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계발] 신성모독인가, 성취인가?: 나사렛 회당 사건을 통한 유대 문헌적 재조명-7 » Blasphemy or Fulfillment? A Jewish Literary Reconsideration of the Nazareth Synagogue Incident
Contents
- <글을 시작하면서>
- <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 했는가?>
- <회당 제도의 기원과 신약 성서 교회와의 관계>
- <회당의 역사와 교회: 하나님의 임재와 공동체의 여정>
- <회당과 교회와의 관계>
- <회당의 주요 기능과 언약 학교>
- <기도의 집으로서의 회당>
- <회당의 공간 배치와 “Aron HaKodesh”의 신성함에 대한 예수님의 행위>
- <예수님과 회당 – 낭독 전통의 완성과 도전>
- <회당과 “기도의 집”에 대한 종합적 비교>
- <카할과 에클레시아 – 회당에서 교회로 이어진 공동체의 전이>
- <교회의 탄생과 회당 제도의 신학적 계승>
- <Kahal과 Ekklesia의 계승 및 연결>
- <이사야 61 장의 해석에 대한 랍비 유대교와 예수님>
- <랍비 문헌에서의 이사야 61장 해석과 메시아 이해>
- <이사야 61장의 성취로 드러난 예수의 메시아 자기 계시>
- <예수의 사역과 이사야 61장의 점진적 성취>
- <회당과 신약 성경 교회와의 관계>
- <다윗의 장막과 다윗의 아들 – 예수의 회당 선언과 메시아성>
- <유대교 및 신약 성경의 시두르 기능>
- 1. 시두르(Siddur 또는 Seder)의 구성과 기능
- 2. 토라와 예언서 낭독 순서(Seder ha-Parashiyot)의 전통
- 3. 예수님과 하프타라의 선포 구조
- 4. Haftarah 낭독의 규범이란?
- 5. Seder ha-Parashiyot의 기원과 예수의 나사렛 회당 반응
- 6. Seder ha-Parashiyot의 기원과 구성
- 7.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낭독과 Seder와의 관계
- 8. 시두르(Siddur)의 기원과 신약과의 관계
- 9. Seder가 사복음서에 언급되는가?
- 10.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Seder의 사용
- 11. 바울의 기도 신학과 Seder의 관계
- 12. 신약 전체에서의 기도와 Seder 관계
- 13.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Seder의 사용
- <에클레시아와 메시야적 사역의 계승: 회당에서 교회로의 전이>
- <회당에서 교회로, 랍비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 <글을 맺으면서>
<글을 시작하면서>
이 글은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사건을 유대 문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성경 낭독과 선언은 단순한 회당 예배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회당 예배 질서와 메시아 이해, 그리고 율법 중심의 공동체 구조 속에서 그 행위는 파격적이며, 율법적·신성 공간 질서를 침해한 불경죄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글은 특히 Mishnah, Tosefta, Targum, Talmud 등 랍비 문헌들을 통해,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행위를 ‘신성모독’으로 인식하고 격노했는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교회가 간과하기 쉬운 회당 제도의 신학적 무게와, 그것을 넘어서 선포된 예수님의 선언이 갖는 종말론적 의미를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 누가복음 4:15–21
나사렛 회당 원로들의 항의 성명서
― 누가복음 4:15–21에 나타난 예수의 행위에 대하여 유대 율법과 회당 질서에 따른 고발 성명서 –
사건 보고: 주후 어느 안식일, 나사렛 회당 기록 (בֵּית הַכְּנֶסֶת נָצְרַת, Beit HaKnesset Natzrat)
그날, 우리 나사렛 회당에서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불경과 신성모독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으며, 우리 가운데서 성장한 자입니다. 오랜 기간 우리의 회당에서 함께 예배 드리며, 아람어 탈굼(Targum Onkelos)을 배우고, 미드라쉬 수업에도 참석했던 그는 익숙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늘 보여준 행동은 그 모든 과거를 배반하고도 남을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의 행위는 그 모든 과거를 배신한 것이었습니다.
사건 개요
그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안식일 어느 날, 예배가 시작된 후, 쉘리야 찌부르(שליח ציבור, 공동체 낭독 대표)의 허락 하에, 예의상 그에게 하프타라 낭독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쉘리야 찌부르(שליח ציבור)의 동의 아래, 이는 외부의 학식 있는 랍비나 유대 현자(Sage)에게 부여되는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해진 Haftarah 순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미쉬나 메길라 3:4와 토세프타 메길라 3–4에 따르면, 회당에서의 예언서 낭독은 철저히 지정된 시두르(Seder ha-Parashiyot)에 따라야 하며, 특정 샤밧(안식일)과 절기에 따라 해당 본문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은 Targum Jonathan 전통과 Seder ha-Parashiyot에 따라 이사야 예언서를 낭독해야 할 날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스스로 אָרוֹן הַקֹּדֶשׁ (Aron HaKodesh)를 열고, 그 안에 있는 סֵפֶר תּוֹרָה (Sefer Torah)를 꺼내어 임의로 본문을 선택해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낭독자가 지켜야 할 정해진 하프타라 순서를 무시하고, 스스로 אָרוֹן הַקֹּדֶשׁ (Aron HaKodesh)를 연 것입니다. 이는 회당 동편 벽에 위치한 성스러운 두루마리 보관함으로, 오직 회당장이나 할라카 랍비만이 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 유대인 공동체에 있어서 회당은 단순한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율법을 배우고 공동체로 살아가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바벨론 탈무드 b. Berakhot 6a는 세 사람이 모여 토라를 공부하는 곳에 쉐키나(שְׁכִינָה, 하나님의 현존)가 머문다고 명시하며, 회당을 단지 지역 모임 공간이 아닌 성소의 축소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신성한 구조는 다음의 핵심 요소들로 이루어집니다:
Aron HaKodesh (אָרוֹן הַקֹּדֶשׁ)입니다.
회당 동쪽 벽면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장소로, Sefer Torah를 모셔두는 성스러운 궤이며, 고대 성전의 언약궤(Kapporet)를 상징합니다. 이 성궤는 아무나 열 수 없고, 회당장이나 지정된 할라카 랍비만이 개봉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경외의 질서를 의미합니다.
Bimah (בִּימָה)입니다.
말씀을 낭독하는 중앙 단상으로, Torah와 Haftarah가 공적으로 봉독되는 공간입니다. 신중하게 정해진 순서에 따라 본문이 낭독되고 해석되는 곳으로, 임의로 오를 수 없습니다.
Sheliach Tzibbur (שְׁלִיחַ צִבּוּר)입니다.
회중을 대표하여 토라와 기도문을 낭송하는 낭독자입니다. 이 역할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며, 학문과 신앙, 도덕적 자격이 있는 자만이 수행합니다.
Minyan (מִנְיָן)입니다.
회당 예배의 공적 효력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성인 남성 열 명으로 구성된 공동체 단위입니다. 민얀 없이 토라 낭독이나 하프타라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유대인 공동체가 수백 년에 걸쳐 지키고 보존해 온 회당의 구조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신성한 질서를 무시하고, 쉘리야흐 찌부르의 권한을 넘어 직접 Aron HaKodesh를 열고, 야드(토라 지시봉) 없이 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으며, 기존 Haftarah 순서를 무시하고 임의의 본문(이사야 61장과 58장 일부)을 병합하여 스스로 해석하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레위기 16장에서 묘사된 대제사장이 시은좌(Kapporet) 앞에서 “너희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하는 행위와 맞먹는 신성 침해였습니다. 히브리서 4:14–5:10에 따르면 예수는 참 대제사장이지만, 랍비 유대교 질서 내에서는 이러한 자기적 선언은 형벌의 대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행위는 단지 회당 예배 규범을 어긴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소성과 신적 질서를 파괴한 신성모독 행위로 간주됩니다.
그는 예언서의 두루마리(נָבִיאִים, Nevi’im) 안에서 의도적으로 이사야 61장을 찾았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사야 58:6을 끌어다가 본문과 병합한 것입니다. 이는 전례적 금도를 어기는 무례이며, 명백한 “미드라쉬적 병합”으로 불경한 해석 행위입니다. 또한 그는 정해진 야드(손가락 모양 토라 지시봉)도 없이, 손으로 직접 두루마리를 짚고 낭독하였습니다. 이는 성물 접촉 금지 원칙(Tosefta Kelim 1:6)에 위배됩니다.
그가 낭독한 구절은 이러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그리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הַכְּתוּב הַזֶּה נִשְׁלַם הַיּוֹם בְּאָזְנֵיכֶם)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언서의 주해가 아니라, 자신이 바로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מָשִׁיחַ, Mashiach)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해석이 아닌, 스스로를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משיח (Mashiach)으로 자처하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매우 중대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율법과 성전을 회복하고 다윗의 계보를 입증해야 하며(사무엘하 7장 참조), 그 출현은 종말적 조건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벨론 탈무드 산헤드린 98b에 따르면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되, 율법과 성전 회복을 전제로 하며, 율법 준수와 공동체의 회개를 수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후손이라는 족보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은혜의 해” (שְׁנַת רָצוֹן)를 스스로 선포하였습니다. 탈무드 산헤드린 98b는 메시아의 출현은 “회개와 율법 순종, 그리고 백성의 의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보복의 날”(יוֹם נָקָם)을 생략하며, 이사야 61장의 메시아적 심판 기능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은혜와 현재적 성취만을 부각시켰습니다. 이는 메시아 사상을 왜곡한 이단적 선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이 말씀을 선포하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가 그 자신의 육체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자처한 것입니다. 이는 곧, 대제사장만이 대속죄일(יוֹם הַכִּיפּוּרִים, Yom Kippur)에 성소(קֹדֶשׁ הַקֳּדָשִׁים)에서 지성소의 시은좌(כַּפֹּרֶת) 앞에서 “너희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할 수 있는 특권을 도적질한 행위였습니다.
회당은 단순한 낭독의 장소가 아닙니다. b. Berakhot 6a에 따르면, 세 사람이 율법을 배우는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뭅니다. 그는 이 거룩한 장소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사적으로 해석하고, 예배 질서를 위반하며, 메시야로 자칭했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 민얀(מניין, 십인 예배 공동체)과 회당장(רֹאשׁ הַכְּנֶסֶת, Rosh HaKnesset)의 허락 없이 공적으로 메시지를 해석하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시두르 순서를 파괴하였고, 미쯔바(מצווה) 규정도 따르지 않았으며, 우리 민얀(מִנְיָן, 10인 공동체) 앞에서 회당의 신성을 모독하였습니다. 우리 랍비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누구든 율법을 훼손하고 공동체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할지어다.” ― 탈무드 산헤드린 45a
이와 같은 자는 다음의 율법 규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보이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을 따르게 하려 하면 그를 죽이라.” ― 신명기 13:1–5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예수께서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나사렛 회당 사건에서:
1. 스스로 Aron HaKodesh를 열고,
2. 정해진 Haftarah 순서를 무시하고,
3. 자신이 메시야로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했다고 선언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신성 모독이며 불경죄를 범한 것입니다.
예수의 신성모독의 근거 및 율법 위반 사항들
• 그는 Haftarah의 지정 구절을 무시하였습니다. (Mishnah Megillah 3:4)
• 그는 “보복의 날”(יוֹם נָקָם, Yom Naqam)이라는 심판 구절을 생략하여 메시아의 종말적 기능을 왜곡했습니다.
• 그는 회중 앞에서 자칭 메시아 선언을 했습니다. (b. Sanhedrin 98b)
• 그는 은혜의 해(שְׁנַת רָצוֹן, Shenat Ratzon)를 임의로 선포했습니다.
• 그는 야드 없이 두루마리를 직접 만졌습니다. (Tosefta Kelim 1:6)
• 그는 회중의 민얀과 회당장의 사전 승인 없이 드라쉬를 선포했습니다.
예수의 이러한 행위는 우리 전통 랍비 유대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다중 신성모독 행위입니다. 이는 단순한 예언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회당 전통 질서, 성서적 권위 구조, 메시아 기대론을 흔드는 신성 공간 내의 질서 파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 그는 회당 질서의 파괴자입니다.
• 그는 Haftarah 전통을 조롱하고, Seder를 무시했으며, 드라쉬 규범을 모독했습니다.
• 그는 회중 앞에서 스스로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선포하였습니다.
• 그는 공동체의 신앙을 해체하려는 선동자이며, 신성모독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탈무드 산헤드린 45a와 Deut. 13:5에 따라, 돌로 처형되어야 하며, 회중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참고 문헌
• Mishnah Megillah 3:4 – 예언서 낭독 규정
• Tosefta Megillah 3–4 – 예언서와 토라의 구분
• Targum Isaiah 61 – 메시아의 정치적·종말적 해석
• b. Sanhedrin 98b – 메시아의 조건 규정
• b. Berakhot 6a – 회당 내 임재 규정
• Tosefta Kelim 1:6 – 성구 직접 접촉 금지
• Deuteronomy 13:1–5 – 거짓 예언자에 대한 율법적 단죄
위의 성명서는 당시 랍비 유대교의 문헌을 토대로 왜 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하였고 그토록 예수님을 배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본 관점으로 재구성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 했는가?>
― 랍비 유대교 문헌과 신성모독 관점에서 본 나사렛 회당 사건의 재구성
나사렛 회당에서 일어난 사건은 단순한 지역적 해프닝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 지도층은 예수를 본격적인 반율법적 선동자로 간주하게 되며, 나중에는 신성모독자로 정죄하여 죽이려는 명확한 종교적 동기를 갖게 됩니다.
저는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이토록 분노했을까?
왜 나사렛 회당에서 낭독 하나, 메시지 하나가 유대 율법 공동체 전체를 경악케 했을까?
이 의문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 율법 체계와 종교 질서 안에서 볼 때 예수님이 보여준 일련의 행위들이 “불경죄”(Chillul HaShem, חילול השם) 혹은 “신성모독”(Blasphemy)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누가복음 4장 15–21절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는 당시 랍비 유대교의 경전 전통, 회당 예배 질서, 하프타라 규정, 메시아론,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Kiddush HaShem, קידוש השם)에 대한 위협으로 비쳤던 것입니다.
이 글은 오늘날 기독교 신자, 특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간과하는 유대인들의 신학적·율법적 관점에서, 왜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사건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만큼의 사건으로 인식되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에만 집중하지만, 당시 유대 회당 안에서 이루어진 일은 단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질서의 붕괴, 하나님의 성호를 사유화하는 불경, 그리고 율법적 권위를 파괴하는 반란 행위로 비춰졌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들이 격노의 핵심이었습니다:
1. Haftarah 낭독 질서 파괴: 미쉬나 메길라(Megillah 3:4)와 토세프타 메길라의 규정은 낭독 순서와 범위를 엄격히 규정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무시하고 지정되지 않은 날에 이사야 61장을 스스로 선택해 낭독했습니다.
