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의 하가다: 랍비 문학의 빛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읽다-16

산상수훈은 한 편의 아가다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도덕의 경계를 넓히는 교훈이 아니었고, 단순한 유대 율법의 변형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가다의 언어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출애굽 하가다처럼 백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기억하게 하고, 미드라쉬처럼 토라를 새롭게 해석하며, 삶 속에 실천하게 하는 공동체 윤리로 녹아듭니다...

[영성계발] 산상수훈의 하가다: 랍비 문학의 빛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읽다-16 »  The Haggadah of the Sermon on the Mount: Reading the Words of Jesus in the Light of Rabbinic Litera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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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산 위에 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씀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야기였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되살리고, 하늘의 뜻을 땅 위에 내리는, 유월절의 하가다처럼 우리를 새로운 해방으로 이끄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글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을 랍비 유대교의 문학 양식인 하가다와 미드라쉬의 관점에서 다시 읽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율법을 보완하거나 개혁한 것이 아니라, 유대 문학 전통 속에서 새로운 창조적 해석으로 주어진 말씀임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 말씀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공동체의 경계를 허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현현시키는 초월적 메시지였습니다.

<새 언약의 산, 예수님의 입에서 울려 퍼진 하가다, Haggadah, הגדה>

산상수훈(Matthew 5–7)은 단순한 윤리 강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메시아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산 위에서 새 시대를 향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헌장이자, 신약 시대의 새 언약의 시내산(הר סיני חדש)의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 삶을 위한 지침이 아니라, 공동체적 정체성과 영적 재구성을 위한 예수의 하가다(הגדה), 곧 하나님의 구속 서사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랍비 유대교 문헌에 익숙한 1세기 유대 청중은 이 산상 선포를 하가다(Haggadah, הגדה)의 설화적 구조, 할라카(Halakha, הלכה)의 법적 맥락, 그리고 미드라쉬(Midrash, מדרש)의 해석적 논법으로 자연스럽게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선언은 단지 새로운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말씀을 다시금 ‘지금, 여기서’ 되살리는 현존적 구속 이야기(present-tense redemptive narrative)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의 교회 역사에서는 산상수훈의 이 유대적 맥락이 점차 희석되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덕 윤리와 헬레니즘적 알레고리 해석, 중세 스콜라주의의 이성 중심적 주해는 산상수훈을 추상적 도덕 선언으로 환원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본래 유대적 이야기 형식과 공동체적 맥락, 그리고 미드라쉬적 상호 텍스트성은 배제되고, 신비적·내면화된 개인 윤리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겨진 문자적 계명처럼 고정된 법문이 아니라, 하가다(הגדה)처럼 하나님의 구속 행위(Ga’ulah, גאולה)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살아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Davar, דבר)이며, 제자 공동체를 향한 케리그마(Kerygma, κήρυγμα)로서 다시 울려 퍼지는 영적 선포입니다.

따라서 본 글의 목적은 산상수훈을 유대 문학 전통의 세 기둥, 즉

• 아가다 (Aggadah, אגדה): 내러티브와 우화를 통한 하나님의 뜻의 전달,
• 하가다 (Haggadah, הגדה): 출애굽의 현재화된 구속 이야기,
• 미드라쉬 (Midrash, מדרש):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적·대화적 주석

이 세 전통의 틀 속에서 조명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교에서 어떻게 들렸는지를 복원하고, 동시에 오늘날 교회와 독자들에게도 살아있는 하가다로서 들리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신 그날의 선포는 이제 더 이상 고대 문서 속 돌판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는 ‘새 언약의 토라’(Torat Berit Chadashah, תורת ברית חדשה)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산 위에서 들려진 하가다(הגדה, Haggadah): 산상수훈과 유대 구전의 문학 구조>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입을 열어 가르치신 말씀, 산상수훈(Matthew 5–7)은 단순한 윤리적 훈계나 이상적인 종교적 선언으로 읽히기엔 너무도 깊고 구조적으로 치밀한 문학적 걸작입니다. 이 말씀은 하가다(הגדה, Haggadah)(Aggadah)—율법(Halakha)의 규범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이야기, 비유, 상징, 노래로 풀어내는 유대 전통의 문학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수의 선언입니다.

하가다(הגדה, Haggadah)는 율법을 삶의 자리로 끌어내려 인간의 언어와 감정,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는 해석적이고 교육적인 문학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것으로, 공동체적 기억과 정체성을 형성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하심을 노래하며, 종종 미드라쉬(מדרש, Midrash)(midrash)의 해석 방법과 결합하여 율법의 심층을 드러냅니다. 산상수훈의 구조와 흐름은 바로 이러한 하가다(הגדה, Haggadah)의 구조를 따릅니다.

팔복으로 시작하는 산상수훈의 서두는 고대 유대 축복문(Berakhot)의 형식과 운율을 지닌다. “복이 있나니…”로 반복되는 선언은 예언자적 메시지와 회당의 기도 형식을 모두 품고 있습니다. 팔복에 베라하(ברכה, Berakhah) 기도문을 비롯한 랍비 유대교 비교 연구는 이전의 글, “팔복으로 보는 예수님의 제자도: 시두르, 아미다, 그리고 아가다(אגדה, Aggadah)의 맥락에서 본 복의 선언”에서 충분히 다루었기에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복된 자는 세상의 가치와 반대되는 자들이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역시 현세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위로, 긍휼과 같은 영적이고 종말론적인 개념입니다. 이 선언은 하가다(הגדה, Haggadah)의 내러티브적 예시와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선언적 설교(Kerygma)로 작동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가르침에서 종종 “옛 사람에게 말한 바…—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구조를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유대 미드라쉬(מדרש, Midrash)의 질문-응답 구조로, 전통적인 율법 해석을 인용하고 그 위에 새로운 해석적 갱신을 덧붙이는 방식입니다. 갈릴리 출신인 11명의 제자 뿐 아니라 유다 출신이 가롯 유다, 70인의 제자, 500명의 따르는 무리와 갈릴리의 유대인들에겐 이처럼 친숙한 미드라쉬(מדרש, Midrash)적 이해가 매우 가깝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랍비 유대교의 미드라쉬(מדרש, Midrash)적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로마 제국의 많은 교부들은 헬라 철학의 해석과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도리어 이질적 요소를 추가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2천 년 동안 쌍이면서 마치 이러한 해석이 정통 신학이 된 것 같은 고정관념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산 위에서 선포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미드라쉬(מדרש, Midrash)적 단순한 해석을 넘어, 내면 윤리의 강조로 나아가며 하가다(הגדה, Haggadah)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이점에서 미드라쉬(מדרש, Midrash)-하가다(הגדה, Haggadah)로 이어지는 랍비 유대교의 배경이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살인과 간음의 율법은 단순한 외적 행위의 금지를 넘어서 분노와 음욕이라는 마음의 상태로까지 확대 해석됩니다. 이는 율법의 본질을 인간의 심령 깊숙한 곳에서 실현하려는 하가다(הגדה, Haggadah)의 방식입니다.

