의 시기가 달과 연결된 유월절(출애굽기 12장)처럼, 신성한 역사는 우주라는 이정표 아래 전개됩니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메시아 탄생의 표징으로 별을 따라갔으며, 이는 인류를 신적 계시로 인도하는 천체 표지의 신학적 역할을 강화합니다.
따라서 넷째 날의 징조는 단순한 자연적 지표를 넘어, 언약의 표징이자 전례적 신호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를 우주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표징은 예배와 기억의 리듬을 형성했습니다. 교회에게 표징은 지혜로 별과 계절을 만드신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계절, 기후, 그리고 창조 속 하나님의 질서>
천문학이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심화시킨 현대에도, 창세기 1장 14절은 과학과 신앙이 반드시 상충될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오히려, 두 표징은 기능할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우주의 증거 안에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Seasons은 지구의 기후와 계절에 매우 큰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는 열대, 아열대, 온대, 한대, 극지방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지구의 기울기(약 23.5°)와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은 창조 넷째 날, 하나님께서 “큰 빛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을 때”(창세기 1:14-19) 설정되었으며, 시간, 계절, 그리고 기후 변화를 조절하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적도 근처에 위치한 열대 지역은 일 년 내내 직사광선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기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한 해는 우기(열대 수렴대(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가 습기를 가져오는 시기)와 건기, 두 가지 주요 계절로 나뉩니다. 이 지역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며 종종 지구의 생태적 허파로 여겨집니다.
아열대 지역은 여름은 더웠고 겨울은 온화했으며, 특히 지중해와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건조기와 우기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 지역은 농업 생산성이 높으며 초기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온대 지역은 지구가 공전할 때 태양과 이루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뚜렷한 사계절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계절 변화의 리듬은 역사 전반에 걸쳐 문화적 관습, 농업 주기, 그리고 종교적 의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랭 지대(아북극)와 극지방은 태양 복사열을 덜 받습니다. 극지방은 겨울에는 장야(극야)가, 여름에는 계속 밝은 낮(한밤중의 태양 또는 “백야”)과 같은 극심한 현상을 겪습니다. 이러한 낮과 밤의 순환은 인간과 생태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상반된 기후는 지구의 기울기 때문입니다. 북반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어지면(6월경) 여름, 남반구는 겨울, 그리고 12월에는 반대로 겨울이 찾아옵니다.
이 지대는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세우신 놀라운 질서를 보여줍니다. 시간과 계절을 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구를 거주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각 기후대는 하나님의 선견지명과 천체의 끊임없는 움직임에 의존하는 생태계, 농업, 그리고 인간 삶의 섬세한 균형을 보여줍니다.
지구물리학적 및 천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는 수십억 년 동안 존재해 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지구 초기 형성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충돌, 특히 화성 크기의 천체와의 충돌로 인해 달이 형성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달의 중력으로 인해 자전축 기울기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41,000년 주기로 약간씩(22.1도에서 24.5도 사이) 진동하는데, 이를 자전축 기울기 변화라고 합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YEC)와 일부 홍수 지질학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창세기 6-9장에 묘사된 대홍수 기간이나 그 이후에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졌을 수 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각판의 이동, 화산 폭발, 또는 대홍수 동안의 대규모 충돌과 같은 격변적인 지질학적 변화가 지구의 기울기를 변화시켰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대홍수 이전에 지구의 자전축이 더 안정적이고 수직이었으며, 이로 인해 더욱 균일한 지구 기후(소위 대홍수 전 온실 세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홍수 후의 기울어짐은 극적인 기후 변화, 빙하기, 그리고 극심한 계절적 변동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창세기 8장 22절(“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고 거두며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이…”)을 대홍수 이후에 계절적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증거로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주류 지구물리학이나 천문학의 뒷받침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학문들은 지구 기울기와 그에 따른 계절 변화가 인류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최근의 재앙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예: 퇴적물 기록, 빙핵, 화석 분포)를 제시합니다.