2. Aron HaKodesh(אָרוֹן הַקֹּדֶשׁ)의 자의적 개방과 두루마리 낭독: 이는 회당장의 승인 없이는 허락되지 않으며, 말씀을 ‘손으로 직접 짚은 행위’는 성구 접촉 금지법(Tosefta Kelim 1:6)을 위반하는 행위였습니다.
3. 드라쉬 규범 위반 및 병합 해석: 이사야 58:6과 61:1–2a를 임의로 병합해 자신의 메시아성에 대한 선언으로 이어가는 방식은 전통적 해석 학파(페르시유트, פֵּרוּשִׁים)의 방식이 아닌, 선동적 선언이었습니다.
4. 메시아 자기선언: “오늘 이 말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לַיּוֹם נִשְׁלַם)라는 선언은 단지 주석적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이사야가 말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선포였으며, 이는 다윗 언약과 대제사장 권위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5. Yom Kippur 대제사장 선언의 도용: “죄 사함”과 같은 선언은 오직 성전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던 언약적 선언입니다(레위기 16장). 예수님의 선언은 곧 하나님의 주권 영역을 침범하는 신성모독적 언행으로 인식되었습니다.
6. 민얀 질서의 파괴: 공예배 공동체(מִנְיָן, Minyan)의 질서를 깨뜨리고, 자신이 메시야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공적 회중의 거룩한 질서를 파괴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이 선언을 은혜롭고 구속사적인 메시지로만 이해하지만, 당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사건은 신성한 예배 공간에서의 예언 성취 선언이 아닌, 율법 파기 선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나사렛의 존경받는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회당에서 쫓겨나 돌로 쳐 죽일 자로 여긴 것입니다.
유대 전통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일은 곧,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이 본문은 신약적 회당 언급 중 가장 상징적이며, 구속사적 전환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고찰은 나사렛 회당을 단순한 역사적 공간이 아닌, 유대교에서 교회로의 전환점을 드러내는 신학적 창문으로 이해하며, 회당–시두르–메시아 선언–교회 탄생이라는 구속사의 흐름을 통전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학문적 시발점을 제공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장면을 예수님의 고향 방문 또는 단순한 성경 낭독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본문은 단지 한 도시에서 벌어진 설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본 사건은 회당 예배의 전통, 메시아적 자의식의 선언, 구약 예언의 성취, 그리고 공적 사역의 출발이라는 복합적 의미를 나타냅니다.
<회당 제도의 기원과 신약 성서 교회와의 관계>
본 연구는 누가복음 4:15–21의 본문을 제2성전기 회당의 예배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특히 시두르의 예배 구성 요소, Seder ha-Parashiyot의 구조, 하프타라 낭독 전통, 그리고 이사야 61장의 사용을 통해, 예수의 선언이 단지 회당 내의 사건이 아니라 랍비 유대교 전통 안에서의 급진적 갱신의 신학적 선언임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연구 주제 및 탐구 방향
1. 갈릴리 및 유대 전역에 산재한 회당의 기원과 기능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성전이 부재하거나 접근이 어려운 지역 공동체에서 예배와 율법 교육의 중심지로 기능하였습니다. 사복음서 전반에 나타나는 예수의 회당 사역은 갈릴리와 유대 지역에서 회당이 이미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2. 회당과 신약 교회의 관계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회당은 성전 기능을 보완하는 지방 공동체 중심의 예배 장소였습니다. 신약의 에클레시아 개념은 이러한 회당 전통을 수용하면서, 예수의 부활 이후 공동체 중심의 복음 선포와 성례 중심의 새로운 구조로 확장되었습니다.
3. 시두르(Seder ha-Parashiyot)의 기원과 용례
시두르는 토라와 하프타라의 낭독 순서를 구성한 예배 서식 전통으로, 바벨론 포로기 이후 공동체의 율법 교육과 예언자적 권위 회복의 수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낭독하신 것은 이 시두르의 예언서 순서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토라와 하프타라의 순차 낭독 전통
고대 회당 예배는 율법서(토라)와 예언서(하프타라)를 정해진 순서로 낭독하고 해석하는 구조를 가졌습니다. 미쉬나와 탈무드는 이를 규범화하였으며, 예수 시대 갈릴리 회당도 이 낭독 구조를 따랐음을 암시합니다.
5.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는 선언의 의미
이 표현은 단지 예언의 해석이 아니라, 예언의 현재적 성취를 선포한 것입니다. 특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시은좌에서 “너희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선언하던 전통과 평행 구조를 가집니다. 예수는 이사야 61장의 메시야적 본문을 자기 자신 안에서 성취시키는 대제사장적 권위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6. 하프타라 낭독의 규범과 예수의 선택
미쉬나 메길라(Megillah 4장)와 탈무드 전통에 따르면, 하프타라 낭독자는 예언서 본문을 임의로 생략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사야 61:2의 “복수의 날”을 생략하고 “은혜의 해”에서 낭독을 마치셨습니다. 이는 메시아의 초림에서 심판보다는 은혜를 강조하신 행위로 해석됩니다.
7. 이사야 58장과 61장에 대한 고대 유대 문헌의 해석
미드라쉬 라바(Midrash Rabbah)와 탈굼 요나탄(Targum Jonathan)은 이사야 58장과 61장을 메시아적 회복의 본문으로 해석하며,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에게 회복을 가져올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메시아를 강조합니다. 예수의 회당 선언은 이 해석 전통과 맞닿아 있으며, 이를 실현시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누가복음의 내러티브를 제2성전기 유대교의 예배 전통, 즉 시두르(Seder ha-Parashiyot)의 구조 속에서 비교 분석함으로써, 예수의 선언이 단지 상징적 의미가 아닌, 전례적 공간에서 구속사적 계시로 이행하는 전환점임을 밝히고자 합니다.
<회당의 역사와 교회: 하나님의 임재와 공동체의 여정>
하나님께서 이끄신 공동체의 여정은 언제나 그분의 임재가 머무는 장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성막(מִשְׁכָּן, Mishkan)과 성전(בֵּית הַמִּקְדָּשׁ, Beit HaMikdash),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회당(בֵּית כְּנֶסֶת, Beit Knesset), 그리고 신약의 교회(ἐκκλησία, Ekklesia)는 모두 언약 백성이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였으며, 각기 다른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 정체성과 기능을 확장해왔습니다.
회당의 기원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로, 성전이 파괴된 상황에서 율법 교육과 공동체 예배의 장소로 발전했습니다. 포로기 이후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부터 토라 낭독이 예배의 중심이 되며, 회당은 성전 기능을 보완하는 지방 예배 장소로 정착됩니다.
포로 귀환 이후 회당(בֵּית הַכְּנֶסֶת, Beit HaKnesset)은 제2성전기 유대교 공동체의 중심이자, 성전 기능을 보완하는 지역적 경건 공동체의 공간이었습니다. 비록 희생제사 기능은 성전에서만 이루어졌지만, 회당은 율법 교육, 기도, 성경 낭독, 공동체 규율을 실천하는 장으로 점점 중요성을 더해갔습니다.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회당은 유대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율법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언약의 학교”이자 “기도의 집”이었습니다(슥 8:23, 슈르카인 해석 참조).
디아스포라 유대 공동체에게 있어 회당은 단순한 예배 장소나 사회적 모임 공간이 아니라, 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심 기둥이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이후, 특히 바벨론 포로기와 이후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회당을 통해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켜냈습니다.
1. 회당의 기원과 발전
회당(히브리어: בֵּית הַכְּנֶסֶת, Beit HaKnesset, 또는 בֵּית כְּנֶסֶת, Beit Knesset))은 “모임의 집”이라는 뜻으로, 성전 중심의 제사 제도가 불가능해진 포로기 이후부터 나타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포로기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조직한 모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인들은 성전에서의 제사를 대체할 수 있는 공동체 중심의 경건 공간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회당이 등장하였습니다.
초기 회당은 단순한 예배 처소를 넘어서 율법 교육, 기도, 공동체 규범 실천의 장소로 기능하며 점차 ‘성전의 대체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탈무드(Yerushalmi Megillah 3:1)는 “바벨론에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전하며, 포로지에서도 율법 중심의 삶이 지속되었음을 암시한다.
포로기부터 등장하는 Beit Knesset(בֵּית כְּנֶסֶת, ‘모임의 집’)은 후에 회당으로 정형화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안 탈무드 Megillah 29a는 회당을 “성전이 없는 시대에 하나님 임재의 작은 거처”로 정의하며, ‘작은 성소’(מִקְדָּשׁ מְעַט)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합니다.
회당은 율법 낭독, 기도, 공동체 규율의 중심지로 기능했으며, 10명의 바 미츠바(Benei Mitzvah)를 마친 남성(מִנְיָן, Minyan)이 모이면 공식적인 회당 예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미쉬나 Megillah 4:3과 탈무드 Berakhot 21b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2. 성막에서 회당까지 역사적 흐름의 주요 문헌적 근거
성막 (Mishkan) – 출애굽기 25–40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하나님의 임재가 백성 가운데 거하는 구체적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특히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는 핵심 구절입니다.
탈무드 예루살렘 버전 (Yoma 5:2)은 성막을 “임재의 이동처”로 묘사하며, 공동체의 거룩한 중심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3. 성막에서 회당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셨고, 그 임재는 각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단절이 아닌 진전된 계시와 공동체 구조의 발전이었습니다.
1. 모세의 만남의 장막 (Tent of Meeting)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장막을 세웁니다(출 33:7–11). 이 장막은 백성들 밖에 위치한, 모세만 들어가는 거룩한 만남의 장소였으며, 말씀과 계시 중심이었습니다.
2. 광야 성막 (Mishkan)
출애굽기 25–40장에 걸쳐 등장하는 성막은 이동 가능한 제의 공간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중심,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실”(출 25:8)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였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중심에 하나님의 거하심을 구조화한 첫 시도였습니다.
3. 기브온 성막과 분산된 예배 구조
사무엘상 21장과 열왕기상 3장에서 기브온 성막과 예루살렘의 언약궤가 분리되어 운영됩니다. 이는 제의와 임재의 중심이 분리된 예배의 전환기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4. 다윗의 장막 (Ohel David)
사무엘하 6장과 아모스 9:11에 따르면, 다윗은 법궤만 예루살렘에 옮겨와 장막에 두고, 레위인으로 하여금 24시간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한다(대상 16장).
이는 성별된 제사장이 아닌, 전 백성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예배로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5. 솔로몬 성전 (Beit HaMikdash)
열왕기상 6장~8장에서 나타나는 성전은 다윗의 설계 + 제의 중심 시스템을 반영하며, 이스라엘의 예배가 국가 제도와 통합된 중앙 성전 체계로 완성됩니다.
6. 바벨론 포로기 – 회당의 시작
성전 파괴 이후, 포로지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고(단 6:10),
토라 중심의 공동체 예배(시편 137편)를 시작합니다. 이때 10명 이상의 성인 남성으로 모인 베이트 바암(Beit Va‘am)이 회당의 초기 형태로 정착되었고,
Seder ha-Parashiyot 낭독과 샤하릿, 민하, 마아립 기도가 정착되었습니다.
7. 회당에서 나사렛 회당으로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하신 성경 낭독은, 이 말씀과 기도 중심 공동체의 정점이었습니다. 그는 이사야 61장을 읽고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언함으로써, 성전 없이도 하나님의 임재가 지금 여기서 성취되고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회당을 넘는,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 출현 선언이었습니다.
4. 다니엘의 기도와 회당 제도의 기원
다니엘 6:10: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며 찬송하였더라”
이는 포로기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성전 없는 경건 생활의 핵심 형태였습니다. 회당의 기원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상황에서 율법 중심의 공동체 형성과 관련됩니다. 탈무드 바벨리 메길라 29a에 따르면 바벨론에서의 유대 회당 전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포로기 이후 기도와 말씀 중심의 회당 경건 체계가 자리잡았습니다.
5. 시편에서 바벨론 포로기 찬양 제사의 언급
시편 137편에 보면, “우리가 바벨론 강가에서 울며 시온을 기억하였다” → 성전의 부재 속에서 예배적 기억이 강조됩니다.
호세아 14:2에 따르면 “우리는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드리리이다” 로 언급된 것을 보면 찬양이 피 없는 제사로 대체되었습니다.
미쉬나 아보다 자라 3:2에서도 찬양이 예배의 중심 역할로 부상합니다. 이처럼 찬양 제사의 대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 경건의 주요 흐름으로 확인됩니다.
6. 바 미츠바 이후 성인 남자 10명으로 회당 설립: 베이트 바 암
미쉬나 메길라 4:3: 회당에서 말씀 낭독이 가능하려면 10명의 성인 남자(minyan)가 필요합니다. 바 미츠바는 13세 이후 율법 책임자가 된다는 유대 전통의 성년식을 말합니다. “Beit Va‘am” (집단 공동체)은 탈무드적 표현으로, “공예배가 가능한 최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민안(מִנְיָן)’ 전통은 회당 제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회당 (Beit Knesset)은 매우 중요하며, 탈무드에서는 포로기 이후 예배와 율법 교육의 중심지로 기록됩니다 (Megillah 26a). 라쉬(רש”י)는 시편 137편에서 회당을 “작은 성소들”(מִקְדָּשׁ מְעַט, Mikdash Me’at)이라 주석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시작된 낭독 예전 – 누가복음 4:16은 예수께서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신 장면을 보여주며, 이는 시두르(Siddur)와 Haftarah 순서를 따른 회당 예배 전통의 반영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7. Seder ha-Parashiyot이란?
Seder ha-Parashiyot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토라 낭독의 체계화, 예루살렘(3년 주기)과 바벨론(1년 주기) 전통이 있었습니다. 미쉬나 메길라, 탈무드 Megillah 29–30은 낭독 순서와 주간 본문 구조를 설명합니다.
Seder ha-Parashiyot (סֵדֶר הַפָּרָשִׁיּוֹת)는 제2성전기 유대교 회당 예배에서 정착된 주간 토라 및 예언서 낭독 체계로, 1년 또는 3년 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구조는 안식일 회당 예배의 표준 질서였으며, 예언서를 낭독하는 Haftarah 순서도 이 체계 속에 포함되었습니다.