또한, 비유적 언어는 하가다(הגדה, Haggadah)의 중심 요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선언은 공동체적 정체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예언자적 상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소명을 밝히는 표현입니다. 산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는 단순한 도덕 선생이 아니라, 새로운 하가다(הגדה, Haggadah)의 선포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구전 문학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메시아적 랍비였습니다.

하가다(הגדה, Haggadah)는 또한 청중의 삶 속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갖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단지 고상한 사변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랍비 유대교의 하가다(הגדה, Haggadah)가 삶과 율법을 연결하듯, 예수님의 하가다(הגדה, Haggadah)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마음에 새기며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구현됩니다. 이는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긴 율법이 예레미야와 에스겔 예언자에 의해 마음에 새겨질 율법으로 전환되는 구약의 예언 성취로도 읽힙니다.

산상수훈은 하가다(הגדה, Haggadah) 문학의 전통을 따른 예수님의 교훈으로서, 단지 외적인 법적 규범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와 공동체적 회복을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는 당시 회당에서 하가다(הגדה, Haggadah)를 듣고 자란 유대 청중들에게 친숙하면서도 혁명적으로 다가왔을 메시지였습니다. 산 위에서 들려진 이 하가다(הגדה, Haggadah)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삶으로 구현되어야 할 새로운 언약의 선언입니다.

<하가다와 미드라쉬 — 산상수훈의 문학적 뿌리>

산상수훈(마태복음 5–7)은 단지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랍비 유대교의 아가다(אגדה, Aggadah)와 미드라쉬(מדרש, Midrash)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문학적 구조와 신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가다(Aggadah)는 할라카(הלכה, Halakha)라는 법률적 규범을 넘어서는 이야기적·비유적·상징적 설교문학으로서, 공동체의 기억과 신앙적 감동을 전달합니다. 반면 미드라쉬(Midrash)는 성경 본문을 주석하고 해석하여 공동체의 삶과 신앙에 적용하는 해석의 문학입니다. 산상수훈은 이 두 문학 전통을 절묘하게 통합하며, 예수님의 권위 있는 교훈으로 등장합니다.

1. 반복구조: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표현 구조(마 5:21, 27, 31 등)는 랍비들의 전형적인 미드라쉬 할라카(מדרש הלכה, Midrash Halakhah) 방식과 유사합니다. 미쉬나(Mishnah)와 탈무드(Talmud)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후, 그 본문에 대한 랍비적 해석과 현실 적용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 마태복음 5:21–22의 “살인하지 말라”에 대한 예수님의 내면 윤리적 해석은, 미드라쉬 메힐타(Mechilta de-Rabbi Ishmael)에서 출애굽기 20장에 대한 해석과 병행됩니다. 미드라쉬에서도 살인의 동기를 내면의 분노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 바브리 탈무드 베라호트 5a에서도 “고통받는 자는 자신을 성찰해야 하며, 죄를 자백해야 한다”는 교훈은 산상수훈에서 내적 상태(분노, 정욕, 위선 등)를 다루는 구조와 유사한 윤리 신학을 보여 줍니다.

2. 팔복과 축복 문학의 연결

팔복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전 글에 매우 심도깊게 다루었지만 본 글에서 산상수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금 중요한 포인트를 예로 들어서 비교 연구를 해 보도록 하겟습니다. 산상수훈의 시작인 팔복(마 5:3–12)은 유대인의 전통 기도문 베라하(ברכה, Berakhah)와 구조적으로 일치합니다.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과 같은 지혜 문학적 서사와도 연결되며, 미쉬나 아보트(Mishnah Avot)에서 의인의 삶에 대한 칭송과 대비됩니다.

비교: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는 시편 24:3–4 및 탈무드 베라호트 17a에서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가?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을 가진 자”와 같은 구조와 병행됩니다.

3. 삶으로 연결되는 하가다적 결말 구조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은 예수님의 하가다적 비유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

이 결론 구조는 하가다 속 종말적 비유 구조, 즉 실천을 촉구하는 교훈적 종결부와 유사합니다.

• 바브리 탈무드 아보다 자라 17a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열매 없이 서 있는 자와 같다”는 비유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산상수훈에서 “행함이 없는 듣는 자”에 대한 비판과 구조적으로 병행됩니다.

4. 산상수훈의 문학적 패턴과 랍비 문헌의 대응

산상수훈의 문학적 구성은 랍비 문헌의 여러 구절들과 문학적 구조 면에서 깊은 연관성을 지닙니다. 이를 통해 예수의 가르침은 단지 새로운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유대 전통에 뿌리를 둔 하가다적 메시지와 미드라쉬적 해석 구조로 읽힐 수 있습니다.

첫째, 팔복(마태복음 5:3–12)은 유대 문학에서 자주 나타나는 축복 선언의 형식과 유사합니다. 특히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하는 구조, 그리고 탈무드 베라호트(Berakhot) 17a에서 등장하는 축복의 전통은 산상수훈의 팔복이 단순한 시적 장치가 아니라 깊은 선언적 축복 구조(Berakhot pattern)를 따른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둘째, 예수님의 반복적 선언, 곧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 5:22, 28, 32 등)는 랍비 해석학의 기본인 미드라쉬(Midrash) 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구약 율법의 명령을 인용한 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새로운 해석적 권위를 덧붙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미드라쉬 메힐타(Mechilta) 및 미쉬나 마코트(Makkot) 1:10과 같은 문헌에서 발견되는 질문-응답 구조와 해석의 재제시 방식과 병행될 수 있습니다.

셋째,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마 5:39)은 랍비 문헌 중 바브리 탈무드 바바 카마(Bavli Bava Kamma) 92a와 유사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 문헌에서는 폭력에 대한 반응과 자비의 실행 사이의 긴장을 다루며, 예수의 가르침은 극단적 평화주의와 하가다적 상징 해석의 대표적 예로 분석됩니다.

넷째, 예수께서 말씀하신 “들의 백합화”(마 6:28–30)의 비유는 아가서 라바(Shir HaShirim Rabbah) 2:2와 연결됩니다. 이 미드라쉬 문헌은 백합화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랑, 메시아적 도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는 산상수훈에서의 자연 상징을 통한 종말론적 메시지 전달과 대응됩니다.

산상수훈은 단지 한 유대 교사의 윤리 설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가다의 내러티브, 미드라쉬의 해석적 권위, 미쉬나의 율법 교육, 그리고 탈무드적 토론 구조가 절묘하게 통합된 신언약의 메시아적 설교(Kerygma)입니다.

예수님은 랍비 유대교의 전통을 거스르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의 심층을 이어받아 완성으로 인도하신 메시아 랍비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문헌적 배경 속에서 산상수훈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윤리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선언하는 신학적·문학적 선언문임을 보게 됩니다.