일부 유대교 및 기독교 신학자들 또한 지구 기울기와 그에 따른 계절 변화를 창조의 질서 있는 설계의 일부로 봅니다. 특히 창세기 1장 14절에서 해와 달과 별이 “징조와 계절”을 나타낸다고 언급된 부분을 참고합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지구의 기울기는 우연이 아니라 지구를 거주 가능하고 농업적으로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계절 변화의 창조는 시간과 삶의 구조에 깃든 신성한 지혜, 리듬, 그리고 균형을 반영합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자전축 기울기는 인류보다 훨씬 이전, 지구 형성 초기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과학자들은 말하지만 창조론자들의 견해는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YEC 관점에서는 지구 기울기가 대홍수의 결과로 발생하여 지구 기후가 급격하게 변화했다고 주장합니다. 기울기와 계절은 시간과 창조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님의 섭리적 설계의 징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시간의 정확성: 달력의 역사와 과학적 발전>
천문학, 물리학, 그리고 천체물리학의 발달로, 윤년이 생기는 오차 즉 하루의 시간, 일년의 날짜의 오차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달력을 사용하기까지의 역사와 오차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고대와 현대 문명 모두 달력을 개선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인 그레고리력은 수세기에 걸친 관측, 천문학적 발전, 그리고 민간의 시간 측정을 천체 관측과 일치시키기 위한 과학적 계산의 산물입니다.
1. 달력의 역사적 발전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입한 율리우스력은 4년마다 윤일을 포함하여 365.25일의 태양년을 확립했습니다. 이전의 태음력에 비해 상당한 발전이었지만, 여전히 태양년을 매년 약 11분 14초 정도 과대평가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이 작은 차이로 인해 달력은 계절과 일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582년에 달력을 개정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그레고리력이라고 부르는 달력이 탄생했습니다. 이 달력은 새로운 윤년 규칙을 도입하여 평균 연도를 단축했습니다.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이지만,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이 아닙니다. 단,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이러한 조정으로 연도 오차는 1년에 26초로 줄어들어 3,323년에 단 하루만 오차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2. 현대 과학적 노력과 천문 시간 계측
천문학, 물리학, 천체물리학의 발전과 함께 시간 계측의 정확성에 대한 추구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세슘-133 원자의 진동을 기반으로 하는 원자 시계를 사용하여 매우 정밀하게 시간을 측정합니다. 이 시계는 하루에 10억 분의 1초 이내의 정확도를 자랑하며 국제 단위계(System of Units, SI) 초를 정의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조석 마찰 및 기타 지구물리학적 요인으로 인해 점차 느려지고 있는 지구의 불규칙한 자전에 원자 시간을 동기화하기 위해 협정 세계시(Coordinated Universal Time , UTC)에 윤초(leap seconds)가 추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1972년부터는 약 몇 년마다 윤초가 추가되어 시간 표시가 태양에 대한 지구의 실제 위치와 일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3. 달력 개혁 논의
현재 그레고리력이 민간 목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과학자들과 달력 개혁가들은 매년 일관성을 개선하기 위해 세계 달력(World Calendar)과 국제 고정 달력(International Fixed Calendar)과 같은 대안 시스템을 주기적으로 제안해 왔습니다. 그러나 문화적, 종교적, 그리고 물류적 문제로 인해 널리 채택된 것은 없습니다.
4. 신학적 함의
창세기 1장 14-19절의 성경 기록은 해, 달, 별의 창조를 표징, 계절, 날, 그리고 해의 조절과 연관시킵니다. 현대 천문학의 발전은 이러한 신학적 통찰을 뒷받침합니다. 천체는 빛을 비추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을 표시하고, 창조의 질서를 정립하고, 생명의 리듬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질서는 성경과 인간 과학이 추구하는 정밀성 모두에서 확증됩니다.
<천체 관측이 주는 인류 문명사의 의미>
역사를 통틀어 천체는 인류에게 깊은 의미를 지녀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재위 기간에 건립된 경주 첨성대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남아 있습니다. 첨성대의 설계는 고도의 천문 지식을 반영하며 고대 한국 사회에서 천체 관측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마찬가지로,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전설적인 시조 단군과 관련이 있습니다. 참성단의 정확한 역사적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고대 의례 및 천문 관측과 관련된 성지로 숭배 받고 있습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마야 문명을 포함한 전 세계 고대 문명은 별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했으며, 이러한 패턴이 지상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에 대한 이러한 경외심은 천문학의 발전을 촉진했고 과학 및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명들은 천문 관측에 있어 놀라운 유사성을 보였습니다. 별자리의 움직임, 일식과 월식, 그리고 행성의 위치를 추적하여 정교한 달력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음력을,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의 태양 상승을 기반으로 양력을 확립했습니다.
지구촌 고대 문명에서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하늘의 별들의 움직임과 별자리가 땅의 인류의 운명을 가늠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그 결과로 천문학의 발달과 과학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각 고대 문명이 지리상의 이유로 소통하지 않았음에도 천체 관측에 관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별 자리의 운행, 개기일식과 개기 월식 등은 태양계의 각 행성과 위성의 위치에 따른 변화를 탐구하게 했습니다. 달과 지구와의 관계는 바벨론 달력, 음력의 발전으로 연결됩니다.
