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의 비유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회복, 책임 그리고 하나님 나라-21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아들, 잃은 동전, 잃은 양으로 구성된 세 파라볼(parable)의 연작입니다. 각 이야기는 잃어버림, 찾기, 회복, 그리고 축하라는 회복의 신학적 구조를 공유합니다. 지난번 저의 글에서 다룬 드라크마 비유와 탕자 비유에 이어, 이번 글은 잃은 양 비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보다 넓은 신약 내러티브와 랍비 유대교적 책임 신학의 통합된 통찰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영성계발] 잃은 양의 비유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회복, 책임 그리고 하나님 나라-21 » The Parable of the Lost Sheep and Jesus Christ, the Good Shepherd: Recovery, Responsibility, and the Kingdom of G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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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잃은 양의 도정을 따라가는 길>

나는 날짐승의 쉼 없는 위협 속에,
지푸라기조차 보이지 않는 광야 한가운데서
내 작고 초라한 발을 붙잡고 서 있었습니다.
절벽 아래로는 차가운 공허만이 감돌고,
내 눈앞에는 한없는 사막, 끝없는 모래와 바위 뿐이었지요.
뜨거운 햇살이 내 귀와 등골을 태우고,
심장이 마비된 듯, 물 한 방울 마실 수 없어 목은 말라도
입술을 깨물며 간절히 외로움을 삼켰습니다.
풀은 보이지 않고, 길은 풀리지 않았으며,
내 짧은 눈길마저 절벽 저편의 심연을 그리듯
끝없는 허탈감만이 나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오래된 두려움이 내 안에서 울었습니다.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
“이곳은 죽음이 익숙해진 곳이다…”
그때,
희미한 바람 속에 들려오는 한 목소리—
섬세하지만 분명한 사랑의 음색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떨어져 다가왔습니다.
그 음성은 절벽을 넘고 사막을 꿰뚫어
내게 다가왔어요.
나는 그 음성에 이끌려 마침내
세상의 끝이라 불릴 곳에서
살짝 흔들리는 손길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는 나를 안으며 껴안아 주었고,
깨진 뼈와 찢긴 양털을 덮듯
내 몸은 그의 어깨 위에 올려졌습니다.
목자는
“작은 자야, 너를 찾았다.”
살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하늘의 끝에서도 들릴 듯 기뻤습니다.
그 어깨 위에서 내 영혼은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버림받고, 길 잃고,
죽음 앞에서 떨고 있었노라.”
하지만 그분은
“내가 너를 찾아왔노라.”
절벽은 더는 무섭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햇살도 시선은 더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목자의 음성 아래, 나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나는 발견된 존재, 소중히 여겨진 자,
그리고 사랑받는 자라는 것을.
그분의 어깨 위에서,
사막은 사라졌고, 절벽은 멀어졌으며,
외로움은 반짝이는 구원의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잃은 양의 비유’는 단순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길을 잃은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전략을 드러냅니다.
본 글에서는 비유의 신학적 구조, 랍비 전승과의 연계, 공동체 속의 책임 실천, 그리고 메시아 예수님의 선언적 사역 초점까지, 지금까지 쓴 20편의 글에 이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주제로 통합되는 관점에서 전개해 나가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삼부작과 잃은 양의 비유>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아들, 잃은 동전, 잃은 양으로 구성된 세 파라볼(parable)의 연작입니다. 각 이야기는 잃어버림, 찾기, 회복, 그리고 축하라는 회복의 신학적 구조를 공유합니다. 지난번 저의 글에서 다룬 드라크마 비유와 탕자 비유에 이어, 이번 글은 잃은 양 비유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보다 넓은 신약 내러티브와 랍비 유대교적 책임 신학의 통합된 통찰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세 비유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유기적 흐름을 이룹니다:

• 잃은 양: 작은 공동체에서의 책임 윤리
• 잃은 동전: 가정 및 여성의 경제적 위치 강조
• 잃은 아들의 비유: 개인적 회개와 공동체 회복의 완성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전한 이 말씀들은, 단지 개인의 회개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책임과 축하를 전제로 합니다.

<잃은 양 비유에서의 인물 구성과 신학적 함의>

1. 99마리 양, 잃은 한 마리, 그리고 목자는 누구인가?

99마리 양은 이미 “옳게 산” 경건한 사람들, 즉 종교적으로 충실한 ‘의인’을 상징합니다.
잃은 한 마리 양은 공동체에서 소외되거나 영적 길을 잃은 이들—특히 불경건하거나 메시아 예수께 마음을 열지 못한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이는 메시아닉 유대교적 맥락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못한 유대인들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목자(선한 목자 예슈아, 예수님)는 잃은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찾아 나섭니다. 이는 예수님의 자기희생과 포용의 메시지를 상징하며, 잃은 자를 찾아 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의 메시아적 역할

이 비유는 예수께서 자신의 오심의 목표가 바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위한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냅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노라”(마 15:24), “나도 구원하러 왔노라”(마 18:11)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비유의 중심선상에 있습니다.

3. 모세의 미드라쉬적 목자의 본보기

랍비 문헌(Exodus Rabbah 2:2)에 따르면, 모세는 이드로의 양 떼 중 작은 염소 한 마리가 도주하자, 지치고 목마른 상태의 그 염소를 끝까지 쫓아가 찾아내고 어깨에 업고 돌아온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자비를 보고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지시하셨다고 합니다. 이 미드라쉬는 하나님이 잃은 자를 찾는 지도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보여 줍니다. 이를 통해 예수의 목자 이미지는 고대 전승과 신학적 연속성 위에 자리합니다.

4. 비유의 신학적 키워드

• 책임과 회복: 목자는 ‘책임’을 지고 잃은 양을 직접 찾아 돌아오게 함으로 하나님의 구원 책임 구조를 드러냅니다.
•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추구: 길 잃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회복의 의지를 보여 줍니다.
• 회개와 기쁨: 양을 되찾는 목자의 기쁨은, 회개한 한 사람을 하늘이 함께 기뻐한다는 복음적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 티쿤 올람적 참여: 이 비유는 독자들에게도 “세상을 바르게 회복하는” 회복 공동체에 동참하도록 초대합니다.
• 메시아적 예언의 성취: 이 비유는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메시아”의 예언적 성취로 읽힐 수 있으며, 예수께서 바로 그 목자의 역할을 하셨다고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죄인들과 함께 먹는다”며 비난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이 잃은 양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는 자신을 목자로, 유대 민족을 양 떼로 비유하셨습니다. 아흔아홉 의로운 자들을 그 자리에 남겨두고, 죄인의 회개와 회복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선한 목자임을 선포합니다. 또한 이사야 40:11의 “목자처럼 양 떼를 돌보시며 어린 양들을 팔에 모아 품에 안으시리라”는 구절과 연결되며, 예수의 사역은 구약 예언의 성취로 읽힙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

1. 비유의 기능과 신학적 목적

이해하기 쉬운 짧은 이야기
비유는 단순한 일상의 사례를 통해, 복잡한 신학적 진리를 쉽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고 기억에 남음
동물이나 일상적 이미지를 사용해 독자의 집중을 끌며, 오래 기억되도록 돕습니다.
신중한 진리 전달

o 예수님은 진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말씀하셨고,
o 영적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진리를 감추셨습니다.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말씀처럼.
o 이는 과도한 진리 전달이 저항을 강화하고 심판을 더 중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자비의 구조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미드라쉬는 잃은 자를 책임지고 찾아가는 자비의 리더십이 바로 하나님의 리더십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예수의 잃은 양 비유는 이 전승 위에서 메시아적 회복 비전을 확장한 것입니다.