<산상수훈과 하가다(Haggadah)의 영적 해석>

– 해방의 이야기로서의 복음서와 유대 전통의 교차

예수님의 산상수훈(Matthew 5–7)은 단지 윤리적 권면이나 도덕적 규율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억 저편에 살아 있는 ‘하가다(הגדה, Haggadah)’—곧 출애굽의 이야기, 구속의 이야기, 해방의 이야기의 신학적 구조 안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새로운 선언이었습니다.

1. 유월절에 들려지는 하가다

하가다(Haggadah, 히브리어: הַגָּדָה)는 유월절 세데르(Seder)에서 중심이 되는 서사입니다. 이 하가다는 단지 역사 서술이 아니라, 매 세대가 직접 출애굽 사건에 참여한다는 실존적 선언입니다. 탈무드 바브리(Bavli, Pesachim 116b)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בכל דור ודור חייב אדם לראות את עצמו כאילו הוא יצא ממצרים”
“모든 세대마다 사람은 마치 자신이 이집트에서 나온 것처럼 보아야 한다.”

이 말은 하가다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오늘의 구원 체험으로 이어지는 신앙 고백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옛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억눌린 자를 해방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2. 산상수훈: 하가다의 신약적 재구성

예수께서 산 위에 앉으시고 입을 열어 “복이 있나니…”(μακάριοι, makarioi)라고 선포하신 말씀은 신명기의 축복과 저주의 패턴(신 28장)을 연상시키면서도, 더 깊이 들어가면 출애굽 하가다의 메시아적 재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이는 출애굽기 2:23 “그들이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와 연결됩니다. 예수는 애굽에서 신음하는 자들을 해방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지금 여기,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확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마 5:6)

이는 광야에서 만나와 물을 통해 백성을 돌보신 하나님의 공급(출 16–17장)을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와 의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이처럼 산상수훈의 팔복은 ‘현재형 하가다’로, 과거의 구속 사건이 지금 우리 안에 어떻게 재현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3. 유대 전통과 예수의 하가다적 재해석

유대 전통에서 하가다는 출애굽 사건을 넘어서, 바벨론 포로기, 헬레니즘 시대, 로마 압제기 등 고난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구속 서사였습니다. 탈무드 바브리(Pesachim 116a)는 하가다의 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מתחיל בגנות ומסיים בשבח”
“비천함으로 시작하여 찬양으로 끝맺는다.”

이는 예수의 산상수훈 구조와도 흡사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시작된 선언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라는 절정으로 나아갑니다. 이처럼 산상수훈은 하가다적 구조를 따른 메시아적 선언문입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Rabbi Yohanan ben Zakkai)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Yavneh에 랍비 아카데미를 세우며, 율법과 더불어 하가다를 통해 백성의 기억과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하가다는, 당시의 유대인 청중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러나 혁명적인 메시지였습니다.

4. 산상수훈은 새로운 하가다인가?

복음서 저자 마태는 예수님을 마치 모세처럼 다섯 대 담론(Discourses)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산상수훈이며, 이는 신약의 토라(תּוֹרָה, Torah)로 해석됩니다. 출애굽의 하가다가 유월절 세데르에서 반복적으로 낭독되듯이, 산상수훈은 제자 공동체가 기억하고 살아내야 할 ‘새 언약의 하가다’입니다.

하가다는 토라의 서사화를 통해 삶으로 끌어내는 문학이자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그 신학적 맥락과 형식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더 심화된 ‘왕국의 윤리’로 전환되었습니다.

5. 산상수훈과 랍비 유대교 문헌의 비교 연구에 대한 주요 학자들의 기여

산상수훈은 단순히 기독교적 윤리강령이나 신약적 개혁 선언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유대 문헌과의 문맥 속에서 이해될 때 훨씬 더 풍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랍비 유대교 문헌—특히 하가다(Haggadah), 미드라쉬(Midrash), 미쉬나(Mishnah), 탈무드(Talmud)—와의 병행적 분석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이 당대 유대 종교 세계 내에서 어떻게 혁신적이고 연속적인지에 주목해 왔습니다.

다음은 이 분야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 대표적인 학자들과 그들의 핵심 저작에 대한 설명입니다.

• Jon D. Levenson,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Beloved Son (Yale University Press)

레벤슨은 구약과 유대 신학의 내러티브 구조를 해석하며, 하가다(Haggadah)의 핵심 구조가 어떻게 신약 복음서 내에 재현되고 있는지를 추적합니다. 특히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희생 이야기(창 22장)의 하가다적 재구성이 복음서에 나타나는 ‘사랑받는 아들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와 평행 구조를 이룬다고 주장합니다. 산상수훈도 이와 같은 내러티브 신학 속에서, 구속의 기억과 희망을 메시아적으로 재해석한 하가다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 Jacob Neusner, The Rabbinic Traditions about the Pharisees (Brill Academic)

누스너는 랍비 유대교의 문헌, 특히 바리새파 전통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이 어떤 면에서 연속적이며 또 어떤 면에서 전복적인지를 밝혀냅니다. 그는 하가다와 미드라쉬의 차이를 명확히 정의하고, 복음서 내 예수의 해석 방식이 랍비적 미드라쉬(drashic hermeneutics)와 병행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컨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예수의 어법은 미쉬나와 탈무드에서 전형적으로 사용되던 ‘원전-신해석’ 구조와 유사합니다.

• Geza Vermes, Jesus the Jew (Fortress Press)

게자 버메스는 예수를 본래 유대인의 종교 환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를 “유대 랍비”로 재해석합니다. 그는 산상수훈의 많은 구절들이 당시 갈릴리 랍비들의 하시두트(Hasidut) 전통—곧 토라의 문자 이상을 추구하는 경건함—과 닮아 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 등의 급진적 윤리는 단순한 도덕주의가 아니라, 하시디즘에서 말하는 ‘더 나아감(lifnim mishurat hadin, 법의 선을 넘어서 행동하는 경건함)’의 실천이라고 해석합니다.

• Baruch Bokser, “The Haggadah and History” (in Journal of Jewish Studies)

바루크 복서는 하가다의 문학적 구조와 그것이 유대 공동체 내에서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을 분석합니다. 그는 하가다가 단순히 출애굽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억압 상황 속에서 공동체 정체성을 강화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현재화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논점은 산상수훈이 로마 압제하 유대인 공동체를 향해 선포된 ‘새로운 구속 선언’이자, 공동체 윤리를 재구성하는 하가다적 문서로 기능했음을 뒷받침합니다.

