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운명의 샅바를 움켜잡다”

절대고독과 침묵 속에서 외부 유혹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었던 베토벤. 그는 당시의 들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작곡한 작품인<라즈모프스 현악 4중주>악보에 남긴 작은 메모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하게 된다. ”소리를 빼앗긴 자는 진정으로 듣게 되리라!”


[클래식산책] 베토벤 “운명의 샅바를 움켜잡다” »  베토벤은 음악의 도시 빈에서, 처음에는 작곡보다는 피아니스트연주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연주 스타일 때문에 빈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만큼 그는 일약 유명 스타가 되었고, 연주와 작곡의 의뢰를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연주가와 작곡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고난을 겪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청력의 상실이었다.

음악가에게 있어서 청력의 상실은, 마치 화가에게 눈이 멀어져 볼 수 없고, 무용수에게 다리를 잃어 걸을 수 없게 된 것처럼, 베토벤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연주 활동이나 작곡 활동을 쉬지 않았다.

그는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오히려 절대고독과 자기 마음속의 내면 귀를 통해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절대고독과 침묵 속에서 외부 유혹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었다. 당시의 들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작곡한 작품인<라즈모프스 현악 4중주>악보에 남긴 작은 메모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하게 된다. ”소리를 빼앗긴 자는 진정으로 듣게 되리라!”

베토벤 "운명의 샅바를 움켜잡다"

수없이 많은 치료를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귓병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1802년, 의사의 권유로 그는‘하일리겐슈타트’라는 시골의 온천으로 휴양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베토벤이 가지고 있었던 만성 복통은 효험이 있었으나, 청력은 여전히 좋아지지 않아서 절망에 빠지게 된다. 급기야 절망에 빠진 그는 두 동생에게 유서를 써서 보냈다. 학자들은 그것을 <하일리겐슈타트유서>라고 부른다.

유서의 전반부에서 베토벤은 현실 앞에 굴복하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유서의 후반부에서는 마음을 다잡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붙잡고, 예술과 음악을 위해서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경건한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작성한 그의 유서를 통해서, 절대 절망 속에서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올 테면 오라! 불행에 용감히 맞서겠다. 나는 운명의 샅바를 움켜쥐겠다.” 그에게 하일리겐슈타트유서는 말 그대로 죽기 위한 유서가 아니라 살기 위한 유서가 되었다.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를 썼던 그해 여름에 베토벤은 교향곡 제2번을 작곡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곡에는 그의 개인적인 절망이나 불행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음악의 멜로디가 대단히 낙천적이고 밝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그가 겪고 있었던 과거의 어두움과 절망을 떨쳐버리려는 의도적인 쾌활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당시의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교향곡에서 사용했던 제3악장의 우아하고 고상한 춤곡풍의 미뉴에트 대신에 해악이 넘치고 풍자다운 스케르쵸풍 악상을 집어넣어, 밝고도 유쾌함을 배가시키고 있다.

베토벤은 이렇게 자기에게 닥친 고난을 기쁨으로 승화시킨 작곡가였다. 스스로 자신을 영웅이라고 여기며,”영웅에겐 고통이 따른다”고 스스로를 도닥거리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그래서 그는 절망적 고난과 고통을 자신이 끌어안았다.

후대의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베토벤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신념을 가진 인간은 무한히 강한 존재이다. 베토벤은 역경에 맞선 영웅이었다.”

동영상: https://youtube.com/watch?v=OqWWpXfO7ts&si=J8PxYxbSzFvwOEcy

글: 조기칠 목사/ 본지 클레식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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