2. 신학적 키워드 및 메시지 포인트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단순한 목자의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이는 책임, 회복, 그리고 메시아적 사명의 핵심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3. 첫째, 책임과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목자는 단순히 양을 돌보는 사람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찾으러 나섭니다. 이는 회개로 향한 인도이며, 목자의 책임은 단지 보호가 아니라 회복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잃은 양’을 위해 친히 오신 참된 목자이십니다.

4. 둘째, 하나님의 끊임없는 추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길을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행동이 회개에 이르기도 전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먼저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길 잃은 자를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를 찾아 발걸음을 내딛는 분이십니다.

5. 셋째, 회개와 천국의 기쁨입니다.

한 영혼의 회개는 단지 개인의 변화를 넘어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더 기뻐하리라”고 선포합니다. 회개는 하늘나라 전체의 기쁨이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체계를 가장 분명히 드러냅니다. 한 영혼의 회복이 우주적 환희로 이어집니다.

6. 넷째, 티쿤 올람(Tikkun Olam)의 관점입니다.

랍비적 해석에 따르면, 한 사람의 회복은 단지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의 회복(Tikkun Olam)과 연결됩니다. 미드라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회복시키신다는 관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 미드라쉬 전통을 따라, 한 사람의 회개가 온 세상을 바로 세우는 책임과 연결됨을 드러냅니다.

7. 다섯째, 메시아적 성취의 선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자신이 단지 선한 사람이나 교훈을 주는 선생이 아니라, 구약 예언의 성취자, 곧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는 참된 목자 메시아임을 드러내십니다(에스겔 34:11-16).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그의 모습은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자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는 자신이 바로 약속된 구속자임을 선언하는 메시아적 선포입니다. 이처럼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가는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사의 본질, 그리고 랍비 전통과 메시아적 기대를 모두 아우르는 깊은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8. 본문 해설 및 흐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판하자, 이 잃은 양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구절은, 바리새인들이 의인들을 지키고 죄인들을 멀리했던 태도와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죄인의 회개와 회복을 중심에 두시며, 이사야 40:11의 “목자처럼 양 떼를 돌보시고 어린 양들을 팔에 품으신다”는 예언의 성취임을 암시합니다.

9. 균형 있는 마무리

잃은 양의 비유 자체가 복음 메시지의 핵심 구조를 담고 있음을 강조하고, 메시아 예수님은 예언의 성취자, 책임지는 목자, 잃은 자를 찾아 회복하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랍비 전통의 책임 윤리(모든 한 생명은 소중함)와 연결해 신약 메시지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전하고, 무관심한 자에게는 진리를 가립니다.
잃은 양 비유는 모든 사람의 잃음과 하나님의 책임, 회복, 공동체적 기쁨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랍비 전통의 모세 이야기를 통해, 예수의 목자 이미지를 고대 유대 리더십 전통에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이 비유는 메시아 예수의 메시야적 신분, 하나님의 책임 경제, 우리의 공동체적 회복 참여를 일관되게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

1. 이해하기 쉬운 일상적 이야기

랍비 전통에서도 마샬(mashal), 즉 짧은 비유는 일상의 사례를 통해 도덕적·종교적 진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친숙한 상황이나 사회적 이미지(양, 동전, 탕자 등)를 통해 영적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셨습니다.

2. 기억에 남고 흥미로운 구조

• 쉽게 회상될 수 있는 일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메시지가 깊은 인상을 남기고 오래 기억되도록 돕습니다.

3. “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열리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숨기는” 방식

•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은, 예수께서 진리에 대한 성숙한 관심이 있는 이에게는 뜻을 명확히 알리신 반면, 단지 형식적이거나 비판적 의도로 접근하는 이들에게는 비유로 감추셨다고 설명합니다.
• 이는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원칙과 연결되며, 진리는 소중하여 제대로 듣고 마음을 연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신학적 자비의 접근입니다.

4. 랍비 전통과의 연결: 비유의 교육적 역할

랍비 문헌(탈무드, 미드라쉬) 전반에서 비유는 율법과 윤리를 설명하거나, 사람의 이해를 도우며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염소를 찾아 쫓아간 이야기는 Exodus Rabbah2: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이유로 그를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로 삼으십니다. 이는 잃어버린 자를 사랑과 책임으로 찾는 리더십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강조하는 미드라쉬적 비유로 활용됩니다.

신명기 22장 전승 (Ki Teitzei 해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잃은 양을 외면하지 말고 돌려주라”는 율법은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 잃은 영혼을 공동체로 복귀시키는 책임 윤리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양은 곧 ‘이스라엘 공동체’ 자체로 의미 확장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어 버린 공동체는 바로 잃어버린 이스라엘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잃은 양 비유’도 랍비적 책임 윤리와 연계된 비유형식 위에 서 있으며, 동일한 교육방식과 신학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5. 비유 사용이 주는 유익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단순한 교훈적 표현을 넘어서,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보기 쉽고, 들은 후에도 오래 기억되며, 깊은 인상을 남기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일상의 소재(씨앗, 양, 잔치 등)를 활용함으로써, 복잡한 영적 진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되며, 동시에 듣는 이에게 생생하고 지속적인 감명을 줍니다. 이는 복음서 각 복음서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을 전달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① 비유 사용의 장점
비유는 친숙한 상황(농사, 거래, 가족 등)을 통해 천국의 원리와 영적 진리를 담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복잡한 교리를 심플하게 만들고, 청중 내면에 깊이 새겨지는 감각적 경험이 됩니다. 예수의 비유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였습니다.

② 이중 구조의 메시지 전달
예수께서는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유를 통해 영적 진리를 드러내셨지만, 진정한 관심이나 회개 의지가 없는 자에게는 동일한 비유가 오히려 진리를 가림으로써 자비를 구현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에서 비유 사용의 목적을 밝히는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 마태는 사람들이 “느리고 완고하기 때문에” 비유로 가르친다고 설명하며,
• 마가는 일부에게는 혼란을 주어 진리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신적 목적도 있음을 언급합니다.

