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계발] 우주적 성전인 창조: 네째 날의 신학과 과학-16 » Creation as Cosmic Temple: The Theology and Science of the Fourth Day »
Contents
- <글을 시작하면서: 정교함과 아름다움의 문으로 들어 가며>
- <네째 날 창조가 주는 의미 탐구를 시작하는 이유>
- <창조(בָּרָא Bara), 만드심(עָשָׂה, Asa)과 빚으심(יָצַר, Yatsar)에 대한 재조명>
- <창세기 1장 창조의 구조에서 본 창조의 구조>
- <우주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 에드윈 허블>
- <성전으로서의 창조에 대한 성경적 토대>
- <창조와 성전에 대한 유대교 랍비적 관점>
- <창조와 성전에 대한 신학적 관점>
- <바라, 아사, 그리고 야차르에 대한 신학적 및 랍비적 관점>
- <하나님의 의도적인 질서: 창조의 관찰 창 입구에서 출구까지>
- <인식된 연대기적 갈등, The Perceived Chronological Conflict>
- <세째 날과 네째 날의 창조의 순서가 바뀐다면?>
- < 우주의 138억 년 나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 The Scientific Basis for the 13.8 Billion-Year Age of the Universe>
- <두 관점의 불일치에 대한 견해들>
- <과학적 우주론 개괄>
- <창조론과 네가지 우주의 힘과의 관계>
- <글을 맺으며: 창조 탐구가 주는 기쁨과 환희 속에서>
<글을 시작하면서: 정교함과 아름다움의 문으로 들어 가며>
화석을 발굴하면서 고생물학자는 생명의 근본을 찾아가고, 고대 유적지에 묻힌 유물을 발굴하면서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되살아나고, 하늘의 별들을 관측하다가 별들과 은하와 초은하단과 필라멘트와 우주의 거대한 그물망이 하나로 창조를 노래하는 기쁨을 만끽하게 됩니다. 단순히 죽은 문자가 아닌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생생한 창조의 서사시를 읽고 음미하는 여정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의 장대한 서사에서 천지의 창조는 물질적 기원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신적 질서, 의도, 그리고 신성한 설계에 대한 계시로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 넷째 날은 천문학을 넘어 신학, 우주론, 그리고 목적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현대 우주론은 별과 은하가 지구보다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성경 본문은 천체의 창조를 땅과 식물이 출현한 이후에 위치시킵니다. 이러한 역설처럼 보이는 것은 심오한 신학적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자연이 아니라 빛과 생명, 그리고 시간의 근원이십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성경 주석,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 그리고 과학적 통찰을 함께 엮어 넷째 날의 과학적, 신학적, 문학적 차원을 탐구합니다. 그 결과, 우주는 차가운 메커니즘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위해 준비된 신성한 성전이라는 비전이 드러나는 과정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네째 날 창조가 주는 의미 탐구를 시작하는 이유>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깊이 묵상할수록, 우주의 질서, 자연의 조화, 생명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와 완벽한 지혜의 반영임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같은 성경을 더 주의 깊게 읽을수록, 마치 영원한 꽃의 꽃잎처럼 그 신성한 층층이 펼쳐지며 하나님의 목적, 섭리, 그리고 심오한 설계의 정교한 구조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각 구절은 혼돈이 아니라 창조주의 목소리로 빚어진 세계의 위엄을 들여다보는 창이 됩니다.
반대로, 우주, 지구, 그리고 자연 세계가 영겁의 세월에 걸쳐 비인격적인 과정을 거쳐 진화해 왔다고 본다면, 오직 돌연변이, 자연선택, 그리고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 받는다고 본다면, 우리는 신성한 기원을 잃어버린 생명의 아비스 (abyss)에 머물게 됩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어린아이, 청소년, 심지어 노인들까지도 이러한 세속적인 진화론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길들여져 경이로움을 기계론으로 바꾸도록 교묘하게 설득 당해 왔습니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에 이미 이러한 변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미국에서는 20세기 초중반에 모더니즘의 부상으로 근본주의적 창조론이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 학계, 언론, 공교육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황혼과 21세기의 새벽, 젊은 지구 창조론(YEC)은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반응적 운동이 아니라, 기원의 신비를 재검토하고 진화론적 사고에 내재된 추측적 허구를 폭로하는 새로운 목소리로 말입니다. 이 진화론적 서사가 입힌 가장 깊은 상처는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한 과학적 오류가 아니라 영적 건망증입니다. 우주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의 표현이며, 우주의 법칙과 구조가 우주 성전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지구 생태계가 물리적 창조의 정점이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신적 예술의 정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현대 진화론은 인간을 단순한 동물 수준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간의 영적 유산, 즉 신적 유사성, 신성한 소명, 그리고 존재론적 위대함을 박탈했습니다. 진화론은 호모 사피엔스가 맹목적인 힘으로 지성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지고 하나님의 영으로 불어넣어졌다고 선언합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분별할수록 인간 존재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창조의 신비는 우리를 더 높은 의식으로 이끌어 줍니다. 인간 존재론이 먼지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함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 생명의 가치는 생물학적 기능이 아니라 그것이 반영하는 영원한 이미지로 측정됩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인간과 우주 창조의 본질적 요소를 알아가면 갈수록 인간 창조의 목적이 분명해 짐으로 존재론적 인식과 가치는 신적인 차원까지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그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14-19절)
이제 우리는 네째 날 창조에 대하여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네째 날 창조는 조금 더 멀리 보고, 높게 보면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어떤 구도를 갖고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날 빛, 둘째 날 궁창, 셋째 날 뭍과 바다의 분리 및 식물계 창조는 우주 공간의 어떤 틀을 만드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째 날부터 여섯 째 날은 이 공간을 채우는 작업들을 하십니다. 네째 날에는 만들어진 궁창과 우주 공간에 태양과 달과 지구를 만드시고, 별들을 창조하십니다. 다섯 때 날에는 바다와 공중에 각 종류 별로 생명체들을 창조하십니다. 여섯 째 날에는 땅의 짐승들과 생명체들을 온갖 종류별로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네째 날부터 여섯째 날에는 계속 번성(be fruitful)하고, 증가(increase)하고 그리고 충만(fill)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틀을 만드시고, 네째 날부터 여섯째 날에는 그 공간에 채우시는 것임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창조(בָּרָא Bara), 만드심(עָשָׂה, Asa)과 빚으심(יָצַר, Yatsar)에 대한 재조명>
저는 이전 저의 글에서 히브리어의 세 단어, 바라, 아사, 야차르로 창조의 세단계를 설명했습니다. 바라는 무에서 창조, 아사는 원재료에서 만드는 것(ㅡ맏), 그리고 야차르는 만든 것에서 빚는(shaep)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들(현 우주 공간)과 땅(matter)인 원재료가 있는 우주는 제일 먼저 무에서 창조하시고, 두번째는 이미 만들어지 우주공간과 물질로 다음 단계 인 creation step에 들어 간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첫째 날부터 세째 날의 frame 과 네째 날부터 여섯째 날 채우는 창조는 위의 세 단어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특히 수천년 동안 유대학자들은 어떤 신학적 그리고 철학적 견해를 갖고 있는지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세 가지 히브리어 단어: 바라, 아사, 야차르Bara, Asa, and Yatsar
1. בָּרָא (Bara) – 무에서의 창조 (“Create” from nothing)
o 신적 창조 영역에서 사용됨
o 절대적 창조 영여(무에서의 창조ex nihilo – out of nothing).
o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created , bara) 하시니라. (창세기 1:1)
2. עָשָׂה (Asa) – 원재료부터 만드심 (“Make” from existing materials)
o 이미 존재하는 재료로부터 공교히 만들거나(crafting) 또는 제작하는 것(forming)
o 이미 만드신 재료로 우주의 형태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행우
o 본문 네째 날에 이미 있는 재료로부터 두 광명체를 만드심 (창 1:16, made asa)
3. יָצַר (Yatsar) – 빚음과 만드심 (“Form” or “Shape”)
o 도공이 진흙을 빚듯히 주의깊에 빚어 가시는 장인의 작업
o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formed, yatsar, 창 2:7)
<창세기 1장 창조의 구조에서 본 창조의 구조>
1~3일의 창조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고 4~6일은 이미 만들어진 구조 즉 그 틀에 충만하도록 채우시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대칭적 구조를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Kline)은 틀 가설(Frame Hypothesis)로 설명하였으며, 존 월튼(John Walton)은 기능적 창조라는 용어로 설명했습니다. 이 두 학자의 견해는6일 창조에 대한 두 프레임의 삼중(Triad) 구조로 설명됩니다.
