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조망] 미국 PL480: 한국 기아 극복과 경제 성장의 50년 여정 » 한-미수교 140년의 근현대문명사 리뷰-23 »
한국이 전쟁후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릴 때에 미국 정부는 기아에 처한 우리에게 상당량의 양식을 무상 지원해 주었다. 이 지원 프로그램이 ‘PL480’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후진국에 무상으로 제공해 주는 제도였다. 이로서 한국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기아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로인해 산업화로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호혜적 무상 지원의 배경과 그 결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리뷰해 본다.
미국이 한국에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제공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 전쟁(1950~1953)으로 처절하게 파괴된 산업시설과 농업 기반이 무너진 상태였기에 한국은 정상적인 식량 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그로인한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에 처해있었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양식 문제의 해결과 산업 개발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당시 어떤 외신 기자는 한국의 참상을 취재한 후에 이같은 기사를 썼다. “한국은 앞으로 100년이 되어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라며 비관했을 정도였고 다른 외신 기자는 한국의 부패와 무질서 상태를 보고 “쓰레기 더미에서는 장미꽃을 피울 수 없다”라고 혹평했었다.
그같이 처한 양식난과 경제 상황을 보고받은 미국 정부는 한국에 양식을 무상 제공해 주기로 결정하였다. 미 정부의 지원 근거 법령은 ‘미국공공법 480호’(PL480, 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nd Assistance Act of 1954)로서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에 기안되고 시행했다. 이 대외 정책은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 이후에도 승계되어 지속되었다. 이러한 무상 지원을 받은 대표적 나라들로는 인도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아프리카의 이집트, 에티오피아, 수단과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었다.
이 지원 제도는 일명 ‘잉여농산물 원조법’ 혹은 ‘식량평화법’(Food for Peace)이다. 이 법의 취지는 미국의 농업 잉여 식량을 후진국에 무상 또는 차관 조건으로 공급하는 제도이다. 이로서 이 당시에 기아에 허덕이는 30여 개 나라들에게 미국은 약 1억6백만톤의 양식을 지원하였다. 2차대전 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독립된 나라들 중에 양식난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이 적지 않았다. 세계는 2차대전 후에는 ‘공산진영’과 ‘자유진영’ 간의 ‘냉전시대’로 돌입되면서 가난한 나라들이 공산화의 대상이 되었고 적화가 확산되는 추세였다.
미 정부는 지정학적 전략으로 한국을 공산화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식량 원조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국내 농업 잉여(특히 곡물)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지원 프로그램은 미국의 전체 원조 페케지의 일부로서 경제, 군사 지원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었다. 이러한 지원 제도로 한국이 받은 규모는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약 18억달러에 달하는 식량이었다. 그 당시 가치로는 상당한 규모였다. 그 지원 양식종류는 밀, 옥수수, 면화, 대두유, 탈지분요, 설탕 등이었다. 지원 형태는 무상분으로 약 30%, 차관분으로 약 70%였다. 약 20여 년에 걸쳐서 지원 받은 곡물의 공급량은 약 1,000만 톤 이상(1955~1972)으로 그 당시 한국의 식량난 해소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이 당시에 한국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못 갖고 오는 학생들이 약 30% 정도였다고 한다.
필자는 1960년대의 초등학교 시절에 미국이 제공하는 잉여농산물 중에 탈지분 분유와 옥수수 빵을 배급받고 자라난 세대였다. 그때에 미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민간 자선 단체와 교회에서도 많은 물자들을 제공했고 특히 전쟁 고아들을 지원해 주었다. 이러한 식량 부족과 전쟁 고아들의 보호 문제는 북한도 동일하였기에 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이 양식을 비롯한 많은 물자를 후원해 주었으며 특히 전쟁 고아들을 소련과 동구권 여러 나라들에게 위탁 양육시킨 바가 있었다. 참고로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 시에 전 인구의 약 10% 이상이 기아로 죽어 갈 때에 김정일은 무대책으로 일관했으나, 미국은 인도적 측면에서 유엔 식량기구(WFP)를 통해 가장 큰 규모로 북한 주민에게 1995년부터 2009년 사이에 약 250만톤(9억달러 규모)를 지원한 바가 있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상당량의 양식 후원을 받기 시작한 때는 1954년부터 1960년대 초반이었다. 이때는 절대빈곤 시기였다. 그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아프리카의 신생 공화국인 ‘가나’보다도 못 사는 가장 가난한 나라였었다. 그러나 그후 1960년대 초에 정부가 바뀌면서 박정희 정부가 경제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경제가 점차 나아졌다. 이어서 두 번째의 전환 단계로 접어들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걸쳐서 경제 성장이 급진전되면서 원조의 형태도 점차 차관 형태의 유상 지원으로 바뀌었다. 이로서 한국은 산업화의 초기 재정 기반을 구축할 수가 있었다. 이에 미국은 1970년대 초에 ‘PL480’을 개정해서 원조를 유료화했다.