③ 랍비 전통과의 공통점
고대 유대교 전승에서도 비유(mashal)는 중대한 교육 도구였습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비유와 우화를 미크라(성경) 및 할라카(율법)와 함께 연구했으며, 랍비 메이르는 설교를 ‘율법·하그가다·비유’로 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책임 윤리나 공동체 회복의 메시지를 강화했습니다.

• 대중에게는 직접 진리를 설명하기보다 예로 들며 귀납적 통찰을 유도하는 교육 구조가 뿌리 깊었습니다.
• 예수님의 비유는 이러한 전통에 명확히 연계되며, 유대 교육의 깊은 구조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6. 비유의 신학적 의미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것은 단순한 언어적 장치가 아니라, 명확한 청중 구분과 신학적 전략이 내장된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 진리를 듣고자 하는 이에게는 깊은 깨달음의 문을 여시고,
• 진리에 무관심하거나 거부적인 이에게는 진리를 일방적으로 주지 않음으로써 자비를 실천하십니다.

이 과정은 랍비 문헌에서 전해져온 책임 윤리, 회복 공동체, 메시아적 사명 등과 깊이 연결되며, 예수의 비유는 그 위에 신약적 메시지를 새롭게 풀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사용법>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주 “비유”(מָשָׁל, mashal)라는 문학적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들은 단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듣는 이의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영적 시금석이자, 듣고자 하는 이에게는 천국의 신비를 계시하고, 무관심한 자에게는 진리를 감추는 도구였습니다.

1. 비유의 목적: 진리를 드러내되 감추는 지혜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한 참된 갈망이 있는 자들에게는 비유를 통해 깊은 영적 진리를 선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조롱하거나 왜곡할 자들에겐, 그 진리를 감추셨습니다. 이는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마 7:6)는 교훈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진리는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며, 무관심하거나 오만한 자에게 함부로 내어줄 수 없는 보화입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Rabban Yohanan ben Zakkai)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는 이를 받아들일 귀가 있는 자에게만 들려야 한다.” (Avot de-Rabbi Natan B 29)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듣고자 하는 자에겐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허락하셨고(마 13:11), 거부하는 자들에겐 심판의 도구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자비 없는 숨김이 아니라, 자비로운 보호였으며, 더 큰 죄책과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막으시는 방식이었습니다.

2. 제자 교육의 흐름 속에서 비유의 위치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신뢰와 권세를 위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고, 메시아 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을 했고, 심지어 성전세 문제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초자연적 지시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반석’이라 불리며 교회의 기초로 언급되었고,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경험을 한 제자들조차도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라고 묻습니다(마 18:1). 이는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쉽게 세속적 야망으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 겸손, 신뢰, 무욕이야말로 천국 백성의 자격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오히려 내려가는 길입니다. 다스림은 섬김을 통해 이루어지고, 위대함은 낮아짐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도 교육의 핵심 원리입니다.

3. 겉보기에 하찮은 자들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형상

예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그분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마 18:5). 이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돌보라는 윤리적 권면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대속적 연합’을 의미합니다. 메시아께 속한 자는 메시아와 분리되지 않으며, 그를 존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랍비 아키바(Rabbi Akiva)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너의 이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이니, 그를 경멸하는 자는 창조주를 경멸하는 것이다.” (Genesis Rabbah 24:7)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의 경고는 매우 강력합니다.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마 18:6). 이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하찮게 여겨지는 자를 해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무서운 비유입니다.

4. 잃은 양의 비유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이 모든 교훈의 절정은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마 18:12–14). 백 마리 중 하나가 길을 잃었을 때, 선한 목자는 나머지를 두고 기꺼이 그 하나를 찾으러 갑니다. 그리고 그 한 마리를 찾았을 때, 그는 아흔아홉보다 더욱 크게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18:14)

이 비유는 단순한 감정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그리고 한 영혼의 무한한 가치에 대한 선포입니다. 하나님께는 숫자가 아닌 생명이 중요하며, 공동체보다도 개별 영혼이 중요합니다. 그분은 집단 안에서 길 잃은 하나를 잊지 않으시고, 그 하나를 위해 나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주는 결과: 비유는 하나님의 성품을 비추는 거울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도덕 교훈이나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제자도와 영적 공동체의 본질을 가르치며, 듣는 이의 마음 상태를 밝히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듣습니다. 어린 양을 향한 간절한 사랑,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정의, 보잘것없는 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히 여기시는 존엄의 복음을.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비유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혹은 스스로를 높이며 귀를 닫고 있는가?”
그분의 비유 앞에 선 우리는, 이제 스스로 낮추고 어린아이처럼 그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비밀이 열리고, 잃어버린 자 하나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기쁨이 우리 안에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비유의 동기(Motivation)와 가치(Value)의 신학적 기반>

1. 각 사람의 영원한 가치

•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아들딸이며, 영원 속에서 위대한 왕과 여왕이 될 존재입니다.”
• 이는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실 때 핵심 가치로 삼았던 상대적 약자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고유한 존엄이 있다는 신념과 일치합니다.
• 이러한 가치는 마태복음 18장의 “작은 자”(little ones)에 대한 경고와 응원 구절로 구체화됩니다:

“이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하늘에 계신 그들의 천사를 항상 뵈옵느니라” (마 18:10)

2. 겸손과 어린아이 같은 믿음

•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예로 드시며 겸손과 단순한 신뢰를 최고의 영적 덕목으로 제시하셨습니다 (마 18:1–4).
• 이는 _‘위대해지려면 먼저 낮아져야 한다’_는 역설적 진리를 드러내는 동기부여로 작동합니다.

3. 긍정과 부정의 양날의 동기 구조

• 예수님은 긍정적 보상과 부정적 경고를 동시에 사용하셨습니다:

o 보상: 작은 자를 환대하는 것이 곧 그분을 환영하는 것이며,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 (마 18:5)
o 경고: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이는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경고 (마 18:6)

랍비 전승과의 연결: 인류 존엄에 대한 공통 윤리
랍비 문헌에서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니 존중하라”는 가치가 교육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Avot de Rabbi Nathan에는 이렇게 전해집니다:

“지혜는 귀가 있는 자에게만 들려야 한다” — 진리를 다루는 데 있어 듣는 이의 자발적 자세를 요구합니다.

또한 힐렐의 가르침 중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명언은,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랍비 윤리는 예수님의 방식과 일치하며, 비유로 작은 자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근거가 됩니다.

4. 잃은 양 비유: 가치와 동기의 절정 표현

잃은 양의 비유(마 18:12–14)는 “작은 한 영혼”조차 하나님께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결정적 예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그 작은 자를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하시며, 작은 자를 향한 아버지의 책임과 자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는 단지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 삶과 공동체가 따라야 할 영원한 가치와 동기의 모델입니다.

