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탐구한 많은 연구 방법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문화적 과정이 유럽, 중국, 인도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다양성의 형성을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에 작용하는 자연 선택이 지금까지 설명한 종교적 믿음, 제도, 경제적 변화 등에 의해 창조된 세계에 서서히 반응을 나타냈지만, 유전자가 현대의 변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많다. 그리고 설령 영향을 미치더라도 일반적으로 추정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책의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 위어드(WEIRD) »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 지음, 유강은 옮김/ 출판사: 21세기북스 » 저자는 전 지구적 불평등과 관련해《총ㆍ균ㆍ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밝힌 시각과 다른 입장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걸 한마디로 요약한 게 책의 제목인 ‘워어드’입니다.
위어드(WEIRD)는 저자가 본 현대 서구 문명의 변화를 가져온 5가지 키워드를 조합한 이름입니다. Western(서구의), Educared(교육 수준이 높은), Industrialized(산업화된), Rich(부유한), Democratic(민주적인). 저자는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설명하지 않은 시점인 A.D 1,000년 무렵부터 현대까지 지구의 변화를 이끈 힘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당연히 들어갑니다. 산업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다른 곳이 아닌 유럽에서 이 혁명이 시작됐는지에 관한 통찰을 말하기 위해, 그동안 숱하게 많은 사람이 글을 썼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두 번째 밀레니엄 전반기 동안 천지를 뒤흔드는 경제적 변화의 원천이 될 후보로 꼽힌 지역에는 유럽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유럽보다 중국과 인도, 이슬람 세계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는데, 유럽이 이걸 뒤집은 이유가 뭔지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그들이 파악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저자도 이에 관해 새로운 쟁점을 말했습니다. 저자는 유럽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의 사회적 구조보다 그게 태동하게 된 유럽인의 심리적 요인에 더 주목했습니다. 저자는 교회가 유럽의 친족 기반 제도를 해체한 후, 일부 인구 집단에서 나타나 유럽 전체로 확대되기 시작한 심리적 차이가 산업혁명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때 나타난 유럽인의 심리 변화는 유럽에 비개인적 시장, 경쟁하는 자발적인 결사체, 새로운 종교적 신앙, 대의적 거버넌스, 과학의 발전을 불러왔습니다. 따라서 유럽에 이런 여건이 조성된 것과 산업혁명이 발생한 사건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종이 지구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을 저자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지성이나 추론 능력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저자는 주변에 있는 이들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인간이 만든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외부와 미래 세대로 퍼뜨리는 역량이 인간에게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같은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정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계속 누적돼 있어야 합니다. 이는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진 혁신이나 발명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에, 이런 정보를 누적했던 유럽인의 사회 심리 상태를 저자는 면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저자의 이런 고찰에 대해 비폭력적 형태의 집단 간 경쟁을 활용한 일이 유럽 외의 많은 사회에서 나타났기에, 이게 유럽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란 비판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유럽의 길드와 대학을 비롯한 결사체들 사이에서 벌어진 집단 간 경쟁은 그 성격이 다른 사회와 달랐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걸 유럽의 집약적 친족 관계에 뿌리를 둔 사회적 연결망이라고 했습니다.
근대 전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관계나 주거를 움직여서 새로운 사회 집단에 가담하기 힘들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집단에 가담했다고 해도, 자신의 사회적 유대와 동기, 도덕적 의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인해 여전히 기존에 물려받은 친족 기반 공동체에 묶여 있었습니다. 저자는 한 나라를 넘어서서, 유럽 전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공동의 변화 근거를 제공한 일을 교회가 일부일처제 결혼을 유럽에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개인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통해 수행했다고 합니다.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인이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유럽 사회에 두드러진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프로테스탄티즘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과 적절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문가나 사제, 교회 같은 제도적 기관의 권위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중세 이후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라틴어)’으로 알려진 기독교 개혁의 원리를 따르기 위해 누구나 글을 읽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추구하는 걸 성취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 모두 성스러운 문서인 성경을 혼자 힘으로 읽고 해석해야 했습니다.
중세까지 성경은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만 번역돼 있었기에, 유럽의 각 나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언어와 달랐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선구자들은 성경을 각 나라의 언어로, 지방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이로 인해 프로테스탄티즘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나라일수록 시민들의 문자 해독 능력이 빠르게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개신교인이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문해력이 증진됐고, 학교가 많아졌습니다.

위어드(WEIRD)
기독교 개혁이 낳은 프로테스탄티즘이란 물결의 여파가 유럽인의 학교 진학률을 높였고, 시민들의 문해력을 증진 시켰던 결과가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태동하는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16∼17세기에 유럽의 가톨릭교회가 문해력과 학교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건 개신교회가 교육에 중점을 두는 모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또 19세기 스위스에서 신병들을 대상으로 일련의 인지력 테스트를 했는데, 개신교도만으로 이뤄진 지방 출신 청년들이 가톨릭교도만으로 이뤄진 지방 출신 청년들보다 더 나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문해력은 수학, 역사, 글쓰기 점수에도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그들이 거주했던 지방의 인구밀도, 출산율, 경제적 복잡성 등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이런 특성은 21세기에도 유지되고 있는데, 개신교회는 복음 전파를 위해 낯선 곳으로 갈 때,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만드는 작업을 늘 병행합니다. 개신교회가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감으로써 프로테스탄티즘을 전파할 뿐 아니라, 문맹 퇴치 등 그 나라에 다른 사회적 효과도 불러일으킵니다.
저자가 말한 문해력은 한 사회가 변화하는 기초 토대로 글자를 읽고 해독하는 능력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심리와 그 사회의 구조적 변화란 커다란 빙산을 만듭니다. 저자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건의 이면으로 인해 유럽에 어떤 심리적 변화가 발생했는지, 그게 어떻게 오늘날의 유럽을 만드는 문화적 진화의 토대가 됐는지를 ‘Western(서구의)’의 시각에서 설명했습니다.
필자 정이신(以信) 목사/ 본지 북스저널 전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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