이들 학자들의 연구는 산상수훈을 단지 신약의 도덕 강령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적 전통 안에서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산상수훈은 하가다적 전통 위에 세워진 메시아적 구속 선언이며, 고대 유대 문헌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그 신학적 깊이와 문학적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6. 하가다의 재현,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

결국 산상수훈은 단지 율법을 재진술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출애굽 하가다처럼,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고 새로운 시대의 윤리를 선언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구속 서사의 새로운 장입니다. 하가다가 유월절 밤에 기억되고 낭송되는 공동체의 신앙이라면, 산상수훈은 제자 공동체의 삶 속에서 ‘살아내야 할 하가다’입니다.

<산상수훈은 하시두트(חסידות) – “더 나아가라”는 부름>

1. 하시두트란 무엇인가?

하시두트(Hasidut, 히브리어: חסידות)는 흔히 ‘경건(piety)’이라 번역되지만, 그 본질은 “더 나아가려는 열망”입니다. 이는 단순히 법의 최소한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과의 더 깊은 동행을 열망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이 단어의 어근인 חסד (chesed)는 “자비, 인애, 은혜” 즉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동을 뜻합니다 Our Rabbi Jesus+1Our Rabbi Jesus+1.
“하시두트는 하나님께 기꺼이 자신의 재능과 지혜를 드리며, 보여주기 위한 엄숙한 헌신이 아니라계획된, 책임 있는 헌신”입니다 .

2. 산상수훈에 드러난 ‘더 나아가라’의 메시지

예수님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조로 반복하며 유대 율법의 기존 해석에 넘어서는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 “간음하지 말라”에서 “음욕을 보지 말라”로,
• “살인하지 말라”에서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로,
• “원수를 사랑하라”로까지—이 모든 말씀은 하시두트를 향한 부르심입니다 .

율법의 기준을 법조문 위로 던져버리기보다는, 하나님 마음에 더 가까이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3. 하시두트 vs 형식적 율법주의

하시두트는 외형적 준수를 넘어 하나님과의 ‘진짜 관계’를 추구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라는 (마 22:39) 계명을 실천하되, 진정성과 마음까지 담아내라 하는 초대로 가득합니다. 하시두트는 자신을 희생하는 맹목적 헌신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신중한 헌신입니다 .

4. 산상수훈과 하시두트 – 공동체적 패러다임 전환

산상수훈은 단지 윤리적 교훈이 아닌,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로 새롭게 정의된 공동체 삶의 선언입니다 (마 5:20). 이 선언이 가능한 까닭은 하시두트의 정신을 실천하는 삶에서 비롯됩니다.

– 외식이 아닌 진실된 금식
– 보이는 기도가 아니라 골방에서 드리는 겸손한 기도
– 구제는 사회적 명성보다는 은밀한 자비
…이 모두가 하시두트적 영성을 구현하는 방식입니다.

5. 하시두트는 ‘새 언약의 영성’

하시두트는 단순한 종교적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에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토라, 곧 새 언약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3–14)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몸으로 드러내는 삶—곧 하시두트적 삶의 전형—을 부르시는 구절입니다 home.snu.edu.

산상수훈은 단지 율법의 조항을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하시두트(חסידות)—곧 경건의 삶—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반복하신 “옛 사람에게 말한 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구조는, 당시 유대 전통에서 단순한 율법 준수를 넘어선 삶의 질적 전환을 요구하는 하시두트적 문맥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삶은 외식적 경건에서 벗어나 은밀한 헌신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책임으로 나아가며, 단순한 법적 기준 준수를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실천하게 합니다. 또한 이러한 개인의 내적 변화는 공동체 차원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기능하며, 능동적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는 거룩한 사명을 이끌어냅니다.

결론적으로, 산상수훈은 단지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율법을 넘어서는 새 언약의 영성 선언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과 존재 방식을 제시하는 선포입니다. 산상수훈은 하시두트 정신 위에서 “더 나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 법의 최소선을 넘어서
– 하나님 마음과 동행하는 삶으로
– 예수 안에서 경건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는 초대입니다.

이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외적 신앙을 넘어, 하나님과 깊이 걸어가는 삶—곧 하시두트의 영성이 우리의 기도, 고백, 행동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산 위에서 전하신 것입니다.

<산상수훈과 하가다(Aggadah): 비유, 해석, 그리고 유대적 지혜의 계보>

: 아가다 문학의 맥락에서 본 예수의 교훈

앞선 글에서 우리는 유월절에서 유래된 하가다(Haggadah) 전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하가다의 구조와 정신을 좀 더 깊이 고찰함으로써, 산상수훈뿐 아니라 예수께서 전하신 비유들이 랍비 유대교의 하가다적 해석 틀 안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산상수훈은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나 도덕적 규범의 집합이 아니라, 유대 전통의 하가다 (Aggadah, אגדה) 문학 안에서 그 본래적 정체성과 문학적 깊이를 회복할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가다는 율법적 규범을 다루는 할라카(Halakha)와는 구별되며, 이야기, 시, 잠언, 우화, 상징, 신화적 전승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백성과의 언약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유대 문학의 핵심 장르입니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parables), 격언, 상징, 그리고 극적인 반전의 표현들은 모두 이 하가다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깊은 통찰을 청중의 일상적 삶 속에 풀어내셨습니다.

1. 하가다란 무엇인가?

하가다는 유대교의 경전 안에서 율법(법적 조항)이 아닌 모든 서사적·설화적·윤리적·신비적 내용을 포함합니다. 미드라쉬(Midrash), 탈무드(Talmud), 시두르(Siddur), 토세프타(Tosephta) 등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하가다입니다. 이러한 하가다 문학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집니다:

• 성경 해석의 서사적 확장
• 율법의 의도를 풀어주는 이야기
• 윤리와 신앙을 가르치기 위한 설화적 접근
• 공동체 정체성 형성과 민족적 기억의 전승

2.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가다적이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비유와 설화, 반복과 대조의 구조, 삼단 문장, 히브리적 병행법 등 하가다적 수사와 구조를 능숙하게 구사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산상수훈 중 다음과 같은 표현은 하가다 문학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 이는 이사야서와 미드라쉬에서 이스라엘을 ‘빛의 백성’이라 부른 유대적 전통을 반영합니다. 하가다적 상징을 예수는 공동체 전체에게 적용함으로써 구약의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새로운 제자 공동체에 부여합니다.

• “심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아니하리라”

→ 탈무드적 교훈 방식과 동일하게 반복 구조를 통해 윤리적 경각심을 유발하며, ‘치수대로 되갚음’이라는 유대의 지혜 문학 전통(잠언, 벤 시라 등)을 따릅니다.

3. 산상수훈과 하가다의 주제 구조

하가다는 단순한 이야기 전승이 아니라, 신학적 메시지를 포함한 교육의 구조를 갖습니다. 산상수훈도 이를 따릅니다: 하가다(Haggadah)의 전통적 구조는 이야기의 서두, 윤리적 전환과 반전, 실천적 가르침, 그리고 결론과 경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전체에서 그대로 반영됩니다.