5. 비유가 주는 동기 구조와 신학적 의미

1. 영원한 가치
각 사람은 하나님의 존엄한 형상(Tzelem Elohim) 으로 창조되었으며, 단순히 한때 잠깐 머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영원 속에서 존귀하게 불릴 자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 전승에서는 이러한 인간 존엄 개념을 중요한 윤리적 기반으로 보며, 단지 권리가 아닌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주어진 의무로서 존중해야 할 가치로 여깁니다.

2. 비유의 동기 구조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어린아이의 겸손함을 강조하시며, “어린아이 같은 신뢰”를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제시하셨습니다.

• 겸손한 신뢰: 어린아이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낮은 자리에 있는 믿음
• 긍정 보상: 그런 자를 환대하는 자는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마 18:5)
• 부정 경고: 작은 자를 실족케 하는 자에게는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경고가 따라옵니다 (마 18:6)

이 세 가지 요소는 행동을 다각도로 유도하는 복음적 동기 구조로 작동합니다.

3. 랍비 윤리와의 연결
랍비 전승에서는 “이웃 사랑”, “책임 윤리”, “자비 실천”이 핵심 가르침이었습니다.
랍비 아키바는 레위기 19:18의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를 율법의 핵심 원리로 선언했습니다.
‘동료의 존엄’을 내 자신의 존엄처럼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이기에 마땅히 받아야 할 예우이며, 이는 예수님의 “작은 자를 존중하라”는 메시지와 일치합니다.

4. 랍비 전승 속 “잃은 양” 표현

1. Exodus Rabbah 2:2 (미드라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음성이 모세에게 들리며, 미드라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는 사람의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이스라엘에게 양치는 목자로 세우리라.”
이 구절은 모세가 양 한 마리까지 책임지는 목자로서의 자비를 보였음을 통해 하나님의 지도자로 선택되었다는 상징입니다. 이 표현은 신명기 22장의 ‘잃은 처지에 놓인 동물을 다시 돌려주라’는 율법을 영적 잃은 양에 대한 책임과 회복의 필요로 확장시킵니다.

2. Ki Teitzei: Lost Sheep 해설 (갑자기 양을 되돌이켜야 하는 이유)

탈무드적 뿌리를 설명하며 이렇게 풀이합니다:

• 신명기 22장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을 잃으면 외면하지 말고 돌려주라”는 구절은 단순한 물건 반환뿐 아니라 “잃은 영혼을 복귀시킬 책임”을 상징합니다.
• 유대 공동체는 공동의 정체성과 영적 유대를 강조하며, 양은 곧 이스라엘 자신이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따르며 “잃은 양”(spiritually lost Israel)을 회복하러 오셨다는 자기 선언은, 이러한 랍비적 토대와 일치하며 메시아적 사명과 연결됩니다.

5. 신학적 함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작은 자에 대한 사랑”은 단순한 도덕 권면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신학적 가치입니다. 작은 자는 숫자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과의 신뢰와 연합 가운데 세워진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그들을 향한 존중은 공동체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하며, 이는 곧 하나님의 나심, 약속의 성취, 그리고 천국 공동체의 기본 원칙으로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단지 이야기 전달을 위한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영혼의 가치와 믿음, 공동체 속 책임을 일깨우는 형식적 구조였고, 하나님의 형상과 사랑이 실제 삶에서 구현되도록 초대하는 신학적 설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잃은 양에게만 오셨다는 의미>

예수님께서 “오직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양들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마 15:24)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랍비 유대교 문헌 및 복음서 해설을 기반으로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잃은 양”으로서의 이스라엘: 예수 사역의 대상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신 것은, 그분의 지상 사역의 우선순위가 이스라엘(특히 복음에 기대를 품고 있었으나 잘못된 지도 아래 길 잃은 이들)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마 15:24). 이는 단지 민족적 한정이라기보다는, 메시아가 먼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그 회복된 자들을 통해 복음을 온 열방으로 확장할 계획의 시작점이었습니다.

2. 가나안 여인 사건: 예외가 드러낸 진리

당시 갈릴리 북서 해안 가나안 지역에서 한 여인이 딸의 치유를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잠시 응답을 미루셨습니다. 제자들이 여인을 귀찮다고 여겼을 때, 예수님은 “잃은 이스라엘의 양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마 15:22 24).
그러나 그 여인의 굳센 믿음을 보시고 결국 딸을 치유하셨습니다 (마 15:28). 이는 예수님의 제한된 사역이 자비의 예외를 통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구약 예언과 메시아적 선포: “잃은 양” 개념의 성취

예레미야 50:6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잃은 양”으로 부르셨고, 에스겔 34장과 미가 5장에서는 메시아가 이 잃은 양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선포하시고 “양을 위해 목숨을 주는 자”(요 10:11–16)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예언이 메시아의 자기인식 및 사역 방식과 일치합니다.

4. 제자 선교의 원칙: 유대인 우선, 이후 열방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며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도 들어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10:5 6). 이는 사역의 시간적·지역적 한정이었고, 이후 부활 후에 “만민에게 제자 삼으라”(마 28:19)는 명령으로 확장되었습니다.

5. 랍비 전승에서의 관련 가치 인식

랍비 문헌에서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며, 그들에게 복음의 우선 권리가 있다”고 일관되게 강조됩니다.
예를 들어, 탈무드와 미드라쉬에서는 이스라엘을 먼저 책임져야 할 특별한 자산으로 보는 전승이 있으며, 예수님의 접근 방식은 이러한 전통과 신학적으로 연속성을 이룹니다.

6.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본 핵심 의미들

1. “잃은 양”의 의미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잃은 양”은 영적으로 길을 잃고 회복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지칭합니다. 구약 예언에서는 이들을 모으는 목자가 오실 것을 약속하였으며(예레미야 50:6; 에스겔 34:23 24; 미가 5:4 5), 예수께서는 그 약속의 성취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초점
예수님은 지상 사역 중 ‘흩어진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에 우선 집중하셨으며, 이를 통해 복음이 열방 세계로 흐르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는 “이방인에게 가지 말고 잃은 이스라엘에게 가라”(마 10:5 6) 라는 지시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3. 가나안 여인 사건의 의미
예수님은 처음에 가나안 여인에게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이후 그 여인의 굳은 믿음을 보시고 딸을 치유하셨습니다. 이는 이방인에게도 믿음이 있다면 복음의 문은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전략적 자비의 표현입니다.

4. 구약 예언의 성취
예수님은 목자로서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는 구약의 메시아 예언들을 자신 안에서 성취하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에스겔 34장, 미가 5장 등에서 예언된 메시아 상과 일치합니다.

5. 제자 파송 훈련 방식
제자들에게 먼저 유대인 중심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은 전략적 우선순위를 보여 줍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후, 부활 후 사도들을 통해 사마리아와 열방까지 복음이 확대되도록 계획되었습니다(행 1:8).