형성(1~3일) 대 충만(4~6일)
1일 – 빛/어둠 – 4일 – 해, 달, 별
2일 – 하늘/물 – 5일 – 새, 바다 생물
3일 – 땅, 식물 – 6일 – 동물, 인간
이러한 틀은 혼돈에서 질서로, 형상에서 충만함으로, 그리고 공간에서 생명체로의 이동을 반영합니다. 앞서 설명한 형성(Forming)과 충만(Filling)의 보완 관계에서 바라 본 창조를 세 단어, 바라, 아사, 야차르를 창조의 날들에 통합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어 창조 동사들을 다음 구조에 맞춰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1~3일차 (틀 형성)
동사: 주로 바라(1일차), 시간, 공간, 물질을 시작함(ex nihilo).
하나님은 존재의 근본적인 영역을 형성함:
• 빛(우주의 질서)
• 물(하늘과 바다)
• 땅(생명의 서식지)
2. 4~6일차 (틀 채우기)
동사: 주로 아사와 야차르
• 하나님은 빛, 동물, 인간을 만드심(asa).
•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친밀하게 만드심(yatsar).
이것은 창조의 예술적 단계입니다. 처음에 시작된 것을 형상화하고 채우심입니다. 이처럼 바라로부터, 아사 그리고 야차르의 신학적 의의는 창조 질서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는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가 함포 되어 있고 더불어 그 질서는 신적 의도를 반영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창조 질서를 연구하면 연구할 수록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게 되고, 창조의 신적 질서를 이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은 우주를 무작위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구조화 하셨습니다.
• 바라(Bara)는 주권적인 시작을 나타내며, 아사(asa)와 야차르(yatsar)는 과정과 보살핌을 나타냅니다.
많은 유대 학자들은 창조를 일종의 성전 이미지로서의 창조로 보았습니다. 이는 히브리서에 이미 하늘의 성전을 모세에게 보여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의 섭리, 질서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신적 지혜의 총체는 하나님께서 친히 거주하시는 성전의 개념과 동일합니다. 초기 유대교 해석에서 기독교 신학에 이르기까지, 창조를 성전, 즉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통치하시는 신성하게 질서 정연한 공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창세기 1장의 창조 행위를 이후의 성막과 성전 건축,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경에 계시된 천상 성전과 연결합니다.
<우주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 에드윈 허블>
천문학자들은 매일 밤 천체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관찰합니다. 지구에서 떨어진 라그장주 지점에서 우주를 관찰하는 제임스 웹 천체 망원경으로 인해 밤을 세워야 하는 천문학자들의 수고로움이 한결 덜어졌습니다. 하루 24시간 우주의 관측 자료를 지상으로 보내 오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유영하는 그 신비의 영역 속에서 어떤 이는 더욱 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 버립니다. 에드윈 허블 같은 이는 우주를 관찰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하고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 갑니다.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고도 노벨상을 능가하는 학자는 매우 많습니다. 과학자들은 뉴턴과 아인슈타인과 허블 세사람을 최고의 과학자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노벨상에 천문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허블은 노벨상 수상에 난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을 물리학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조건으로 노벨상 수상이 확정되었지만 그는 노벨상 수상 3개월을 앞두고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가 그토록 과학계에 추앙 받는 이유는 우주 팽창론 때문입니다. 저명한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은 과학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발견 중 하나를 해냈습니다. 1920년대, 마운트 윌슨 천문대에서 관측을 통해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발견은 빅뱅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고 현대 우주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허블 자신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동시대 사람들과 그 뒤를 이은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의 발견을 신성한 신비로 통하는 관문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옆에 있던 100인치 후커 망원경으로 하늘을 들여다보던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광대함 뿐만 아니라 우주에 내재된 복잡한 질서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른 이들이 하늘에서 혼돈을 보았던 반면, 허블은 “익숙한 물리 법칙이 알려진 우주의 끝까지 뻗어 있는” “법칙과 아름다움의 영역”을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동일한 대상을 연구하여도 어떤 이는 물질 세계만을 어떤 이는 창조의 질서와 섭리 그리고 아름다운 설계를 발견한다는 점입니다.
한 일화에 따르면, 그의 기념비적인 발견을 발표한 후 한 동료가 허블에게 이것이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물었습니다. 허블은 경외심과 겸손함으로 대답하며 과학은 시작만을 가리킬 뿐, 그 뒤에 무엇이, 누가 있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이 여전히 과학이 묻고 답하지 못하는 영역을 성경이 말해 주는 이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허블은 말합니다.
“오감을 갖춘 인간은 주변 우주를 탐험하며 그 모험을 과학이라고 부른다.”
“Equipped with his five senses, man explores the universe around him and calls the adventure Science.”
— 과학의 본질과 다른 강연들(1954)
“천문학의 역사는 멀어져 가는 지평의 역사이다.”
“The history of astronomy is a history of receding horizons.”
— 성운의 영역(1936)
허블은 자신의 과학적 발견을 신학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데 신중했지만, 많은 신학자와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연구에서 과학과 신앙 사이의 심오한 조화를 발견했습니다. 허블이 밝혀낸 우주의 팽창은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창세기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전으로서의 창조에 대한 성경적 토대>
만약 우주를 관찰하다가 하나님의 깊은 설계와 의도를 파악하게 된다면 그들은 결코 그 깨달음을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첫번째가 성경에 나와 있으며, 두번째가 이것을 발견하고 깨달은 수많은 학자들의 기록입니다.
창세기 1-2장: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성전 건축의 구조를 반영합니다. 6일간의 창조는 준비와 준비의 단계에 해당하며, 안식일의 휴식으로 절정에 이릅니다(창세기 2:1-3). 이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거하시는 것과 유사합니다(시편 132:7-8 참조). 안식일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우주적 성소에 즉위하시는 표징입니다.
이사야 66:1-2: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만들지 아니하였느냐?” — 이는 전 우주를 성전 이미지와 연결하여 창조물을 하나님의 보좌실로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25:8-9: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성소를 그들이 짓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장막의 모양대로…” — 여기서 모세에게 보여 준 모양(히브리어: tabnit)은 전통적으로 성막의 천상 모형으로 해석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해석가들은 종종 이것을 최초의 신성한 공간이었던 최초의 창조와 연관시킵니다.
