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계발] 포도원상 생명지실: 작은 뜰에서 배운 은혜, 절제, 그리고 마지막 추수-24 »Vineyard Meditations: Grace, Temperance, and the Final Harv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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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포도원 뜨락의 상념>
몇 년 전 문지방을 넘어선 첫날, 이 집은 거의 폐가에 가까웠습니다.
들풀과 잡목이 엉켜 길을 삼키고, 포도넝쿨은 말라비틀어진 채 사계(四季)의 기억을 놓친 듯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황폐가, 성경의 오래된 언어들을 내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사야의 포도원 노래, 요한복음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의 포도원 품꾼 비유, 랍비들의 토라와 지혜의 묵상…. 뒤뜰의 작은 포도원은 어느새 성서의 장(場)이 되었고, 가지치기와 거름 주기, 종이로 싸매는 손놀림은 기도와 훈련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된 생활의 묵상기록입니다.
황량에서 결실까지, 포기에서 다시 돌봄까지—밭일의 굳센 리듬 속에서 신앙의 근육을 다시 붙듭니다.
포도나무(גֶּפֶן, gefen)와 가지(זְמֹרָה, zəmorāh)의 긴밀한 생명 연합, 뿌리에서 흐르는 진액처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생동, 그리고 “마지막 추수”라는 종말의 긴장까지. 문학과 역사, 랍비 전승과 교회사의 굴곡을 건너며, 한 송이의 열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지막 수확에 참여한다는 것이 왜 우리의 소명인지, 삶의 현장에서 천천히 밝혀갑니다.
바람은 잎을 흔들고, 계절은 가지를 단련합니다.
포도원은 안온한 풍경이 아니라 은혜와 훈련, 기다림과 결단이 엮는 살아 있는 교실입니다.
독자는 이 글에서 성경의 포도원과 오늘의 마당 사이를 오가며, “열매 맺음”이 신학적 설명을 넘어 살아 낸 시간의 무게임을 함께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흉가 같은 뜰에서 주렁진 열매까지>
처음 Wakefield에서 지금의 Wellesley로 이사 왔을 때, 이 집은 마치 흉가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앞뜰은 잡초만 무성했고, 옆뜰의 뜨락은 꽃과 잡초가 뒤엉켜 어느 것이 꽃이고 잡초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차고 위의 기도 처소로 올라가는 길목의 작은 텃밭도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었고, 뒤뜰의 텃밭 상자는 허물어져 그 형체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나는 평생 해 보지 않았던 garden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앞뜰과 뒤뜰에 잔디를 새로 심었지만, 뒤뜰이 온전히 초록빛을 입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가을이면 옆집과 집 주위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은 매일 쓸어도 끝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붙든 것은 옆뜰의 포도나무와 뒤뜰의 작은 포도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pruning (가지치기)를 해 보았으나, 꽃이 피고 작은 열매가 맺히다가 이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허탈함으로 인해 올해는 아예 포도원 가지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은 자연스레 성경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포도원>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도원에 비유하셨습니다.
“내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거늘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는가?” (사 5:2)라는 탄식 속에는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깨끗하게 하신다” (요 15:1–2)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5)는 선언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분과 우리의 관계를 가장 생명력 있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땅과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사귀, 그리고 열매가 유기적으로 하나를 이루는 신비적 연합임을 보여줍니다. 뿌리에서 흘러나오는 진액이 가지를 살리고 열매를 맺게 하듯,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여진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포도나무는 גֶּפֶן (gefen) 이라 불리며, 가지는 זְמוֹרָה (zəmorāh) 로 표현됩니다(겔 15:2). 이 두 단어는 “줄기에서 뻗어나온 생명”이라는 긴밀한 연관성을 담고 있습니다. 즉, 가지(zəmorāh)는 본질적으로 포도나무(gefen)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가지가 독립적으로는 결코 살아남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분리된 신앙은 결국 마르거나 열매 없는 껍질로 남을 뿐입니다.