6. 랍비 전승과의 연결점
유대 전승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공동체, 책임을 받은 대상이라는 개념이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방식은 이 랍비적 전통과 신학적 연속성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이 선택된 공동체를 먼저 회복시키는 계획 안에 계셨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는 선언은, 단지 역사적 지평에서의 제한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 우선순위와 전략을 드러냅니다.

• 메시아는 먼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그 회복된 공동체를 통해 복음이 세계 열방으로 흘러가게 하셨으며,
• 가나안 여인의 믿음처럼 진실한 회개와 신뢰는 오늘날에도 복음의 확장의 문을 엽니다.

<죄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든 이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들으려 하였다” (눅 15:1)

당시 “죄인”으로 불린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게 모여든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삶의 절실함과 소망의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랍비 전통에서는 죄인의 회복과 회개 테슈바를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예수님께서는 ‘식탁 교제(tavern-like fellowship)’를 허용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율법적 판단자라기보다는 회복과 수용의 메시지 자체였습니다.

복음서와 랍비 유대교 모두, 특히 제2성전 시대와 초기 랍비 시대의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함께 식사하고 공동체 모임을 갖는 것은 친교를 증진하고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친교를 둘러싼 포용성과 사회적 경계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식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계에서 소외되거나 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집단과 자주 식탁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이를 두고 tavern-like fellowship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영국에서 마을의 식당(tavern)이 주민들의 친교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례적으로 부정하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기꺼이 식사를 하셨다는 것은 당시의 전통적인 사회적, 종교적 경계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워스 비욘드 루비스(Worth Beyond Rubies)는 식탁 친교에서 예수님의 포용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고, 의례적 순수성과 사회적 계층화를 엄격히 고수하는 대신 사랑, 정의, 자비를 보여주는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합니다.

이 시기 유대 사회에서 식탁 교제는 깊은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중요성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성전에서의 제사 음식과 같은 종교적 의식과 종종 연관되었습니다. 식이법(카슈루트)은 거룩함과 순결함을 유지하는 데 중요했으며, 무엇을 어떤 조건에서 먹을 수 있는지를 규정했습니다. Worth Beyond Rubies에 따르면, 의식적 순결에 대한 관심으로 알려진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식이법을 일상생활로 확장하여 식탁 교제를 포함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부 유대인 집단에게 식탁 교제는 종교적, 사회적 경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으며, 유대인 공동체의 고유한 정체성과 토라에 대한 고수를 강화했습니다. Worth Beyond Rubies에 따르면, 일부 유대인들은 식사를 포함한 다양한 생활 측면에서 이방인들과 교류했지만, 의식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음식을 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루비스가 말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님이 식탁 교제에서 보여준 포용성에 있는데, 이는 당시 일부 유대인 집단, 특히 바리새인들이 의식적 순결과 사회적 경계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던 보다 신중한 접근 방식과 대조됩니다. 예수의 행동은 기존 사회 질서에 도전하고 공동체와 소속의 기준을 재정의하며, 전통적인 구분보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수용을 강조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복음서와 랍비 유대교는 교제와 함께하는 식사의 중요성을 공동체와 정체성의 표현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의 접근 방식은 당시 일부 유대인 집단이 의식적 순결과 사회적 구분을 더욱 엄격하게 고수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급진적인 포용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배척했던 “공중 죄인들과의 함께 식사함”이, 사실 예수의 회복 사역에 대한 공공성 알고리즘이었음을 이해하면, 그들의 비방은 체제 유지적 반작용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적 규범은 죄인을 멀리하고 정결을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예수는 회개 가능한 자리에 모두를 초청하는 새로운 왕국의 구조를 보여주셨습니다 .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방한 이유>

1. 정결 규범과 식탁의 경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말하되 ‘이 사람이 죄인과 함께 먹는다!’”(눅 15:2)

똑같은 음식 자리를 나눠도, 누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자리의 정결성이 평가받던 시대였습니다. 랍비 전통의 정결 규정에 따르면, 의도적·습관적으로 죄인을 피하는 것이 신앙적 순결 유지 방식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죄인을 말씀으로 인도할 목적으로라도 함께 앉지 말라”고 명한 구절도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단순한 예식 위반이 아닌, 신앙과 규범 질서에 대한 도전적 행위로 인식했습니다.

2. 영적 위협으로서의 예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단지 정결 규범의 위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의 회복과 포용적 공동체성이었습니다.

예수는 죄인을 의사처럼 대하면서 그들의 필요를 그대로 드러내고, 바리새인의 자기 의에 사로잡힌 판단과 자기 의를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이는 종교 체제 속 신앙 규범과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방식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늘의 왕국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의, 공동체적 회복의 초대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단순한 “죄인과의 교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와 전통 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읽었습니다.

3. “의인”과 “죄인”의 경계 충돌

바리새인은 율법과 전통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남들과의 구분을 유지하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자비와 회개의 가능성을 더 중시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킨 자”를 의인으로, 그렇지 않은 자—특히 세리나 일반 죄인—를 사회적·종교적 경계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반면 예수는 “의인도 죄인도 모두 회개의 대상”이며, 특히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자들이 가장 회개의 필요를 간과하는 자들로 지적했습니다. 이는 예수와 바리새인 간의 신학적 충돌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4. 공동체 회복을 향한 초대

이처럼 바리새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든” 것은 단지 예수의 메시지뿐 아니라, 회개와 회복에 대한 소망이 담긴 공동체 공간을 예수께서 구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단순한 교사나 율법 해석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공동체의 문을 여는 목자였습니다. 그 자리를 통해 세 비유—잃은 양, 잃은 동전, 탕자—가 이어졌고, 이는 천상에 더 큰 기쁨이 있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구조임을 드러냈습니다.

<죄인의 개념 – 예수와 바리새인·랍비 전통의 비교>

1. 바리새인의 죄인: 율법과 정결 위반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을 주로 율법과 정결 규범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정의했습니다. 세리나 일반인들이 율법을 수호하지 않고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곧 사회적·종교적 정결 규정 위반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공동체에서의 경계적 거리 두기의 대상이었습니다.

2. 예수의 죄인 개념: 회개 가능성 있는 자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가능성이 있는 자를 죄인이라 보셨습니다. 율법을 어긴 그보다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자비를 회복하려는 마음을 중심으로 평가하셨습니다. “의인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회개를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자”를 향해 경고하셨으며, 이는 탕자 비유, 잃은 양 비유 등에서 반복됩니다.

3. 회개(teshuvah)의 랍비적 구조

랍비 전통의 ‘테슈바’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돌아가는 행동’을 의미하는 구조적 과정입니다.

• 죄 중단 → 참회 → 고백 → 변화의 결단 → 회복과 행동 중심 회개 등 다단계 구조를 포함합니다.

4. 예수의 메시지와 테슈바 연결

예수님은 죄인이 단지 치료 대상이 아니라 “회개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셨으며, 잃은 양 비유에서 하나님은 잃은 자를 당사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하늘에서는 회개한 한 죄인을 인하여 더 기뻐한다”는 말씀은 단지 죄인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공동체적 축하로 확장됩니다.