미쉬나 메길라(Megillah 3:4)와 토세프타 메길라 3–4에는 예언서 낭독이 토라 낭독과 별도로 정해진 순서대로 읽히고, 특별 안식일에는 특별한 파라샤가 지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61장을 “책을 펴서 찾아 읽으셨다”(눅 4:17)는 기록은, 당시 회당에서 낭독되던 Haftarah의 고정된 순서에서 벗어난 의도적 본문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곧 메시아적 자의식의 명시적 표현으로 이해되며, 랍비 유대교에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샤하릿(아침), 민하(정오), 마아립(저녁) 기도는 다니엘 6장과 시편 55:17에서 유래한 경건 시간 체계이며, 토라 낭독과 시두르의 구조적 연결이 중세 이후 표준화됩니다. 샤하릿과 Seder는 후대 시두르에서 통합되었으며, 회당의 구조와 깊은 연관 있습니다.
<회당과 교회와의 관계>
교회(Ekklesia) –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 등장하는 용어. 이는 구약의 קָהָל (Kahal)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히브리어 성경 70인역(LXX)에서는 ἐκκλησία로 번역됩니다. 신약은 이를 통해 공동체적 정체성과 부르심의 목적을 강조합니다 (행 2:42, 엡 2:19–22).
1. 바벨론 포로와 성전의 상실
주전 586년,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사건은 이스라엘 신앙 전승의 근본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된 공동체는, 말씀과 기도 중심의 신앙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편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신앙 공동체의 재편은 시편 137편에 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이러한 회고는 포로기 유대 공동체가 성전 없는 예배, 즉 찬양과 회개, 그리고 율법의 회복을 통해 신앙을 지속했음을 보여줍니다.
2. 다니엘의 기도 전통과 예배의 모범
다니엘서 6:10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 꿇고 기도하며 감사하였더라”
이 기도 습관은 후대 유대 전통에서 샤하릿(아침), 민하(오후), 마아립(저녁)의 세 번 기도로 구조화되었습니다. 미쉬나 Berakhot 4:1에 명확히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대인 회당 예배의 기본 구조로 남아 있습니다.
3. 율법 중심 공동체의 정체성 회복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스룹바벨 시대에 이르러, 성전 재건이 시도되었으나 공동체의 본질은 말씀과 율법을 중심으로 모이는 공동체로 이미 전환되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는 대중 앞에서 율법서를 낭독하며 백성들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모든 백성이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펴는 것을 보며… 모든 백성이 일어나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느 8:5–6)
이 장면은 회당 예배의 전형적 모습 – 말씀의 낭독과 공동체의 반응 – 이 이미 정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4. 카할/카힐라(Kahal/Kehillah)와 에클레시아(Ekklesia) 그리고 회당
성전이 존재하지 않던 바벨론 포로기 유대인들에게 있어, 회당은 카할(קָהָל, 모임)의 실제적 표현이었습니다. 즉, 회당은 단지 예배 장소가 아니라, 언약 백성의 공동체적 정체성과 지속성을 지키는 신학적 공간이었습니다.
LXX에서 카할은 ἐκκλησία로 번역되며, 이는 후에 교회 개념으로 발전합니다. 따라서 회당은 구약의 Kahal과 신약의 Ekklesia 사이에 놓인 전이적 구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Kahal (קָהָל): 민수기 16장, 신명기 9장 등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소집된 ‘공동체’ 의미.
• Kehillah (קהילה): 현대 히브리어의 ‘교회’, ‘공동체’ 개념. Kahal의 확장된 표현.
• Ekklesia (ἐκκλησία): LXX(칠십인역)에서 Kahal을 번역한 단어.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
예수께서 마 16:18에서 “내 교회(ἐκκλησία)를 세우리니”라 하신 말씀은
히브리적 카할 사상을 그리스어로 옮긴 표현이며, 율법 중심 카할에서 복음 중심 에클레시아로의 언약 공동체 확장을 상징합니다.
<회당의 주요 기능과 언약 학교>
율법 교육의 중심
회당은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토라(תּוֹרָה, Torah)를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언약의 학교(Berit School)”라고 불리며, 성경적 교육과 민족 정체성을 연결짓는 공간이 되었으며, 율법을 세대 간에 전수하는 교육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공동체 정체성 유지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헬레니즘 문화나 로마의 다신교적 세계에 동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회당은 ‘거룩한 시간’과 ‘거룩한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고유한 삶의 리듬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회당은 단지 토라를 낭독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그 말씀의 흐름 안에 참여하는 예전적 공동체였습니다.
• 기억의 장소 (Memory of the Covenant)
• 교육의 중심 (Transmission of Torah)
•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Symbol of Shekinah)
• 예수의 복음 선포 출발점 (Beginning of the Gospel Mission)
회당은 시간(안식일)과 공간(회당)을 구별하여 유대인의 거룩한 삶의 리듬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공예배와 기도
성전 제사를 대체하여 회당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도 형식이 정착되었습니다.
• 아침(Shacharit), 오후(Minchah), 저녁(Maariv) 기도
• 시편(תהילים, Tehillim)과 예언서(Haftarah)의 낭독
• 미쉬나 Berakhot 4:3은 “공동체는 아미다(עמידה, Amidah)를 서서 드려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법적·사회적 기능
회당은 때로는 지역 재판이나 분쟁 해결의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공동체의 행정과 복지 활동도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회당은 종종 지역의 재판소(Beit Din)로도 기능했으며, 공동체 재정과 자선사업, 행정 결정이 이루어지던 장소이기도 했다.
바벨론 탈무드 Berakhot 6a에서는 “세 사람이 모여 율법을 낭독하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Shekinah)가 머문다”고 전하며, 회당은 미니 성전(Mikdash Me’at, 겔 11:16)으로, 혹은 성전의 대체 공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대 종교교육과 회복 신학의 핵심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3. 회당은 “언약의 학교”
• 회당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בְּרִית, berit)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세대에 걸쳐 전달하는 학교였습니다.
• 바벨론 탈무드에서는 “세 사람이 모여 율법을 읽는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한다”라고 말하며, 회당은 성전의 미니어처, 혹은 성전의 대체 공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b. Berakhot 6a).
4. 회당의 기능과 예배
• 율법 낭독과 교육
• 기도 (미쉬나 베라코트 4:3 참조)
• 공동체 결정
• 하프타라(예언서) 낭독
제2성전기 회당 예배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졌다고 전승되었습니다.
1. 쉐마(שְׁמַע יִשְׂרָאֵל) 낭송 – 신명기 6:4 이하의 고백
2. 아미다(עמידה, 서서 드리는 18개 축복 기도) – 미쉬나 Berakhot 4:3 참조
3. 토라 낭독(Parashah) – 주간 정해진 토라 분문 읽기
4. 예언서 낭독(Haftarah) – 토라와 연결된 주제의 선지서 읽기
5. 해석과 설교(Derash) – 토라 또는 Haftarah의 해설 (루가 4장의 예수와 같은 방식)
위의 순서는 Mishnah Megillah 4:1, Tosefta Megillah 3–4, 그리고 바벨론 탈무드 Megillah 21a–29b에서 명확히 정리되어 있으며, 이는 신약시대 회당에서의 예배 구조와도 상당한 일치점을 보여줍니다.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회당은 성전 기능이 제한된 지방 공동체 안에서 율법 교육, 예언서 낭독, 공동체 정체성 강화를 위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토라(율법)와 예언서(Haftarah)를 순서대로 낭독하는 시두르(Seder ha-Parashiyot)의 전통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고, 구속사의 리듬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예전적 장치였습니다.
회당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언약적 기억과 공동체적 실천을 유지하게 한 생명선이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을 통해 토라를 읽고, 기도하며, 언약을 되새기고 다음 세대에게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당이 단순한 예배 장소를 넘어, ‘언약의 학교’로 불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5. 제2성전기 회당 예배 구조와 그 성경적·문헌적 기초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 회당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율법 교육, 기도, 공동체 정체성 형성을 위한 종합적 영적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예배의 형식은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었고, 그 요소들은 미쉬나와 탈무드 등 고대 유대 문헌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당시 회당 예배의 주요 구성 요소들입니다.
A. 쉐마 낭송 (שְׁמַע יִשְׂרָאֵל, Shema Yisrael)
쉐마는 신명기 6:4–9, 11:13–21과 민수기 15:37–41의 본문으로 구성된 유대인의 중심 신앙고백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로 시작하는 이 고백은 매일 아침과 저녁 예배에서 반복되었으며, 공동체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Mishnah Tamid 5:1은 성전 제사에 앞서 쉐마가 낭송되었음을 기록하며, 이는 회당 전통으로 이어졌습니다.
B. 아미다 기도 (עמידה, Amidah)
아미다(“서서 기도”)는 열 여덟 개의 축복으로 구성된 표준화된 공동체 기도문이며, 각 기도 시간대마다 낭송되었습니다. 아미다는 회당 예배의 핵심 기도이며, 신적 통치와 구원, 용서,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 등을 간구합니다. Mishnah Berakhot 4:3은 이 기도를 공동체 기도 규범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서서 조용히 드리는 방식이 강조됩니다.
C. 토라 낭독 (Parashah)
정해진 주간의 토라 본문을 낭독하는 것은 회당 예배의 중심이었습니다. 매 안식일마다 하나의 파라샤(parashah, 분량)를 읽으며, 매년 또는 3년 주기로 모세오경 전체를 읽도록 구성되었습니다.
Mishnah Megillah 4:1은 회당에서 안식일 및 절기마다 토라가 낭독되어야 한다는 규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D. 하프타라 낭독 (Haftarah)
토라 낭독 후, 해당 본문과 주제적으로 연결된 예언서의 본문을 읽는 관행이 하프타라 낭독입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 당시 토라 낭독이 금지되었을 때 대안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회당 전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Tosefta Megillah 3–4은 하프타라 본문을 선정하고 낭독하는 전통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E. 해석과 설교 (Derash)
예언자적 메시지나 토라 본문에 대한 주해와 적용을 전하는 것이 드라쉬(설교)였습니다. 회당에서는 랍비나 율법 교사들이 본문을 해석하여 공동체의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예수의 나사렛 회당 설교(눅 4:21)는 이 드라쉬의 대표적 예입니다. 누가복음 4:16–30, 특히 4:21에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예수의 선언은 하프타라 후 드라쉬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줍니다.
F. 신약 회당 예배와의 연결성
누가복음 4장(나사렛 회당)과 사도행전 13장(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은 신약 성경 속 회당 예배의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와 바울 모두 쉐마–토라–하프타라–설교의 구조 내에서 말씀을 전하셨으며, 이는 제2성전기 회당 예배 전통이 이미 신약 시대에 정형화되어 있었음을 반증합니다.
이와 같이 제2성전기 회당 예배는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졌으며, 그 구조는 성경적이고 문헌적으로 뒷받침됩니다. 이러한 회당 전통은 신약 교회로 이어지며 에클레시아 공동체의 말씀 중심 예배 구조로 자연스럽게 계승되었습니다.
<기도의 집으로서의 회당>
– 역사적 연원, 문헌적 배경, 이사야 예언의 성취와 신학적 의미 –
1. 회당이 “기도의 집”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적·제도적 배경
(1) 성전 제사의 중단과 회당의 대체 기능
• 바벨론 포로기(기원전 6세기)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면서, 유대인들은 기도와 토라 낭독을 중심으로 한 회중 중심 예배를 발전시켰습니다.
• 예루살렘을 떠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는 회당(בֵּית הַכְּנֶסֶת, Beit HaKnesset)을 통해 토라를 공부하고, 공동 기도를 드리며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갔습니다.
(2) 바벨론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기도 생활
• 시편 137편은 바벨론 포로기 유대인들이 “바벨론 강가에서” 울며 시온을 기억하며 찬송했던 기록입니다.
• 회당은 바로 이와 같은 유대인의 집단적 기억과 간구의 공간으로 형성되었으며, 곧 ‘기도의 집’(בֵּית תְּפִלָּה, Beit Tefillah)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 “기도의 집” 개념의 신학적 기초 – 이사야의 예언
(1) 이사야 56장 7절의 핵심 구절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되리라”
(יִקָּרֵא בֵּיתִי בֵּית־תְּפִלָּה לְכָל־הָעַמִּים – yikkāre beitī beit-tefillah lekol ha’amim)
– 이사야 56:7
• 이 예언은 포로기 이후 성전이 회복될 미래의 시온에 대한 예언이며,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는 보편적 예배의 공간을 예시합니다.
• 예언서 속 “기도의 집”은 단지 제사 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간구와 만남의 공간입니다.
(2) 신약에서의 인용과 해석
•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실 때 이사야 56:7을 직접 인용하십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마가복음 11:17)
• 예수는 기도의 본질이 상업적 행위에 의해 오염되었음을 질책하면서, 성전과 회당의 본래 목적이 ‘기도’임을 다시 선언하신 것입니다.
• 예수께서 복음서 전반에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것은 이 공간이 율법과 예언, 회복 신학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마 4:23; 눅 4:16).
3. 탈무드와 미쉬나 속에서의 회당과 기도의 연결
• 미쉬나 Berakhot 4:3 – “공동체는 하루에 세 번 기도해야 하며, 회당은 이 기도의 중심 장소이다.”
• 바벨론 탈무드 Berakhot 6a – “회당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Shekinah)가 머무는 곳이다.”
• 회당은 점차 성전의 희생 제사를 대체하는 ‘기도의 성소’로 인식되며, 랍비들은 기도를 “심령의 제사”로 정의합니다.
4. 예수와 회당에서의 기도 실천
예수님은 복음서 전반에서 회당을 ‘가르침의 장소’뿐 아니라 ‘기도의 장소’로 사용하셨습니다 (마 6:5, 눅 4:16). 공생애의 여러 순간에서 예수는 새벽기도, 산 기도, 그리고 성전·회당 기도를 실천하며 기도 중심의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행보를 보이십니다. 예수님는 종종 회당에서 가르치셨고(막 1:21, 마 4:23), 회당은 복음 선포와 갈등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회당은 예수의 초기 사역의 중심 무대였습니다(눅 4:16). 예수님께서도 복음서 전반에 걸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말씀을 선포하신 것은, 이 회당이 율법 교육의 중심임을 인지하셨기 때문입니다.
<회당의 공간 배치와 “Aron HaKodesh”의 신성함에 대한 예수님의 행위>
1. 회당의 구조와 배치
제2성전기 또는 랍비 유대교의 회당(בֵּית כְּנֶסֶת, Beit Knesset)은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율법 교육과 공동체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심 장소였습니다. 일반적인 회당의 내부 구조는 다음과 같은 요소로 구성됩니다:
• אַרוֹן הַקֹּדֶשׁ (Aron HaKodesh):
성전의 언약궤를 상징하는 거룩한 토라 보관함. 일반적으로 회당의 동쪽 벽면(예루살렘을 향하는 방향)에 배치됩니다.
