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파티는 갑자기 연주하고 있던 오른손을 내려놓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몸은 곧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큰 병을 앓고 있기는 했지만, 무대에 오른 그는 그날의 연주 프로그램을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클래식산책] The Last Concert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 » 글 조기칠 목사 » 바흐의 파르티타 1번,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8번, 슈베르트 즉흥곡, 그리고 마지막이자 그날의 연주회의 백미인 쇼팽의 왈츠곡들까지… 그는 한차례 도중에 미세하게 흔들리기는 했으나, 자신이 늘 쳐왔던 곡들을 비교적 잘 연주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인 쇼팽의 왈츠곡 2번인 ’화려한 왈츠’를 연주하던 오른손이 건반에서 미끄러져 내려버리며 그만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루마니아 출신인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는 1917년 태어났다. 네 살 때 세례식에서 이미 모차르트의 미뉴에트를 연주할 정도로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어린 시절에 정규학교를 다니지 않고 재택교육을 하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뒤 부쿠레슈티 음악원에 들어갔다. 졸업 후 1934년, 17세의 나이로빈 국제콩쿠르에서 2등을 차지했다. 사실은 콩쿠르에 참석한 모든 참가자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보여 당연히 1등은 그가 하리라고 예상하였지만, 주최 측의 정치적인 이유로 1등을 놓치고 만다.
1936 년에는 그의 나이 19 셋째 그는 파리에서 독주회를 갖고 청중들을 열광시켰다.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구의 조그마한 나라 루마니아에서 온 150센티밖에 되지 않았던 작은 소년은 예술의 도시 파리를 열광시켰고 뒤이어 유럽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완벽하게 완성된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열정적으로 연주 활동을 하던 때에 그의 인생에 급격하게 브레이크가 걸리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의 나이 27살이 되던 해였다. 그러나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연주 여행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하였을 때는 마을의 작은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신앙을 나누며, 조촐한 연주를 이어갔다.

The Last Concert 이미지 ◙ Photo&Img©ucdigiN
프랑스 동부에는 브장생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지금도 매년 9 월마다 이곳에서는 브장생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고 또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출생한 곳이기도 하다.) 1950년 9월 16일 이날은 페스티벌 기간에도 좀 특별한 날이었다.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의 연주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디누 리파티의 생애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백혈병이 너무 심하게 악화하여 의사도, 아내도 말렸지만, 그는 오직 청중과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콘서트를 강행했다.
그의 그날의 콘서트는 이미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예견하고 있었기에 연주홀의 분위기는 비장하고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내 마들렌에 의하면 연주회 당일 그는 의자에 앉을 힘마저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청중들과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르핀 주사를 맞고 아내의 부축을 받고 겨우 연주회장에 도착했다.
방사선 치료와 혈전증세의 악화로 다른 건강한 남자의 팔뚝보다 3 배 정도로 부어오른 팔 때문에 연주복을 입을 수가 없어서 특별히 제작된 연주복을 입고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연주장은 관객의 박수 소리로 뒤덮였다.
그가 피아노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내려놓았을 때 관객은 숨을 죽였고, 그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흐와 모차르트의 곡의 연주가 끝나고 그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쇼팽의 왈츠가 남아있었다. 21곡의 쇼팽의 왈츠 중 14곡을 뽑아서 13번째 순서인 왈츠 1번을 연주를 마쳤다. 이제 마지막 1곡만이 남아있었던 그 순간에 갑자기 그의 오른손이 이 건반에서 떨어지며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청중들은 그제야 리파티가 생명의 마지막 기운까지 쏟으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주하였음을 깨달았다. 큰 충격에 연주회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가끔 정적을 깨고 흐느끼는 소리만이 여기서 저기서 들릴 뿐이었다. 기진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 채 그는 가만히 앉아 있었고, 청중도, 그리고 녹음하는 녹음 기술자도 스위치를 내린 채 몸이 굳은 채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참 동안의 정적을 깨고 리파티의 오른손이 건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왼손을 올려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피아노 건반을 다시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미쳐 끝나지 않은 쇼팽의 왈츠곡 2번이 아니라, 바흐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바흐의 칸타타 147번의 코랄(찬송곡)의 6번과 10번에 나오는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그가 언제나 콘서트의 마지막 앵콜곡으로 연주했던 곡을 연주한 것이다. 1950년 9월 16일, 프랑스의 작은도시 브쟝생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는 그날 저녁의 콘서트가 끝나기도 전에 병원으로 실려가 3 개월 후에 그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 했던 천국으로 이사했다. 그의 나이 33살, 백혈병이었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마지막 돌아갈 곳은 예수님의 품이고 우리의 마지막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신앙의 고백을, 그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다시 한번 고백하고 이 세상에서의 33세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예수는 내 기쁨의 원천이며, 내 마음의 본질이며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근심에서(나를) 보호하시며 내 생명에는 힘의 근원이 되며 내 눈에는 태양이며 기쁨이 되시고 나의 영혼에는 기쁨이며 보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과 눈에서 예수님을 멀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동영상= Dinu Lip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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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기칠 목사/ 본지 클레식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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