5. 죄인의 범주 확대: 회개와 책임 중심으로 변화

바리새적 관점에서는 율법 위반 여부로 죄인을 정의했다면, 예수께서는 회개 가능한 의지를 가진 자를 포함시키시면서, 모든 인간이 구원이 필요한 회개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회개와 책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적 테슈바 구조를 제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바리새인 / 랍비 전통 관점
죄인의 정의: 율법과 정결 규범을 지키지 않는 자들로 규정됩니다.
철저하게 규범을 지키는 사람이 ‘의인’이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죄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회개 구조: 주로 정죄 중심, 죄인을 멀리하고 경계함으로써 자기 정화를 시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태도를 “자신을 높이는 바리새인”으로 비판하셨습니다.
공동체적 의미: 죄와 부정한 자와의 관계를 멀리함으로써 공동체 질서 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죄인의 정의: “회개할 수 있는 자”—즉, 회개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향해 열린 태도로 죄인을 바라보셨습니다.
회개 구조: 능동적 회개(te-shuvah)를 강조하셨으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아가는 태도를 본질로 보셨습니다.
공동체적 의미: 잃은 자가 회복될 때, 하늘과 땅이 함께 축하하는 공동체적 축제가 이루어짐을 말씀하셨습니다 (잃은 양·동전·탕자 비유). 즉, 회개는 단지 개인적 전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퍼지는 공동체적 회복의 순간입니다

<죄인의 개념과 테슈바(회개)의 구조 비교>

1. 죄인에 대한 예수와 바리새인의 정의

•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죄인을 율법과 정결 규범을 지키지 않는 자로 정의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세리·창녀 같은 이들이 종교 공동체의 경계를 넘는 존재였고,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고 섞이는 것은 심각한 전통 규범 위반으로 여겨졌습니다.
• 반면 예수님은 죄인을 ‘회개할 수 있는 존재’로 보셨습니다.
율법적 의무를 수행한다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겸손히 돌아오려는 자가 회개의 대상이 되며, 특히 “자기 의에 사로잡힌 의인”을 죄로 간주하셨습니다 (눅 18:9–14; 탕자·잃은 양 비유)

2. 랍비 전통의 테슈바 구조

랍비 유대교에서의 테슈바(회개)는 단순히 후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는 “되돌아오는 길”을 포함하는 다단계 구조이며,
— 죄 중단 → 회개와 후회 → 고백 → 변화 결단 → 보상과 회복 → 지속적 삶의 변화까지 포함합니다.

3. 예수님의 메시지와 테슈바 개념의 접목

예수님께서는 단지 회개한 죄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잃은 양 비유에서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서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눅 15:4–6).

“하늘에는 회개한 죄인 한 사람을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은 단순한 낙담에서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 이후 하나님과 천사가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 축하의 장으로 확장됩니다 (눅 15:7, 10).

4. 죄인의 범주 확장과 공동체적 테슈바

바리새인들은 죄인을 법 조항 위반자로 한정했지만, 예수는 모든 자가 회개의 대상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전달 방식은 달랐지만, 본질은 “회개와 책임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는 공동체적 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잃은 동전, 잃은 아들, 잃은 양의 비유는 모두 각각의 죽음에서 회개로, 회복으로, 공동체 축하로 나아가는 동일한 패턴을 구성합니다.

죄인, 회개, 공동체에 대한 바리새인 전통과 예수님의 메시지 비교

바리새인과 랍비 전통에서는 죄인을 율법이나 정결 규례를 어긴 자로 규정하였고, 이들을 회피하거나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정죄와 경계 유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죄인을 회개 가능한 존재로 포용하시며, 단순한 회피가 아닌 능동적 회개(Teshuvah)와 책임 있는 변화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회복된 이후에는 하늘과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는 잔치를 여는, 회복 중심의 공동체적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한 죄인의 개념은 전통적 바리새인의 정의와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분은 단지 죄인을 외면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가능성을 열고 책임과 회복을 통한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공동체적 구원 질서의 중심에 서 계셨습니다. 이는 랍비 테슈바 구조와 부분적으로 연계되지만, 예수는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잃은 자를 찾아 회복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책임 구조를 직접 드러내셨습니다.

<잃은 양 비유의 전체 맥락: 동전·탕자 비유와의 연결과 하나님 나라의 경제 구조>

1. 세 비유의 통일된 구조: 회복의 3단계

잃음 → 찾음 → 축하의 공통 흐름은 잃은 양, 잃은 동전, 탕자의 비유 모두에서 반복됩니다.

• 양: 들판에 떠난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목자가 나서고
• 동전: 여인이 촛불을 켜고 집을 뒤져 동전을 찾고
• 탕자: 아들은 스스로 돌아오고, 아버지는 잔치를 열어 아들의 회복을 축하합니다.

이 구조는 책임 → 회개/회복 → 공동체 기쁨으로 구성된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를 보여 줍니다.

2. 양은 책임, 동전은 책임, 아들은 회개

잃은 양 비유에서 목자는 공동체적 책임의 주체로 등장하며, 잃은 자를 찾는 자비의 행위를 수행합니다.
잃은 동전은 가정 구성원(여성)이 자신의 책임과 능동적 회개 행동을 수행하며 회복의 주체가 됩니다.
잃어버린 아들 즉 탕자의 비유는 잃은 자 자신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능동적 움직임을 보여 줍니다.
이로써 각각의 비유는 책임의 주체, 회개의 주체, 회복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3. 하나님 나라 경제: 책임·회개·축하의 논리

세 비유 모두 하나님 나라 경제(Kingdom economy)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1. 책임 (주체가 잃은 자를 대표하거나 책임감으로 행동)
2. 회개 및 회복 (찾는 노력, 돌아오는 의지)
3. 축하 및 공동체적 축제 (하늘과 사람들의 기쁨) Enter the BibleWorking Preacher from Luther SeminaryBYUH Speeches.

예수님은 단순히 각 비유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탁월한 내러티브 구조 안에 하나님 나라의 회복 경제 모델을 짜 넣으셨습니다. 이는 각 비유가 서로 분리된 교훈이 아니라, 연결된 회복 이야기의 흐름(성경적 미니 서사)임을 보여 줍니다.

4. 랍비 책임윤리와 비유의 신학적 연결

잃은 양과 동전, 그리고 아들의 비유는 모두 책임윤리(Tamari의 경제윤리)에 근거합니다.

• 임금 체불은 노동자의 영혼을 훔치는 죄로 간주되며,
• 공동체 구성원의 실수와 회복에 대한 책임의 문제는 랍비 전승에서도 중요한 논의입니다.