• בִּימָה (Bimah):
토라 낭독이 이루어지는 단상. 회당의 중앙에 위치하며, 낭독자는 여기에 올라가서 Sefer Torah (סֵפֶר תּוֹרָה)를 봉독합니다.
• מְחִיצָה (Mechitzah):
남성과 여성의 좌석을 구분하는 칸막이 또는 구획 (특히 탈무드 이후의 전통에서 강조됨).
• שְׁלִיחַ צִבּוּר (Sheliach Tzibbur):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와 낭독을 인도하는 자입니다. 아무나 낭독자가 될 수 없고, 학식과 경건, 공동체의 인정을 받은 자여야 했습니다.
2. Aron HaKodesh (אָרוֹן הַקֹּדֶשׁ)와 회당의 성스러운 중심
Aron HaKodesh 는 히브리어로 “거룩한 궤”를 의미하며, 회당(Synagogue)의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고대 성전 시대의 언약궤 (Ark of the Covenant, אָרוֹן הַבְּרִית)를 상징적으로 계승한 구조입니다.
1. 역사적·상징적 기원
성전 시대에 언약궤는 지성소 (Kodesh HaKodashim)에 안치되었고, 하나님의 임재인 쉐키나 (שְׁכִינָה)가 머무는 장소로 간주되었습니다(출애굽기 25:10–22).
제2성전기 이후 성전이 파괴되면서, 유대 회당에서는 언약궤의 대리 상징물로 Aron HaKodesh가 도입되어 성전의 거룩함을 회상하고 영속시키는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2. 회당 내에서의 구조적 위치와 기능
Aron HaKodesh는 일반적으로 동쪽 벽(Eastern Wall)에 위치하며,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의 방향을 상기시킵니다. 그 안에는 하나 이상의 Sefer Torah (סֵפֶר תּוֹרָה, 토라 두루마리)가 보관됩니다.
토라를 읽는 날(샤밧, 축제일, 월요일/목요일 아침)에는 Aron HaKodesh가 열리고, 토라는 야드 (יד, 가리키는 도구)로 경건히 짚으며 낭독됩니다.
3. 명칭 및 문헌적 언급
Aron HaKodesh는 때때로 Heikhal (הֵיכָל, 성소) 또는 Beit Aron (בֵּית אָרוֹן, 궤의 집)이라고도 불립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 탈무드에서는 회당을 “소성소”라고 불렀으며(메길라 29a), Aron HaKodesh는 그 소성소의 중심으로 간주됩니다. 라시(Rashi)는 이 구조를 “쉐키나의 거처를 상기시키는 장소”로 해석합니다.
4. 접근과 규례
Aron HaKodesh는 회당장(Rosh HaKnesset), 가비(Gabbai, 의전 담당자), 혹은 정해진 Chazzan(칸토르)이 정해진 순서와 예식에 따라 열 수 있습니다. 야드 없이 직접 손으로 토라 두루마리를 만지는 것은 금기이며, 이는 Tosefta Kelim Bava Batra 1:6 및 Shulchan Aruch, Orach Chayim 147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5. 신학적 의미
Aron HaKodesh는 단순한 보관함이 아니라, 회당의 신성 중심이며, 하나님 말씀의 현존 장소입니다. 낭독되는 토라는 단순한 책이 아닌, “살아 있는 율법”(Torat Chayyim)으로서, 공동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Aron HaKodesh를 열고 임의로 토라 또는 예언서를 낭독하거나, 야드 없이 직접 만지는 행위는 단지 예식의 위반이 아니라 성소 침범, 즉 신성모독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행한 낭독 행위는 당시 회당 질서와 율법 해석 규범을 벗어난 파격이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서는 견딜 수 없는 도전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상징적 장소
• 이는 성막이나 성전의 시은좌(כַּפֹּרֶת, Kaporet)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일반인이 함부로 열 수 없는 곳
• Aron HaKodesh는 오직 회당장, 쉘리야 찌부르(Sheliach Tzibbur) 또는 특별히 허가받은 율법 교사나 랍비만이 열 수 있었습니다.
• 야드(יד)
• 토라 두루마리를 읽을 때는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고, **은색이나 나무로 된 손 모양의 포인터(Yad)**를 사용해 짚으며 봉독합니다. 이는 말씀에 대한 경외를 표현합니다.
3. 예수의 행위가 왜 충격이었는가?
예수께서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나사렛 회당 사건에서:
1. 스스로 Aron HaKodesh를 열고,
2. 정해진 Haftarah 순서를 무시하고,
3. 야드 없이 두루마리를 손으로 직접 펼쳐,
4. 자신이 메시야로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했다고 선언한 것은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서 다중 신성모독 행위로 여길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언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회당 전통 질서, 성서적 권위 구조, 메시아 기대론을 흔드는 신성 공간 내의 질서 파괴였던 것입니다.
4. 역사적 예시
예루살렘 탈무드 Megillah 3:1에서는 성경 낭독은 반드시 공동체의 허락과 규정된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바벨론 탈무드 Berakhot 6a는 “세 사람이 모여 율법을 읽는 곳에 하나님의 쉐키나(שְׁכִינָה, 임재)가 함께 한다”고 하여, 회당의 신성함을 강조합니다.
예루살렘 회당과 가마라 지역 고고학 회당 유적에서 발견된 Aron HaKodesh는 벽감 형태로 동쪽 벽에 깊게 파여 있고, 앞에 Bimah가 중앙에 배치된 구조로 고대 회당의 전형적 배치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행위는 단지 한 젊은 랍비의 성경 해석을 넘어서, 랍비 유대교적 회당 질서 안에서는 극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분은 단지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성전-회당-율법 중심 사회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임재 질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회당 – 낭독 전통의 완성과 도전>
1.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 (누가복음 4:16)
누가복음 4장 16절은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신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이 장면은 회당의 Seder ha-Parashiyot(성경 낭독 순서)에 따라 성경이 봉독되었으며, 예수께서도 그 규범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분의 사역이 단절적 혁신이 아니라 율법과 예언자들의 완성(마 5:17)으로 읽혀야 함을 시사합니다.
2. 회당의 성경 낭독 전통
고대 유대 회당에서의 낭독 전통은 Torah와 Haftarah의 이중 낭독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토라는 1년 주기의 정해진 순서로 낭독되며 (Parashah),
• 하프타라는 예언서 가운데 선택된 본문으로, 보통 토라 본문과 주제적 연관이 있는 구절이 선택되었다.
이 구조는 미쉬나 Megillah 4:1에 명시되어 있으며, 예수 시대의 갈릴리 지역 회당에서도 채택되었음이 학계에서 널리 인정됩니다.
3. 예수께서 읽으신 하프타라 – 이사야 61장
누가복음 4:17–19은 예수께서 이사야 61:1–2을 읽으셨음을 전합니다. 해당 구절은 메시아적 사명을 선포하는 장이며, 예수께서 이 말씀을 읽고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21)
이 선언은 예수께서 하프타라 본문이 자신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이며, 이는 회당 낭독 전통의 전복적 해석입니다.
• Targum Yonatan은 이사야 61장을 메시아적 예언으로 해석하며,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이’는 장차 올 구속자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 탈무드 Sanhedrin 98b에서도 이사야 61장은 메시아의 시대를 묘사하는 대표 본문으로 간주됩니다.
4. “오늘 이 말씀이 응하였느니라” – 대제사장의 선언과의 유비
예수님의 이 선언은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너희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선언하는 전통과 연결되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는 레위기 16장과 미쉬나 Yoma 6–7장에서 자세히 다뤄지며, 은총의 해(יובל, Yovel)는 대속죄일의 선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61장의 ‘은혜의 해’(שנת רצון)를 낭독하시며, 자신이 대제사장의 역할을 성취하고 있음을 암시하십니다. 이는 히브리서 4:14–5:10에서도 ‘대제사장 예수’라는 주제로 신약 공동체에 계승됩니다.
5. 회당 낭독 규범과 예수의 선언의 충돌
하프타라의 낭독은 정해진 본문에 따라야 하며, 미쉬나 Megillah 4:5에 따르면, 본문 중간에 멋대로 끊거나 변경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사야 61:2의 “하나님의 복수의 날”을 생략하심으로써 의도적으로 ‘심판’을 미루고 ‘은혜’를 강조하셨습니다.
이 행위는 회당 내에서 율법 규범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곧바로 회당 회중의 격렬한 반응(눅 4:28–30)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배척이 아니라, 메시아 해석의 충돌이었습니다.
<회당과 “기도의 집”에 대한 종합적 비교>
유대교 전통에서의 예배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공간과 구조를 통해 발전해 왔으며, 이는 기독교의 예배 신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구조적·신학적 전통은 성전(Temple), 회당(Synagogue), 그리고 신약 교회(Church)의 삼중 축을 따라 다음과 같이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제사의 중심: 예전에서 영적 예배로
성전(예전)에서는 중심이 되는 예배 형태가 희생 제사(korban, קָרְבָּן)였습니다. 동물을 바치는 이 제사는 속죄, 감사, 화목 등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드리는 정결 의식을 의미했습니다.
회당(기도) 시대에는 제사 대신 기도와 찬양, 그리고 율법 낭독이 제사적 기능을 대체하였습니다. 특히 아미다 기도는 ‘심령의 제사’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교회 안에서는 십자가에서의 자기희생이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로 이해되며, 그 이후 신자들은 중보 기도와 성령 안의 예배로 제사의 의미를 실천합니다 (히 9:12).
2. 하나님의 임재: 공간에서 말씀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성전에서는 지성소의 시은좌(Ark of the Covenant)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제한된 제사장만 접근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현존을 의미했습니다. 회당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낭독되는 토라와 쉐키나(Shekinah), 즉 말씀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이해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말씀을 모시고 해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개념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성령의 임재가 중심이 되며, 성도들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며 활동하십니다 (고전 3:16, 엡 2:22).
3. 예배의 장소: 성전의 중심성에서 공동체의 보편성으로
성전은 유일한 예배처로 지정되었으며, 예루살렘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의 거처였습니다.
회당은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각 지역에 세워져, 지역 공동체의 영적 중심 역할을 하며 성전의 기능을 보완하였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특정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며,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원리(마 18:20)에 따라 보편적 성령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4. 기도의 본질: 향연에서 중보로
성전에서는 제사와 함께 분향단의 향기로운 향이 기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기도는 언약 갱신의 수단으로 기능했습니다 (시 141:2). 회당은 공동체 중심의 간구와 회개의 장소로서 율법에 따른 회개와 간청의 기도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수/교회 공동체에서는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직접적 교제로 발전하며, 예수는 대제사장적 중보자로서 기도의 본질을 결정짓습니다 (히 7:25). 성전의 예전 중심 예배는 회당에서 말씀과 기도 중심의 신앙 실천으로 계승되었고, 이는 다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와 성령의 임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 예배로 성취되었습니다.
회당은 그 중심 기능에서 “기도의 집”이라는 예언자 이사야(사 56:7)의 말씀이 실현되는 장소였으며, 그 전통은 오늘날 교회의 기도 공동체성, 말씀 중심성, 보편적 접근성의 기초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회당이 “기도의 집”(Beit Tefillah)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단지 기능적 대체 때문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적 비전과 구속사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신학적 성취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고, 유대인들은 회당을 통해 이 예언을 현재적 공간 안에서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회당과 성전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완성시키며, 기도를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으로 삼으셨습니다.
<카할과 에클레시아 – 회당에서 교회로 이어진 공동체의 전이>
1. ‘카할’의 기원과 공동체 신학
히브리어 ‘카할’(קָהָל)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지칭하는 기본 용어로, 민수기 16:3에서는 “여호와의 총회”로 표현되며, 신명기 23:1 이하에서는 성소에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 기준을 제시합니다. 카할은 단순한 물리적 모임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지닙니다.
• 히브리어 성경에서 ‘카할’은 약 123회 등장하며, 그 대부분은 언약 공동체, 예배 공동체, 재판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집니다.
• 70인역(LXX)에서는 ‘카할’을 헬라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로 번역함으로써, 신약 교회의 용어적 토대를 형성합니다.
2. 바벨론 포로기 이후 ‘카할’의 재형성과 회당 제도
포로기 이후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이 불가능했기에, ‘카할’은 율법 중심의 공동체 정체성으로 전환됩니다. 에스라-느헤미야 시대는 회당과 율법 낭독이 공동체의 중심 기능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느 8:1–8).
이후 회당 제도는 열 명의 성인 남성(민얀)이 모인 가운데 공동 낭독과 기도가 이루어지는 비성전적 예배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습니다. 미쉬나 Megillah 4:3은 회당 내 토라와 하프타라 낭독의 규범을 제시하고, Tosefta Megillah는 공동체 조직의 세부적 규정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의 교회 선언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 16:18)
예수님께서 ‘에클레시아’를 처음 언급하신 마태복음 16:18은 단순한 조직이나 제도가 아닌,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출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다음을 내포합니다:
•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신앙 고백 공동체 (마 16:16)
•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종말론적 승리 공동체
‘에클레시아’는 단지 ‘모임’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권위를 가진 대사 공동체(마 18:18–20)로서 율법 중심에서 복음 중심으로, 이스라엘 중심에서 열방 중심으로 확장되는 ‘카할’의 변형된 성취입니다.
4. 회당과 교회의 차이와 연속성
회당과 교회는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종교 공동체로 보이지만,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 문헌에 따르면 교회는 회당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형된 종말론적 공동체로 기능합니다. 다음은 이 두 공동체의 본질적 차이와 연속성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언약 기반
• 회당(Synagogue)은 시내산 언약(Sinai Covenant)에 기초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토라(율법)가 공동체 정체성의 핵심이며, 이를 지키는 것이 언약의 성실한 응답으로 간주됩니다.
• 교회(Ekklesia)는 새 언약(New Covenant) 위에 세워진 공동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언약의 성취가 이루어졌다고 이해됩니다(눅 22:20; 히 8:6–13).
2. 중심 활동
• 회당의 예배는 토라 낭독, 예언서(하프타라) 낭독, 공동 기도, 라비 교육으로 구성되며, 율법의 보존과 교육이 핵심입니다.
• 교회의 중심은 복음 선포(Kerygma), 세례(Baptism), 성찬(Eucharist), 제자도 훈련, 그리고 말씀 중심의 설교와 공동체적 실천입니다(행 2:42).
3. 장소
• 회당은 지역 유대 공동체 중심의 장소로, 디아스포라에서도 유대인의 민족·종교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 교회는 지역 교회(Local Church)와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의 이중 구조를 갖습니다(엡 1:22–23). 이는 성령에 의해 하나 된 전 지구적 믿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4. 구성 기준
• 회당은 혈통(이스라엘 민족)과 율법 순종을 공동체 가입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개종자도 있었지만, 엄격한 절차와 할례 및 율법 실천을 요구했습니다.
