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인생이 남긴 영원한 미완의 곡

F. 슈베르트의 <즉흥곡>- 오스트리아의 빈이라면 누구나 음악의 도시라는 말을 떠올린다. 빈은 지금도 세계음악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음악가가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그들의 흔적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클래식산책] 자유로운 인생이 남긴 영원한 미완의 곡 »  글 조기칠 목사 » 빈의 유명한 음악가라면, 하이든, 모차르트, 살리에리,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등….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이 모두 빈을 중심으로 위대한 음악을 펼쳤던 사람들이다.

빈은 말 그대로 음악의 성지라고 불러서 전혀 손색이 없는 도시인 것이다. 그러나 빈에서 출생해서 빈에서 활동하다가 빈에서 그의 생애를 마친 작곡가는 프란츠 슈베르트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슈베르트는 빈에서 태어나서 빈에서 활동하다가 31세의 아주 짧은 생애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같은 빈에서 활동하던 베토벤을 연모하리만큼 좋아했고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고,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그의 관 모퉁이를 조금 붙든 것 외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꿈을 유언에서,”내가 죽으면 베토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대로 그의 무덤은 빈 공동묘지의 베토벤의 무덤 곁에 나란히 묻혀있다.

슈베르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도, 재산도, 아내도 없었고 심지어는 자기 피아노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몹시 가난한 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과 성품이 후덕해서 그의 주위에는 친구들이 끊이질 않았고, 그의 친구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주위가 친구들의 팬클럽 같은 모임들을 통해서 그의 곡을 연주하곤 했다.

슈베르트가 첫 작품을 쓴 것은 겨우 13 살 되던 때였다. 15-16 세 때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31세 때 세상을 떠났으니까, 15 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알려진 것만 해도 1000 여곡의 그 많은 곡을 만들어냈다. 정말 대단한 생산량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서도 교향곡이나 미사곡, 오페라 등 대단히 큰 대곡들도 많다.

슈베르트 하면 우리는 ’가곡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에 가곡이 주로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피아노곡도 많이 작곡했다. 그는 피아노를 잘 다루었고, 그가 작곡한 수많은 가곡 역시 피아노의 반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단순히 가곡들을 피아노로 반주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서, 목소리와 함께 어울리는 2중주의 수준에 이를 정도이다. 그러니 그 가곡들도 일종의 피아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연주자와 비엔나 ◙ Photo&Img©ucdigiN

그는 규모가 작은 피아노의 소품 형식의 피아노 음악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피아노 소품곡들 중의 하나가 <즉흥곡>이다. 즉흥곡은 슈베르트의 음악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오페라 등, 대곡만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곡이나 소품들도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바로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두고 한 말일 수 있을 것이다.

슈베르트는 두 개의 즉흥곡 집을 작곡했다. 하나는 4개의 즉흥곡 D.899이며, 또 하나는 네 개의 즉흥곡 D.935이다. 두 곡 모두 1827년에 작곡된 것으로, 둘 다 네 개의 작은 소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 즉흥곡이라고 해서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감정에 따라서 만들어진 음악으로 생각할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물론 자유롭게 쓴 것은 분명하겠지만, 즉흥곡이란 음악 하나의 장르이다. 이 즉흥곡은 연주회에서 대중들의 음악적인 만족을 위해서 작곡한 것은 아니고, 이 곡을 쓰는 동안 자기 내면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 곡을 쓴, 상당히 주관적인 색채가 강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상업성을 가지고 발표를 위해서 쓴 곡이 아니긴 하지만,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피아노곡이다.

네 개의 즉흥곡 D.899의 제1곡은, Allegro Molto Moderato로써 변주곡형식인데, 아름다운 주제부를 그야말로 마음대로 자유롭게 변주해 나간다고 느끼게 한다. 제2곡은, Allegro로 시작하면서 셋잇단음표가 마치 물이 흐르듯이 한 음씩 흘러내리다가 다시 반음계씩 점점 올라간다. 제3곡은, Andante의 느린 곡으로써, 잊었던 내면의 노래가 들려오듯이 아주 평화롭게 전개된다. 이 세 번째 곡이 있음으로써 즉흥곡의 네 곡은 소나타가 아니면서도 소나타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완전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네 곡은 따로 따로 듣는 것보다는 한번에 다 듣는 것이 맛을 느낄 수 있다. 제 4 곡은, Allegretto 로 단정한 3 부형식이다.이 네곡의 클라이스맥스를 이 4 곡에서 완성시킨다. 이 네개의 즉흥곡은, 수줍고 단아하면서도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슈베르트의 인간적인 면모를 대변하는 명곡중의 명곡이다.

네 개의 즉흥곡 D.935 는 D.899 의 성공에 힘입어 바로 이어서 발표된 곡이다. 제 1 곡은, Allegro Moderato 로 자유로운 형식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음악학자들은 이것이 소나타형식의 변형된 곡이라고 말한다. 제 2 곡은 Allegretto 로 3 부형식이다. 그렇지만 실제의 느낌은 느린 악장에 가깝다. 제 3 곡은 Andante 로 변주곡 형식이다. 제 4 곡은 Allegro 스케르챤도다. 마지막에 coda 가 있으며 강렬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전체의 곡을 마감한다. 이 네개의 곡 혹은 D.899 와 D.935 의 여덟개의 곡들은 정말 아름답고 영롱하여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음악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미완성이다. 미쳐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몇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완성이지만, 그의 곡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상당히 모순적인(?) 곡이다.

2019 년 9 월,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을 역임했던 쟈크 시라크 대통령의 장례식이 파리 생 쉴피스 성당에서 행해졌다. 세계각지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유명인사들과 지도자들이 식이 시작되기전 서로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그때 무겁고 어색한 정적을 께고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성당의 구석구석의 돌틈을 뚫고 영롱한 피아노음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생을 마감하고 떠난 사람의 장례식에서 <즉흥곡>이라니…장례미사에서, 미사곡이나 오르간이 아닌 피아노의 울림이라니…그러나 노장 바렌보임은 다른 멧세지를 안겨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죽음의 순간, 절대자를 대면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것을 내려놓아야만함의 멧세지를 한음 한음의 터치로 조문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미완성인체로 이 세상을 떠나간 슈베르트의 인생고백임에 틀림없다.

*올려드린 영상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시라크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연주했던 슈베르트의 <즉흥곡>실황영상입니다.

동영상= 다니엘 바렌보임 실황

글: 조기칠 목사/ 본지 클레식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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