랍비 문헌에서도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지혜와 토라(율법)의 관계로 자주 비유됩니다. 탈무드(ברכות Berakhot 35b) 에서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나무와 같으니, 토라는 그 진액이요, 지혜는 그 열매라”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뿌리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없이 가지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 전통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깊이 연결되며,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 15:7)이라는 구절이 바로 그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지혜를 חָכְמָה (ḥokmāh, ‘지혜’) 라고 표현하면서, 가지가 뿌리로부터 진액을 흡수하듯, 지혜로운 사람은 토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미드라쉬(שיר השירים רבה, Shir HaShirim Rabbah)에서도 “포도나무의 가지가 서로 의존하여 그늘을 이루듯, 지혜자들은 서로의 배움과 교제를 통해 풍성함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단지 개별적 가지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결국, 예수님의 선언은 단순히 “함께 있다”는 차원을 넘어 “본질적으로 연합되어 있다”는 신비를 드러냅니다. 가지가 뿌리와 줄기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 우리의 신앙과 삶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이 진정한 생명을 누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포도나무와 가지, 주인의 수고와 품꾼의 노동, 그리고 열매의 결실은 곧 우리의 신앙 여정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다시 읽어 보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에서 포도원 주인이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을 불러 같은 품삯을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포도원 주인의 은혜가 공평한 보수의 법칙이 아니라, 자비와 은혜의 법칙에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주는 또 다른 깊은 통찰이 있습니다. 포도원 농사는 아무리 정성을 들여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고, 병해충을 막기 위해 종이로 싸매고, 극상품 열매를 맺게 한다 해도, 마지막 추수에 실패한다면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된다는 원리입니다. 즉, 농부의 모든 노고는 결실로 귀결될 때에만 완성됩니다.
성경의 종말론적 맥락에서 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종말은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로 묘사됩니다(마 13:39–43). 마지막 때의 수확은 단순히 포도송이가 열리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열매 맺은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동참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종말을 사는 성도들에게 “열매 맺음”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이 됩니다.
랍비 유대교 문헌에서도 포도원은 자주 하나님의 백성과 토라(율법)의 은유로 사용됩니다.
탈무드(바바 메치아 83a)에는 이런 전승이 전해집니다.
한 랍비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포도원과 같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 품꾼으로 삼으시고, 각자에게 맡은 시간과 몫이 있다. 어떤 이는 아침부터 일하고, 어떤 이는 저녁 무렵에 불림을 받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인은 그들의 수고보다 그의 선하심에 따라 삯을 주신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비유와 직접적으로 겹쳐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단순히 노력의 양이나 시간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미드라쉬 전승에서는 포도원을 “이스라엘 공동체”로, 품꾼들을 “율법을 지키는 자와 배우는 자”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은 포도원에 들어와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이라도 부름에 응답하는 자들을 긍휼로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경적·랍비적 배경 속에서 우리는 종말론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종말은 곧 하나님의 마지막 추수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마지막 추수에서 떨어져 나가 버린다면, 마치 제때 수확하지 못한 포도송이가 땅에 떨어져 썩어버리는 것처럼, 모든 삶의 수고와 신앙의 행위가 헛되이 끝날 수 있습니다.
포도원은 단순한 농경지가 아닙니다. 농업학적으로 포도나무는 깊은 햇빛과 바람,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필요로 합니다.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거름주기와 가지치기가 필수적입니다. 꽃눈을 보호하기 위해 종이로 싹을 감싸는 전통도 있으며, 수확 후에는 다음 해를 위해 철저히 가지를 정리합니다. 포도나무는 ‘방치하면 무성하되 열매는 줄어드는 나무’입니다. 이는 곧 신앙에서도 훈련과 절제가 없다면 열매가 사라짐을 보여주는 은유입니다.