• 교회는 믿음(Faith)과 세례(Baptism)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갈 3:26–29). 이는 민족이나 성별, 계층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 인류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5. 연속성 요소
• 교회는 회당의 전례 전통 중 많은 요소들을 계승합니다:
o 성경 낭독(토라와 예언서 → 신약+구약 통합)
o 공동 기도
o 시편 찬양과 축복문 (Berakhot)
o 강해 설교(Derash)
이러한 요소들은 초기 교회 예배(예: 디다케, Justin Martyr의 1세기 주일 예배 증언)에서 그대로 반영되며, 단지 그리스도 중심으로 재해석됩니다. 회당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교회의 모태(womb)이며, 에클레시아(Ekklesia)는 회당 전통 속에서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중심으로 종말론적 구속 공동체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회당적 구조를 포용하되, 율법 중심에서 복음 중심으로, 민족 중심에서 믿음 중심으로, 과거의 언약에서 미래의 성취로 향하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6. 카할에서 에클레시아로 – 신학적 전이와 구속사의 흐름
신약의 교회는 단절이 아닌 이스라엘의 확장과 내적 성취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 베드로 전서 2:9은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출애굽기 19장의 언어를 그대로 교회에 적용합니다.
• 히브리서 12:23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라 하여 카할과 에클레시아의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다니엘서의 기도(단 6:10), 에스라의 낭독(느 8:2), 예수의 선포(눅 4:16), 그리고 사도행전의 교회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탄생과 회당 제도의 신학적 계승>
1. 회당과 교회의 연결 고리
신약성경에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는 단지 새로운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 히브리 전통의 카할(קָהָל)을 계승한 존재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카할’은 모세오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총회(assembly)를 지칭하며(신 9:10; 민 16:3), 70인역(LXX)에서는 이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신약의 교회가 언약 백성의 계승자로 자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내가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이는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의 총회(קהל יְהוָה)로 모이기 위함이라” (신 31:28)
신약에서는 오순절 사건(행 2장)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성령으로 세워지는 장면이 바로 새롭게 출범되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총회이며 또한 교회가 됩니다. 이는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 언약 장면과 구조적으로 평행을 이루며, 교회는 새 언약 백성으로서의 카할을 성령 안에서 형성하게 됩니다.
2. 회당 제도의 신학적 유산
고대 회당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통해 교회 제도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 성경 낭독의 중심성 (눅 4:16)
• 공동체 기도와 찬양 (미쉬나 Berakhot 5장)
• 율법 해석과 토론 (탈무드 Megillah 23a)
이러한 요소들은 초대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 바울은 각 도시의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함 (행 13:14–15)
• 초대교회는 ‘성경 낭독, 교훈, 교제,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전념함 (행 2:42)
3. 교회와 회당의 차별화 지점
1. 근거 문헌의 차이
회당은 주로 토라(Torah)와 예언서(Nevi’im)를 중심으로 한 낭독과 해석을 수행합니다. 이는 유대 공동체의 율법적·언약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반면, 교회는 이러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며, 복음(Evangelion)을 중심으로 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뿌리를 둡니다.
2. 중심 행사
회당에서는 하프타라(Haftarah) 낭독과 토라 낭독이 예배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으며, 시두르(Siddur)와 같은 기도서에 따라 엄격하게 구성된 예전 질서를 따릅니다. 반면 교회는 말씀 선포(Preaching), 세례(Baptism), 성찬(Eucharist) 등의 신약적 예전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의 삶을 형성합니다.
3. 공동체 정체성
회당은 본질적으로 언약 백성으로서의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혈통, 율법 준수, 히브리어 예전 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적-언약적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믿음으로 하나 된 공동체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열방적(범세계적) 정체성을 추구합니다.
4. 신학적 초점
회당은 율법(Torah)의 준수와 정결(Holiness), 그리고 전통적 해석의 보존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에 비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Grace)와 복음(Gospel)의 선포, 성령(Spirit)의 임재와 인도를 중심으로 신학적 중심을 둡니다.
5. 랍비 문헌 속 교회의 암시
흥미롭게도, 후기 탈무드 문헌에는 ‘미래의 총회’ 또는 ‘하나님의 완전한 회중’에 대한 암시가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은 한날에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그날은 새 창조의 날이 될 것이다.” (Yalkut Shimoni on Isaiah 26:2)
이러한 묘사는 교회의 보편성과 종말론적 완성을 암시하며, 바울의 에클레시아 이해와 일치합니다 (엡 2:14–22).
4. 원어 비교와 번역의 신학적 의미
1. קָהָל (Kahal) → ἐκκλησία (Ekklesia)
히브리어 קָהָל (Kahal)은 구약에서 “모인 백성”, “언약 아래의 회중”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되며, 민족적 정체성과 종교적 소속감을 동시에 포함합니다 (출 12:6, 신 9:10 등).
이 단어가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ἐκκλησία (Ekklesia)로 옮겨졌는데, 이는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바로 이 Ekklesia가 “교회”를 지칭하는 핵심 용어로 사용됩니다. 이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대응을 넘어, Kahal로서의 언약 공동체가 Ekklesia로 성취되고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학적 함의를 지닙니다. 즉, 시내산 언약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 공동체로 재형성되었다는 종말론적 선언입니다 (행 7:38, 엡 2:12–22 참조).
2. עֵדָה (Edah) → συναγωγή (Synagōgē)
또한 히브리어 עֵדָה (Edah)는 “증인된 공동체”, “공동체의 모임”이라는 의미로, 출애굽기와 민수기 등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출 12:3, 민 14:1). Edah는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억하고 증언하는 역할을 지닌 공동체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συναγωγή (Synagōgē)로 번역되었고, 이는 유대교의 회당(synagogue)을 의미하는 기원이 됩니다. Synagōgē는 모이는 장소, 말씀을 낭독하고 율법을 배우며 공동체적 신앙을 실천하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결과적으로 Edah–Synagōgē는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증언의 장소”라는 기능을 가지며, 이는 신약시대 교회에서도 성경 낭독, 설교, 성례전 등의 방식으로 계승됩니다.
<Kahal과 Ekklesia의 계승 및 연결>
1. 신약 교회의 정체성과 유대 전통의 연속성
예수께서 성취하신 메시아적 사역은 제자 공동체를 통해 교회(Ekklesia)로 전이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이스라엘 공동체(Kahal)의 영적 후손이자, 하나님의 새 언약 공동체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신약의 교회는 혈통과 율법 중심의 정체성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믿음과 성령에 의한 연합으로 구성됩니다.
•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을 통해 교회는 ‘하늘로부터 부름 받은 총회’(ἐκκλησία)로 시작됨
• 베드로전서 2:9: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9장의 카할 정체성의 연속
3. 회당(Synagogue)에서 교회(Ekklesia)로의 전이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 회당 전통에서 뿌리를 내렸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언약의 성취와 함께 교회(Ekklesia)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회당에서 교회로의 구조적, 신학적, 공동체적 전이 과정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1. 언약 기반
회당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모세 언약(출 19:5–6)을 바탕으로 율법(토라)의 준수를 중심에 둔 공동체였습니다. 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세워진 새 언약(예레미야 31:31–34; 눅 22:20)에 기초하며, 율법이 아닌 복음과 은혜가 핵심이 됩니다.
2. 구성 원리
회당 공동체는 유대 민족이라는 혈통적 정체성과 율법 준수를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반면,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믿음과 회개, 세례, 그리고 성령의 내주를 통해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행 2:38–41; 갈 3:28).
3. 중심 행위
회당에서는 토라 낭독과 하프타라(예언서) 낭독, 그리고 아미다(Amidah) 기도 등의 예전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교회는 복음 말씀 선포(κηρύσσω), 성례전(세례와 성찬), 찬양과 기도, 코이노니아(교제)가 주요 예배 요소로 구성되었습니다 (행 2:42–47; 고전 11장).
4. 공간적 성격
회당은 각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지방적 경건 공동체의 성격을 띠었으며, 성전 중심 제사의 대체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반면, 교회는 각 지역에 존재하는 개별 교회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적인 하나의 몸, 곧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의 개념을 포함하게 됩니다 (엡 1:22–23; 골 1:18).
5. 지도 구조
회당은 회당장(Rosh haKnesset)과 장로들(זְקֵנִים)이 공동체를 지도했습니다. 교회는 이 구조를 계승하면서도, 사도들의 가르침과 권위를 중심으로 세워진 장로(πρεσβύτερος), 감독(ἐπίσκοπος), 목자(ποιμήν) 등의 지도 체계가 발전하였습니다 (딤전 3장; 딛 1:5–9; 벧전 5:1–2).
이러한 전이 과정은 단절이라기보다 구속사의 연속성 속에서, 유대적 전통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보편 공동체로 확장된 신학적 완성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회당의 형식은 교회의 외형과 구조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예수와 사도들은 그 회당 안에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교회의 탄생을 준비하였습니다. 회당은 교회의 선형적 모태로 기능하며, 예수의 하프타라적 사역이 교회 안에서 예언적, 제사장적, 왕적 사역으로 계승됩니다.
3. Kahal과 Ekklesia의 용어 비교
• Kahal (קָהָל): ‘소집된 자들’, ‘하나님의 총회’ (민 20:4, 신 9:10)
• Ekklesia (ἐκκλησία):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LXX에서 카할의 번역어로 사용됨 (신 31:30, 수 8:35)
두 단어 모두 언약적 소명과 공동체성을 중심으로 한 거룩한 모임을 뜻합니다. 단, Ekklesia는 구속사의 새로운 단계에서 메시아 중심, 성령 중심, 열방 중심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4. 예수의 하프타라 사역과 교회의 사역: 이사야 61장 구조에 따른 예수의 사역과 교회의 계승
이사야 61장은 히브리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아 예언 가운데 하나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적 통치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선언합니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4장 18–21절에서 이 본문을 낭독하시며, 자신의 공적 사역의 정체성과 목적을 선언하셨습니다. 이후 교회는 이러한 사역을 계승하여 공동체 안팎으로 실현해 나갔습니다.
이사야 61장의 구조를 따라 예수의 사역과 교회 공동체의 사역이 어떻게 연속되고 실현되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포로된 자에게 자유 (이사야 61:1)
• 예수의 사역 (복음서):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막 5:1–20), 병든 자, 죄인들을 고치시고, 그들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심으로써 영적·심리적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의 해방이었습니다.
• 교회 공동체의 사역 (사도행전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며(행 2:38), 회개를 통한 영적 자유와 구원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통한 해방 공동체’로 정체화됩니다.
2. 슬퍼하는 자를 위로 (이사야 61:2–3)
• 예수의 사역: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눈물을 보시고 함께 우시며(요 11:35), 상처입은 자들의 감정을 존중하고 위로하셨습니다. 산상수훈(마 5:4)에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교회의 사역:
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병든 자, 고난받는 자, 과부와 고아를 돌보며 고통받는 자와 함께하는 위로 사역을 감당합니다(약 1:27; 롬 12:15). 이는 단지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성령을 통한 실질적 동행이기도 합니다.
3. 제사장 나라의 회복 (이사야 61:6)
• 예수의 사역: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켜 세상으로 보내시며(마 28:19–20), 제자 공동체를 “세상의 빛과 소금”(마 5:13–14)으로 선포하십니다.
• 교회의 사역:
베드로는 신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 부르며, 구약의 제사장적 소명을 교회 전체의 정체성으로 확대합니다. 교회는 예언자적, 제사장적, 왕적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4. 의의 나무, 영광의 이름 (이사야 61:3)
• 예수의 사역:
오순절 이후 성령이 임하시고(행 2장), 제자들은 담대히 말씀을 선포하며 능력 있는 증인의 삶을 삽니다. 이는 의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 삶의 변화입니다.
• 교회의 사역:
성령의 열매(갈 5:22–23)와 은사(고전 12장)를 통해 교회는 거룩하고 열매 맺는 공동체로 세워집니다. 이 ‘의의 나무’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영적 거목으로 자라납니다.
이사야 61장은 단지 과거의 메시아 예언이 아닌, 예수의 사역을 통해 실현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속되는 하나님의 구속사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지 ‘구원받은 무리’가 아니라, 메시아 사역을 구체적으로 계승하고 실천하는 예언적 기관입니다. 이사야 61장의 언어는 곧 오늘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재정의해주는 신학적 토대입니다.
5. 회당에서 교회로, 공동체 신학의 변혁
• 회당은 율법 중심의 카할을 구현한 구조였다면,
• 교회는 복음 중심의 에클레시아로서, 성령에 의해 인도받는 종말론적 카할입니다.
예수의 나사렛 회당 선포는 단지 한 본문의 낭독이 아니라, 전환점이자 선언이었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 회당–교회, 카할–에클레시아의 신학적 지각 변동을 암시합니다.
<이사야 61 장의 해석에 대한 랍비 유대교와 예수님>
1. 이사야 본문 인용의 구조 분석
예수님께서 낭독하신 본문은 전통적인 Haftarah 낭독 중 이사야 61:1–2와 이사야 58:6의 부분을 혼합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4:18–19 본문 (헬라어):
πνεῦμα κυρίου ἐπ᾽ ἐμέ … εὐαγγελίσασθαι πτωχοῖς, ἀπέσταλκέν με … κηρύξαι ἄφεσιν αἰχμαλώτοις … ἀποστεῖλαι τεθραυσμένους ἐν ἀφέσει, κηρύξαι ἐνιαυτὸν κυρίου δεκτόν.
예수의 이사야 61장 인용과 문학적·신학적 의도: 마소라 본문(MT)과 누가복음의 비교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한 장면은 구약 본문, 특히 이사야 61장 1–2절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누가복음 4:18–19의 헬라어 표현은 마소라 본문(MT)의 히브리어 원문과 구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보이며, 중요한 부분에서 의도적인 변형도 발견됩니다.
내용 이사야 61:1–2 (히브리어 MT) 누가복음 4장 (헬라어 LXX/누가)
주의 영이 임함 רוּחַ אֲדֹנָי יְהוִה עָלָי πνεῦμα κυρίου ἐπ᾽ ἐμέ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לְבַשֵּׂר עֲנָוִים εὐαγγελίσασθαι πτωχοῖς
포로에게 자유 לִקְרוֹא לִשְׁבוּיִם דְּרוֹר ἄφεσιν αἰχμαλώτοις
눌린 자의 해방 (사 58:6 병합) וְשַׁלַּח רְצוּצִים חָפְשִׁים ἀποστεῖλαι τεθραυσμένους ἐν ἀφέσει
주의 은혜의 해 לִקְרֹא שְׁנַת־רָצוֹן לַיהוָה κηρύξαι ἐνιαυτὸν κυρίου δεκτόν
병합된 인용: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이사야 61장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 58:6의 “눌린 자(רְצוּצִים) 해방” 구절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는 회복과 해방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문학적 통합입니다.