달력의 진화: 음력에서 태양계로
달과 지구의 관계는 음력의 주기에 기반한 바빌로니아력과 같은 음력 달력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양력의 발전은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입한 율리우스력으로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 달력은 1년을 365일로 표준화하고 4년마다 윤일을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의 태양년 근사치는 약간 부정확하여 수 세기에 걸쳐 날짜가 점진적으로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1582년에 그레고리력을 도입하여 윤년 체계(leap year)를 개선하고 지구의 태양 공전 궤도와 더욱 일치시켰습니다. 정확도가 향상된 그레고리력은 점차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레고리력의 채택은 국가마다 달랐는데, 가톨릭 국가에서는 빠르게 전환하는 반면, 개신교와 정교회 지역에서는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그레고리력을 채택했습니다.
달(Month)의 이름의 변화 로마의 영향 반영
별들을 통해, 시간의 개념을 사용한 고대 문명, 달을 통해 Month를 개발하고 calendar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태양을 통해 Julian calendar 및 Gregorian Calendar가 개발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만 해도 1부터 10의 숫자를 넣어 Calendar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October는 라틴어의 8이고, December는 10입니다. 하지만 로마 신화의 Janus신의 이름을 1월에 넣고, Julius Augustus 황제 이름을 8월에 넣음으로 September, October, November와 December(7, 8, 9, 10)의 숫자가 두개씩 뒤로 밀려져서 12개월의 이름 된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로마는 11월과 12월을 군인들의 휴가 기간으로 해서 달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력의 달 이름은 로마의 전통을 반영하며 중요한 인물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1월 (Janus): 시작과 전환의 로마 신 야누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2월 (Februa): 고대 로마의 정화 축제인 페브루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3월(Mars): 로마의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4월(Aperire): 라틴어로 “열리다”를 뜻하는 “aperire”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봄을 상징합니다.
5월(Maia): 로마 신화에서 성장의 여신 마이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6월(Juno): 로마 신화에서 결혼과 출산의 여신 주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7월(Quintilis 에서 Julius로): 원래 초기 로마 달력의 다섯 번째 달인 “퀸틸리스”에서 유래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8월(Sextilis에서 아우구스투스로): 이전에는 여섯 번째 달인 “섹스틸리스”에서 유래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9월~12월: 초기 10개월제 로마 달력에서의 위치를 반영하여 라틴 숫자 7에서 10까지에서 유래했습니다.
연도의 시작에 1월과 2월이 추가되면서 숫자 체계가 바뀌었고, 그 결과 현재의 12개월제가 탄생했습니다.
천체 관측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농업, 종교 의식, 그리고 시간 측정 시스템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문학적 지식이 달력에 통합된 것은 우주를 이해하고 우주와 조화를 이루려는 인류의 끊임없는 탐구를 반영합니다. 이러한 발전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하늘과 인간 사회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창세기 1장 14절부터 19절의 태양과 달과 지구와 태양계와 별들의 창조에 있어서, 천체의 운행을 기준으로 signs, seasons, days, months, 와 year를 정하게 하셨습니다. 네째 날의 창조는 지구촌 인류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일곱 가지 주요 절기와 넷째 날의 표징>
이스라엘의 종교적 절기(religious festival)은 유월절부터 초막절까지 7대 절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네째 날의 signs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제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time, seasons, age, hour, period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의미들이 있습니다. 토라에 뿌리를 둔 유대력은 예배 주년을 구성하는 일곱 가지 주요 절기를 중심으로 공전합니다. 유월절(페사흐, פֶּסַח)), 무교절(하그 하마초트, חַג הַמַצּוֹת) ), 초실절(비쿠림, בכורים), 오순절(샤부옷, שבועות), 나팔절(욤 테루아, יוֹם תְּרוּעָה/로쉬 하샤나, ראש השנה), 속죄일(욤 키푸르, יוֹם כִּפּוּר), 초막절(수콧, סוכה)과 같은 이 절기들은 단순한 문화적 관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에딤(מוֹעֲדִים), 즉 해, 달, 별과 관련된 신성한 약속입니다.
1. 히브리어 어휘와 신성한 시간
창세기 1장 14절의 각 용어는 풍부한 신학적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오트(אוֹת) – 징조: 신적인 신호(sign) 또는 상기시켜 주는 것. 하늘의 표징은 종종 신성한 사건, 심판, 또는 언약을 나타냈습니다(창세기 9:13, 출애굽기 12:13 참조).
모에드(מוֹעֵד, Mo’ed) – 계절/정해진 시간: 모에드는 날씨에 따른 계절을 넘어, 신성한 축제,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만나시는 정해진 시간을 가리킵니다(레위기 23:2 참조).