한국은 이를 달러나 현지 통화로 지불하며 자본 집약적인 ‘녹색혁명’ 농업을 도입했다. 정부는 쌀 가격을 시장가 이상으로 보장하는 정책을 병행하여 농민들이 쌀 재배를 촉진시켰다. 초기에는 미국 양식 원조 의존도가 여전히 높았었다. 이당시 박정희 정부는 양식의 자급화를 위해 온 국력을 쏟아부었다. 다름아닌 벼 종자 개량 사업에 전력을 다한 것이었다. 마침내 ‘통일벼’라는 고수확 개량 종자를 1966년에 성공시켰고 1972년부터는 농가에 개량 벼 종자인 ‘통일벼’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 벼는 재래종 벼씨보다 많은 낱알을 만들어 냄으로 쌀 추수량을 급증시켜 쌀 가격 인하로 이어짐으로 일반인들도 쌀밥을 먹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한국 청소년들의 영양 상태도 양호해지면서 평균 신장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전환 단계로는 2007년의 ‘한미자유무역협정’(KOR-US FTA)이 체결된 후 현재까지 시행됨으로 과거 50여년 동안의 ‘잉여농산물원조’는 상호간 무역 거래 형식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이는 미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미국산의 농축산 수입 관세의 점진적 철폐와 시장 개방을 통해 미국 농축산물 수출을 촉진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대신에 한국의 공산품 수출에는 저율 또는 무관세로서 상호 호혜적 무역협정이 합의되었다. 이로서 2024년 기준으로 약 1,971억 달러의 경이적인 무역 거래(대미 수출 1,316억 달러/ 대미 수입 656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한.미 양국은 50여 년의 후원과 교역 활동을 거치면서 초기에는 일방적으로 수혜자였던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면서 상호 호혜적 파트너가 되어 미국 농축산업에도 큰 수익을 제공하게 됐다. 다름아닌 ‘한.미자유무역협정’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2017년에는 70억 달러, 2022년 95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에게 한국은 5위의 농산물 수출 시장으로 급부상되었다. 주요 수출 품목은 소고기, 옥수수, 대두, 돼지고기, 밀, 신선 과일 등이다.
이제는 한국이 미국의 농축 산업에 큰 영향력을 주고있다. 지난 날에는 가난한 나라로 수혜를 일방적으로 받았지만 반세기 만에 미국의 농축산업에 큰 기여를 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한국의 농축산업의 입장에서는 값싼 미국산이 수입됨으로 국내산의 경쟁력이 떨어져 생산이 위축된 면도 있지만, 소비자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값싼 농축산물을 취하므로 경제적 편익을 주고 있으며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어졌다.
이로서 또 다른 식생활의 변화가 나타났다. 오랜 동안 주식이 쌀이었으나 이제는 밀로 전향됨으로 쌀 소비가 적어지고 밀 소비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급증함으로 값싼 미국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로인해 현재 한국의 농산물 자급률이 70%에서 46%로 하락했다. 그러나 주요 양식인 쌀의 경우는 역설적으로 정부 비축 재고가 2024년 8월 기준으로 115만톤이고 민간 부문의 쌀 재고량도 71만톤 수준으로 쌓여있으며 쌀 보관비만 연간 4천억에 이를 정도로 쌀의 과잉 생산과 재고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불과 50여년 만의 이룬 5병 2어의 기적이 된 것이다. 이런 기적을 이룬 나라는 2차대전 이후 독립된 100여개 나라들 중에 유일무이하다. 이제는 농업 부문도 세계화되어 상대적 유익(Comperative Adventage)을 추구함으로 ‘K-Food’로 세계화하고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짐)
[핵심 키워드]
PL480, 한국 경제 성장, 식량 원조, 통일벼, 한미 FTA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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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석진 목사/ 본지 시사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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