생략된 구절: 마소라 본문 이사야 61:2b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וְיוֹם נָקָם לֵאלֹהֵינוּ” —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이 부분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신학적 의도: 이 생략은 우연이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의 초림 사역의 중심을 심판이 아닌 은혜와 회복에 둔 것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4장에서의 메시야 선언은 “보복”이 아닌 “은혜”를 강조하는 은혜의 해(שְׁנַת־רָצוֹן) 선포로 귀결됩니다.
문학적 장치: 병합(이사야 58:6)과 생략(이사야 61:2b)은 단순한 편집이 아니라, 메시야적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중한 본문 선택이자, 고대 랍비적 해석 방법(Midrash Pesher)의 전형적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사야 인용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라, 유대 전통의 예언 해석 방식에 입각한 메시야적 선언이자 문학적-신학적 재해석입니다. 특히 하프타라 낭독 중의 자의적 편집은 회당 전통 안에서도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기에(탈무드 메길라 25b), 예수의 행동은 회당 질서 내에서 매우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선포였습니다.
2. Haftarah 전통과의 차이점
Haftarah는 보통 정해진 토라 본문과 연결된 예언서를 읽는 정기적인 예배 순서였으며, 사도시대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스스로 본문을 찾아(“그 곳을 찾으시니” – ἐπέστρεψεν τὸ βιβλίον)
• 전통적 순서가 아닌, 메시아 선언에 적합한 구절을 선택하고
• 본문 낭독 후 해설이 아닌 “성취 선언”으로 예배를 마무리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Haftarah 낭독의 예전 질서를 문맥 안에서 수용하면서도, 구속사적 목적에 따라 전복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3. “오늘 이 말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의 선언적 의미
예수께서 선언하신 “σήμερον (오늘) 이 말씀이 응하였다”는 말은 단지 은유가 아닌 실현된 종말론(Inaugurated Eschatology)의 핵심 진술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선언적 구조를 지닙니다:
• “말씀”(이사야 61장)은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 현재(σήμερον)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으며,
• 자신의 존재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회당의 종말론적 기대에 대한 자기 정체성 선언으로 전환시켰으며, 이는 Haftarah가 더 이상 구속의 약속이 아니라, 구속의 실체로 등장했음을 의미합니다.
4. 문학 구조적 특징: 회당 장면의 “드라마적 구성”
누가는 이 장면을 문학적으로도 극적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 본문 낭독 → 모든 눈이 주목 → 예수의 짧은 선언 → 충격과 분노
• 이는 예언의 성취가 감정적·신학적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킨 것을 표현합니다.
• 특히 회당 예배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이 장면은, 익숙함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신적 불편함을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4장의 이사야 본문 낭독 사건은 단순한 회당 예배의 순간이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로 공적 선언하신 순간이었습니다. 그 선언은 제2성전기의 Haftarah 질서를 받아들이되, 그 틀을 깨뜨려 성취의 현실로 전환하는 신학적 사건이었습니다.
<랍비 문헌에서의 이사야 61장 해석과 메시아 이해>
1. 이사야 61장의 본래적 문맥
이사야 61장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종(또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사명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고통받는 자, 포로된 자, 상처 입은 자에게 자유와 치유를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함께 언급하는 이중적 종말론 구조를 가집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을 부분 인용하며 “보복의 날”을 생략함으로써, 심판보다는 은혜와 구속의 시기로 현재를 규정하십니다. 이는 예수의 초림이 구속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재림 때 완성될 심판적 측면은 유보됩니다.
2. Targum Jonathan: 메시아적 해방자
탈굼 요나단은 이사야 61장을 명백히 메시아의 사명으로 해석합니다.
“메시아가 와서 가난한 자를 위로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를 해방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속의 해를 선포한다”고 번역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선언한 구조와 매우 유사하며, 초대 유대인 청중에게 이 본문이 메시아적 기대와 직결됨을 암시합니다.
3. 미드라쉬 라바: 이스라엘의 집단 회복
Leviticus Rabbah 10:1은 이사야 61장을 포로된 이스라엘의 집단적 회복으로 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다윗 계열의 메시아 또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마지막 선지자로 해석되며,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 회복과 성전 재건이라는 정치·종교적 재구축입니다.
이 관점은 예수의 영적·내적 회복 선포와 대비되며, 특히 메시아의 역할을 역사 속 국가 회복과 결합시키려는 랍비적 해석 경향을 보여줍니다.
4. Pesiqta Rabbati 14: 엘리야적 메시아 도래
Pesiqta Rabbati는 이사야 61:1을 엘리야 혹은 엘리사 같은 메시아적 선지자의 사명으로 해석합니다. 이 구절을 종말의 전조로서 메시아 도래 직전의 시기로 이해하며, 회개의 외침, 회복의 약속, 환난 후 구속의 현실화를 예고합니다.
이 해석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 본문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신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랍비 전통은 이사야 61장을 미래 시제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5. Sifre 신명기: 율법과 회개를 통한 은혜의 해
Sifre Deuteronomy 43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율법으로 돌아가고 회개할 기회를 주는 은혜의 시간으로 봅니다. 메시아는 나타나기 전, 이 은혜의 해를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메시아는 그 결과로 등장하게 됩니다.
즉, 은혜의 해 → 회개 → 메시아 도래라는 조건적 순서를 따릅니다.
이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은혜의 해를 선포함으로써 메시아 도래의 조건을 넘어서고, 은혜의 주체로 자신을 드러낸 것과 대조됩니다.
6. 랍비 유대 문헌과 예수의 나사렛 선언 비교: 이사야 61장의 해석과 적용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인용하여 선포하신 메시야 선언은 당시 랍비 유대 문헌에서 기대하던 메시아 해석과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다음은 이 두 입장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핵심적 차이와 신학적 통찰입니다:
1. 본문 중심의 차이
랍비 유대 문헌은 이사야 61장 전체를 종말적 회복 예언으로 해석하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사 61:2b)이라는 심판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메시아의 도래는 이스라엘의 대적에 대한 심판과 보복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의 선언(눅 4장)은 이사야 61:1–2a까지만 인용하고, 여기에 이사야 58:6의 ‘눌린 자 해방’을 병합하면서도, 심판 구절은 의도적으로 생략합니다. 이는 메시아의 첫 사역이 은혜와 해방의 선포임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신학적 장치입니다.
2. 적용 시점의 차이
랍비 유대 문헌은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을 미래적 종말 시점에 실현될 사건으로 봅니다. 메시아가 올 때까지는 이 예언이 완전히 성취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21에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현재적이고 실존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유대 종말론의 미래적 기대를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3. 메시아의 역할에 대한 관점 차이
랍비 유대 문헌에서는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성전을 재건하며, 정치적 독립과 통치를 회복하는 존재로 기대됩니다. 종종 두 메시아 사상(고난의 요셉형과 승리의 다윗형)으로 정리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선언은 정치적 기대를 넘어서 영적 회복, 내면의 구속, 복음의 보편적 선포에 중심을 둡니다. 이는 회당 청중에게 충격적인 전환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곧바로 배척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눅 4:28–29).
4. 강조 요소의 차이
랍비 전통은 회개(teshuvah)와 율법 준수를 통한 메시아 도래를 강조하며, 조건부 구속과 시기 미정의 종말을 전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적 시간(kairos) 안에서 은혜가 중심이 된 구속의 시작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선언이 이를 대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이사야 인용은 단지 구약 예언의 낭독이 아니라, 랍비적 종말론과 메시아 사상의 재구성이자 복음의 정체성 선언입니다. 구속의 시점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며, 회개의 조건은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으로 대체됩니다. 이 전환은 유대인 청중에게 도전이 되었고, 동시에 교회 공동체의 신학적 토대를 형성하였습니다.
<이사야 61장의 성취로 드러난 예수의 메시아 자기 계시>
1. 성경 낭독에서 시작된 메시아 선언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는 단순히 회당 낭독자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낭독과 함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선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로 드러내십니다. 이는 랍비적 전통의 메시아 해석을 알고 있던 청중에게 충격적인 선포였습니다.
랍비 문헌은 이사야 61장을 미래적 메시아의 선언으로 이해했지만, 예수는 그것을 현재적 성취의 선언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회당 낭독은 단순한 예배 행위가 아닌, 역사적 전환점이 됩니다.
2.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메시아
히브리어 “מָשִׁיחַ (Mashiach)”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며, 구약에서는 제사장(레 8:12), 선지자(왕상 19:16), 왕(삼상 10:1)에게 기름이 부어졌습니다. 이사야 61장의 “주의 영이 내게 임하였으니”라는 말은 바로 이 기름 부음의 상징적 언어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본문을 통해 다음의 메시지를 드러내십니다:
• 자신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임을 선언하며,
• 복음을 전하고, 포로를 자유케 하며, 억눌린 자를 해방하는 자로서의 사역을 선언합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감당했던 왕적, 선지자적, 제사장적 사역을 통합하는 자기 선언입니다.
3.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 – 실현된 종말론
예수님께서 “오늘”이라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시간 표현이 아닙니다. 그 “σήμερον (오늘)”은 역사 속에 침투한 하나님의 카이로스(καιρός)를 의미합니다. 이는 랍비적 종말론인 아하리트 하야밈(אַחֲרִית הַיָּמִים)과 올람 하바(עולם הבא)를 현재로 끌어들인 선포이며, 랍비 유대교가 기다리던 ‘조건부 미래의 메시아 시대’를 무너뜨리고, 은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 선언은 실현된 종말론 (Realized Eschatology)과 진행 중인 종말론 (Inaugurated Eschatology)의 핵심 구절로 이해됩니다.
4. 랍비 문헌과의 충돌 지점
랍비 유대교는 메시아의 도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율법을 지킬 때에만 메시아가 올 수 있다 (b.Sanhedrin 98a).
•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회복시키고, 성전을 재건하며, 율법을 완전케 해야 한다.
•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실현할 인물이다.
예수는 이러한 조건적 메시아관과 달리:
• 스스로를 가난한 자의 구속자로 선포하고,
• 은혜의 해를 무조건적으로 선언하며,
• 심판의 날을 생략하고,
•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지금이 성취의 때임을 밝혔습니다.
이 차이로 인해 청중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변하고, 예수를 회당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하는(눅 4:28–29) 반응을 보입니다.
5. 회당의 반응과 예언의 성취
예수의 선언은 곧장 청중의 폭력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구약 예언자들이 고난받았던 역사(예: 예레미야, 엘리야)를 반영하며, 예수께서도 회당에서 “선지자는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대목은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누가복음 4장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지닌다:
1. 회당 예배의 전통 안에서 등장
2. 메시아적 이사야 본문을 읽음
3. 그 본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선언
4. 전통의 기대와 다른 정체성으로 인한 분노 유발
5. 선지자적 고난의 길로 향하는 서사의 시작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통해 드러내신 메시아 정체성은 랍비 유대교의 조건적, 민족 중심적 메시아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초월적 자기 계시였습니다. 그분은 율법을 넘어선 은혜, 성전 대신 성령, 미래의 소망 대신 현재의 실현을 선포하셨고, 이로 인해 전통과 충돌하며 십자가로 향하는 길을 시작하십니다.
<예수의 사역과 이사야 61장의 점진적 성취>
1. 이사야 61장과 공생애의 연결 구조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인용하신 후,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공생애 전반에 걸쳐 그 선언의 실체를 삶으로 펼쳐 가셨습니다. 이는 하나의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삶과 사역으로 드러낸 살아 있는 이사야 주석이자 실현된 메시야의 전형이었습니다.
이사야 61장은 메시야적 선언의 고전적 본문으로, 구속과 회복, 은혜와 해방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본문을 나사렛 회당에서 인용하여 자신의 사역이 바로 이사야 61장의 성취임을 선포하셨습니다(눅 4:18–2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함
• 예수님의 성취:
마태복음 5:3, 누가복음 6:20 등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을 직접 실현하였습니다.
• 랍비 문헌 대조:
바벨론 탈무드 산헤드린 98b에서는 메시아가 “율법을 깊이 깨달은 자”로 등장하며, 동시에 가난한 자들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는 자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개인적 내면 회복보다는 공동체 중심적 정의에 집중합니다.
상한 마음을 고침
• 예수님의 성취:
누가복음 7:22에서 예수님께서는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상한 마음과 육체의 회복을 함께 선언하셨습니다.
• 랍비 문헌 대조:
미드라쉬 시편 146편에서는 메시아가 병자를 도우시는 분으로 묘사되지만, 병 고침은 부수적 사역이며 주로 정의와 율법 실행이 강조됩니다.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함
• 예수님의 성취:
눅 4:18 및 요한복음 8:32에서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선포하심으로써, 포로됨의 본질을 죄와 억압된 내면의 상태로 해석하십니다.
• 랍비 문헌 대조:
탈굼 이사야 61장(Targum Jonathan)은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함”을 바벨론 포로 해방이나 메시아가 로마 통치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갇힌 자에게 해방을 선포함
• 예수님의 성취:
마가복음 5:1–20에서는 귀신들린 거라사인을 고치심으로써 “사로잡힌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사역을 실현하십니다. 여기서 억압은 단지 외적 정치적 억압이 아닌 영적 속박을 의미합니다.
• 랍비 문헌 대조:
Pesikta de-Rav Kahana에서는 메시아 시대의 해방을 바빌론, 로마, 이방인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는 민족적 해방으로 묘사합니다.
