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의 주권자를 경외하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감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현 시대의 도전들을 신앙 안에서 극복해나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스피릿저널]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의 주권자를 경외하자 » 신명기 6장 11절~13절 » 

침례식은 언제나 내 목회의 중심에 있는 성례입니다. 물 위로 내려가 옛사람을 벗고, 물 위로 올라와 새 사람을 입는 그 순간은 단지 의례가 아니라 존재의 전환입니다. 나는 이 전환을 ‘영적 광복’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얽매이던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사람으로 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은 바로 이 새 출발의 도장을 찍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침례자들이 성경과 기도, 주일 성수와 봉사, 그리고 전도와 헌금의 삶을 서약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성화의 길이 결심만이 아니라 습관과 훈련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간구하는 공동기도로 예배를 열었듯, 우리의 새 삶은 성령의 평안과 능력에 붙들릴 때 비로소 안전합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나는 이 숫자가 과거의 기념을 넘어,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결단하게 하는 신학적 호출이라고 믿습니다. 민족의 고난사는 잊어버릴 때 가장 먼저 우리 안에서 곪습니다. 망각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 인식이 흐려질수록 전체주의의 유혹은 가까워지고, 이념의 소용돌이는 우리의 판단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일제의 압제와 전쟁의 참상을 넘어,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상징과 사건들을 더 넓고 치열하게 읽어야 합니다. 상징에 대한 피상적 이해는 현재에 대한 피상적 대응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기억—성찰—결단, 이 세 단어는 역사 앞에서 신자가 지녀야 할 윤리의 순서입니다. “뼈아픈 과거를 잊는 자는 그것을 반복한다”는 말은 신앙의 언어로 번역하면 회개의 요청이자 거룩한 경계입니다.

나는 전체주의, 특히 공산 전체주의의 거짓과 폭력을 분명히 거부합니다. 자유와 인권, 법치와 책임의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체제와 시도에 대해 교회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남북관계에 관해 무엇을 논의하든, 국가 정체성과 헌정 질서, 그리고 인간 존엄의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거부는 미움의 언어로 표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성경의 명령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을 겨냥한 적대가 아니라, 거짓과 폭력, 불의의 구조를 향한 영적 투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와 행동의 통합을 말합니다. 기도 없는 행동은 쉽게 분노로 흐르고, 행동 없는 기도는 현실 도피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을 때, 바다는 기도로만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순종의 발걸음이 물가를 밟을 때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시대의 순종도 그러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일하고, 법과 질서를 세우며, 약한 이웃을 보호하고, 공적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되 품위를 잃지 않는 것—그것이 신자의 시민적 용기입니다.

광복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처럼, 민족의 해방도 우연이라 부를 수 없는 섭리의 궤도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깨어 있는 종들의 마음에 뜻을 비추시고, 공동체의 회개와 결단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십니다. 그러하기에 광복절을 지키는 우리의 태도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행사가 아니라, 주권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외하는 새로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은혜로 주어진 자유에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수탈과 박해의 수모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더 도덕적이고 성숙한 나라로 성장하려는 실천적 결단을 갱신해야 합니다. 넷째, 무엇보다 하나님 경외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참된 자유는 제도나 물질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실 때, 인간은 비로소 사람답게 자유합니다.

오늘의 국면은 복잡합니다. 정치적 혼란과 불신,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논쟁, 산업 현장의 갈등과 경제의 불안까지, 사회 전반에 피로가 쌓여 있습니다. 나는 해법을 권력 기술에서 찾지 않습니다. 영적 각성과 도덕적 책임, 그리고 공동선에 대한 시민들의 합의가 출발점이라 믿습니다. 교회는 이 출발을 돕는 도덕적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더 촘촘히 돌보고, 공론장에서 진실을 사랑하며, 타자를 존중하는 언어로 말하는 법을 먼저 연습해야 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사람을 살립니다. 살리는 언어, 살리는 제도, 살리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공적 신앙의 길입니다.

나는 “예수한국, 자유통일”이라는 비전을 붙듭니다. 이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신학적 고백입니다. 복음의 가치 위에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 진리 안에서 하나 됨을 갈망하는 공동체를 세우자는 초대입니다. 이 길은 한두 사람의 열정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목회자와 장로, 평신도,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교회 전체가 깨어 기도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할 때 가능한 길입니다. 침례의 물가에서 시작된 작은 광복이 가정과 일터, 도시와 국가를 향한 큰 광복으로 번져가길 소망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가 일상의 호흡이 되며, 정의와 자비가 습관이 될 때, 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묻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권자를 경외하고 있는가.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행동하고 있는가. 이 세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교회와 시민이 많아질 때, 광복 80년의 기념은 단지 숫자의 축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성숙의 이정표로 기록될 것입니다. 침례의 물이 마른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빛의 자녀’로 일어나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사명을 다시 붙듭시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YDEsYlJrEKE&list=TLGG72t9hPT_TX4xMjA4MjAyNQ

핵심 키워드:
침례, 성령의임재, 광복절, 공적신앙, 역사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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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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