히브리서 8:5: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인 성소에서 섬깁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너는 산에서 네게 보여 준 모양대로 모든 것을 만들도록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 이 구절은 지상의 성막이 창조 질서에 뿌리를 둔 천상의 실체를 본떠 만들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창조와 성전에 대한 유대교 랍비적 관점>
비록 지금과 같은 천체 망원경이 없음으로 태양계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은하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시기에 오직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창조의 비밀을 깨달은 학자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혁혁한 깨달음을 얻은 몇몇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필로와 라시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 1세기 유대 철학자)는 그의 작품, “On the Creation”에서 세상을 거대한 성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늘은 지붕이고, 땅은 바닥이며, 원소는 신성한 예배의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성전에 비유했습니다.
“우주 그 자체가 가장 거룩한 성전이며, 지혜자의 마음은 제단이다”(필로, 『세계의 이해』, §3-30).
“The cosmos itself is the most holy temple, and the mind of the wise man is an altar” (Philo, De Opificio Mundi, §3–30).
필로는 6일간의 창조를 하나님의 건축과 연결하여 창조가 하나님의 현존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단언합니다. 창세기 1장에 대한 탈굼 위경 요나단 (Targum Pseudo-Jonathan on Genesis 1)에 따르면, 성전 용어를 추가하여 창세기 기록을 확장하고, 에덴동산을 성소로 묘사하는 초기 유대교 주석을 반영합니다. 미드라쉬 탄쿠마(부베르, 페쿠데이 3), Midrash Tanchuma (Buber, Pekudei 3)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성막은 세상의 창조와 동일하다.” (“The Tabernacle is equal to the creation of the world.”)
이것은 창조의 날과 성막 건축 사이의 유사점을 직접적으로 제시합니다(예: 바라, 아사, 야차르).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2세기 랍비이자 철학자)는 그의 저서 『혼란스러운 자들을 위한 안내서』(Guide for the Perplexed)에서 자연 세계는 신성한 지혜의 질서, 구조, 그리고 의도를 반영하며, 본질적으로 이성과 법의 성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제2성전 시대 유대 문헌(예: 희년서, 에녹서 1서, Jubilees, 1 Enoch))에서 천상 성전이라는 개념은 창조물과 신성한 통치와 명시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창조물 자체는 신성한 시간과 공간으로 묘사되며, 성전은 그 지상적 반영으로 여겨집니다.
라시(Rashi, 1040–1105), 창세기 1장 주석
창세기 기록의 순서와 구조가 단순한 연대기적 세부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권과 질서를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창조와 성전에 대한 신학적 관점>
N.T. 라이트(Right)와 G.K. 빌(Bill) 은 창세기 1장을 우주적 성전 이야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안식일에 왕으로서 자신의 궁전에 거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빌은 자신의 저서 『성전과 교회의 사명』(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에서 에덴동산이 지구 전체로 확장되도록 의도된 최초의 성전(First Temple)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먼저 G.K. 빌, 『성전과 교회의 사명』(IVP Academic, 2004)에 따르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에덴은 최초의 성전이었고… 우주 자체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성전이다.”
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전 모티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추적하고, 창조의 목표는 하나님의 임재가 온 땅을 채우는 것이라고 밝힙니다(하박국 2:14 참조). N.T. 라이트, 『성경에 놀라다』(HarperOne, 2014)에서 창세기는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위한 공간이 되는, 하나님의 질서가 있는 세상을 묘사한다고 강조합니다. 라이트는 에덴동산을 전 세계로 확장될 운명에 놓인 초기 성전으로 봅니다. 그레고리 K. 빌, 미첼 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땅 끝까지 에덴을 확장하다, God Dwells Among Us: Expanding Eden to the Ends of the Earth』(IVP, 2014)에서 빌의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성경 신학에서 창조와 성전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창조의 목적은 선교적이고 예배적이다고 말합니다.
마이클 모랄레스(Michael Morales),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것인가? 레위기의 성경 신학, Who Shall Ascend the Mountain of the Lord? A Biblical Theology of the Book of Leviticus』(IVP, 2015)에서 창세기 1-2장을 레위기의 예배 구조와 연결한다. 그는 에덴이 성전이며,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시는 날이라고 주장합니다. 존 H. 월튼(John Walton),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of Genesis One)』(IVP Academic, 2009)에서 창세기 1장은 물질적 기원이 아니라 기능적 성전 우주론이라고 주장합니다.
7일은 고대 근동(ANE)의 성전 축성 과정을 반영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주는 성전이며, 창조 기록은 하나님이 만물을 물질적으로 어떻게 만드셨는지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존 월튼(『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은 7일간의 창조 기록을 성전 봉헌과 유사한 우주적 기능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세기는 단순한 물질적 기원이 아니라 기능적이고 신학적 건축물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과 로마서 1장 20절에서 바울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하나님의 임재와 목적과 연결시키며, 창조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이 성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우주적 성전 신학을 반영합니다.
창조물이 성전이라는 생각은 우주가 단순한 물질적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임재로 질서 지어진 신성한 공간임을 확증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 모두에서 이러한 이해는 창조 행위를 전례적이고 언약적인 현실로 승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왕이시며 제사장이시며 당신의 거룩한 영역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창조물은 예배, 언약, 그리고 신과 인간의 교제의 무대가 됩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많은 유대교 및 기독교 학자들(예: 나훔 사르나, 존 월튼)은 창세기 1장이 우주적 성전 건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바라, 아사 그리고 야차르와 관계한 부분을 살펴 본다면 이들은 어떻게 창조의 과정을 이해하고 있음을 잠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바라 → 하나님의 거처로서 우주를 건설함
• 아사 → 그 안의 내용물을 만듦
• 야차르 →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 개인적으로 투자함
<바라, 아사, 그리고 야차르에 대한 신학적 및 랍비적 관점>
수천 년 동안 유대 사상은 이 세 가지 용어에 대해 풍부한 성찰을 해 왔습니다. 주요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알렉산드리아의 필로(1세기)
바라를 플라톤적 이상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먼저 보이지 않는 형상(이데아)을 창조하시고 그다음 보이는 세계(아사, 야차르)를 형성하셨다는 것입니다.
2. 랍비 전통
바라(bara)를 고유한 신성함으로 인정했습니다.
미드라쉬 베레시트 랍바(Midrash Bereshit Rabbah)는 “무(無)로부터의 창조”(bara)와 “유(有)로부터 만들어냄”(asa/yatsar)을 구분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목적과 지혜를 가지고 창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3. 마이모니데스(12세기)
그는 『혼란스러운 자들을 위한 안내서』(Guide for the Perplexed)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 바라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확언합니다.
• 물리적 세계의 질서(asa, yatsar)는 신의 지혜와 창조의 이해 가능성을 반영합니다.
그는 성경적 창조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창조 순서의 철학적 의미: 존재론적 층위
• 바라는 존재 그 자체에 해당합니다.
• 아사는 목적 있는 배열에 해당합니다.
• 야차르는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의미와 정체성을 함축합니다.
신학적 교향곡으로서의 날들:
• 1~3일: 악기를 조율하듯 삶의 조건을 마련하기.
• 4~6일: 선율을 연주하기 – 삶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기.
창조를 언약으로 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유대교 학자들은 종종 창조를 단순한 기원이 아니라 언약으로 본다.
• 동사들은 창조와 하나님의 관계적 행위를 반영한다. 단순히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돌보시는 것이다.