<문학과 술: 풍류와 절제, 그리고 타락>
중국 당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은 포도를 주제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葡萄美酒夜光杯
欲飲琵琶馬上催
(포도주 향기로운 밤, 빛나는 잔에 가득 차고,
마시려 하니 비파 소리와 함께 군마가 재촉한다.)
한국의 시와 문학 속에서 술과 포도넝쿨은 이중적 상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풍요와 낭만의 매개이자, 동시에 타락과 몰락의 경고로 자리해 왔습니다.
1. 고려와 조선의 시 속 술의 이미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은 가을밤 포도넝쿨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을 노래하며 인생의 유한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성찰했습니다. 포도넝쿨은 곧 풍요의 상징이면서, 계절이 바뀌면 곧 시들어가는 무상(無常)의 표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시 속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삶의 덧없음을 사색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의 많은 문인들은 포도넝쿨과 술잔을 노래하며 자연과 인생을 낭만적 풍류로 해석했습니다. 정철(鄭澈)의 가사나 송시열, 허균 등 유학자·문인들의 시에도 술은 감흥의 매개로 등장했습니다. 이때 술은 절제된 풍류 속에서 문학적 영감을 돋우는 촉매제로 기능했습니다.
2. 술과 문학적 타락
그러나 절제가 빠진 음주는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조선 후기의 여러 문헌은 기생 문화와 음주가무에 빠진 문인들의 타락을 기록합니다. 이들은 술과 향락 속에서 글을 지었지만, 그것이 문학적 성취보다는 사회적 지탄과 개인의 몰락을 초래했습니다. 술이 영감을 주는 문학적 자극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음주는 감성과 지성을 마비시켜 인간과 공동체 모두를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연암 박지원은 당대 사대부들이 술과 기생에 빠져 학문과 도덕을 잃어버린 모습을 풍자하며, 술이 낭만을 넘어서 타락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3. 술과 수필, 산문의 기록
한국 수필문학에서도 술은 자주 등장했습니다. 기행문이나 일기문학 속에서 술은 여행길의 벗이자, 고독을 달래는 수단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친 음주는 가정 파탄과 사회적 비극으로 연결되는 모습이 비판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술은 한국 문학사에서 양면적 의미를 지닙니다.
절제된 풍류와 포도넝쿨의 시적 이미지는 삶의 덧없음을 성찰하게 하며,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절제가 무너진 음주는 개인과 사회의 타락을 초래하여, 문학 속에 경고와 풍자의 소재로 등장했습니다.
결국 술은 문학과 삶에서 절제와 성찰 속에서만 풍요와 낭만의 상징이 될 수 있으며, 절제를 잃으면 곧 타락과 몰락의 상징으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한국 문학사는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서 문학과 포도주>
포도와 포도주는 풍요, 향락, 전쟁의 긴박한 순간까지 연결되며 인간의 삶을 함축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아가서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의 이름과 연결되며, 여기서 포도주(히브리어: יַיִן yayin )는 사랑과 기쁨의 은유로 자주 사용됩니다.
아가 1:2에서, “네 입술의 입맞춤이 포도주보다 나음이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랑의 친밀함이 단순한 쾌락(포도주)보다 더 깊고 달콤함을 강조합니다.
