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는 시간 개념도 없고 날씨도 변화하지 않다 보니 늘 똑같아서 신경 쓸 일도,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었다. 인지 공간이 긴장을 풀자 영혼이 자유로워졌다. 평소에는 경험하기 힘든 선택과 결정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딥 타이머 모두 동굴에서 평소보다 꿈을 더 많이 꾸었다고 하는데, 정신이 자유롭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단 동굴을 나가면, 그래서 시계와 만나면 동굴에서 느꼈던 무한한 자유를 다시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 [책의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 딥 타임(DEEP TIME) » 크리스티앙 클로(Christian Clot) 지음, 이주영 옮김/ 출판사: 웨일북(whale book) » 옛 조상들은 40이라는 기간을 변화의 시기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저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혜의 산물인 것…
2021년 스위스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티앙 클로는 밤낮의 변화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인간은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규모 팀을 꾸려 40일간의 동굴 생활을 기획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딥 타임(DEEP TIME)’입니다. 딥 타임은 프랑스에서 이뤄졌고, 총 15명이 40일간 동굴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양은 생명이다.” “모두가 공통으로 한 결심이 하나 있기는 하다. 앞으로는 메일과 SNS의 바다에 빠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사용은 줄여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딥타임 이미지 ◙ Photo&Img©ucdigiN
사막에서 치러지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마라톤 대회가 끝났을 남긴 말은, 참가자들의 국적이 다르더라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치러진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서 끝까지 달렸다는 성취감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울트라 마라톤과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인 ‘딥 타임’에 참가한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마라톤 참가자가 쓴 글과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남긴 말을 보면, 인간이란 서로 다르면서도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존재입니다.
40일 동안 했던 동굴 생활의 결론이 언급된 부분에는 책의 제목만큼 강렬하거나 특별한 일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에 관한 반응이 호불호가 확연히 갈립니다. 그런데 이런 특이한 경험을 일반 사람이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포리즘(aphorism)처럼 붙여진 책 안의 소제목들이 말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모든 면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면서 복잡한 문제입니다. 인간은 시간을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시간을 분석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동굴에서 생활해 보니 인간이 시간과 맺는 관계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몸이 말하는 생체 리듬이 시간이 되는 곳이 동굴이었기에, 자신의 몸이 말하는 생체 리듬에 시간을 맡겨야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인간은 시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알게 모르게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시간에 맞춥니다. 그러나 동굴 안에는 시계도 빛도 없었기에, 이런 일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몸이 지닌 생체 리듬이 그들만의 시간이 됐습니다. 그리고 생체 리듬에 따라 지내다 보니 40일이 다 됐을 때 사람들이 했던 말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저자가 40일이 다 됐고, 이제 프로젝트가 종료됐다고 말했을 때, 20여 일 정도를 지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느낀 시간에 대한 감각은 조난사고로 동굴 안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다릅니다. 그러나 조난사고로 동굴 안에 있는 경우에도 이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조난자에게 시계가 있더라도, 그 시계가 더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합니다. 빛이 차단된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생체 리듬이 시계 노릇을 합니다. 그렇기에 ‘나만의 딥 타임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 몸의 생체 리듬이 ‘빛과 시각 공해’에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되새겨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15명의 참가자가 있는 프로젝트였기에, 이 프로젝트에서도 여전히 ‘인간’이란 요소는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까지 복잡하게 작용했습니다. 갇힌 동굴이란 극단적 환경에서 15명이 그들에게 주어진 탐험 활동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어려움과 피로, 불안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토론’과 지침에 관한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동굴 안에서 다양한 토론을 통해 ‘우리가 어떤 질서를 따르고 있는지’와 ‘살아가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것을 몸으로 직접 익혔습니다.
딥 타임의 날짜를 40일로 정한 이유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시간생물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여러 차례의 공간 모의실험을 통해 환경과 생태계가 새롭게 바뀌고, 인간의 적응력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35일이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인간의 적응력을 관찰할 때 35일 동안 상황을 지켜보고, 상황 변화에 관한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계에서 35일은 ‘놀라움과 발견’ 과정으로 시작해서, ‘이해와 안정’ 과정을 거친 후, ‘적응과 실천’이 진행되는 시간입니다. 실천이 시작됐을 때는 이미 새로운 환경에 인간이 적응했기에, 더는 새로운 상황이 인간에게 변화를 끼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35일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사의 중요한 기록에서 많이 발견되는 숫자인 40일을 택했습니다. 옛 석학들이 40일을 인간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결정적인 시간으로 생각했고, 또 40은 플라톤의《국가론》제 7권에 나온 동굴 신화의 시대입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옛사람들이 고난을 거쳐 휴식이나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를 찾은 날이 40일입니다.
지금처럼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지 않았던 인류가 중요한 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간을 정할 때, 이에 해당하는 과학적 근거를 충분하게 검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옛 조상들은 40이라는 기간을 변화의 시기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저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도 과학에서 말한 35일을 뒷전으로 하고, 인류의 조상이 남긴 지혜를 따라 40일간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를 마칠 즈음 참가자들은 서로의 생체 리듬이 점차 비슷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생체 리듬이 서로 달라 열띤 토론을 통해 몇 가지 규칙을 정했었지만, 끝날이 다가오자 생체 리듬이 서로 비슷해졌습니다. 이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인간 생체 리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참가자들은 그때가 몇 시인지 알 수 없었고, 24시간을 평균으로 하는 지구 자전이 정해준 시간에서 벗어난 상태였기에, 그동안 ‘평균이라고 생각했던 기준’이 무의미해졌었습니다. 그래서 생체 리듬이 기준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일정한 평균치를 향해 수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고서, 저자는 인간이 끊임없이 공동체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누구나 개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휴식하지만, 혼자서 휴식하는 방법도 은연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체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의 속도를 고려해서 나의 발걸음을 맞춰가는 일이 공동체의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혼란이 생깁니다. 그러니 내 발걸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평균치를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필자 정이신(以信) 목사/ 본지 북스저널 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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