날짜 범위 창조 행위 히브리어 동사 신학적 주제
• 1~3일 현실의 틀 만들기 바라 주권적 시작 (무로부터)
• 4~6일 틀 채우기 아사, 야차르 신성한 장인정신과 친밀함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스럽거나 우연히 진화된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의도적인 행위이다. 유대교 전통은 이러한 관점을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 사이의 균형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창세기 1장의 세 단어, 두 개의 삼일조(triads of days), 신학적 구조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구 생태계를 네째 날에 만드신 특별한 목적과 의도는 무엇일까요? 첫째 날에 별들과 태양계를 만드실 수 있을 터인데, 왜 네째 날에 만드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의도적인 질서: 창조의 관찰 창 입구에서 출구까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깨달어 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심오한 신학적 영감 뿐 아니라 인간 창조의 근본 목적을 알게 됨으로 신적 지혜에 이름에 놀라운 경로를 제공해 줍니다. 단순하지만 첫째 날부터 세째 날에 이르는 구조적 질서를 만드는 창조 과정에서 네째 날부터 그 구조(틀)에 채우시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는 그 어떤 최고의 장인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예술적, 지적, 경륜적 작품입니다. 우리는 그의 창조 손길을 따라 관람하면서 감탄하는 관람객이 되지만 창조의 전시장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 인류는 그 경이로움 질서와 섭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창조의 구조화된 패턴
• 태양 없는 빛: 하나님 임재의 우위
• 우주적 시간 측정의 중심인 넷째 날
• 의존과 영광의 신학
• 영적 함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 우주적 환대: 생명을 위한 지구 준비
1. 창조의 구조화된 패턴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구조화된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 1-3일: 하나님은 빛/어둠, 물/하늘, 땅/식물의 영역을 만드십니다.
• 4-6일: 하나님은 그 영역들을 그에 상응하는 거주자들, 즉 하늘의 빛들, 바다 생물과 새들, 육지 동물과 인간으로 채우십니다.
이 패턴은 하나님이 무작위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도적인 설계와 구조를 가진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하늘의 빛들(해, 달, 별)은 빛이 존재하는 데 필요하지 않았지만(빛은 1일차에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질서 있는 창조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목적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통치, 시간 준수, 그리고 의미였습니다.
“그것들이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창세기 1:14)
하나님은 4일차까지 기다리셔서 해가 아니라 자신이 빛과 생명의 근원임을 강조하십니다. 이는 고대 태양 숭배를 의도적으로 격하시키고 이교보다 유일신 신앙을 강조합니다. 많은 고대 문화(예: 이집트)에서 태양은 신이었습니다. 창세기는 태양의 창조를 빛 자체 다음에 두어 태양이 신이 아닌 단순한 피조물임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주장을 뒤집습니다.
2. 태양 없는 빛: 하나님 임재의 우위
첫째 날부터 넷째 날까지 태양 없이 빛이 창조된 것은 빛이 물리적 근원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22장 5절에서 새 창조 때 “주 하나님이 그들의 빛이 되시리라”는 말씀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대 신학과 기독교 사상에서 빛은 하나님의 임재, 진리, 질서를 상징합니다. 우주론에서 에너지의 한 형태인 빛(광자)은 별과 행성이 형성되기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우주는 빅뱅 이후, 별이나 태양이 형성되기 전인 광자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빛이 해보다 먼저 온다는 창세기 1장 3-5절과 개념적으로 일치합니다.
3. 우주적 시간 측정의 중심인 넷째 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창세기 1:14)
• 넷째 날의 목적: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주된 힘의 원천이 아니라 시간의 조절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에게 낮과 밤의 주기, 달, 계절, 해와 같은 삶의 리듬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이는 시간 속의 신성한 질서를 확립하며, 이는 성경 역사에서 안식일의 휴식, 농경 주기, 그리고 예배의 기초를 마련합니다.
• 과학적 연관성: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이 천체들은 다음을 조절합니다.
• 생체 리듬(Circadian rhythms)
• 조수(Tides,달)
• 연중 계절(기울기와 궤도)
• 광합성 주기(햇빛)
생물권 안정에 있어 이들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태양과 달이 없다면 지구의 자전축은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생명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넷째 날의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닌 구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4. 의존과 영광의 신학
넷째 날 태양을 창조하기 전에 셋째 날에 식물계를 창조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식물계가 단순히 자연적인 과정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분의 유지하시는 말씀과 능력에 의존함을 보여주십니다(히브리서 1:3). 이는 자연이 자립적이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뒤집습니다. 자연은 그 메커니즘이 자립적으로 보일 때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적 틀 안에서 기능합니다.
하늘에 비친 하나님의 영광:
시편 19편 1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선포합니다.
넷째 날에 별들을 창조하신 것은 그것들을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는 사자로 만드셨습니다. 별들의 거대한 규모와 디자인은 그분의 위대함을 증거합니다.
5. 영적 함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넷째 날은 크로노스(측정 가능한 시간)와 카이로스(신적 시간)를 연결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에 시간 측정을 확립하심으로써 물질적 영역과 영적 영역을 연결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들(예: 유월절, 안식일, 초막절)은 음력과 태양의 주기에 기반합니다. 이는 물리적 시간 안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창세기 1장 14절은 이렇게 신성한 역사의 기초를 놓습니다.
6. 우주적 환대: 생명을 위한 지구 준비
• 과학적 관점:
▹ 태양의 창조는 가시광선과 열적 안정성을 가져옵니다.
▹ 달은 지구의 기울기를 안정시켜 기후 조절을 가능하게 합니다.
▹ 태양계의 질서 있는 구조(중력, 행성 궤도)는 생물학적 생명에 필수적인 장기적인 환경적 일관성을 제공합니다.
지구의 골격을 창조한 후 해, 달, 별들을 두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거주하기 전에 장소를 준비하는 원리를 확증하십니다. 이는 성경(예: 요한복음 14:2)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천체들을 창조하신 것은 더 일찍 창조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지혜, 주권, 그리고 의도적인 질서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 그분은 빛의 근원(자신)을 창조된 빛 들로부터 분리하십니다.
• 그분은 별들을 신성한 권위 아래 두심으로써 우상 숭배적인 우주론을 해체하십니다.
• 그는 생명과 예배의 번영을 위해 리드미컬한 시간을 움직입니다.
• 그는 생명이 그 메커니즘이 자리 잡기 전에도 시작되고 번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그분의 지속력을 나타냅니다.
• 그분은 전례적 우주를 창조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와 아름다움, 그리고 창조주와의 관계를 위해 질서 정연하게 만드셨습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바다로부터 육지로 그리고 공중의 생명체들로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셋째 날 육지의 식물계, 그리고 네째 날에는 태양계 즉 지구와 태양과 달을 만드십니다. 이는 셋째 날과 네째 날의 순서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에 대한 창조론의 입장은 무엇이며, 유대적(Jewish) 그리고 서구 신학적 관점들(Western theological perspectives)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인식된 연대기적 갈등, The Perceived Chronological Conflict>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론의 시간연대와 창세기의 창조 순서에는 분명히 불일치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선 세째 날과 네째 날의 창조 내용을 한번 더 살펴 보겠습니다.
• 창세기 1:11-13(3일차): 하나님은 씨 맺는 식물과 나무인 초목을 창조하셨습니다.
• 창세기 1:14-19(4일차): 하나님은 빛을 주고, 시간을 표시하고, 낮과 밤을 주관하기 위해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습니다.
갈등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과학적 관점에서 생명(특히 광합성 식물)은 햇빛을 필요로 합니다. 진화생물학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생명은 바다에서 단세포 생물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 식물은 태양이 형성된 후 태양의 빛을 이용하여 광합성을 하며 진화했습니다.
▹ 육상 식물은 수생 생물이 출현한 후에 생겨났지, 그 전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YEC)의 관점
젊은 지구 창조론자(예: 켄 햄, 헨리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믿습니다.
• 창세기는 24시간으로 이루어진 6일의 문자적인 연대기적 기록입니다.
• 식물은 태양이 나타나기 전인 3일째에 초자연적으로 성숙하고 완전한 형태로 창조되었습니다.