아가 5:1에서는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 내 포도주를 마시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사실 아가서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유대인들은 실제로 노래로 공연했습니다. 여기에서 포도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랑과 언약적 친밀성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는 포도주가 인생의 허무와 지혜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전도서 2:3에 “내가 내 마음으로 포도주로 내 육체를 즐겁게 하되 … 지혜로 내 마음을 다스리며 어리석음을 붙들어”라고 말합니다. 포도주를 통한 쾌락이 인생의 해답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0:19에는 “잔치는 웃기 위하여 베풀고 포도주는 삶을 즐겁게 하거니와 돈은 만사에 응답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포도주가 삶의 기쁨을 주지만, 그것이 인생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채우지는 못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잠언은 전통적으로 솔로몬의 지혜문학으로 여겨지며, 포도주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나옵니다. 긍정적 의미에서는 마음을 즐겁게 하는 축복의 선물 (잠 3:10, 포도즙이 새 포도주로 채워짐)이라고 말합니다. 부정적 의미에서는 술 취함과 방탕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이 부정적 의미의 경계를 주는 구절들을 우리는 깊게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잠언 20: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2. 잠언 23:20–21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와도 더불어 먹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3. 잠언 23:29–32
“재난이 누게 있느냐 근심이 누게 있느냐 다툼이 누게 있느냐 원망이 누게 있느냐 까닭 없는 상처가 누게 있느냐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느냐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포도주에 대한 성경 문학은 다음 세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1. 사랑의 상징 – 아가서에서 포도주는 사랑과 친밀한 관계, 기쁨을 상징합니다.
2. 인생의 허무 – 전도서에서는 포도주가 인생의 쾌락을 대표하지만, 궁극적 의미를 채우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3. 지혜의 경고 – 잠언에서는 포도주가 축복일 수 있으나, 술 취함으로 인한 타락을 경계합니다.
즉, 솔로몬 전통의 포도주 이미지는 “사랑의 깊이와 기쁨 → 인생의 허무 → 지혜의 경계”라는 세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있었던 금주와 절제의 문제>
저는 성경이 말하는 포도주의 위험성에 대한 구절들을 늘 묵상하곤 합니다. 어릴 적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평생 술은 입에 대지 않고, 흉내조차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결심이 아니라, 성경적 경계와 신앙적 자기 절제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유럽과 미국은 전통적으로 포도주 자체를 금하지 않았습니다. 중세 수도원은 포도주 양조의 중심지였고, 가정의 식탁에서도 포도주는 흔한 음료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포도주 문화 속에서도 성경이 경계한 것은 ‘절제 없는 음주’와 ‘술 취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권면했습니다.
17세기 청교도 올리버 크롬웰은 청교도 원칙에 따라 술과 오락을 엄격히 금지했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미국의 청교도들 역시 초창기에는 술·오락·심지어 크리스마스 축제까지도 철저히 금했습니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사회 개혁 운동(Social Reform Movement)과 제2차 대각성 운동(Second Great Awakening, 1790s–1840s)은 술을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사회적 악(social evil)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목회자들과 사회 운동가들은 음주가 가정 파괴, 빈곤, 범죄, 성적 타락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1826년 보스턴에서 시작된 미국 기독교 금주 협회(American Temperance Society)가 빠르게 확산되었고, 1830년대에 이미 백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할 정도로 대중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운동은 단순히 술을 줄이자는 절제가 아니라, 점차적으로 전면적인 금주(total abstinence)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19세기 후반에 미국 전역에서 강력한 금주법(Prohibition) 제정 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정치·법 제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경건주의 전통>