먼저 하가다의 이야기 서두(열림)에 해당하는 부분은, 마태복음 5장 3–12절에 등장하는 팔복 선언입니다. 이는 고난받는 자, 가난한 자, 의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며, 이야기의 중심 주제를 설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로 윤리적 전환과 반전의 구조는 “옛 사람에게 말한 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 5:21, 27 등)라는 반복적 구절에서 드러납니다. 이는 전통적인 율법의 해석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적 통찰을 제시하며, 청중에게 도전과 반성을 유도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세 번째 단계인 실천적 가르침은, 뺨을 돌려대는 사랑,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한 가르침 등에서 나타납니다(마 5–6장). 이는 하가다의 핵심 주제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살아 있는 율법’의 방식과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결론과 경고, 그리고 축복에 해당하는 부분은 마태복음 7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권면,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의 비유 등은 모두 선택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교훈적이고 종말론적인 결말로 이끕니다.

이처럼 산상수훈은 하가다 문학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이 단순한 교훈을 넘어 구속사의 서사 속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는 전형적인 아가다 설교의 흐름과 유사하며, 예수님이 랍비로서 당시 유대 회당 교육 방식에 익숙했음을 뒷받침합니다.

4. 하가다의 목적과 산상수훈의 공동체적 지향

하가다(Haggadah)는 율법(Torah)을 단순히 암기하거나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삶의 이야기 안에서 살아 있는 경험으로 체화하게 하는 유대 문학 전통입니다. 이는 유월절 세더(Seder)에서 어린 자녀가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질문하면, 부모는 단지 율법 조항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상들이 어떻게 출애굽을 경험했는지를 이야기로 들려주는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출애굽기 13:8 참조). 이러한 하가다의 기능은 유대 경건의 핵심을 형성하며, 공동체가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에 동참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또한 단지 법 조항의 열거가 아닌, 삶의 방향과 공동체 질서, 내면의 정화에 대한 선언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가다적 메시지입니다. 그 내용은 경건(piety)과 정의(tsedaqah, צְדָקָה), 자비와 진실이라는 히브리 성서적 가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랍비 유대교 문헌 중에서도 이와 유사한 하가다적 전통은 다음과 같은 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병행되는 랍비 문헌들

1. 탈무드 바브리 소타 14a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하느니, 이는 그분이 자비하셨듯 너희도 자비해야 하고, 그분이 친절하셨듯 너희도 친절해야 한다.”
→ 이는 산상수훈의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7)와 병행되며, 율법의 외면적 순종을 넘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내면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2. 미쉬나 아보트 1:2
“세상은 세 가지 위에 서 있다: 토라, 아보다(예배), 그리고 게밀루트 하사딤(자비로운 행위).”
→ 이는 산상수훈 전체 구조, 즉 말씀(토라), 기도(아보다), 그리고 구제(자비로운 실천)의 삼중적 균형과 연결됩니다(마 6:1–18 참조).

3. 미드라쉬 데바림 라바 5:10
“율법은 단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며,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
→ 산상수훈에서 강조되는 “마음으로 간음하지 말라” (마 5:28),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마 5:22) 등은 율법의 내면화와 심령의 순결이라는 주제에서 깊은 병행성을 갖습니다.

이와같이 하가다는 ‘삶을 위한 율법’의 문학입니다. 이는 탈무드와 미드라쉬가 지닌 이야기적 설교, 도덕적 예화, 구속사의 반복적 기억을 통해 실현됩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의 하가다로, 예수께서 유대 문학의 형식과 구조를 통해 공동체에 새로운 언약의 삶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하가다와 산상수훈을 단절된 이질적인 전통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 구조 안에서 경건, 공동체, 구속의 역사를 연결짓는 신학적 통찰로 발전시킬 수 있게 합니다.

<산상수훈의 문학적 위상: 아가다(Aggadah), 할라카(Halakah), 미드라쉬(Midrash)의 배경과 산상수훈과 랍비 유대 문학의 연결성>

1. 유대 문학의 세 흐름

할라카, 아가다, 미드라쉬 랍비 유대 문헌은 문학적으로 매우 복합적이며 풍성한 장르를 포함합니다. 그 가운데 세 가지 주요 문학적 흐름은 산상수훈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관문이 됩니다.

• 할라카 (Halakhah, הלכה): 율법적 규정과 규칙, 삶의 구체적 행위 지침을 다루는 법적 문학입니다.
• 아가다 (Aggadah, אגדה): 할라카와 대조되며, 이야기, 우화, 시, 격언, 기도, 신비적 해석 등 비법률적인 장르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경건을 서사적으로 전합니다. 이는 감정과 신앙의 태도를 함축하며, 윤리적 삶을 유도합니다.
• 미드라쉬 (Midrash, מדרש): 성경 본문에 대한 랍비적 해석이며, 할라카와 아가다 모두를 포함합니다. 본문의 여백을 메우고 그 의미를 확장하여 현재적 적용을 가능케 합니다.

또한, 하가다(Haggadah, הגדה)는 아가다의 하위 장르로, 유월절 세데르에서 낭송되는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구속 사건을 현재화하는 예전적 서사입니다. 공동체의 정체성과 신앙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며, 이는 산상수훈과 신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문학적 열쇠입니다.

2. 산상수훈 안의 아가다적 기법

예수님의 산상수훈(마 5–7장)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나 법률 선언이 아니라, 유대적 아가다의 문학 기법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작품입니다. 다음은 아가다적 구조를 반영하는 몇 가지 대표적 특징입니다.

• 병행법 (Parallelism):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와 같은 표현은 시편과 지혜문학의 병행 구조를 따릅니다.
• 삼단 반복 구조: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마 7:7)는 미드라쉬 아가다의 전형적인 교육 방식과 병행됩니다.
• 전통과의 대조: “옛 사람에게 말한 바…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마 5:21, 27 등)는 전통 해석과 새로운 해석을 대조하는 아가다 설교의 형식입니다.

이러한 아가다적 구조는 미쉬나 마코트 1:10: 율법 조항의 윤리적 확장을 보여줍니다. 메힐타 드랍비 이쉬마엘(Mechilta d’Rabbi Ishmael): 출애굽기의 해석과 실천 적용이 하가다적으로 이루어집니다.

3. 산상수훈은 하가다인가?

해방 서사의 현재화 산상수훈은 단순한 윤리 선언이 아니라, 과거 출애굽 서사를 현재화한 하가다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 팔복(마 5:3–12)은 억눌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해방 선언이며, 출 2:23에서 이스라엘의 신음에 응답하신 하나님과 평행됩니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4)는 출 19:6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신정 공동체 선언과 연결됩니다.
•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계명은 탈무드 바바 카마 92a에서 나타나는 “원수도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사상과 평행하며, 공동체 윤리의 경계를 확장합니다.