• 빛은 1일째부터 존재했으므로(창세기 1:3), 4일째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도 하나님의 창조된 빛으로 광합성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 해, 달, 별은 4일째에 창조되었으며, 단순히 드러난 것이 아닙니다.
YEC 신학적 추론:
• 빛과 생명의 근원은 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요한계시록 21:23 참조 – “그 성은 해나 달이 쓸 데 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기 때문이라.”)
• 이 순서는 자연 과정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즉 자연 과정에 대한 의존성을 가르칩니다.
옛 지구 창조론(OEC)의 관점
옛 지구 창조론자(예: 휴 로스)는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고 받아들이지만, 단계적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창조를 확언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 태양은 이미 존재했지만 4일째까지 지구 표면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구의 두꺼운 원시 대기 때문일 것입니다.
• 4일째에 하나님은 해와 달을 보이게 하시고, 시간 측정자로서 기능적인 역할을 부여하셨습니다.
OEC 접근법:
• 해와 달의 “창조”는 물질적인 측면(존재의 시작)이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으로 해석됩니다.
• 3일째 식물은 흐린 행성이나 두꺼운 구름 아래에서처럼 4일째 이전에 은은한 빛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교 및 여러 관점들
랍비 및 고전 유대교 관점: 특히 라시(11세기)부터 마이모니데스(12세기),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필로(1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대교 해석가들은 창세기 1장을 엄격한 연대기적 또는 과학적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교적 해석의 주요 특징:
• 베레시트 바라(창세기 1:1)는 종종 요약 진술로 여겨지며, 날들은 시간적 조각이 아닌 체계적인 틀로 여겨집니다.
• 필로는 날들을 문자적인 24시간 단위가 아닌, 사상이나 미덕과 연결하여 비유적으로 해석했습니다.
• 마이모니데스는 이성이나 관찰 가능한 현실에 반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유대적 하루-체계적 관점: 일부 유대 학자들은 처음 3일을 확립 영역(빛/어둠, 하늘/바다, 땅/식물)으로, 그 다음 3일을 그 영역(해/달/별, 새/물고기, 동물/인간)으로 채운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엄격한 연대기가 아닌 문학적, 신학적 순서를 뒷받침합니다.
서양 신학적 관점: 교부들(예: 아우구스티누스):
•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 1장을 문자적인 순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창조하셨으며, 6일은 인간의 이해를 위한 논리적 틀이라고 믿었습니다.
• 그는 과학적 메커니즘이 아닌 신적 질서를 강조했습니다.
종교 개혁 사상가들(예: 칼뱅, 루터):
• 루터는 문자적인 6일 창조에 기울었습니다.
• 칼뱅은 신적 계시를 인간의 이해에 맞추는 데 중점을 두는 보다 온건한 접근 방식을 취했습니다.
현대 신학자들(예: 존 월튼, 브루스 월트키):
• 월튼은 창세기 1장을 물질적 기원이 아닌 목적과 질서에 초점을 맞춘 기능적 존재론으로 봅니다.
•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 우주론적 언어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이 창조물에 기능을 부여하신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예: 태양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낮을 지배합니다).
그렇다면 왜 태양보다 먼저 식물을 창조하셨을까요?
신학적 관점에서, 태양보다 먼저 식물을 창조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줍니다.
1. 하나님은 자연적 과정에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메커니즘이 자리 잡기 전에도 생명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2. 태양을 신으로 여기는 고대 이교 우주론을 뒤집습니다. 창세기에서 태양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3. 인간의 겸손에 대한 틀을 제시하며, 생명은 물리학적인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탱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과학적 통찰 (주의 필요): 과학적으로, 문자 그대로 읽으면 시간 순서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형성되었습니다.
• 태양은 지구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 식물은 태양과 대기가 형성된 후에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를 기능적 또는 시적으로 읽으면 이 순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 창세기는 지구 기반 관측자(즉, “지구 표면에서”)의 관점을 반영할 수 있으며, 따라서 태양은 대기가 맑아진 후(4일차)에야 “보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적 순서와 과학적 순서 사이의 긴장감은 무엇이 창조되었는지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가 왜 그리고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 창조론자들(특히 YEC)은 문자 그대로의질서를 세우고 신적 능력과 연대기를 강조합니다.
• OEC와 일부 유대교 관점은 하루를 기능적인 기간으로 해석합니다. 즉, 태양은 더 일찍 창조되었지만 나중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 유대교와 현대 신학적 관점은 종종 그 순서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정확한 과학적 메커니즘보다는 질서, 목적, 신학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은 여러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본문입니다. 신학적 진리를 선포하고, 과학적 대화를 유도하며, 창조 세계를 형성하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합니다.
<세째 날과 네째 날의 창조의 순서가 바뀐다면?>
만약 네째 날 창조가 셋째 날에 있었고, 셋째 날 창조가 네째 날에 있었다면 하나님의 전체 창조 역사와 의도 그리고 큰 그림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만약 창조의 셋째 날과 넷째 날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즉 해, 달, 별(넷째 날)이 땅, 바다, 식물(셋째 날)보다 먼저 창조되었다면, 창세기 1장의 성경적 구조, 신학적 의도, 그리고 우주론적 상징성은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세기 1장의 문학적, 신학적 틀을 훼손하게 됩니다.
창세기 1장은 의도적으로 형성과 충만의 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3일: 하나님께서 빛/어둠, 하늘/바다, 땅/식물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십니다.
• 4~6일: 하나님께서 해/달/별, 새/물고기, 동물/인간과 같은 환경을 채우십니다.
만약 넷째 날이 셋째 날보다 먼저 온다면, 논리적 평행성은 무너집니다.
• 해와 달은 공간(창공)과 기능(통치)이 정의되기 전에 존재했을 것입니다.
• 별들은 그들이 비추어야 할 땅과 그들이 표시해야 할 주기보다 먼저 나타날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의 우아함, 즉 대칭적이고 시적이며 질서 있는 구성이 깨질 것입니다.
2. 생명의 근원을 하나님에서 자연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현재 창세기 기록에서 빛(1일차)과 식물(3일차)이 태양(4일차)보다 먼저 나타납니다. 이는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 이는 많은 이교 문화에서 숭배되었던 태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기원임을 주장합니다.
• 이 순서를 뒤집는 것은 자연력(태양)을 생명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여 신중심주의적 세계관보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양 창조를 4일차까지 의도적으로 지연시키신 것은 신학적 진술입니다. 생명은 태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3. 창조의 목적에 기능적 역전하게 됩니다.
창세기 기록은 목적, 위계, 그리고 기능을 갖춘 우주를 구축합니다.
• 환경(땅, 물, 하늘)은 생명체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 그런 다음, 조절자와 거주자(해, 달, 별, 생물)가 창조되었습니다.
만약 4일째가 3일째보다 먼저 발생했다면, 조절자(해/달)는 아직 환경이나 목적이 정의되지 않은 채 창조되었을 것입니다(예: 땅과 식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 구절의 기능적 논리를 뒤집습니다. 즉, 만물은 섬길 곳이 없이 창조되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메시지를 바꿀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질서는 의도적인 설계를 보여줍니다. 빛을 창조하고, 공간을 형성하고, 땅과 식물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만약 태양계가 생태계보다 먼저 존재했다면, 이 이야기는 물질적 진화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작위적인 출현이나 전제 조건을 암시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질서는 다음을 강조합니다.
• 하나님은 창조 이전과 이후에 존재하십니다.
• 생명은 시간 측정보다 우선합니다.
• 자연법이 아니라 신의 말씀이 먼저 움직입니다.