주의 은혜의 해 선포
• 예수님의 성취:
누가복음 19:9–10에서 예수는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시며, 율법적 조건이 아니라 회개한 세리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희년적 회복과 “은혜의 해”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랍비 문헌 대조:
Sifre 신명기 43에서는 “은혜의 해”를 희년(욥엘)의 회복으로 연결하며, 율법 순종과 회개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수의 무조건적 선포는 기존 랍비 해석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사야 61장은 메시아의 사역에 대한 강력한 예언이며, 예수님께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성취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랍비 문헌에서는 같은 본문을 다르게 해석하며, 정치적·민족적 해방, 율법 중심적 회복, 그리고 조건적 구속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대비는 예수의 복음이 단순한 유대교적 연장선이 아닌, 전적으로 새로운 구속사의 패러다임임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종말론적 희년의 실현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기적이나 교훈이 아니라, 종말론적 희년 (Yovel)의 실현이었습니다. 희년은 이스라엘이 50년마다 모든 채무를 탕감받고, 포로가 해방되며, 소유가 회복되는 구속의 해였으며, 이사야 61장은 바로 그 희년적 구속을 메시아가 선포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희년을 다음과 같이 실현하셨습니다:
• 죄인들에게 용서를 선포 (눅 7:48)
• 사회적 낙오자들과 식사하며 공동체 회복을 촉진 (눅 15장, 막 2:15–17)
• 자신을 통해 안식과 회복이 이루어짐을 선언 (마 11:28–30)
3. 실현된 메시아: 예수와 랍비 전통의 갈림길
랍비 유대교는 이사야 61장을 주로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 메시아는 율법을 더 철저히 가르치는 존재
• 이스라엘의 정치적 자유와 성전 회복이 그의 사역의 핵심
• “은혜의 해”는 종말 전 회개의 시간이며, 인간의 응답이 선행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와 반대로:
• 율법보다 복음을, 조건보다 은혜를 강조
• 로마의 억압을 무너뜨리기보다, 내면의 억압과 죄를 해방
• 성전보다 자신의 몸을 거룩한 성전이라 선언 (요 2:19–21)
이러한 차이점은, 왜 예수님이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4. 예수님의 사역은 이사야 61장의 연속적 주석
신약 전반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이사야 61장의 실현이자 확장으로 이해됩니다:
• 마태복음 11:5에서 예수는 침례 요한에게 이사야 61장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십니다.
• 사도행전 10:38은 예수의 공생애를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선을 행하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다”고 요약합니다.
• 바울 역시 이사야의 “기쁨의 기별”을 전파하는 자로서 자신을 설명합니다 (롬 10:15, 사 52:7 인용).
이사야 61장은 예수님의 나사렛 선언에서 한 번 인용되고 끝난 본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 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성취된 청사진이었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사명, 정체성, 공생애의 방향성을 요약하며, 또한 유대 전통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기준이 됩니다. 그는 희년의 메시아였고, 율법 중심이 아니라 은혜 중심의 구속사적 시대를 여신 분이었습니다.
<회당과 신약 성경 교회와의 관계>
회당은 제2성전기 유대인의 신앙과 공동체 정체성 유지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 모두 회당을 복음 전파의 시작점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유대 전통을 넘어 이방 세계로 확장되면서, 회당은 초기 교회의 전환점이자 단절의 지점이 되었습니다.
• 회당: 율법 교육, 낭독, 공동체 중심
• 교회: 성령 공동체, 복음 선포, 성찬 중심
• 사도행전 13~17장에 보면, 바울은 각 지역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고, 거부될 때 이방인 공동체로 전환했습니다.
1. 교회와 회당과의 관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교회”(Ekklesia)는 히브리어 Qahal이라면, 회당과의 관계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18에서 “내 교회(ἐκκλησίαν)”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히브리어 קָהָל (Qahal)—“불러 모은 하나님의 백성”—의 헬라어 번역어로, 구약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칭합니다.
반면 회당(Beit Knesset, בֵּית כְּנֶסֶת)은 포로기 이후 생긴 경건 공동체의 물리적 모임 공간으로, 에클레시아가 지닌 언약적이고 영적인 공동체 의미와는 구별됩니다. 그러나 예수와 초대교회는 회당이라는 물리적 장소에서 Qahal Elohim의 회복을 선포하며, 에클레시아를 통한 새 언약 공동체로 발전시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당은 장소, 에클레시아는 존재론적 정체성입니다.
2. 사복음서에서 나사렛, 가버나움,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의 사역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고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4:23, 눅 4:16, 막 1:21).
미쉬나와 탈무드에 따르면,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토라와 예언서 낭독, 해석(derash),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 구조 안에서 하프타라(사 61장)를 읽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눅 4:21). 이는 그분이 메시아적 선언을 회당 전통 안에서 이루셨음을 보여줍니다.
3. 사도행전의 하루 세 번 성전 기도와의 관계
사도행전 3:1, 10:9 등에서 사도들이 아침(Shacharit), 오후(Minchah), 저녁(Maariv) 기도의 시각에 맞추어 기도하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기존 유대 경건의 리듬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으며, 기도와 성령의 역동성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이해됩니다. 이후 에클레시아는 이 기도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공동체적 성찬과 말씀 중심의 새로운 형태의 예배로 발전하게 됩니다 (행 2:42).
4. 베드로, 고넬료, 바울이 기도처소를 찾은 이유
행 10:9, 16:13에서 고넬료와 바울은 기도시간에 맞춰 기도처소를 찾습니다. 이는 회당이나 성전이 없는 지역에서 기도 중심의 공동체(προσευχή, proseuchē)가 기능했음을 암시합니다.
Proseuchē는 고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회당이 존재하지 않을 때 세운 야외 기도 장소로, 종종 강가에 위치하였습니다 (행 16:13). 이는 회당이 곧 기도의 집(이사야 56:7)이라는 이상을 실천하려는 공동체적 행위였습니다.
5. 초대 교회 형성과 회당의 밀접한 관계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선교 초기 각 지역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고, 거부될 때 이방인 에클레시아로 확장하였습니다 (행 13:5, 14:1, 17:1–2). 회당은 초기 에클레시아가 말씀을 낭독하고 기도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기능했고, 신자들이 종종 회당 안팎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행 19:8–10). 교회는 회당의 구조(말씀–기도–해석)를 수용하되, 성찬과 세례를 통한 신언약 공동체의 표징을 추가하였습니다.
6. 고고학·역사적 실례: 회당이 교회로 사용된 사례
이스라엘과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된 일부 고대 회당 유적(예: 갈릴리의 코라짐, 마그달라)은 후대에 기독교 예배 공간으로 전환된 흔적을 보여줍니다.
Dura-Europos (3세기, 시리아)는 회당과 교회가 같은 도시 내에 공존하며, 말씀 중심 구조를 공유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로마 초기의 titulus 교회(예: 성 클레멘스 교회)는 유대 회당의 구조를 모방한 초기 에클레시아의 예배 공간으로 추정됩니다.
7. 콘스탄틴 이후 교회와 회당의 단절과 그 신학적 의미
4세기 콘스탄틴 대제 이후, 기독교는 공인과 제도화를 거치면서 로마화·제국화되었고, 회당과 유대적 뿌리로부터 점차 단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니케아 공의회(AD 325) 이후, 유월절을 유대 절기와 분리하고 회당 예배 요소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는 교회의 헬레니즘화와 반유대주의적 신학(Adversus Judaeos 전통)을 강화시키며, 유대인 박해 및 유대교와의 단절로 이어졌습니다. 회당과의 단절은 복음의 유대적 뿌리를 상실하게 했고, 종종 기독교의 제국화와 반율법주의로 왜곡된 이해를 초래하였습니다.
회당은 예수와 초대교회의 출발점이자, 신약 교회가 자라난 뿌리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치적·종교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며 점차 단절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회당의 경건성과 공동체성, 그리고 기도의 영성을 회복함으로써, 그 본래의 성경적 뿌리로 다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의 장막과 다윗의 아들 – 예수의 회당 선언과 메시아성>
1. 다윗 언약과 무너진 장막의 회복
아모스 9:11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이 본문은 Qumran의 문서(CD 7.16–21)와 미드라쉬 Pesikta Rabbati에서도 메시아 시대의 회복과 다윗 왕국의 재건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어 해석됩니다. 사해문서에서도 ‘다윗의 뿌리’가 장차 영원한 통치를 회복할 것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낭독하며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자신을 암시하는 동시에, 다윗 언약의 성취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누가복음 1:32–33에서도 예수의 정체성이 “그 조상 다윗의 왕위에 앉으리라”는 언약적 언어로 표현됩니다.
2. 다윗의 장막과 다윗의 아들 메시아
랍비 유대교 전통에서 ‘다윗의 장막’은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의 상징입니다:
• 탈무드 Sanhedrin 97a는 “다윗의 집이 낮아질수록 메시아는 가까워진다”고 말합니다.
• 미드라쉬 Tehillim 18은 메시아가 다윗의 영광을 회복할 자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예수의 선언은 단지 종교적 갱신이 아니라, 정치적·종말론적 메시아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가 아닌 ‘다윗의 주’(마 22:41–45)로서 자신을 소개하며, 메시아관에 도전하였습니다.
3. 회당에서의 거절과 다윗성의 아이러니
예수님의 회당 선언은 곧이어 격렬한 배척으로 이어졌고(눅 4:28–30), 이는 다윗의 도성이었던 예루살렘에서의 거절과도 평행을 이룹니다. 그가 자라난 나사렛,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까지 ‘자기 백성에게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요 1:11)는 말씀을 충실히 실현한 셈입니다.
이 회당 거절 장면은 이사야의 ‘배척당하는 종’(사 53장)과의 연결이 가능합니다. 그는 왕으로 오되, 십자가를 지는 길을 택한다는 점에서 ‘고난받는 메시아’ 개념의 신약적 구현이 됩니다.
4. 다윗의 장막 – 모세의 장막과의 연결
회당의 구조와 기능은 모세의 장막, 그리고 다윗의 임시 장막과 유사합니다:
• 출애굽기의 성막은 ‘모임의 장막’(אֹהֶל מוֹעֵד)으로, 공동체 예배와 계시의 장소였습니다.
• 다윗의 장막은 성전 건축 이전의 임시 성소로, 언약궤만 놓인 채 찬양과 기도 중심의 예배가 이루어진 공간이었습니다(삼하 6:17–18).
회당은 바로 이 구조적 유산을 계승한 공간으로, 예수는 성전과 장막의 기능을 통합하여 자기 안에 실현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요 2:19).
<유대교 및 신약 성경의 시두르 기능>
1. 시두르(Siddur 또는 Seder)의 구성과 기능
시두르(סִדּוּר)는 히브리어 “질서” 또는 “배열”을 뜻하며, 회당 예배의 기도문과 낭독 순서를 담은 예배서입니다. 예수 당시에는 현재처럼 인쇄된 시두르 형태는 아니었지만, 기도와 낭독의 순서(Seder)는 구전 전통으로 전해졌고 핵심 요소들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 쉐마(Shema Yisrael): 신 6:4–9, 11:13–21, 민 15:37–41
• 아미다(Amidah): 18개의 축복 기도 (Berakhot)
• 베라코트(Berakhot): 음식, 구원, 율법, 예배 등을 위한 감사 기도
• 하프타라(Haftarah) 낭독 후의 해석(Derash)
이 구조는 오늘날의 시두르 기초가 되었으며,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재해석하여 사용했음을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토라와 예언서 낭독 순서(Seder ha-Parashiyot)의 전통
토라(Parashah) 낭독 후, 관련 주제의 예언서(Haftarah)가 낭독되었습니다.
Megillah 4:1–4에 의하면, 하프타라는 토라의 정기 순서에 연결된 “예언적 조명”으로 구성되었고, 낭독자는 토라와 하프타라 모두 히브리어로 읽고 아람어로 해석(Meturgeman)이 붙었습니다.
예수님의 회당 사건(눅 4:16)은 이 낭독 전통 속에서 자기 선언의 방식으로 Haftarah를 선택한 전례 없는 행위였습니다.
3. 예수님과 하프타라의 선포 구조
미쉬나 메길라 3:4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אין פוחתין מעשרה פסוקים בתורה, ולא פוחתין מהפטרה מנביא, ולא קורין לנביא פחות משלשה” “토라에서는 10절 이하를 읽지 말며, 예언서 하프타라 낭독 시에는 3절 이상을 읽는다.”
예수께서 이사야 61장 1–2절을 읽으신 것은 하프타라 구조 안에서의 전형적 분량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의도적으로 이사야 61장의 “주의 보복의 날”을 생략함으로써 당시 메시아 기대와는 다른 “은혜의 해” 중심의 메시야상(눅 4:19)을 드러냈습니다.
이 같은 본문 편집 방식은 랍비 문헌에서도 종종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탈무드 Megillah 25b에서는 불편한 본문은 회당 낭독에서 생략할 수 있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프타라 규범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4. Haftarah 낭독의 규범이란?
Haftarah는 바벨론 시대 이후 발전된 제도로, 토라 본문에 상응하는 예언서 본문을 정하여 함께 읽었습니다.
규범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적어도 1세기에는 Haftarah의 예언자 본문이 주간 예배의 정례적 요소가 되었고, 사도시대에도 낭독이 유지되었음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입증합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정규적인 Haftarah가 아닌, 메시야 선언을 위한 의도적 선택이었으며, 이는 회당 질서를 전복한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5. Seder ha-Parashiyot의 기원과 예수의 나사렛 회당 반응
Seder ha-Parashiyot (סדר הפרשיות)는 1년 또는 3년 주기로 토라를 분할해 회당에서 낭독하는 전통입니다. 미쉬나 메길라(Megillah 3:4)에서는 이미 예언서 낭독과 토라 낭독의 분리, 그리고 시기별 Seder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셨다는 것은 이미 하프타라 낭독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며, 시두르 낭독의 맥락에서 벗어난 본문 선택이었던 점은 그분의 메시야적 자의식을 드러냅니다.
6. Seder ha-Parashiyot의 기원과 구성
Seder ha-Parashiyot는 ‘토라 낭독 순서’를 뜻하며, 주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일정 분량의 토라(Parashah)와 예언서(Haftarah)를 읽는 예배 순서입니다. 그 기원은 포로기 이후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토라 낭독과 해석이 공동체 예배의 중심이 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느 8장 참조). 1년 주기와 3년 주기의 두 전통이 존재합니다:
• 1년 주기: 바벨론계 유대인의 방식 (현대 주류)
• 3년 주기: 팔레스타인계 유대인의 전통 (예수 시대 갈릴리 가능성 높음)
미쉬나 메길라 3:4 및 탈무드 Megillah 29b–30a에는 예언서 낭독(Haftarah)이 토라와 별개로 낭독되었고, 특별 안식일에는 특별 파라샤(Seder ha-Parashiyot)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7.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낭독과 Seder와의 관계
누가복음 4:16–21에서 예수님께서 이사야 61장을 스스로 펴서 읽으셨다는 기록은 당시 일반적인 하프타라 순서와 일정 부분 충돌하는 행위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프타라 본문인 이사야 61:1–2를 직접 찾아서 읽으신 것은, 이미 정해진 Seder ha-Haftarot이 있었으나 그 날의 본문이 이사야 61장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는 그 본문을 의도적으로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심으로써 Seder 구조 안에서의 파격과 메시아적 자기 선언을 동시에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Halakhic Judaism의 예배 규범(Megillah 4:4–5)을 깨뜨리는 행위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어지는 회당의 분노(눅 4:28)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8. 시두르(Siddur)의 기원과 신약과의 관계
Siddur (סִדּוּר)는 ‘정렬된 순서’를 의미하며, 유대인의 기도문과 낭독 순서를 집대성한 예배서입니다.
