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되찾은 9. 28 수복의 마음과 대한민국의 영적 포로 현실 개탄

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우리는 전쟁으로 무너진 황무지에서 나라를 세우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세계 속에서 국격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정신과 사상은 타락했고, 일부 가치관은 병들었습니다.

[폴리틱저널] ‘서울’을 되찾은 9. 28 수복의 마음과 대한민국의 영적 포로 현실 개탄 »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다시 들으면, 우리는 2,500년 전 바벨론 강가로 마음이 끌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백성이 어느새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어,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고 잃어버린 시온,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울던 순간. 시편 137편이 전하는 비탄과 회개의 울림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상실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죄와 방심을 깨달았습니다. 역사와 인생은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사실, 인간은 풍요 속에서도 쉽게 잊고 방심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증명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우리는 전쟁으로 무너진 황무지에서 나라를 세우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세계 속에서 국격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정신과 사상은 타락했고, 일부 가치관은 병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풍요와 자유가 이제는 썩어 독이 되었습니다.

9.28. 서울 수복의 날에
한강의 새빛 둥둥섬에 칠현금을 켜며 울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중국의 소수 민족 가운데 고규려의 유민인 묘족처럼 조선족처럼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 직원 2만 5천여 명이 실직했고, 일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중국으로 원전 기술자로 나가야 했습니다. 만약 중국의 원전 기술이 대한민국을 넘어섰다고 본다면, 이는 죽쒀서 중국의 그 유명한 사자개에게 준 꼴입니다.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와 우리의 현실을 비교하면, 경각심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유대인은 상실 속에서 자기성찰을 했고, 결국 회복과 부흥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고구려 멸망 후 20만 유민은 중국으로 끌려가 오늘날의 묘족으로 밝혀졌습니다. 문화적·정체적 흡수는 곧 정체성 상실과 소수민족화로 이어졌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이 직면한 ‘소중국화’의 위험은 단순한 외교 의존을 넘어, 정신과 가치관마저 타국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특정 국가의 문화와 정치적 프레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자주적 사고와 역사적 뿌리를 경시한다면, 우리는 고구려 유민처럼 문화적 흡수와 영적 포로 상태에 놓일 수 있습니다.

외부자적 시각으로 보면,
남한 내 지방분권화의 시대는 오히려 우리에게 회복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역 공동체의 자율성과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할 때, 중앙집권적 사고와 외부 영향으로부터 독립된 정신적 뿌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 생존과 영적 회복을 위한 전략적 필요입니다.

그러나 내부자적 시각으로 보면, 아시아라는 범주에서 남한 내 지방분권화가 북경이라는 중앙정부에 깔세를 지불하는 한성으로 전락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합니다.

애국 보수의 공관적 공시적 시각으로 보면
경제적 풍요와 기술적 성취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신과 영혼을 지킬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상실과 고통 속에서 비로소 깨닫는 영적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혼란, 도덕적 해이, 외교적 압력은 바로 그 ‘광야의 시간’으로서, 우리에게 상실의 교훈을 제공합니다.
위기관리 차원의 사고가 무너지면,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망하는 것은 영향력만 미치려고 하지 경쟁력이 없고 통찰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통시적 시각으로 보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처럼, 우리도 이제 울고 성찰하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상실과 회개를 거쳐 시온을 향한 찬송과 국가적·영적 독립을 회복할 때, 대한민국은 단순한 물질적 번영을 넘어, 참된 자주성과 문화적 주체성을 갖춘 나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 노예들의 찬양보다 수준이 높은 홍난파 가곡처럼, K-가곡·K-클래식 그리고 K-찬송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대한민국, 우리는 과연 ‘시온(예루살렘)의 상실’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상실 속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경천애인(하나님 사랑)에서, 상관성은 홍익인간(이웃 사랑)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을 되찾은 9.28. 수복의 마음 서울은 소울(soul)과 같은 병음입니다. 영혼(soul, spirit)을 되찾는 길이 서울을 세계속의 서울 즉, 새예루살렘으로 가진 길을 예비한 이 땅의 자존감인 “서울의 찬송”이 되게 하는 새길입니다

김태연 교수/ 전 명지대 국제대학원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