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A 협정, 한미 동맹의 법적 기반과 과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불평등한 조항을 좀 더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개정을 합의함으로 SOFA 협정을 평등화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모든 분야에 선진화되었기에, 한미방위조약의 군사적 범주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외교 등의 다양한 수평적 공동체로 발전시켜야...

[시대조망]  SOFA 협정, 한미 동맹의 법적 기반과 과제 » 한-미수교 140년의 근현대문명사 리뷰-24 » 

한국이 미국과 1882년에 수교를 맺은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협정들을 맺었습니다. 첫 협정으로는 1954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 1966년 7월에는 ‘주한미군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 SOFA)을 체결했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의 특검팀이 평택 미군 기지에 들어가 압수수색을 한 것이 양국 간에 문제가 되어, 주한 미군 사령부에서 이에 대해 항의하면서 이는 지난날 맺은 양국 간의 일명 ‘SOFA’ 협정을 어긴 것이라며 해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협정의 내용과 체결 배경은 무엇인지 리뷰해 봅니다.

먼저 그 배경과 목적은, 모두 제31조항에 이르는 ‘SOFA’는 한국의 안보를 미국과 공동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협정의 형사 관할권 조항이나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 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기에 이를 법적으로 해결 및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협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1991년, 2001년 등 개정을 통해 한국의 주권과 국민의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어 상황에 맞는 체결 내용을 개정하였습니다. 그 협정문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SOFA 협정의 목적과 적용 범위를 살펴보면, 주한미군(군인, 군무원, 그 가족 포함)의 법적 지위와 한국 내에서의 활동을 규정한 것으로서 1953년에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운영을 지원하고자 한 것입니다. 둘째, 이 협정의 형사 관할권에 대한 것으로서, 주한 미군 및 그 가족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관할권 분배를 규정한 것입니다. 공무 중 발생한 범죄는 미국이 1차 관할권을 가지며, 공무 외 범죄는 한국이 관할권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살인, 강도 같은 중범죄는 한국이 우선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1991년 개정) 셋째, 군 시설 및 부지 사용권으로, 한국은 미군에게 기지와 훈련장 등 필요한 시설과 부지를 제공하고 미군은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며 시설을 사용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넷째, 미군은 각종 세금 및 관세를 면제받습니다. 다섯째, 군사 작전 및 지원으로, 이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왜 양국은 ‘SOFA 협정’을 체결했을까? 그 이유는 첫째, 한미 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 주둔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체결된 것입니다.

둘째, 주한 미군의 안정적 운영으로서, 아군의 활동, 시설 사용 등을 법적 보호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해 주둔 환경을 안정화한 것이며, 한국과 미군 간 마찰(범죄, 환경 문제 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 SOFA 협정이 적용된 대표적 사건을 알아보면, 2002년 6월에 발생한 일명 ‘효순이, 미선이’의 탱크 압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협정의 문제점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이 사건 발생 직후 가장 큰 논란은 미군의 재판 관할권이었습니다. ‘SOFA 제22조’에 따르면 미군이 임무 수행 중 발생시킨 사건은 미국 측이 1차적 재판권을 가집니다. 그에 비해 한국 측은 ‘임무 외 개인적 범죄에 대해서만 재판권을 갖는다’는 내용으로 되어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훈련 중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 협정에 따라 미국 측이 재판권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는 미군 법정에서 진행되었는데, 2002년 11월 장갑차 운전병과 관제병 모두 무죄 판결되었습니다. 이 판결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대규모 촛불시위와 SOFA 개정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후 SOFA 운용 절차 일부를 개정하여, 사고 발생 시 한국 당국의 초기 수사 참여 확대와 사고 현장 접근 및 증거 확보 절차를 개선했습니다. 하지만 조약 자체의 근본 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질적인 변화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한국 김대중 정부는 미국에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였으나, 조약 자체의 전면 개정이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이때 미국 정부의 반응은 주한미군 사령관과 주한 미국 대사가 공식 사과를 표명했지만, 미군 재판 결과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2003년 초에 다음과 같은 조약 개선안을 합의했습니다. “사건 초기에 한국 경찰의 초기 수사 참여를 확대하며, 피의자에 대해 미군 측이 한국 당국에 신속히 사건 관련자 인적 사항을 제공한다. 피의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 절차를 간소화 및 조기 지급한다.” 였습니다.

그 후 SOFA 운용 관련 한미 합동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운용상 개선 수준으로, 제22조의 재판권 조항 자체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반미 정서가 폭발적으로 표출된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한국 시민운동의 새로운 형식인 ‘촛불시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후 2008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등으로 이어져 한국의 시민 참여형 정치문화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였으며, 일부 시민 단체는 이를 통해 반미주의를 본격화하며 확장시켰고 저들의 운동 방향을 정치화시켰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한미의 ‘SOFA’ 제도는 과거 이미 성사된 일본과 유럽의 경우와 같이 거의 동일한 조건으로 맺어졌습니다. 일본과의 차이점은 일본에서는 1960년에 체결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군의 주둔지는 오키나와와 같은 특정 지역의 기지 문제로 인해 추가적인 보완 협정이나 합의(예: 환경 보호 조항, 지역 지원 등)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의 미 주둔 지역은 전국에 걸쳐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성을 갖고 있습니다.

유럽과의 이 같은 협정은 1959년에 ‘NATO SOFA’에 따라 다자간 맺어졌습니다. 또 NATO국들이 아닌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양자간 맺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들 나라들과의 차이점을 정리하면, 한국의 SOFA는 1966년에 체결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며 특히 형사재판권과 환경 문제, 노동 문제들이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일본과 유럽의 SOFA는 지역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세부 조항이 다르며, 유럽의 경우 NATO라는 다자간 틀 안에서 협정이 운용되는 점이 한국이나 일본과 다릅니다. 일본은 오키나와와 같은 특정 지역의 민감한 문제로 인해 SOFA 관련 논의가 지역 정치와 얽히는 경우가 많고, 유럽은 NATO라는 다국적 동맹의 틀 안에서 보다 표준화된 협정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국과의 SOFA 협정은 미군이 주둔지에서 발생시키는 범죄 사건을 미군의 신분을 유리하게 보존하려는 취지가 강한 반면에, 피주둔 국가는 자국민이 피해를 유리하게 보호하려는 경향이 작용하기에 양국 간에 충돌의 여지가 많은 것이 공통된 현실입니다. 하지만 피주둔 국은 안보 문제가 더욱 중요한 관건이기에, 형사 재판권의 사안인 경우에는 주둔국의 법적 지위가 우선적으로 보호되는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불평등한 조항을 좀 더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개정을 합의함으로 SOFA 협정을 평등화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모든 분야에 선진화되었기에, 한미방위조약의 군사적 범주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외교 등의 다양한 수평적 공동체로 발전시켜 상호 호혜적 관점이 더욱 반영되는 관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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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목사/ 본지 시사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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