제2차 미국 해외 선교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1886년 이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건주의 운동이었습니다. 파송된 선교사들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금주·금연, 엄격한 주일 성수, 도덕적 정결을 신앙인의 필수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생활 규범은 개인의 경건만이 아니라 사회 개혁의 도구로 이해되었고, 이 원칙은 그대로 선교지 교회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특히 한국에 들어온 북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Northern), 북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North), 침례교회(Baptist Mission), 호주 장로교회(Australian Presbyterian Mission), 캐나다 장로교회(Canadian Presbyterian Mission), 그리고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 후일 성결교회)는 모두 이런 경건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들은 초기 한국교회에 절제, 성결, 금주 금연, 철저한 성경 중심의 생활을 강조함으로써 한국 개신교의 근본적 성격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금주와 금연, 말씀 중심의 신앙, 절제된 생활을 강조했던 이들의 가르침은 한국 초기 교회가 세워질 때 그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반면 일본에 들어간 선교 세력은 미국의 남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South), 남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가 중심이었습니다. 남부 교단은 북부 교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이 영향은 일본 교회 안에 오늘날까지도 신학적 자유주의가 깊이 뿌리내리게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두 나라 교회의 분위기 차이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 내부에서도 지역적 특색이 생겨났습니다. 북장로교가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서북 지역)에, 남장로교가 주로 함경도(동북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해방과 전쟁 이후에도 교단 색채가 이어졌습니다. 서북 지역의 교회들은 보수적·경건주의적 전통을, 함경도 지역의 교회들은 비교적 자유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단순히 지역주의가 아니라, 어떤 교단과 선교사들이 먼저 복음을 전했는지가 교회의 신학적 색깔과 목회적 분위기를 형성했던 셈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선교사들의 글과 보고서를 직접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는 『코리아의 부름(The Call of Korea, 1908)』에서 한국 사회의 음주, 미신, 문맹 등을 “개혁해야 할 악습”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교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복음·교육·절제운동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부인 리리아스 언더우드 역시 『상투를 튼 조선 사람들과 함께한 15년(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1904)』에서 조선의 생활 풍습과 그 안에 있는 개혁의 필요성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는 배재학당을 세운 교육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지식 전달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학교 교육, 출판 사업, 절제운동을 하나로 묶어 “성경적 경건과 시민적 도덕”을 함께 심으려 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교육이 곧 사회 개혁이며, 신앙과 절제가 나란히 가야 한다는 신념 위에 있었습니다.
네비우스(John L. Nevius)는 원래 산둥반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였지만, 1890년 조선을 방문한 뒤 한국 선교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선교 교회의 심기와 발전(The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 1899)』에서 유명한 “네비우스 방법”(자립·자치·자전)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교회가 건강하려면 금주·근면·검소 같은 생활 윤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이 원리를 받아들여 교회 훈련과 세례 문답에서 절제를 엄격히 강조했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아래에서 다루겠습니다.
게일(James S. Gale)은 『한국 스케치(Korean Sketches, 1898)』와 『변화하는 한국(Korea in Transition, 1909)』에서 조선 사회의 음주 풍속과 종교 혼합을 날카롭게 묘사했습니다. 그에게 복음은 단순히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악습을 교정하는 힘이어야 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당시 한국의 술 문화와 기생 문화가 어떻게 신앙의 걸림돌로 작용했는지가 생생히 드러납니다.
하디(R. A. Hardie)는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 1903년 원산에서의 회개 체험과 1907년 평양 대부흥의 기록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교만과 불신앙, 그리고 삶의 무절제를 공개적으로 고백했고, 이것이 개인의 경건 갱신을 넘어서 공동체적 회개와 부흥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와 블레어(William N. Blair)의 『한국의 오순절(The Korean Pentecost, 1910)』에는 하디의 고백과 부흥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경건주의적 삶과 절제가 어떻게 개인의 부흥 → 공동체의 각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초기 한국 교회는 단순히 교리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이 보여 준 금주·절제·성결의 삶은 신앙 교육과 함께 제도화되었고, 교회의 규율과 신자 훈련 속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뿌리는 본질적으로 경건주의적 뿌리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술 문화와 그 퇴폐성>
1. 기생 문화와 음주
한국의 술 문화는 단순한 음식 문화가 아니라 사회적·성적 퇴폐와 긴밀히 연결되어 발전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문헌들에는 기생(妓生)과 함께한 연회, 주연(酒宴), 그리고 그것이 정치·문화·문학의 중심 무대로 자리잡았던 기록이 풍부합니다.