예수의 비유는 이러한 책임 윤리와 회개의 역동성을 하나님 나라 메시지와 통합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공동체적 축하: 천상과 지상의 기쁨

세 비유 모두 “하늘에서는”이라는 문구와 함께 하나님과 천사가 함께 기뻐하는 축하를 강조합니다 (눅 15:7, 10 등).
지상에서도 친구와 이웃을 초청해 잔치를 벌임으로써, 회복된 존재는 단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감격과 책임 속으로 통합됨을 보여줍니다.

세 비유의 신학적 구조 비교: 잃은 양 · 동전 · 아들
예수님께서 전하신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의 비유는 모두 동일한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회복과 책임의 메시지를 드러냅니다.

1. 잃은 양 비유

• 주체: 목자
• 흐름: 책임 → 찾음 → 축하
• 신학적 의미: 하나님은 잃어버린 하나를 책임지고 찾으시며, 그 회복을 통해 온전한 공동체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책임 경제를 보여 줍니다.

2. 잃은 동전 비유

• 주체: 여성
• 흐름: 책임 → 수색 → 공동체 축복
• 신학적 의미: 잔존한 자산이 하나일지라도, 한 사람 한 존재의 존엄과 회복의 은총은 공동체적으로 회복되어야 함을 상징합니다.

3. 탕자의 비유 (잃은 아들)

• 주체: 아버지와 아들
• 흐름: 회개 → 돌아옴 → 잔치
• 신학적 의미: 회개를 통해 돌아오는 자를 향해 아버지가 펼치는 조건 없는 사랑과 하나님의 축하와 공동체적 환대를 드러냅니다

<잔치의 진정한 의미: 회복 축하와 하나님 나라의 축제>

1. “하늘에서도 기뻐하신다” 메시지의 반복

예수께서는 잃은 양, 동전, 탕자 세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회개한 한 존재를 잃어버린 존재보다 더 기뻐하신다”는 메시지를 반복하셨습니다:

• 잃은 양: “하늘에서는 회개한 한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뻐하신다”(눅 15:7)
• 잃은 동전: 비유 속 여성은 동전을 찾은 뒤 친구와 이웃을 축하에 초대합니다 — “하나님의 천사들도 기뻐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15:10)
• 탕자의 비유: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가족과 마을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벌입니다 (눅 15:22–24)

이 반복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회복 구조 및 공동체 가치 체계를 리듬화하고 있습니다.

2. 잔치의 구조: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 회복

• 각 비유의 잔치 장면은 단지 회복된 개인의 축하가 아니며, 하늘과 지상의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구원 축제를 상징합니다.
• 특히 탕자의 회환 이후의 잔치 장면은 초대한 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공동체적 회복을 경험한다는 적극적 초대를 보여줍니다 (눅 15:24, 30–32).

3. 문화·신학적 배경: 하나님 나라 예식성과 초대

• 유대인 전통에서 왕의 잔치 또는 계약 체결식은 경건한 축제로, 하나님의 임재와 정의의 회복을 표현하는 상징적 의식이었습니다
• 예수의 비유에 등장하는 잔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이 자리에 임했음을 선언하는 상징적 예언이자 현재진행형 현실입니다.

4. 회복의 잔치 초대

• 예수남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단순한 이야기 청자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의 회복과 축제에 참여하도록 초청합니다.
• 랍비적 책임 윤리와 예수의 메시지가 만나는 지점은 바로 회개의 자리에서 공동체적 환대와 축제가 이루어지는 실제 현장에 있습니다.

5. 핵심 메시지

(1) 한 영혼의 회복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의 회개에도 깊은 기쁨을 느끼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인하여 더 기뻐하신다”(눅 15:7)고 말씀하심으로, 개인의 회복이 천상의 기쁨이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2) 잔치 초대
비유 속 잃은 양을 찾은 목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돌아온 아들을 맞이한 아버지는 모두 ‘잔치’를 베풉니다. 이는 회복된 영혼이 공동체의 축제에 참여하며 ‘하나됨’이 회복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3) 하나님 나라 선언
예수님의 비유 속 잔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드러냅니다. 회개의 순간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 사건이며, 회복은 하나님 통치의 실제적 실현입니다.

(4) 공동체 책임
회개와 회복은 단지 개인의 감정적 경험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뻐하고 동참해야 할 책임입니다. 회복된 자를 환영함으로 공동체는 하나님 사랑의 성품을 실천합니다.

<잃은 양의 비유가 주는 현재적 적용>

1. 삶의 현장에서 ‘잃은 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수님의 “잃은 양 비유”는 단편적인 교훈이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서 ‘잃은 자’를 발견하도록 촉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래 질문을 통해 내면과 주변을 돌아 보는 계기를 줍니다.

• 내가 마음속 또는 현실에서 ‘잃은 양’으로 여기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한 사람을 찾아 기뻐하자”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관계에서 행동으로 응답하려 하시나요?
• “당신은 잃은 존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가장 듣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2. “하나님은 잃은 자를 찾는다” — 책임과 사명

• 하나님은 잃은 자를 위해 먼저 움직이십니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
• 그러나 예수는 우리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부르십니다 (예수와 함께 죄인을 만나는 행동). 우리 주변에서 소외된 사람, 배제된 사람을 찾아가고, 관계를 맺는 일은 회복 신학의 실천입니다.

3. 공동체 축하의 회복 과제

• 예수는 회개와 회복의 순간을 잊지 말고 공동체와 함께 축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잃은 동전, 탕자, 잃은 양 모두 연회 장면에서 종결).
• 오늘 우리 공동체가 회복된 ‘한 영혼’을 맞이할 때, 단순히 환대가 아닌 축제적 기쁨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현대 삶에 질문 던지기: 신학적 성찰을 위한 탐색 질문과 방향

1. 하나님은 어떤 실종자, 배제된 자를 당신에게 맡기셨습니까?
→ 이 질문은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할 ‘잃은 양’이 누구인지 식별하고, 그들을 회복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행동적 책임이 강조됩니다.

2. 당신 삶에서 회복의 축제를 나누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회개한 자를 향한 기쁨의 부재는 공동체가 복음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 회개의 기쁨을 진심으로 품고, 외면된 자들을 따뜻하게 품으려는 공동체적 의지를 회복해야 합니다.

3. 공동체 내에서 신앙적 ‘바리새적 시선’을 넘기 위한 변화는?
→ 외형적 경건이나 판단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비와 회개의 실천이 중심이 되는 신앙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율법 중심의 태도보다는 은혜 중심의 삶을 공동체 안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4. 테슈바와 회복의 실제 적용

• 위 세 비유(잃은 양, 동전, 탕자)의 회개 책임 공동체 축하 구조(테슈바ㅡ회복ㅡ기쁨)는 오늘 우리의 회개와 공동체 실천에도 구조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 단순한 개인 회개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책임윤리와 초대의 행위로 확장될 때 하나님의 회복 메시지는 진짜로 살아납니다.

