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존재가 될지라

“나비를 쫓아다니지 말고, 정원을 가꾸라”는 말이 있다. 복이란, 따라다니는 데 있지 않고, 복된 존재가 되면, 복은 찾아온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목양저널] 복된 존재가 될지라 » Du sollst ein Segen sein! » 글 한은선 목사 » 창12:1-9/ 주일설교 새벽묵상 »

영국의 한 청년이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그는 내려오는 길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약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그는 다른 산악인 두 명과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했다. 그가 바로 Edmund Hillary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꿈과 비전은 마치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추진체와 같다. 그리고 그 비전의 주체인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은 크게 갈린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속세로부터 소명하시면서 주신 선언적 축복이다.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
* 널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리라.
* 널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 너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모든 복은 하나님께서 만들어(machen) 주시겠다고 하셨다. 나에 대한 실존적 정체성은 그냥 존재 자체가 복된 자라(Du sollst ein Segen sein)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는 복이란 소유 이전에 존재의 문제이며, 복된 존재로 살아가는 한 그에겐 모든 것이 복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렇게도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엄청난 언약의 축복을 누려야 할 그리스도인이 지켜가야 할 자세를 본문은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 정든 세속의 것들을 떠나는 삶.
* 갈 바를 모르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 주를 부르는 기도의 삶.
* 나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예배의 삶.
* 롯은 사람 곧 아브라함을 좇아갔으나, 아브라함은 사람이 아닌 곧 주의 말씀을 좇아가는 삶을 살았기에 두 사람은 흥망성쇠의 끝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이 모든 삶의 원리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자기 부정이다. 주를 중심한 삶을 요구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가 존재하는 그곳에서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덕을 보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복의 영향력을 끼치는 복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것을 통과하여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간다. 바로 그 현장에서 주님이 나타나 재언약하신다. “이곳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복의 근원은 내가 무얼해서가 아니라 복 된 존재로(ein Segen sein!) 선언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 그 은혜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삶만큼 축복은 구체화되며 재생산 되는 것이다.

올 한 해, 복의 존재로, 복의 영향력을 끼치며,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필자 한은선 목사/ 독일 베를린한인선교교회 담임, 유럽 코스테 상임대표

◙ Now&Here©ucdigiN(유크digitalNEWS)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