고려사에는 왕과 대신들이 주연을 즐기며 기생을 불러 술과 음악을 함께 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단순한 향락을 넘어 정치적 매수와 권력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선조·인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관리들이 기생과 술에 탐닉하여 국정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술과 민속·종교적 요소
한국 사회에서 술은 종교적 제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사, 혼례, 회갑연 등 삶의 의례적 장면마다 술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이 지나치게 일상화되면서 술은 단순한 예식의 도구를 넘어 과도한 음주와 퇴폐 문화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3. 쌀과 밀주 문화
조선 후기와 구한말에는 국가적으로 세금 확보를 위해 술의 제조와 판매를 관리했지만, 동시에 밀주(密酒) 문화가 성행했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은 쌀과 보리를 몰래 빚어 술을 만들었고, 이것은 사회적 갈등과 범죄를 야기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술은 국가의 세수를 위한 주요 수단이 되었고, 민중들은 더욱 값싼 밀주와 도박, 기생 문화 속에서 위안을 찾으며 퇴폐적 사회 분위기가 심화되었습니다.
4. 고전 문헌 속의 음주가무 기록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도 신라 귀족들이 잦은 연회와 향락을 즐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조선 시대의 사화집(詞話集), 패관문학(稗官文學) 등에는 “술과 기생과 가무”가 결합된 풍속이 풍자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가문과 관직을 망치는 선비들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기록됩니다.
홍길동전 같은 고전 소설에서도 양반들이 술과 기생에 빠져 사회적 부패를 드러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5. 구한말의 음주 문화와 타락
구한말은 조선 사회가 몰락해 가던 시기로, 술과 기생 문화는 퇴폐와 타락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개항 이후 서양 술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막걸리, 소주뿐 아니라 새로운 주류가 도입되어 음주 문화가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정치인과 관리들은 기생집을 드나들며 향락에 빠졌고, 이로 인해 민중의 불만과 사회적 빈곤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의 기록에서도 한국의 술 문화와 기생 문화가 사회적 타락의 상징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선교사 존 네비우스(John Nevius)나 언더우드(Horace Underwood)는 한국 사회의 술 문화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심각한 악습”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래에서 조금 더 상세하게 다루고자 합니다.
이처럼 한국의 술 문화는 단순한 기호 문화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권력·성·타락이 얽힌 구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수치를 드러낸 사건(창 9:21)이나 잠언에서 술의 위험을 경고하는 말씀(잠 20:1, 23:29–35)과 유사하게, 술이 가져오는 인간 타락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러한 역사적 퇴폐성을 끊고 성령 충만한 삶과 절제(temperance)를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새롭게 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존 네비우스(John L. Nevius)와 한국 교회>
특히 존 네비우스(John L. Nevius, 1829–1893) 선교사는 산둥(山東)반도에서 사역하던 경험을 토대로 한국 교회에 적용할 네비우스 선교 정책(Nevius Method)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구한말 한국 사회의 음주 문화가 퇴폐적이고 사회 전반의 도덕성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보았습니다. 당시 조선의 양반 사회와 민중 문화 속에서는 잦은 술자리, 제사와 연관된 음주, 심지어 종교적 의례와 결합된 술 소비가 만연했는데, 이는 신앙생활의 큰 걸림돌이자 사회적 타락의 근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네비우스는 한국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반드시 철저한 금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영향 아래 한국 초기 교회는 세례 교육과 공동체 훈련에서 금주와 금연을 엄격하게 가르쳤으며, 이는 한국 개신교의 경건주의 전통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금주 운동과 경건주의적 해외 선교 운동은 한국 교회의 초기 신앙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 교회가 철저히 금주와 금연을 강조했던 것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복음의 순수성과 공동체의 도덕성을 지키려는 선교적 결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 교회 윤리와 성도들의 삶의 지침 속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결국 1920년 미국 의회는 금주법(Prohibition)**을 통과시켜 주류의 생산과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공장에서의 합법적 생산이 막히자, 각 가정에서는 몰래 술을 양조했고, 캐나다 국경을 통한 밀주 밀수가 성행했습니다. 이는 금주법 자체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과 과제>