5. 이교 우주론에 대한 논쟁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은 다음 교리에 대한 신학적 논쟁입니다.
• 이집트의 태양 숭배(라)
• 바빌로니아의 천체 신들
• 가나안의 다산 숭배
창세기는 태양과 별의 창조를 넷째 날까지 미루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것들은 신들이 아닙니다. 창조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당신을 섬깁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섬기지 않습니다.” (“These are not gods. They are created. They serve you. You do not serve them.”)
만약 태양이 먼저 창조되었다면, 성경의 유일신적이고 초월적인 창조주가 아니라 태양신이 생명을 주는 이교 신화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에는 올바른 순서가 필요합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이 뒤바뀌었다면:
• 창세기의 문학적 대칭성이 무너질 것입니다.
• 신의 주권에 대한 교리적 의미가 모호해질 것입니다.
• 우주의 위계(창조자 → 창조 → 천체 → 생명)가 뒤집힐 것입니다.
• 본문은 신적 목적의 계시에서 우주적 우연의 묘사로 전환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설계에서 순서는 임의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학적이고 기능적이며 영적인 것입니다. 창조는 단순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신적 권위, 섭리, 그리고 의도의 진술입니다. 순서를 바꾸는 것은 그러한 비전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질서 있는 우주를 기계론적 체계로 축소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 우주의 138억 년 나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 The Scientific Basis for the 13.8 Billion-Year Age of the Universe>
우주론에서는 가장 큰 것, 가장 오래 전에 결정적인 것이 먼저 일어나고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38억년 전 우주 최초에 빅뱅이 있었고 오랜 세월 가운데 우주는 점차 식어가면서 오랜 세월을 통해 별들과 은하와 초은하단과 같은 구조로 우주에 별들이 만들어지고 지금과 같은 팽창하는 우주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첫째날의 빛의 창조와 빅뱅은 138억년 전이라면, 네째 날의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는 그 이후의 일에 일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의 창조가 45억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우주론이 보는 태양계 형성은 45억 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의 주장은 성운 가설입니다. 바로
우리 태양계의 기원에 대해 널리 받아들여진 성운 가설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거대한 가스와 먼지 분자 구름(2세대 항성계의 일부)이 중력에 의해 붕괴되었습니다.
• 대부분의 물질이 중심부에 모여 태양을 형성했습니다.
• 궤도에 남아 있던 입자들이 강착을 통해 행성, 위성, 소행성으로 합쳐졌습니다. 이 사건은 약 45억 6천만 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주론이 주장하는 태양계 나이에 대한 증거에는 몇 가지 정확한 측정 결과가 이 날짜를 뒷받침합니다.
a. 운석의 방사성 연대 측정
• 아옌데 운석과 캐니언 디아블로 운석과 같은 운석은 초기 태양계 물질의 잔해입니다.
• 이 암석에 적용된 우라늄-납 연대 측정 및 칼륨-아르곤 연대 측정 기법은 45억 6천만 년 ± 1억 년의 연대를 산출합니다.
b. 가장 오래된 지구 암석과 달 샘플
• 가장 오래된 지구 광물(예: 호주에서 채취한 지르콘 결정)은 44억 년의 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 아폴로 임무에서 가져온 월석의 연대는 45억 1천만 년으로 측정되었으며, 이는 지구-달 시스템의 형성 시기가 유사함을 시사합니다.
c. 태양 모델
• 태양 핵융합 및 광도 모델(태양진동학 포함) 또한 추정 연대인 45억 년과 일치하며, 지구 지질 활동 및 자기장 모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론과 창세기 1장과의 통합
이러한 관점에서,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예히 오르)를 우주에 빛이 출현한 것(예: CMB 또는 최초의 별들)과 유사한 것으로 본다면, 날-시대 해석 또는 틀 관점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를 과학적 연대표와 조화시킬 수 있습니다.
• 첫째 날(빛) ~ 빅뱅과 초기 우주 조명
• 둘째 날(해, 달, 별) ~ 지구 하늘에서 천체의 가시성과 기능, 또는 우주 연대표의 일부로서의 천체의 형성
이 부분을 정리하면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는 관측 천문학, 우주론적 모델, 그리고 배경 복사에 근거합니다. 지구, 태양, 달의 나이 45억 년은 방사성 연대 측정과 행성 형성 이론에 근거합니다. 이러한 데이터 포인트들은 현대 우주론과 지질학의 근간을 이룹니다..
<두 관점의 불일치에 대한 견해들>
성경 말씀대로라면, 첫째 날 빛이 창조되고, 네째 날 지구와 태양과 달을 창조하여 지금과 같은 태양계 시스템이 완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일반 우주론에 따르면 빅뱅 138억년 전, 그리고 그 이후에 별들이 나타난 것으로 말합니다. 이 두 관점의 불일치에 대하여 유대적 관점, 신학자들의 견해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성경 신학, 유대교 전통, 그리고 현대 우주론의 교차점을 다루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창세기 1장과 현대 우주론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 특히 빛, 별, 해, 그리고 지구의 순서와 시기에 관한 불일치는 유대교와 기독교 신학 전통 전반에 걸쳐 다양한 해석적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래는 이러한 전통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입니다.
1. 성경적 순서: 빛이 먼저, 해가 나중에 (창세기 1:1-19)
창세기 1장에 따르면:
•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히브리어: 예히 또는)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십니다.
• 둘째 날: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어 낮과 밤을 주관하고 징조, 계절, 그리고 날들을 이루게 하십니다.
겉보기 불일치:
• 과학은 별(태양 포함)이 빛의 근원이며 수십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 창세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해와 달과 별이 창조되기 전에 빛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긴장은 다양한 해석 모델로 이어졌습니다.
2. 유대교 해석
랍비 유대교(고전 및 중세)
• 유대 현자들은 창세기 1장을 항상 문자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물리적 메커니즘보다 신학적 의미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a.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후 1세기)
• 창세기를 우화적으로 해석했습니다.
• 첫째 날의 “빛”을 영적 또는 지적인 빛, 즉 창조물을 비추는 하나님의 지혜로 보았습니다.
• 해와 달과 별은 그 신성한 질서의 물질적 표현이었습니다.
b. 라시(1040–1105)
• 긴장을 인정했지만 신성한 질서에 대한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 첫째 날의 빛은 햇빛과는 다른 원시적인 빛이며, 넷째 날 이후에는 감춰졌다고 주장했습니다(미드라쉬 창세기 랍바에 근거).
c. 마이모니데스(1135–1204)
• 창세기를 과학적 설명서가 아닌 철학적 텍스트로 여겼습니다.
• 물리적 연대기가 아닌 신의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 빛은 신의 발산을 나타내며, 창조의 날들은 문자 그대로의 24시간 하루가 아니라 신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3. 기독교 신학적 관점: 교부들(예: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
• 아우구스티누스: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창조하셨으며, “날들”은 문자적인 연대기가 아니라 이해를 위한 틀이라고 믿었습니다.
• 첫째 날의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천사나 신성한 빛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종교 개혁 및 종교 개혁 이후 관점
•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 창조의 날들을 더 문자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신비로움을 인정했습니다.
• 칼뱅은 하나님이 해 없이도 빛을 창조하실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그분의 능력과 주권을 보여줍니다.
현대 기독교 신학
a. 젊은 지구 창조론(YEC)
•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 하나님이 해와 독립적으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 넷째 날, 하나님은 해와 달에게 시간을 조절하도록 “지정”하셨지만, 처음으로 빛을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b. 옛 지구 창조론(OEC) 및 날-시대 관점
• 창세기의 날들은 긴 시대를 나타낸다고 주장했습니다.