4. 미드라쉬적 해석의 깊이:

예수, 성경을 다시 말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지 율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을 새롭게 해석하여 내면화하며 공동체 윤리로 확대하는 미드라쉬적 방식과 연결됩니다.

위와 같은 용례는 산상수훈 중에 다음과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살인하지 말라” → “형제를 미워하지도 말라”(마 5:21–22)
• “간음하지 말라” → “여자를 음욕으로 보는 것도 간음이다”(마 5:27–28)
• “눈은 눈으로” →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윤리(마 5:38–39)

이는 모두 미드라쉬 아가다(Midrash Aggadah)의 전통 위에 서 있으며, 예수님의 윤리는 문자적 해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질서를 구현합니다.

좀 더 깊은 연구를 원하신다면 다음 학자들의 연구 연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Jacob Neusner, The Rabbinic Traditions about the Pharisees
• Geza Vermes, Jesus the Jew
• Baruch Bokser, “The Haggadah and History”
• Jon D. Levenson,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Beloved Son

5. 산상수훈, 유대 문학 전통의 정수

산상수훈은 할라카적 문자주의를 초월하여 아가다적 상징과 하가다적 해방의 현재화, 미드라쉬적 해석의 깊이를 종합한 예수의 문학적 선언입니다.

• 아가다: 진리를 이야기로 전달하는 문학
• 하가다: 출애굽 사건의 현재화로서의 예전적 서사
• 미드라쉬: 성경 해석의 확장과 재맥락화
• 산상수훈: 내면 윤리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비전을 담은 새로운 하가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무너뜨리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를 완성(מלא, πληροῖσαι)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십니다 (마 5:17). 그 완성은 아가다적 스토리텔링, 하가다적 공동체 기억, 미드라쉬적 통찰을 통해 이루어지며, 산상수훈은 그 총체적 구현입니다.

<산상수훈의 재구성: 아가다와 미드라쉬의 관점에서 읽는 예수님의 하가다>

서론: 왜 산상수훈을 유대 문학으로 읽어야 하는가? 예수님의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은 단순한 도덕 규범의 집합이 아니라, 유대 랍비 전통의 문학 형식인 아가다(Haggadah), 하가다(Haggadah), 미드라쉬(Midrash)를 통해 읽을 때 그 본래의 문학적·신학적 깊이가 드러납니다. 이 글은 각 본문을 아가다의 서사, 미드라쉬의 해석, 하가다의 축제적 선언으로 재구성하며, 예수께서 어떻게 율법과 예언자 전통을 초월해 하나님의 나라 윤리를 선포하셨는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1. 하가다로서의 팔복 (마 5:3–12)

하가다의 시작은 공동체 정체성의 재선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출애굽기의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현재화하는 선언이며, 미드라쉬 테힐림이나 탈무드 소타에서 말하는 겸손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의 첫 선언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 힘이 아니라 낮아진 자로부터 시작된다는, 전복적 구조의 하가다입니다.

2. 미드라쉬로서의 “나는 말하노니” 선언들 (마 5:21–48)

이 구조는 율법 본문에 대한 미드라쉬적 재해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예수는 살인, 간음, 맹세, 보복, 원수 사랑에 대해 전통 율법을 인용하면서 그 문자적 적용을 넘어 마음의 동기와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강조합니다. 이는 미쉬나 마코트나 탈무드 바바 카마 등에서 보이는 윤리 확장의 전통과 연결되며, 예수는 이를 더 나아가 초월적 윤리로 이끕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율법을 초월해 은혜와 용서를 삶의 방식으로 삼습니다.

3. 은밀한 경건

구제, 기도, 금식 (마 6장) 아보트 2:13과 예루살렘 탈무드 등은 내면의 정결과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의 윤리를 강조합니다. 예수는 이를 하가다적으로 재구성하며, 숨겨진 경건이 하나님의 눈에 보인다는 선언을 통해 외식적 종교를 해체하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중심에 둡니다.

4. 공동체 선언으로서의 소금과 빛 (마 5:13–16)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하가다의 문학 구조를 따른 본문입니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 빛이다”라고 선포하며, 출애굽기 19장, 탈굼 예루살렘, 시프레 민바르 등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소명과 동일한 공동체적 사명을 선포합니다.

5. 결론적 구조: 좁은 문, 열매, 반석 위의 집 (마 7장)

하가다의 끝은 언제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가 지혜롭다 — 모두가 결단을 촉구하는 이야기 장치입니다. 미드라쉬 테힐림과 탈무드 아보다 자라의 유비를 통해 이 구조는 공동체 윤리의 구체적 실천을 요청하는 초대이자 경고입니다.

6. 팔복 (마 5:3–12): 하가다의 서사적 선언

유대적 구조: 하가다의 서두는 언제나 “이야기의 시작”이자 공동체 정체성을 새롭게 기억시키는 선언입니다.

본문 예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이는 출애굽 당시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출 2:23–25)을 하가다처럼 ‘현재화’하는 예언적 선언입니다.

유대 문헌 비교:

• 메힐타 드랍비 이쉬마엘(Mechilta d’Rabbi Ishmael): 출애굽의 고통받는 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는 구조와 병행됩니다.
하가다적 주석 형식 구조 (마태복음 5:3–5 기준)

본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하가다적 해설
이 첫 번째 복은 단지 사회적 약자의 동정이 아니라, 시편 34:18의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는 구절을 염두에 둔 아가다적 축복 선언입니다.

랍비 유대 문헌에서는 마음이 낮아진 자(anav)를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자로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 탈무드 소타 5b: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안에 거하시지 않으신다. 오직 낮아진 자와 함께하신다.”
• 미드라쉬 테힐림 25:9: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길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첫 선언은 바로 이런 문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자리는 권력자나 종교 엘리트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점을 밝히는 하가다적 전복 구조입니다.

7.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나는 말하노니” (마 5:21–48): 미드라쉬적 재해석

유대적 구조: 미드라쉬 아가다는 율법의 본문을 ‘다시 말하는’ 문학으로, 본문의 문자 너머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본문 예시:

• “살인하지 말라… 형제를 미워하지도 말라”
• “간음하지 말라… 음욕을 품은 것도 간음이다”
• “눈은 눈으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문학 구조:

• 문자적 할라카(법률)를 넘어 내면 윤리를 강조 하는 미드라쉬적 해석입니다.
• 극적 대조와 반전에서 하가다의 수사적 장치로 마무리합니다.

유대 문헌 비교:

• 미쉬나 마코트 1:10 — 율법 조항의 ‘의도’를 묻는 해석 전통
• 탈무드 바바 카마 92a — “원수도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윤리 확장 논의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법률 조항의 반복이 아니라, 그 의도를 꿰뚫고 인간 내면과 공동체 윤리까지 비추는 미드라쉬적 하가다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나는 말하노니”라는 구절 구조는 문자 뒤의 뜻을 열어 보이며, 율법의 형식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형상을 회복하려는 초월적 재해석입니다. 이로써 예수는 랍비 유대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 깊이와 경계를 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윤리를 선포하십니다.