오늘 한국 사회에서도 술 문제는 심각합니다. 목회자, 장로, 성도들 가운데 음주로 인한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교회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유교적 전통과 군대·회사 문화 속에서 ‘회식 문화’와 ‘음주 강요’가 일상화되어 왔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술 문제로 무너지는 것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넘어, 교회의 공적 신뢰를 잃게 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술을 마실 수 있는가, 없는가”의 논쟁을 넘어서, 복음 증거와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키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무엇이든지 내가 다 가할 수 있으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 6:12),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이 정신이 오늘날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포도주와 알코올은 단순히 개인의 기호 문제가 아니라, 신앙과 공동체, 복음의 증거성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서구의 전통 속에서 포도주는 허용되었으나, 동시에 엄격한 절제와 책임의 윤리가 강조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이 시대에 “술 취함이 아닌 성령 충만”을 선택하는 거룩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성경 속 포도주의 두 얼굴: 축복과 경계>
성경은 포도주에 대하여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 질서 안에서 포도주가 가진 유익을 인정하되, 동시에 인간의 타락한 욕망과 방종으로 인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균형 잡힌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긍정적 요소: 축복과 기쁨의 상징
1. 창조의 선물: 시편 104편 14–15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포도주를 주셔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포도주가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선물로, 감사와 즐거움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2. 언약과 축복: 이사야 25장 6절은 장차 임할 하나님의 잔치에서 “잘 숙성된 포도주”가 언급됩니다. 이는 메시아적 축복과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예표합니다.
3. 예수님의 사용: 가나의 혼인 잔치(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는 포도주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새 언약의 기쁨과 충만한 은혜를 상징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포도주를 “언약의 피”로 제정하시며 성만찬의 핵심 요소로 삼으셨습니다(마 26:27–29).
2. 부정적 요소: 방종과 타락의 경고
1. 노아의 사건: 창세기 9장 20–21절에서 노아는 홍수 이후 포도주에 취하여 옷을 벗고, 그로 인해 그의 아들 함과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이는 포도주가 절제 없이 사용될 때 수치와 타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2. 잠언의 경고: 잠언 20장 1절은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롭지 못하다”라고 경고합니다. 잠언 23장 29–35절 역시 술이 주는 후유증과 폐해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3. 신약의 경고: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술의 남용이 신앙과 성령 충만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가 됨을 분명히 합니다.
3. 신학적 통찰: 절제의 신앙
성경은 포도주 자체를 전적으로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선물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방종과 중독은 인간을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하는 영적 위험임을 경고합니다. 따라서 성경적 입장은 “절제와 분별의 신앙”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랍비 문헌에서도 포도주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드러납니다. 탈무드 에루빈 65a에서는 “사람의 본성은 술과 돈과 분노 속에서 드러난다”고 기록하며, 술이 인간의 본심을 드러내는 시험대임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안식일과 절기의 잔에서는 포도주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 행위의 필수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4. 오늘을 사는 우리의 태도
오늘날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교훈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포도주와 술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신앙과 공동체,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절제(temperance, σωφροσύνη, 히브리어: הִצְנִיעַ hitzniya, “절제하며 걷다”)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단순히 술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사명은 단순히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봉사하거나 제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삶을 통해 마지막 추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은혜의 역학을 보여줄 뿐 아니라, 마지막 추수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사역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열매로 평가받습니다. 포도원 농사가 추수로 귀결되듯, 성도의 인생도 마지막 추수로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종말론적 긴장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사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포도원 뜨락에서
들풀 가득한 길섶에서
널브러진 가지더미
동그마니 송이 떨어져 버린 허망 속에
점점 다가오는 무서리
가다가 멈추어도,
발걸음은 서도 눈길은 머물고,
햇살 가득 받아
내 뿜는 향기여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맺힌 포도송이,
탐스럽고 소담하여라.
결실을 향한 그리움이
내 영혼을 이끄는 이정표와 같네.
주인과 아우러진 가지 되어,
깊은 뿌리 설핀 줄기 타고
얼레처럼 흐른 진액,
마침내 붉게 물든 송이로
생명의 비밀을 터뜨리네.