•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4일째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4일째에 지구 대기가 맑아지면서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이는 지구와 태양이 우주 역사 초기에 형성되었지만, 빛은 나중에 표면에 도달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생각과 조화를 이룹니다.
c. 틀과 기능적 관점(예: 존 월튼)
• 연대기가 아닌 문학적, 신학적 구조를 강조합니다.
• 창세기 1장은 물질적 기원이 아니라 기능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 1일째의 빛은 시간의 시작을 상징하며, 4일째의 천체들은 최초의 창조가 아니라 통치와 질서를 상징합니다.
4. 신학과 우주론의 조화 시도
많은 유대교 및 기독교 학자들은 창세기 1장과 과학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합니다.
신학과 과학이 보는 견해를 보면,
• 첫째 날의 빛은 하나님의 질서의 시작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반드시 물리적인 빛일 필요는 없습니다).
• 넷째 날의 해/달/별은 우주의 기능 할당을 나타내지, 물리적 존재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적 우주론과 과학적 우주론 사이에는 목적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 창세기는 하나님의 주권, 창조의 선함, 그리고 목적의 질서를 강조합니다.
• 우주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 과정을 통해 우주가 물질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신학자들은 오랫동안 미묘한 해석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 중 많은 해석은 현대 과학보다 앞선 것으로, 태양 이전의 빛과 나중에 천체에 부여된 역할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봅니다.
<과학적 우주론 개괄>
우주론에서 별들이 빅뱅 이후 만들어졌는데, 성경대로 45억 년 전 지구와 태양과 달과 태양계 그리고 모든 별들이 만들어졌다면, 태양계 이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별들과 은하들에 대하여 창조론은 어떻게 해석하고 그 불일치를 인식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창조론 신학과 현대 우주론의 교차점에 있는 핵심적이고도 난제입니다. 이 질문은 별과 은하의 기원을 지구보다 수십억 년 앞서 설정하는 과학적 연대기와 지구가 별보다 먼저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성경적 이야기(창세기 1:1-19) 사이의 긴장감을 다룹니다. 다양한 창조론적 모델이 이러한 명백한 연대기적 불일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살펴보며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저의 이전 글에서 여러번 언급했기에 빅뱅과 우주 팽창론에 대해서는 다시금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의 논지 전개를 위해 주류 우주론에 따른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빅뱅은 138억 년 전에 발생했습니다.
• 최초의 별(종족 III 별)은 그로부터 수억 년 후에 형성되었습니다.
• 은하와 초은하단은 중력적 군집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 태양, 지구, 달을 포함한 태양계는 별과 은하가 이미 형성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약 45억 년 전에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지구가 우주 역사에서 매우 늦게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장과 창조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1일차: 빛이 창조됨.
2. 2일차: 물이 궁창으로 나눔.
3. 3일차: 땅이 나타나고 식물이 창조됨.
4. 4일차: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심.
5. 5일차: 바다와 하늘의 생물들이 창조됨.
6. 6일차: 육지의 동물과 인간이 창조됨.
여기서는 빛이 태양보다 먼저 존재하고 별이 지구보다 나중에 존재하는데, 이는 과학적 모델과는 정반대입니다.
창조론적 모델이 이러한 불일치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창조론의 해석들입니다.
1. 젊은 지구 창조론(YEC)
• 해석: 지구, 별, 은하를 포함한 전체 우주는 약 6,000년에서 10,000년 전에 문자 그대로 6일(24시간) 동안 창조되었습니다.
• 별보다 먼저 지구가 창조되었다: YEC는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간주합니다. 지구가 먼저 창조되었고, 태양, 달, 별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 별빛 문제: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YEC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설명을 제시합니다.
▹ 초자연적인 별빛의 창조: 하나님께서 이미 지구로 향하고 있는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 중력 시간 팽창 또는 화이트홀 우주론: 물리학자 러셀 험프리스가 제안한 이론으로, 창조 과정에서 우주의 여러 부분에서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고 주장합니다.
▹ 겉보기 연령 이론: 아담이 성인으로 창조된 것처럼, 우주도 성숙하게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불일치에 대한 대응: YEC는 현대 우주론과의 불일치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더 높은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은 성경을 통해 해석되어야 합니다.
2. 오랜 지구 창조론(OEC)
• 해석: 우주의 나이는 수십억 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시기에 직접 생명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는 연대순이지만 유연한 틀로 해석됩니다.
• 지구 이전의 별: OEC는 별과 은하가 지구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주장하며, 이는 과학적 데이터와 일치합니다.
• 창세기 1장 4일: OEC는 “별들도 만들었다”는 말을 기능을 부여하거나 이미 이전에 창조된 것을 보이게 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 태양, 달, 별들은 4일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대기가 맑아질 때까지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 화해: OEC는 창세기 1장이 물질적 연대기보다는 기능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모순을 보지 않습니다(휴 로스, Reasons to Believe 참조).
3. 지적 설계(ID)
• 해석: 지적 설계는 창조의 연대기가 아닌 우주의 탐지 가능한 설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 지구나 우주의 나이에 대한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 지구 이전의 별: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받아 들여짐.
• 성경적 해석: 개별 신념 체계에 따라 결정됨. 지적 설계 지지자 중 일부는 YEC, 다른 일부는 OEC 또는 TE입니다.
• 불일치 문제: 창세기 연대기보다는 생물학적 복잡성과 미세 조정에 초점을 맞춘 지적 설계 방법론의 핵심이 아님.
4. 유신론적 진화(진화적 창조론)
• 해석: 하나님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우주와 생명체를 창조하셨습니다.
• 지구 이전의 별: 과학적 우주론과 완전히 일치함.
• 창세기 1장: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 상징적인 것으로 이해됨.
• 넷째 날은 별들이 언제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문자적인 진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순서를 보여주는 문학적/신학적 장치로 여겨짐.
• 불일치: 창세기 1장은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신앙의 선포이므로, 모순은 존재하지 않음.
유대적 해석: 유대 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창세기 1장이 과학적이 아니라 신학적이라고 인식함.
•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와 마이모니데스는 모두 우화적, 철학적 해석을 강조함.
• 첫째 날의 “빛”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 본질이었으며, 넷째 날의 별들은 최초의 창조가 아니라 역할 할당을 나타냄.
• 라시와 후대 주석가들은 연대기가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질서에 중점을 둔다고 지적함.
제럴드 슈뢰더와 같은 현대 유대인 사상가들은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상대론적 시간을 적용하여 창세기와 빅뱅 우주론을 조화시킵니다. 그는 창조의 6일이 우주적 기준틀에서 수십억 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학적 및 해석학적 성찰
• 문자주의적 해석(YEC)은 창세기와 과학적 우주론 사이의 강력한 모순과 씨름해야 하며, 종종 초자연주의나 변형된 물리학을 언급합니다.
• 비문자주의적 해석(OEC, TE, 유대 전통)은 창세기 1장을 과학적 역사가 아닌 문학적 신학으로 보기 때문에 갈등을 느끼지 않습니다.
• 초점은 하나님이 별들을 언제 어떻게 창조하셨는지가 아니라, 그분이 별들을 창조하셨고, 창조물에 목적, 질서, 그리고 아름다움을 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별들이 지구보다 수십억 년 앞서 존재했다는 주장은 현대 천문학에서 확고한 결론입니다. 창조론적 모델은 성경, 과학, 그리고 해석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합니다.
• YEC: 지구의 우선권을 주장하고, 과학에 도전하며, 신의 개입이나 가속된 시간에 호소합니다.
• OEC: 넷째 날을 기원이 아닌 기능으로 해석하여 창세기와 과학을 조화시킵니다.