8. 구제, 기도, 금식 (마 6장): 아가다의 내면화와 공동체 실천

하가다적 짧은 번역

• “하늘의 빛은 은밀한 손길에 머무른다. 의로움은 관중을 찾지 않고, 아버지의 눈을 기다린다.”
유대적 구조: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보다 내면의 태도와 하나님의 보시는 눈을 강조합니다.

본문 예시:

•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지 말라”
•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 “금식할 때 너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

유대 문헌 비교:

• 아보트 2:13 (“사람은 보지 않아도, 하늘은 본다”) — 미쉬나 아보트의 내면 중심 윤리와 일치합니다.
• 탈무드 바바 바트라 10b – “사람이 오른손으로 구제하면 왼손도 모르게 해야 한다.”
• 미쉬나 페아 1:1 – 은밀한 자선은 율법보다 위대한 덕목으로 간주됨
• 예시: “구제를 은밀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보상한다” (예루살렘 탈무드, 페아 8)

하가다적 요소:

경건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새롭게 ‘기억’시키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예수님은 구제의 내면 동기를 묻습다. 자선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거룩한 모방임. 은밀한 구제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영적 신뢰 계약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자선 규범의 틀을 넘어, 은밀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로움 자체가 예배가 되는 새로운 경건의 윤리를 세웁니다. 이는 ‘보이기 위한 의’에서 ‘존재로서의 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9. “너희는 세상의 소금… 빛이다” (마 5:13–16): 하가다의 공동체 선언

유대적 구조: 하가다에서는 이스라엘을 “빛”, “제사장 나라” 등으로 불러 그 사명을 재확인시킵니다.

본문 해석:

• “세상의 소금”, “등불을 등경 위에” — 공동체의 사명
• 출 19:6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와 병행

랍비 문헌 비교:

• 탈굼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빛과 소금의 역할 강조
• 시프레 민바르 115a: “이스라엘은 열방의 눈이 되어야 한다”

10. 좁은 문, 나무와 열매, 반석 위에 집 (마 7장): 아가다의 결론 구조

유대적 구조: 아가다의 마지막은 결단을 요구하는 축복 혹은 경고로 끝납니다.

본문 예시: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지혜로운 자”

문학 구조:

• 의로운 삶의 결과와 악한 삶의 결과를 병치하여 결단을 촉구에서 하가다의 결론적 양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유대 문헌 비교:
• 탈무드 아보다 자라 17a: “사람은 자기가 지은 집 위에 선다”
• 미드라쉬 테힐림(시편 주석): “사람의 길은 열매로 드러난다”
이와같이 산상수훈은 유대 문학의 하가다입니다

11. 마태복음 5:38–42 “눈은 눈으로”와 보복 금지

마태복음 5:38–39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1. 하가다적 짧은 번역

“너희 조상들은 상처에는 상처로, 손실에는 동일한 손실로 갚으라 들었지만, 나는 말하노니, 악함과 겨루지 말고, 고요한 용기로 마주하라.”
“네게 오른뺨을 치는 자가 있다면, 왼뺨을 돌려라. 정의는 복수가 아니요, 하나님의 얼굴을 닮는 것이다.”
“율법에서 들은 바 ‘눈은 눈, 이는 이’라 하였거니와, 나는 말한다. 악한 자에게 보복하지 말고,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2. 유대 문헌과의 비교

• 출애굽기 21:24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미쉬나 바바 카마 8:1 – 손해배상법 해석을 통해 문자적 보복이 아닌 금전적 보상으로 설명
• 탈무드 바바 카마 84a – “눈에는 눈”은 실제 눈이 아닌 그 가치를 따져 배상하라는 뜻
• 탈무드 바바 카마 83b–84a: 물리적 보복보다 금전적 배상으로 대체함. 문자적 보복은 제한됨.
• 미드라쉬 미쉬레(잠언 주석): “지혜로운 자는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그로 인해 자기 내면이 오염되지 않도록 한다.”
• 베라호트 10a: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는 예는 적에 대한 자비를 강조하는 하가다적 본보기로 사용됨.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예수는 토라의 보복 조항을 들려주되, 보복의 법이 아니라 자비와 화해의 윤리를 가르칩니다. 이는 폭력의 연쇄를 끊고, 하나님의 긍휼이 공동체 안에 스며들도록 요구하는 하가다적 확장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보복하지 말라’는 도덕적 훈계를 넘어서, 적대 자체를 무화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선언합니다. 이는 랍비적 율법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인간관계의 질서를 요청하는 하가다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법률적 복수 원칙을 넘어서, 공동체 내 복원의 윤리와 비폭력적 저항을 강조한 것입니다. 악함은 악함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참된 정의는 반응이 아니라 참음에서 시작됩니다.

4. 초월적 메시지

예수님은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그 목적을 하나님 나라의 평화로 이끄십니다. 이는 ‘권리를 내려놓는 용기’를 통해 하나님 통치를 선포하는 윤리적 혁명입니다. 율법은 복수를 제한했지만, 예수님은 복수 자체를 제거하고 사랑의 방식으로 악을 무너뜨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악에 대해 정의보다 사랑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라는 새로운 존재방식을 요청하십니다. 예수님은 할라카적 정당 방어의 틀을 해체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신적 비폭력의 공동체 윤리를 선언하십니다. 이는 억울함을 넘어서,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서 재현하려는 초월적 부르심입니다.

12. 비판에 대하여, 마태복음 7:1–2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도 비판을 받을 것이요…”

1. 하가다적 짧은 번역

“너의 눈이 무겁기 전에, 네 혀를 가볍게 하라. 잰 대로 재어지고, 뿌린 말이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2. 유대 문헌과의 비교

• 탈무드 소타 8b – “사람은 타인을 판단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도 그를 판단하신다.”
• 아보트 2:4 (Pirkei Avot) – “타인을 판단할 때는 그 입장이 되어보라.”
• 미드라쉬 테힐림 18:25–26 – “긍휼한 자에게는 긍휼로, 완고한 자에게는 엄중함으로”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예수는 판단이 단순한 도덕 평가가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비판은 책임이며, 판단은 거울이다.

4. 초월적 메시지

예수는 비판이 아닌 긍휼, 정죄가 아닌 중보의 자리에 제자를 세우며,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심판 윤리를 새롭게 창조하신다.

13. 마태복음 5:21–22 “살인하지 말라”와 형제에 대한 분노

1. 하가다적 짧은 번역

“율법은 칼로 죽이는 손을 막았지만, 나는 그 칼이 먼저 가슴속에서 자란다는 것을 말한다. 형제를 향한 분노도 죽음의 씨앗이다.”