나의 삶 또한
한 송이 옹골진 결실처럼,
마지막 붓끝으로 화폭을 닫듯,
웃날들 종말의 완성 기다리네.
In the Vineyard Court
By the wayside thick with weeds,
Branches lie in heaps,
Clusters fallen, round and still,
Within the emptiness of loss,
Frost draws ever near.
Though I pause upon the path,
My gaze does not depart—
Bathed in sunlight’s tender flood,
Fragrance rises, filling air.
Every branch with heavy grapes,
Plump, abundant, full of grace.
This longing for the harvest ripe
Guides my soul, a steadfast sign.
Joined with Master, grafted firm,
From deepest root through supple vine,
Life’s sap flows like a hidden loom,
At last it bursts in crimson fruit,
Revealing secrets of the breath divine.
So too my life shall be,
A single cluster, ripened whole—
Like the final stroke of brush
That closes canvas, seals the frame,
I wait the day of End complete.
포도원상 생명지실 (葡萄園想生命之實): 포도원을 생각하며 보는 생명의 결실
葡萄園裡滿荒蒿
斷枝空落結成勞
紅實盈枝生秘訣
人生終待畫圖毫
(포도원 속은 들풀 가득,
부러진 가지 허망히 떨어지네.
붉은 열매에 생명의 비밀이 터지고,
인생 또한 마지막 붓끝을 기다리네.)
<글을 맺으며: 마지막 송이를 바라보며>
한 해를 거의 방치한 줄 알았던 포도원에서, 뜻밖에 오른편 몇 송이가 남아 서서히 붉어졌습니다.
풍성하진 않지만, 그 송이는 내게 포기와 은혜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좁은지를 가르쳤습니다.
포도원은 알립니다.
열매는 우연이 아니라 관계의 결과라고—뿌리와 줄기, 가지와 햇살, 이슬과 바람, 그리고 농부의 느린 손길이 오랜 시간 이어붙인 화답이라고.
포도원은 또한 일상의 행복을 선물합니다.
새벽의 흙내, 오후의 그늘, 저녁에 퍼올리는 물동이의 묵직함, 떨어진 잎을 모으며 듣는 자신의 숨소리—작은 움직임들이 하루를 채우고, 그 채움이 감사가 됩니다. 자연을 벗하며 배우는 절제와 인내, 계절의 약속을 기다리는 신뢰는, 신앙의 미덕들이 사실은 생활의 기술임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여유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포도원으로 종말을 비춥니다. 추수는 언젠가 반드시 오며(마 13:39–43), 우리의 수고는 결국 열매로 평가받습니다.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고, 병충해를 막아도 수확을 놓치면 모든 수고가 허망하듯, 신앙도 마지막 부르심 앞에서 열매로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손으로 흙을 만지되, 두 눈은 마지막 날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땅을 고르고 가지를 묶습니다. 그 노동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지만, 은혜가 흘러갈 자리를 열어 둡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머물고(요 15:7), 그분의 생명이 진액처럼 흐를 때, 삶은 마침내 한 송이의 옹골진 결실로 응답할 것입니다.
그 몇 송이 남은 열매가 내게는 귀한 교훈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포도원은 단순한 농토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은혜와 열매, 심음과 거둠을 아우르는 신비의 공간입니다.
내가 가꾸는 작은 뒤뜰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의 역사, 예수님의 비유, 랍비들의 지혜, 그리고 동서양 시인들의 노래와 연결됩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향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요 15:5)
포도원은 말없이 약속합니다.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리라.”(갈 6:9)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성령의 절제로 술 취함을 거절하고, 사랑의 인내로 서로를 떠받치며, 소망의 묵묵함으로 가지를 단련합니다.
마지막 붓끝으로 화폭을 닫듯, 우리도 언젠가 그 날에, 주인의 손에 올릴 마지막 송이를 품고 서게 되기를.
2025년 9월 2일 가을의 문턱에서 보스톤 김종필 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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