초기 형태는 포로기 이후 회당 예배에서 기도와 토라·예언서 낭독 순서를 문서화한 것에서 비롯되며, 탈무드 이후 중세에 구체적인 형태로 정착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완성된 Siddur는 없었지만, Seder ha-Parashiyot나 Berakhot(축복문), Amidah 기도의 형태가 이미 구전 전통으로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신약 교회는 유대 시두르에서 쉐마, 아미다, 감사 기도(Berakhah) 등의 구조를 이어받았으며, 예수와 제자들은 이러한 유대 전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9. Seder가 사복음서에 언급되는가?
직접적으로 “Seder”라는 단어는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전통적 구조 사용의 흔적이 복음서에 존재합니다:
• 눅 4:16–21 – 하프타라 낭독 전통을 따른 예수
• 마 6:9–13 – 주기도문은 시두르 속 아미다와 베라카의 구조적 틀을 반영
• 마 26:26 이하 – 성찬은 유월절 시두르(Pesach Haggadah)의 축복문(Berakhot)을 반영한 전례적 행동
10.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Seder의 사용
사도행전 3:1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오후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유대 전통의 Seder 기도 시각(Shacharit–Minchah–Maariv)을 따른 것으로, 회당 기도 시두르 구조를 그대로 계승했음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의 행적은 유대적 시간표 안에서 움직였으며, 특히 사도행전 10장에서도 고넬료와 베드로 모두 기도의 시간에 맞춰 영적 사건을 경험합니다.
11. 바울의 기도 신학과 Seder의 관계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으며, 회당 문화와 시두르적 기도 구조에 익숙했습니다.
바울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Seder 구조의 흔적이 있습니다:
• 쉐마적 신앙 고백: 롬 3:30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아미다적 중보기도: 엡 1:15–19, 골 1:9–11
• 베라카(감사축복)의 서사: 엡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며 시간을 구별한 정규 기도(Seder)와 성령 안의 지속적 기도를 통합하고자 하였습니다.
12. 신약 전체에서의 기도와 Seder 관계
• 누가복음–사도행전: 정해진 기도 시각, 회당 구조 반영
• 바울서신: 시두르의 요소를 신학화하며, 성령 중심의 기도로 재해석
• 히브리서: 대제사장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하늘 성소로의 기도 접근(히 10:19–22)을 강조
• 요한계시록: 기도를 향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을 천상의 예배에 참여한 자로 묘사 (계 5:8, 8:3–4)
13.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Seder의 사용
유대인 중심의 초기 교회는 시두르적 질서와 회당 예배 순서를 기본 예배 구조로 삼았습니다.
디아디스칼리아, 디다케(Didache) 등 1세기 말~2세기 초 문헌들은 안식일, 축복문, 기도 시간의 유대적 틀을 계승한 초기 교회의 전례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후 점차 성찬과 말씀 중심 구조가 부상하면서 유대 시두르와의 연결은 약화되었지만, 정해진 기도 시간, 복된 이름 찬양, 말씀 해석, 찬양과 감사를 통한 기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Seder ha-Parashiyot와 시두르적 기도 전통은 예수님과 초기 교회, 사도들의 기도와 예배 이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복음이 이방 세계로 확장될 때에도 그 리듬과 구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예배 질서의 문제가 아니라, 언약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다시 위치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에클레시아와 메시야적 사역의 계승: 회당에서 교회로의 전이>
1. 예수님의 사역과 공동체적 지향
예수의 공생애는 단지 개인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를 형성하셨으며, 이 공동체는 단순한 추종자 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언약 공동체로서 구성되었습니다.
• 마 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 이는 예수가 새로운 kahal, 곧 에클레시아를 창조하시는 선언입니다.
2. קָהָל (Kahal)과 ἐκκλησία (Ekklesia)의 개념 비교: 언약 공동체의 연속성과 성취
성경에서 공동체를 지칭하는 두 중요한 용어, 히브리어 קָהָל (Kahal)과 헬라어 ἐκκλησία (Ekklesia)는 단절된 두 공동체가 아니라, 언약의 연속성과 성취의 신학적 흐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두 용어가 각각 구약과 신약에서 어떻게 사용되며, 어떤 본질적 연속성을 지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의미
• Kahal (קָהָל): “소집된 자들” 또는 “공적으로 부름받은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주로 시내산 언약 공동체를 지칭하며, 하나님의 율법 아래 모인 이스라엘을 나타냅니다(출 19:6).
• Ekklesia (ἐκκλησία): 헬라어로 “불러낸 자들의 모임”을 뜻하며, 구약의 칠십인역(LXX)에서도 Kahal의 번역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으로 부름받은 공동체를 가리킵니다(마 16:18).
2. 중심 요소
• Kahal은 율법과 성전, 혈통적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유대 민족 공동체로서 제사장적 사명을 수행합니다.
• Ekklesia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자들의 공동체로 구성되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보편적 정체성을 지닙니다(갈 3:28).
3. 결속 원리
• Kahal의 결속은 시내산에서의 언약과 모세 율법에 기초하며, 민족적·의례적 정체성이 강합니다.
• Ekklesia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우신 새 언약(눅 22:20)을 중심으로 결속되며,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공동체입니다(고전 12:13).
4. 공동체 목적
• Kahal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땅 위에서 거룩한 제사장 나라(출 19:6)를 실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 Ekklesia는 복음을 전하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합니다(마 28:19–20; 행 1:8).
5. 대표 예시 비교
• Kahal: 출애굽기 19:6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는 공동체의 제사장적 사명과 민족적 언약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 Ekklesia: 베드로전서 2:9 –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신약 교회가 구약 이스라엘의 언약적 정체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약의 Ekklesia는 Kahal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성취와 완성으로서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한 언약에서 다른 언약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구속사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운 창조이면서도,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계승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닙니다.
3. 회당(Synagogue)에서 교회(Ekklesia)로
예수와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회당(Synagogue)이 예배와 율법 교육, 기도, 공동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메시야 선언이 점차 회당과 긴장관계를 가지게 되며, 교회라는 새 공동체로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회당(בֵּית כְּנֶסֶת, Beit Knesset)과 교회(ἐκκλησία, Ekklesia)는 각각 유대교와 기독교의 공동체 예배와 신앙생활의 중심 기관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이 둘은 단순한 공간이나 건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각각의 설립 배경과 목적, 구조와 메시지에서 유사성과 차이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1. 설립 기반
• 회당(Synagogue):
바벨론 포로기(기원전 6세기경) 이후 성전이 파괴되고 제사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유대 공동체는 율법을 가르치고 기도하며 모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서 회당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성전 기능의 일부를 대체하고, 유대 정체성을 유지하는 신앙 공동체로 자리잡았습니다.
• 교회(Ekklesia):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 강림(오순절)을 기점으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종교 조직이 아닌, 새 언약 공동체, 즉 성령의 인도와 복음 중심의 구속사 공동체로 태동되었습니다.
2. 예배 중심
• 회당:
회당 예배의 핵심은 토라 낭독, 쉐마 기도(신 6:4), 하프타라(예언서 낭독), 그리고 하브루타(율법 토론)입니다. 말씀과 공동체 교육 중심으로, 주기적인 시두르(Siddur) 질서를 따라 경건한 삶을 형성했습니다.
• 교회:
초대 교회의 예배는 말씀 선포(사도적 가르침), 성찬(Eucharist), 공동 기도, 그리고 코이노니아(사랑의 교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회당 예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의 중심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행 2:42–47).
3. 공동체 경계
• 회당:
기본적으로 유대인 혈통과 율법적 정결 규례를 따라야만 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특정 조건 아래 게르 토샤브(거류민)로 제한적으로 포함되었지만, 중심은 철저히 이스라엘 민족 중심이었습니다.
•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무는 사건이었으며(엡 2:14), 믿음 안에서 하나 된 새 사람으로 누구든지 복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보편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4. 지도 체계
• 회당:
장로(זקנים, zekenim), 회당장(archisynagogos), 그리고 랍비(rabbi)가 공동체의 교육과 질서, 예배를 감독하였습니다.
• 교회: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그 이후 장로(πρεσβύτερος), 감독(ἐπίσκοπος), 교사, 목자(ποιμήν) 등 다양한 은사와 역할을 가진 지도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었습니다(엡 4:11).
5. 핵심 메시지
• 회당:
회당의 메시지는 율법 준수, 언약적 정체성 보존, 그리고 유대 전통의 계승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민족적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 교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성령 안에서의 새 창조와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중심으로 합니다. 율법보다 은혜, 혈통보다 믿음, 제사보다 십자가가 중심이 되는 공동체입니다(고후 5:17).
회당과 교회는 단절이라기보다 구속사적 연속선 위에 있는 구조이며, 회당은 교회의 신앙적 기초와 예배 전통의 원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을 통한 보편적 구원의 실현체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새 언약 공동체로 정체성이 전환되었습니다.
4. 이사야 61장과 에클레시아의 사명
예수님의 이사야 61장 선언은 개인 구원만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사명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를 다음과 같이 계승합니다:
•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말씀, 교제, 떡을 뗌, 기도의 공동체 형성
• 고린도전서 12장: 각 지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유기체적 에클레시아
•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 Kahal의 언약적 정체성 계승
5. 랍비 유대교의 공동체와의 차이점
예수 그리스도 당시와 그 이후,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랍비 유대교와 초대 교회는 각각의 신학, 시간 이해, 구원의 길, 그리고 공동체 확장의 방식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점에서는 공통된 목적을 공유합니다.
1. 결속 원리
랍비 유대교 공동체는 율법(토라)을 중심으로, 특히 미쉬나(Mishnah)와 탈무드(Talmud)로 체계화된 전통을 통해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유대인의 삶 전체는 미쯔보트(계명, מצוות) 준수를 중심으로 조직되며, 이는 경건함뿐 아니라 공동체 소속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복음의 선포와 성령 안에서의 새 언약을 결속 원리로 삼았습니다. 갈라디아서 3:28에 나타나듯,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경계를 초월한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였습니다.
2. 시간 이해
랍비 유대교는 샤밧(안식일)과 희년(욥엘) 같은 거룩한 시간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삶을 하나님의 시간 질서 안에 위치시키고자 했습니다. 시간은 성결화된 반복 구조로 이해되며, 신적 질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리듬이 형성됩니다.
초대 교회는 ‘주의 날’(Κυριακή ἡμέρα, 일요일)을 예배의 핵심 시간으로 삼았으며(계 1:10),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는 의미였습니다. 더불어, 교회는 종말론적 시간, 즉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각으로 삶을 살아갔습니다.
3. 공동체 확장 방식
랍비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혈통적 이스라엘에 기반한 공동체이며, 개종자(게르, גר)의 수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개종에는 할례, 정결 규례, 율법 교육 등의 엄격한 절차가 따랐으며, 이는 공동체의 경계 유지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믿음에 기초한 공동체 확장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방인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자 정체성이 되었으며,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의 회심 사건과 같이, 성령이 주도하는 확장이 전개되었습니다.
4. 구원 이해
랍비 유대교는 구원을 토라 준수와 미쯔보트 실천을 통해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의롭게 되며, 공동체 안에서 구원을 향한 삶을 살아갑니다(미쉬나 아보트 1:2 참조).
초대 교회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향한 믿음(pistis)을 통해 받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엡 2:8–9).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으며(롬 10:4),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랍비 유대교와 초대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 공동체를 추구했으나, 그 결속 원리, 시간 신학, 확장의 방향성, 그리고 구원의 길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냅니다. 랍비 유대교는 율법과 민족 중심, 교회는 은혜와 복음 중심의 공동체로 발전해 왔으며, 이 비교는 유대적 뿌리 속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6. 오늘날 교회의 사명과 회복
오늘날의 교회 역시 이사야 61장의 사명을 계승한 에클레시아로서 다음과 같은 정체성을 지녀야 합니다:
•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 죄인을 용서하고 공동체로 회복시키며
• ‘은혜의 해’를 지금 이 시대에 선포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역은 이사야 61장의 구속 사역을 공동체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에클레시아를 통해 계승되었습니다. Kahal에서 Ekklesia로, 회당에서 교회로의 전이는 단절이 아니라 언약과 사명의 확장입니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도구로 부름받았습니다.
<회당에서 교회로, 랍비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예수님은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등장한 선지자나 랍비(교사)로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랍비 유대교 전통 속에서 메시아로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회당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율법과 전통에 근거한 경건의 틀을 넘어, 새로운 창조와 공동체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 전환의 핵심은 단절이 아니라 성취이며, 파괴가 아니라 완성입니다.
• 회당(Synagogue)은 율법 교육과 전통의 보호자였고,
• 교회(Ekklesia)는 복음 선포와 은혜의 공동체로
•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혈통에서 믿음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선언(눅 4장)은 단지 한 마을의 사건이 아니라,
랍비 유대교로부터 신약 공동체로의 전환점이었고,
그 핵심은 이사야 61장에 요약된 메시아의 사역, 곧
가난한 자를 향한 복음, 포로의 자유, 억눌린 자의 해방, 은혜의 해 선포에 있었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이 메시아의 사역을 계승한 하나님의 나라의 지체로서
율법이 아닌 성령에 따라 움직이며,
민족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결론에 도달합니다:
• 랍비 유대교의 기다림은 신약 교회의 선포 안에서 성취되었고,
• 구약의 메시아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 안에서 드러났으며,
• 이스라엘 중심의 Kahal은 열방을 포함한 Ekklesia로 확장되었고,
• 율법 중심의 시대는 복음 중심의 시대로 옮겨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새 시대의 문을 여신 메시아적 혁명이었습니다.
그분은 회당의 경계 밖으로 나아가, 모든 이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자들이 바로 교회이며, 에클레시아이며,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글을 맺으면서>
예수님의 나사렛 회당 사건은 단순한 회당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랍비 유대교 전통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신성 공간 질서와 회당 예배 구조를 정면으로 재구성하는 급진적 선언이었습니다. Aron HaKodesh의 자의적 개방, 하프타라 순서 무시, 드라쉬 병합 해석, 메시아 자기 선포는 율법 중심 공동체가 수용할 수 없는 행위였으며, 이는 결국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선언이 새로운 언약 공동체인 교회의 시작점이 되었음을 우리는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봅니다. 회당과 교회의 관계, 그리고 예언의 성취라는 대주제 안에서,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구체적 역사와 신학적 충돌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드러내는 신학적 경계선이자 교차점입니다.
2025년 6월 13일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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