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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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무게를 확보하는 방식의 하나가 자기만의 생각인데, 이 책은 그 예시의 하나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흔적이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생각은 보통 눈을 감고 해도 좋지만, 저잣거리를 기웃거리면서도 가능하다. 바깥으로 뛰쳐나가기도 귀찮고 눈을 감기도 싫으면, 책을 펼쳐도 같은 효과를 얻는다. 모든 문학 작품은 구상이든 추상이든 삶의 풍경화다. 글로 묘파한 삽화를 곁들여 불분명한 몽상의 그림을 문자로 번역한 것이《존엄성 수업》이라는 이름표를 단 두터운 메모장이다. 다른 멋진 필자들의 글에서 오려낸 장면을 삽화로 이용한 방식은 모든 것이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은유의 표현이므로 여기서도 차용하였다. – [책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 존엄성 수업 » 차병직 지음/ 출판사: 바다출판사 »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참으로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의식주에 필요한 일상용품이나 생활 비용을 충당할 돈도 필요하지만, 그 돈이 바닥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자리도 필요합니다. 무형의 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권이나 인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인간의 삶에 반드시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식주가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권리를 보장한 다양한 목록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조금 덜 중요하다’라고 선뜩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선호하는 기호가 다양하기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 중에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몇 가지도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이는 물리적 조건을 삶의 필수 요소로 여기지만, 다른 이는 법률상으로 자가 호흡을 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가 사회적 의미를 창출하는 일에 더 많은 비중을 둡니다.

저자가 책 제목인 ‘존엄성 수업’의 구성 항목으로 14개를 선별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혹은 존중받기 위해 먼저 존중해야 하는 것을 저자가 나눠서 이야기했는데, 이는 사람에 따라 각기 존중하는 가치가 다른 것을 고려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선별한 14개 항목이 어느 정도 사회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 사회가 달라지기 위해, 그리고 내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이것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가 선별한 존엄성 수업 교과목 중 마지막에 동물권에 관한 것이 나옵니다. 이것을 제외한 13개 항목은 모두 인간에 관한 것입니다. 동물권이 ‘인간을 위한, 인간의 존엄성 수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아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동물의 권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동물을 ‘호모 사피엔스는 아니지만, 인간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물에 대한 사유는 최종적으로 인간과의 관계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코드가 ‘나와 다른 이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책에는 남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저자가 예화로 소개한 글이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제법 세월이 흐른 뒤 은퇴한 선생을 역시 냉면집에서 만났을 때였다. 내게 무슨 일을 제안하면서 덧붙인 말씀은 이랬다. 자네가 한 번 해보겠는가? 나하고는 생각은 많이 다르겠지만.” 변호사인 저자가 책에서 말한 내용이 집약된 이 예화는, 내가 존중받으려면 남이 나와 다른, 그렇지만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란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상식을 글로 묘파(描破)한 것입니다.

저자의 직업이 변호사기에 책에서 14개 항목에 관해 말할 때 판례를 적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판례보다 문학 작품에 등장했거나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글로 묘화(描畫)했습니다. 이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해당 사항에 관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먼저 존중해 줘야 하는 항목에 관한 다양한 고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책에 있는 이 고찰도 저자가 그의 의견에 따라 수집한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의견과 더불어 이에 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꽤 유익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권에 관한 항목을 보면, 저자는 노동문제나 노동 착취를 해결하기 위한 계급 투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일을 해도,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생활이 편해지지 않는 현실’과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노동자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쓸쓸한 노동자의 초상만 가득한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묻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러다이트운동, 전태일 등으로 인해 현대 사회의 우리가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로서 노동 결사체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괴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자 이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노동권을 둘러싸고 있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견원지간(犬猿之間)과 같은 앙숙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돕는 이웃이란 각성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수업’이란 책의 제목을 고려하면 ‘14개의 교과목’이란 말도 성립하는데, 이 교과목의 핵심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자리 잡습니다. 이름만 보면 이 항목이 더 바랄 것이 없는 최고의 수업 과목이지만, 이 과목이 처음 생겨났을 때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습니다.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기에,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정의도 달라졌고, 이로 인해 책에서 인용한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사례도 다양한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존엄성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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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인권이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던, ‘사회적 개인’이 탄생해 자신의 주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한 주권 혁명 이전의 시대에는, 인간이 신분 차이로 인해 불평등을 겪었습니다. 사람이 속하거나 태어난 공동체에 의해 그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결정됐기에, 그런 불평등에 억눌린 사람들은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계급을 타파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선각자들의 헌신에 힘입어, 사회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로 개인이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권 혁명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개인의 탄생’을 맞본 후에, 우리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경제력에 따른 불평등으로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소비자로 전락한 시민들 사이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보이지 않게 억압당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가 여전히 사회적 이슈로 등장합니다.

또 ‘그곳은 지구촌에 있는 복지사회’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여전히 인간다운 생활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유와 평등, 억압과 불평등이란 고전적 가치뿐 아니라, 21세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로 꼬이지 않고 어울리게 하는 신호등으로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이 책을 통해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필자 정이신(以信) 목사/ 본지 북스저널 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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