5. 마무리 기도와 적용 제안
“주님, 제 삶에 ‘잃은 양’을 향한 눈빛을 열어주십시오. 저의 책임과 사랑으로 회개와 회복의 자리로 이끌어주소서. 회복된 ‘한 영혼’을 위한 기쁨의 축제가 저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적용 제안
• 한 주 동안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 한 명을 위해 기도하거나 연락해보세요.
• 교회나 작은 모임에서 회개와 회복의 자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축하하는 예식적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경제 원리: 책임 → 회개 → 축하의 현대 적용>

1. 하나님 나라 경제란?

예수께서 세 비유(잃은 양, 잃은 동전, 탕자)를 통해 펼치신 하나님 나라의 회복 경제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책임: 잃은 자를 대신 찾아나서는 주체
• 회개(테슈바): 돌아오고 회복하려는 적극적 의지
• 축하: 하늘과 땅이 함께 누리는 공동체적 기쁨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작동하는 방식, 즉 Kingdom economy의 핵심 요소입니다.

2. 믿음이 국왕권적 화폐가 되는 경제

현대 신학에서는 **믿음이 하나님 나라의 거래 화폐(currency)**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이성이나 노력 중심의 세속 경제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영적 통화입니다:

회개와 의 –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기능하기 위해 우리는 죄에서 돌이켜 그분의 길에 일치해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것 – 하나님 나라에 접근하는 것은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Repentance & Righteousness – To function in God’s economy, we must turn from sin and align with His ways. Believing the Good News – Accessing the Kingdom starts with faith.”

즉, 믿음은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 회복 및 행동적 책임의 기반이 됩니다.

3. 책임 윤리와 사회 정의적 적용

랍비 유대교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지체하는 것, 정직하지 않은 거래,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향한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도덕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정의와 책임 윤리에 근거한 삶의 방식입니다.

• 예수 비유는 이러한 책임 윤리와 경계를 넘어, 잃은 자를 위한 동행과 회복의 행동으로 확장됩니다.

4. 실제 적용: 일상과 공동체 속에서 실천하기

다음은 이 구조를 현대 삶에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 제안입니다:

• 책임: 사회적 소외자나 주변인을 찾아 연대하고 돌보기
• 회개(테슈바): 나의 판단, 무관심, 자기 의를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기
• 축하: 회복된 이와 함께 나누는 식탁, 모임, 실천적 환대의 장 마련하기

5. 현대 사회적·영적 의미

• 우리는 하나님의 경제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세계의 논리(성공, 경쟁, 자기 중심성) 대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책임, 회복, 잔치)를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 교회와 공동체는 이 경제를 대표하는 장소입니다—작은 잃은 자를 책임지고 회복시키며, 축하하는 공동체적 예배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회복 경제의 일부로, 우리는 잃은 존재를 책임지고 찾아가는 삶에 초대되어 있습니다.
회개와 회복 과정은 오롯이 믿음이라는 화폐로 이루어지며, 회복된 공동체는 하늘과 함께 축하하는 하나님 나라의 현장이 됩니다.

<글을 맺으며: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잃은 자의 비참한 고백
끝없는 사막 같은 인생 속에서
나는 태양 아래 갈라진 모래와 바위가 되어
길 잃은 돌멩이처럼 외로이 굴러다녔습니다.
내 온기 없는 영혼은 흐트러진 발걸음처럼 흔들렸고,
뜨거운 햇살은 내 숨의 흔적마저 말라버리게 했습니다.
비유 속 그 잃은 어린 양의 자리—
절벽과 날짐승의 위협 속,
찬란히 비치는 햇살 아래서도
숨 쉴 수 없는 광야에서
나는 서 있었고,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적 성취—참된 목자의 찾아오심
그때, 나는 들었습니다—
“내 양을 찾으러 왔다”고,
멍한 모래바람 사이로 울리는 한 음성.
그는 마치 약속된 목자와 같았습니다—
“나는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는 목자다”(에스겔 34:11 16)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형상을 채우셨고,
스펄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자는 잃은 양이 그의 소유이기 때문에, 끝까지 찾아내신다”.
나는 그의 어깨 위에 안겨 마침내 회복되었고, 그의 노래 속에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티쿤 올람—한 사람의 회복이 세상을 바로 세우는 시작
랍비 전통에서는 ‘티쿤 올람(Tikkun Olam)’을
세상을 수선하는 책임으로 보았습니다.
잃은 양 하나를 찾는 그 행동 자체가
세상을 회복시키는 첫 조각이 되는 것이지요.
회개와 회복은 단지 ‘나만의 변화’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고 기뻐해야 할
하나님의 복음 전략입니다.

세 비유가 만드는 무한 지평선

• 잃은 양: 목자가 직접 찾아 나섰고, 기쁨으로 어깨에 메는 참된 목자의 표상이신 예수 그리스도
• 잃은 드라크마: 은화를 찾는 여인의 부지런함에 모여든 기쁨은, 회복의 기쁨이 이미 “잔치”임을 보여주는 메타포입니다 .
• 탕자의 귀환: 아버지의 품에 돌아오는 아들— 회복 후 자기 백성에게 돌아감이 사랑의 아버지를 드러냅니다.

이 세 비유는 하나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잃은 형상”을 회복하고
“천국의 잔치”를 우리의 현실 안에 세우는 것.

하나님 나라의 경제와 공동체 축하
천국 잔치의 경제는 무한한 자비,
한 사람의 회개에 대한 하늘의 환희,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축제 참여입니다
(눅 15:7) .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적용 메시지

1. 내 잃은 양을 발견하라
주위에 소외된 사람, 상처받은 영혼을
책임지고 복귀시키는 사명이
바로 티쿤 올람의 시작입니다.

2. 잔치와 참여의 모델
회개한 이를 환대하고 축하하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이미지를 지니게 됩니다.

3. 메시아적 목자의 사랑 본받기
예수님처럼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는 사랑,
소유된 자를 끝까지 붙드는 사랑을
우리 삶 안에 실천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공동체
잃은 자를 찾는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형상을 복원하는 행위입니다.

문학적 울림과 신학적 파장

이 이야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은—
잃은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
회복의 보상,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신학.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랑받았고, 존귀히 여겨졌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책임을 받은 자”라는
무한한 지평선을 열어 주는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잃은 양의 비유』를 회복, 자비, 책임, 메시아성이라는 핵심 축에 따라 탐구해 왔습니다. 이 비유는 단지 가르침의 도구가 아니라, 복음이 실제로 공동체 안에서 삶으로 재현되는 하나님의 통치 전략입니다. 당신이 곧 ‘책임져야 할 잃은 양’을 발견하고 회개의 잔치에 함께 참여할 때, 본문이 반복해서 강조한 ‘작은 자 사랑’과 ‘공동체 회복의 신학’은 현실이 됩니다.

2025년 8월 2일 보스톤 김종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