• ID: 질문을 회피하고 설계의 생물학적 증거에 초점을 맞춥니다.
• TE: 과학적 우주론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창세기를 신학적 서사로 간주합니다.
<창조론과 네가지 우주의 힘과의 관계>
그렇다면 우주에서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물질과 우주의 구조에 네 가지 힘 중력, 강력, 핵력, 전자기력은 창조론에서는 첫째날에 만들어진 것인가요? 아니면 네째 날에 만들어진 것인가요? 현대 우주론에서 네 가지 기본 힘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력 – 시공간의 구조와 은하, 별, 행성의 운동을 지배합니다.
2. 전자기력 – 전기, 자기, 빛을 지배하며 원자와 분자에 필수적입니다.
3. 강핵력 – 쿼크를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형성하고 원자핵을 고정합니다.
4. 약핵력 – 별의 방사성 붕괴와 핵융합을 담당합니다.
물리학에 따르면, 이러한 힘은 초기 우주의 빅뱅 직후 매우 짧은 시간(약 10⁻⁴³~10⁻¹²초) 동안 나타났습니다. 창조론 모델은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힘의 출현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1. 젊은 지구 창조론 (YEC)
• 첫째 날 창조: YEC는 일반적으로 모든 물리 법칙, 힘, 상수가 첫째 날(창세기 1:1-5)에 창조되었다고 믿습니다.
▹ “빛”(예히 또는)의 창조는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에너지, 물질, 그리고 이를 지배하는 법칙의 시작으로 간주됩니다.
▹ 하나님은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 물리학의 기초 구조를 확립하셨습니다.
• 넷째 날: 넷째 날, 하나님은 하늘을 빛(해, 달, 별)으로 채우셨지만, 그 구조와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2. 오래된 지구 창조론 (OEC)
• 우주는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물리 법칙은 초기 창조 이후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받아들입니다.
• 창세기 1장 1절을 하나님께서 물리적 우주와 그 근본적인 힘을 창조하신 행위로 해석합니다.
• 이러한 힘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을 때 확립된 자연 질서의 일부로 여겨집니다(아마도 빅뱅과 일치했을 것입니다).
3. 지적 설계 (ID)
• 네 가지 힘의 미세 조정이 지적 설계의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 힘이 언제 창조되었는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지만, 정확한 측정은 의도적인 설계를 시사한다고 강조합니다.
• 많은 지적 설계 이론가들은 빅뱅의 시간선을 받아들이지만, 상수와 힘들이 무작위적인 출현보다는 지적인 원인을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4. 유신론적 진화 (TE)
• 빅뱅과 우주 급팽창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입니다.
• 신이 우주의 초기 순간(별이나 지구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에 네 가지 힘의 출현을 정하거나 작동시켰다고 믿습니다.
• 창세기는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이해됩니다. “빛”의 창조는 물리적인 빛 자체가 아니라 신적인 질서로 해석됩니다.
창조론에 따르면 네 가지 힘은 언제 창조 되었습니까?
• YEC는 힘의 창조를 초기 창조 행위의 일부로서 첫째 날에 위치시킵니다.
• OEC, ID, TE는 힘의 출현을 4일차가 아닌 빅뱅 또는 초기 창조의 순간과 연관시킵니다.
• 4일차는 태양, 달, 별들로 우주를 채우는 것에 관한 것이지, 그것들의 존재를 지배하는 물리적 법칙이나 힘을 창조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 창조 연대표와 네 가지 힘의 출현에 관련하여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은 6일간의 창조 과정을 즉 주요 사건들이 발생한 시점을 보여줍니다.
• 첫째 날, 하나님은 빛 (예히 또는 빛)을 창조하셨고, 많은 창조론적 관점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을 창조하셨습니다.
• 넷째 날은 해, 달, 별의 창조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이전의 창조 행위로 이미 형성된 우주를 채웠습니다.
이 구조는 초기의 틀(1~3일)이 어떻게 채워지고 완성되는지(4~6일)를 시각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주의 네 가지 근본적인 힘, 즉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의 발생 시기는 중요한 신학적, 과학적 함의를 지닙니다. 현재의 과학적 합의에 따르면, 이러한 힘은 빅뱅 직후, 특히 10⁻³²초 이전에 1초도 채 되지 않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힘의 급격한 분화는 우주의 초기 순간을 형성하고 물질, 원자 구조,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주의 대규모 구조 형성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창조론의 틀 안에서, 다양한 모델들은 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YEC)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힘이 창조의 첫째 날, “빛이 있으라”(창세기 1:3)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일부로 창조되었으며, “하늘과 땅”(창세기 1:1)을 창조하는 최초의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빛과 우주의 물리적 질서(그 지배하는 힘을 포함)는 태초에 동시에 확립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직접적인 창조 행위를 반영합니다.
옛 지구 창조론(OEC), 지적 설계론(ID), 유신론적 진화론(TE)은 주류 과학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르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힘이 창조의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났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출현을 하나님의 인도에 따른 과정으로 해석하거나, 우주의 자연 질서 안에 신이 심어놓은 의도적인 틀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모델들은 이러한 힘의 출현을 창조 4일째와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4일째는 하늘이 해, 달, 별들로 가득 찬 시점으로 이해되며, 이 별들은 창조 이야기 초기에 이미 확립된 물리적 법칙과 힘에 따라 작동합니다.
요컨대, 모든 창조론적 해석은 우주 구조를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힘이 하나님의 의도의 결과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YEC는 창세기 1장에서의 기원을 강조하는 반면, OEC, ID, TE는 우주 자체의 기원 또는 그 근처에서 기원을 설정하여 초기 우주의 과학적 연대기와 더욱 밀접하게 일치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창세기 1장에 대한 더 광범위한 신학적 해석, 특히 신적 인과관계와 자연 과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반영합니다.
<글을 맺으며: 창조 탐구가 주는 기쁨과 환희 속에서>
QT와 성경 읽기도 끝없는 기쁨을 줍니다. 더불어 존재하는 우주에 펼쳐진 하나님의 비밀 코드를 해독하고 알아가는 기쁨은 훨씬 더 큽니다. 그 비밀 코드는 창세기 1장에 있습니다. 창조의 넷째 날은 창조 서사에서 신학적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주의 형성과 그 충만함을 연결하고, 자연에 신적 리듬을 심어주며, 자연주의적 가정들을 무너뜨립니다. 프레임 가설, 기능적 우주론, 또는 성전 신학의 관점에서 보든, 창세기의 순서는 시간, 빛, 그리고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확증합니다. 이는 우연에 맡겨진 우주가 아니라 신적 섭리로 다스려지는 우주를 드러냅니다. 태양보다 먼저 빛을 창조하고 태양의 시간 측정자보다 먼저 생태계를 창조함으로써, 하나님은 고대와 현대의 우상 숭배를 모두 뒤집으시고, 창조가 자연 자체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서 비롯되었음을 인류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넷째 날은 과학적 모순이 아니라 심오한 신학적 확증입니다. 우주는 질서 있고, 시간은 신성하며, 모든 창조물은 창조주를 가리킵니다.
세속적 우주론이 생명을 별의 먼지로 축소하는 시대에, 창세기는 우리가 단순히 시간과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신성하게 건설되고 목적이 주도되며 사원과 같은 우주의 참여자임을 일깨워줍니다. 온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25년 5월 3일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씀
(특별계시를 탐구하는 신학자가 만물 속에 밝혀진 일반계시를 말하는 과학자를 만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집니다. 지난 이틀은 손자와 함께 하는 큰 즐거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기쁨과 비견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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