야밈(יָמִים, Yamim) – 날: 해와 달의 주기에 뿌리를 둔 측정된 기간. 이 용어는 문자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를 모두 포함합니다.
샤님(שָׁנִים, Shanim) – 해: 레위기 25장에 설명된 대로 안식년과 희년을 결정하는 더 큰 주기.
에트(עֵת, Et) – 시간, 계절, 기회: 특히 전도서 3장과 같은 시적 문학에서 하나님이 주관하는 순간을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שָׁעָה(샤아) – 시간 또는 계절: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결정적이고 정해진 순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용어입니다(다니엘 4:17 참조).
2. 시간과 절기의 신학적 의미
유대인의 시간 인식은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이고 언약적입니다. 각 계절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의 회귀이며 그분의 구원 사역을 상기시켜 줍니다.
유월절(페사흐): 봄 보름달에 기념하며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합니다. 이는 역사적이면서도 예언적인 구원의 표징입니다.
무교절: 농경 주기에 맞춰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정결 의식입니다.
첫 열매와 오순절(샤부옷): 보리와 밀 수확과 관련이 있으며, 시나이산에서 토라를 받고 공급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나팔절, 속죄절, 초막절: 이 가을 축제들은 성찰,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농경 한 해의 절정을 이룹니다.
이 모에딤은 음력에 의해 고정되며, 절기와 계절을 맞추기 위해 태양 주기(윤달)를 조정합니다. 따라서 성경적 유대교에서는 천문학, 신학, 그리고 농업의 리듬이 수렴합니다.
3. 적용과 성취
“징조와 계절”을 위해 천체를 창조하는 넷째 날의 목적은 성전 예배, 국가적 기억, 그리고 메시아적 기대를 주관하는 유대력에서 성취됩니다. 신약성서는 이 주제를 계속 이어갑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요한복음 19:14).
성령은 오순절에 강림하셨습니다(사도행전 2:1).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 성취를 나타내기 위해 천문적 징조를 사용합니다(요한계시록 12:1).
성경에서 시간은 임의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성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매우 상징적입니다. 넷째 날이 우주의 질서를 확립하듯이, 성경의 절기들은 구속사의 구조를 형성합니다. 창조의 넷째 날은 단순히 천문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광명체들의 창조는 시간의 물리적 차원을 정의했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역사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통해 지상의 삶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성한 약속의 역할을 하는 표징과 계절의 체계를 확립하셨습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절기를 통해 시간과 거룩함이 통합됨으로써 인간의 의식은 신성한 섭리의 리듬으로 고양됩니다. 이는 우연이 아닌 신성한 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를 보여주며, 인류에게 창조주께서 정하신 시간에 발맞춰 살아가도록 일깨워줍니다.
<글을 맺으며:>
창조의 넷째 날은 단순한 연대기적 표시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경첩과 같습니다. 하늘의 빛들을 창조하여 징조와 계절을 다스리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역사와 거룩함을 모두 지배하는 신성한 리듬을 우주에 새겨 넣으셨습니다. 이 천체들은 자연의 달력 뿐만 아니라 구원의 달력 역할도 합니다.
달과 함께하는 유대교 절기의 노래든, 원자 시계의 꾸준한 계산이든, 하늘은 계속해서 더 깊은 진리를 선포합니다. 바로 우주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편곡된 교향곡이라는 것입니다. 욥기는 별들이 노래하고, 지구는 오직 하나님의 유지하시는 뜻에 의해 공허 속에 매달려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현대 과학은 성경을 반박하기는 커녕, 고대의 선언을 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언어로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넷째 날은 우리에게 시간에 대한 신성한 비전을 되찾도록 권유합니다. 단순히 똑딱거리는 시간이 아니라, 언약과 기억, 그리고 경외심으로 형성된 신성한 순간으로서의 시간 말입니다. 창조주는 모든 일출과 계절마다 우리에게 그분의 질서를 기억하고, 그분의 시간 안에서 걷고, 시간이 시작되고 영원이 시작되는 하늘을 바라보라고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때를 알도다 (시 104:19)
2025년 5월 3일 토요일 저녁에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씀
<PS/ 저는 오늘 이른 아침에 창세기에 기록된 네째 날의 창조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에서 다루지 못한 천체와 지구와의 관계, 욥기서가 다루고 있는 천체 창조와 운행에 대하여, 그리고 signs, seasons, days, 그리고 year에 대하여, 그리고 히브리적 절기와 연관된 나머지 파트를 탈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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