2. 유대 문헌 비교

• 미쉬나 마코트 1:10 – “사람이 두 증인 없이는 벌받지 않지만, 마음의 증오는 벌받지 않느니라. 율법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 명했지만, 미움을 품는 것도 의로움에서 멀어지게 한다.”
• 탈무드 바빌로니아, 베라코트 5a – “분노는 우상숭배의 뿌리이다.”
• 예레미야서 17:9 –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였으니.”
• 탈무드 바빌로니안, 페사힘 113b: “형제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은 피를 흘리는 것과 같다.”
• 벤 시라 28:1–3: “분노와 원한은 죄인의 몫이다. 너는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죄를 기억하지 말라.”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이 구절은 단지 법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문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하가다적 전환입니다. 예수는 단지 “살인”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재 자체로 존중해야 함을 말하며, 내면의 감정까지 정화해야 진정한 공동체의 정의가 세워진다고 선포합니다. 하가다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뿐 아니라 내면의 동기를 조명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품은 분노와 멸시를 살인과 같은 무게로 다룹니다. 이는 단지 행동을 금하는 할라카를 넘어, 감정의 뿌리까지 치유하라는 내면 윤리의 선언입니다.

4. 예수님의 초월적 메시지

랍비들은 ‘피해 없는 증오’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지만,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내면의 평화와 화해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율법이 처벌의 기준이라면, 예수의 하가다는 화해와 회복을 중심에 둡니다. 랍비 전통은 종종 행동의 결과와 외적 율법을 기준 삼았으나, 예수는 마음의 상태를 율법의 중심으로 드러내십니다. 이는 심판을 행동 이전의 내면에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 윤리의 도입입니다.

14. 마태복음 6:1–4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1. 하가다적 짧은 번역

“하늘의 아버지는 숨겨진 곳에서 보고 계신다. 사람 앞의 박수는 금방 사라지나, 하나님의 기억은 영원하다.”

2. 유대 문헌 비교

• 탈무드 타아니트 9a – “가장 큰 자선은 이름 없이 행하는 것.”
• 미쉬나 페아 1:1 – “자선을 숨기되, 하늘이 다 안다.”
• 시편 139:2 – “주께서 나의 생각을 멀리서도 아시며.”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예수님은 경건이란 외적인 의식이 아닌, 은밀한 동기와 진정성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아가다적 지혜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주제의 반복입니다.

4. 예수님의 초월적 메시지

랍비들은 외형적 순종과 명예를 중시한 반면, 예수님은 숨겨진 행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난다고 선포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중심에 둔 내면의 영성 선언입니다.

15. 마태복음 7:24–27 “반석 위에 지은 집”

1. 하가다적 짧은 번역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래 위의 집과 같고, 듣고 행하면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의 집과 같다.”

2. 유대 문헌 비교

• 시편 1:3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으니… 형통하리로다.”
• 미드라쉬 텔힐림 1:15 –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는 시내 곁의 나무와 같다.”
• 에스라 7:10 –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지혜자는 단지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입니다. 하가다의 목적은 기억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실천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의 삶이 ‘구속 서사’의 새로운 집임을 선포합니다.

4. 예수님의 초월적 메시지

예수는 단지 랍비 해석의 전통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르침을 공동체적 실천과 하나님 나라의 반석 위에 세우도록 초대하십니다. 이는 신앙의 학문이 아닌, 삶의 기초를 다지는 종말론적 지혜의 부름입니다.

16. 마태복음 6:5–8 — 위선적 기도와 은밀한 기도

1. 하가다적 유대식 번역

“너희가 기도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지 말라. 아버지는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응답하신다. 많은 말을 해야 들으시는 줄 생각하지도 말라. 아버지는 너희의 필요를 먼저 아신다.”

2. 유대 문헌의 비교

• 아보트 2:13 (피루케이 아보트):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간절한 간구여야 하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 탈무드 베라호트 31a: 한나의 기도가 ‘입술만 움직였지만’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점이 기도의 본질로 강조됨.
• 미드라쉬 테힐림(시편 주석): 하나님은 외적 화려함보다 심령의 깊은 소리를 기뻐하신다.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예수는 기도라는 종교 행위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전환합니다. 하가다는 겉모습보다 의도와 내면을 중시하는 장르이며, 이 본문은 그 대표적 예입니다.

4. 예수님의 초월적 메시지

예수는 기도의 목적을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로 정립합니다. 공개적 경건이 아니라 숨겨진 믿음의 실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도임을 강조합니다.

17. 마태복음 7:1–5 — 판단하지 말라

1. 하가다적 유대식 번역

“남을 판단하지 말라. 네가 판단하는 그 잣대로 네가 판단받을 것이다. 형제의 눈 속 티는 보면서, 네 눈 속 들보는 왜 보지 못하느냐?”

2. 유대 문헌의 비교

• 탈무드 소타 8b: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때 자기 기준으로 스스로 정죄당한다.”
• 아보트 1:6: “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라. 그리고 자신을 더 엄격히 살피라.”
• 미드라쉬 바미드바르 라바: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폈다는 본보기 제시.

3. 하가다적 메시지 분석

예수는 단순히 판단을 멈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겸손한 자기 성찰을 요청합니다. 이는 하가다에서 강조하는 ‘자기 안의 어둠을 직면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4. 예수님의 초월적 메시지

율법은 공정한 판단을 요청하지만, 예수는 공동체를 사랑과 자비로 연결시키는 평가 기준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세상의 정의와 다름을 보여줍니다.

산상수훈은 신약의 하가다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단순한 교훈 모음이 아니라, 유대 문학 구조를 완전히 수용하고 재해석한 새로운 하가다입니다. 이는 탈무드적 토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윤리를 예언자처럼 선포하는 하가다이며, 구약의 해방 서사를 현재화하는 출애굽적 선언입니다. 예수는 미드라쉬처럼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며, 아가다처럼 삶 속에서 진리를 전하며, 하가다처럼 공동체를 새롭게 빚어내십니다.

이 재구성은 단지 유대 배경의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의 유대적 음성으로 응답하게 돕는 문학적-신학적 장치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랍비적 전통 속에서 말해진 이야기, 해방 선언, 그리고 성경 재해석의 완결판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하가다처럼 새로운 출애굽을 선언하시고, 미드라쉬처럼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며, 아가다처럼 삶 속에 진리를 담아 전달하십니다.

<글을 맺으며>

산상수훈은 한 편의 아가다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도덕의 경계를 넓히는 교훈이 아니었고, 단순한 유대 율법의 변형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가다의 언어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출애굽 하가다처럼 백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기억하게 하고, 미드라쉬처럼 토라를 새롭게 해석하며, 삶 속에 실천하게 하는 공동체 윤리로 녹아듭니다. 오늘날 산상수훈을 살아내는 것은 단지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요청하는 하나님 나라의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가다적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게 됩니다.

2025년 7월 14일 김종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