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

이 땅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거라사 지방의 광인과 같은 것입니다. 사탄이 속이고 죽이며 묶어서 괴로운 인생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하며, 생명을 살려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능합니다...

[스피릿저널] 한 생명 » 누가복음 8:26~28 » 

누가복음 8장 26절~28절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랜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님을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에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오늘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한 생명”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라는 숫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것 같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한 생명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숫자의 개념을 넘어서, 한 생명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하심,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주님이 가지신 그 한 생명을 향한 마음을 우리도 갖게 하시고, 주님의 그 사랑하는 애틋한 애정을 우리도 갖게 해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한 생명의 가치와 주님의 관심

미국 워싱턴 D.C.에 가면 랑팡 플라자(L’Enfant Plaza)라는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이 역은 네 개의 지하철 노선이 만나고 서로 환승하는 가장 큰 역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들고 붐비는 곳이며, 미국 연방 청사로 출근하는 고학력 출신의 고급 인력들이 많이 이용하는 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평범하게 생긴 한 남자가 청바지 차림에 야구 모자를 쓰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한쪽에 서서 43분 동안 연주를 했는데, 이 사람이 43분간 연주한 바이올린 케이스에는 고작 32불이라는 돈이 놓여 있었습니다. 미리 설치해 둔 카메라를 분석한 결과, 43분 동안 연주하는 동안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모두 1,097명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잠시라도 서서 음악을 듣는 사람은 단 일곱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조슈아 벨(Joshua Bell)**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용한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악기 값만 하더라도 40억 원짜리입니다. 이 사람이 3일 전에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연주를 가졌는데, 그때 가장 구석진 좌석 값만 무려 100불 이상이었습니다. 조슈아 벨이 평소 받은 개런티를 생각해 보면, 43분을 연주했다면 그는 약 4만 3천 불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1분에 1천 불짜리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보니, 당시 달러 환율을 1,455원 정도로 계산했을 때 4만 3천 불은 약 6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입니다. 이렇게 값비싼 연주자였지만, 거리에 악사로 43분간 연주했을 때 그의 바이올린 케이스에는 고작 32불이 놓여 있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허름한 옷이 아니라 검정 연미복을 입고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40억 원짜리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격식을 갖추고 비싼 입장료를 내고 연주를 듣고 감동을 받으며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사람들은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포장하고 있는 포장지를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야기는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전할 때 얼마나 많은 군중과 인파가 몰려들었는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19절에 보면, 그 수많은 인파 속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게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다고 전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냐”**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바로 내 어머니요 형제라고 하시면서 어머니도 만나지 않고 형제들도 만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그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시고 제자들에게 급히 가자고 재촉하십니다. 그리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하시며 갈릴리 바다를 건너 이방 지역인 거라사에 귀신 들려 공동묘지에서 절규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 한 생명을 만나러 가십니다. 그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시는 이야기를 여기서 열거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생명을 찾아가신 주님

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수많은 인파를 뒤로하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이방 지역에 가서 그 한 사람을 만났을까요? 그 한 생명에 그렇게 몰두하고 관심을 집중하며 그리로 가고자 서두르셨을까요? 저는 앞뒤 모든 문장을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이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신 이유는 그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습니까만, 예수님께서는 이 한 생명을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를 찾아가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으신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보잘것없었습니다. 귀신 들려서 손가락질을 당하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은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에서 살았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한 사람을 만나러 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했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물의 가치는 포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의 가치는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의 겉모습, 외모, 환경, 지위, 가진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생명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생명을 생각하고 귀히 여기셔서 그 한 생명을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그 마음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아무리 가치가 없어 보이는 그 거라사의 미친 사람에게도 뜨거운 가슴과 애정을 가지셨기에, 수많은 군중을 뒤로하고 거라사에 살고 있는 이 광인을 만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귀신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 있었고, 가족도 버린 사람이었으며, 누구 한 사람 돌아보는 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0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귀신은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셀 수 없는 악한 귀신이 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완전히 파탄 난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귀신들을 인근에 있던 2천 마리 돼지 떼에게 보냈습니다.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자 2천 마리 돼지는 언덕 비탈길로 향해 내리달려 바다에 빠져 모두 몰사했습니다. 예수님은 2천 마리 돼지를 죽이고 한 생명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2천 마리의 돼지라면 현재 가격으로 대략 20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은 20억 원의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 한 생명을 건지신 것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는 물질을 초월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물질의 가치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향한 희생

사람들은 젊어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지만, 늙어서는 번 돈을 다 병원에 갖다 바치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도 가진 모든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런데 이 육신의 생명 안에 있는 고귀한 영혼의 생명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 가치를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37절에서 39절과 마가복음 5장 14절에서 17절에 동일한 내용이 있습니다. 돼지가 몰사하는 광경을 본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여러 마을에 다니며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돼지가 바다에 몰사한 것을 보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그 지방에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배척을 당하면서도 그 귀신 들린 한 사람을 구원해 주시고, 한 생명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 위에 다 내어놓으신 분입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에 바울 사도는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인생을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사탄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온몸이 찢겨지고, 끝내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쏟으시며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희생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런 수고와 희생을 감당하셨겠습니까? 바로 거라사에 살고 있는 광인(미친 사람)처럼, 사탄의 세력에 의해서 헤매는 우리 인생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11절은 **”도둑(사탄)이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한 생명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놓고, 우리 인생들을 사탄으로부터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을 찾아 나서라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도 여러분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하기를 축복합니다. 한 생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그 한 생명을 사랑하신 것처럼, 내 마음을 쏟아서라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좇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 마음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생명을 그렇게 귀히 여기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한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히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그 한 생명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들을 뒤로한 채 급히 제자들을 재촉하여 바다를 건너가셨습니다. 그들이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주님이 그렇게 급하게 가서 만나려 했던 이유는 바로 한 생명, 거라사의 귀신 들려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광인뿐만 아니라, 우물가에 미리 가셔서 사람들의 낯을 피해 대낮에 물을 길러온 수가성 여인을 기다리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 여리고에 들러 세리장 삭개오를 찾아가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십자가를 생각할 경황도 없을 텐데, 세리로 손가락질받던 삭개오 그 한 사람을 찾아가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귀중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숫자로 사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의 부흥도 소중한 사역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2절에서 14절에 예수님은 양 100마리 중 하나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아 헤매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도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그 한 사람, 소중한 그 한 영혼, 한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여 하나님 자녀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한 소중함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시는 주님의 심정을 우리도 소유해야 합니다. 평택의 66만 영혼 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여 구원하기로 작정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들을 다 구원하고 찾아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도 중요하지만,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헤매시는 주님의 심정을 우리도 품어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우리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거라사 지방의 미친 사람 같았던 우리 인생을 주님이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거라사 지방의 광인과 같은 것입니다. 사탄이 속이고 죽이며 묶어서 괴로운 인생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하며, 생명을 살려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능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베스트 초청 축제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한 생명 이상 찾아서 주님의 품에 안겨드릴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주님과 같이 뜨거운 가슴을 품으시고, 뜨거운 사랑을 안으십시오. 우리 이웃을, 친구를, 부모, 형제를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부모, 형제, 이웃, 친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다 구원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11월 23일은 축제의 날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토록 기뻐하시고 천국의 천사들이 비상이 걸릴 것 같은 기쁨으로 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kw-DdJoAu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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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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