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을 통해 주시는 은혜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과 피의 능력**을 통해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되고, 힘과 용기를 얻어 **'나는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피의 공동체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성도는 이 은혜에 감격하며 순수성을 지키고,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피릿저널] 성찬을 통해 주시는 은혜 » 요한복음 6:47~58 » 

오늘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에서 58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52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류의 성경이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소장하고 계신 거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거나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빨간색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성경은 성령께서 감동을 받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지만, 특별히 빨간 글씨로 된 말씀은 더욱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47절부터 58절까지의 말씀은 52절에서 유대인들이 논쟁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으나, 모든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성찬에 대한 말씀은 대단히 의미가 깊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는 육적인 이성적인 것, 합리적인 것 외에도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육적인 이성적인 마음이 지식의 최고치를 이야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합리적인 자세와 지식, 철학적인 요소를 가지고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바로 **영적인 세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풀어가면서, 성찬의 깊은 의미와 뜻, 은혜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친히 자기를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과 ‘떡’이라는 단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듯 보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동적인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예수님은 살아 있는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떡은 우리가 먹는 것인데, 이 떡을 먹으면 **영생(永生)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 떡을 먹지 않으면 영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51절).

여기서 **살은 참된 양식**이고,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55절). 우리는 성찬식에서 한 조각의 떡과 한 잔의 잔을 받습니다. 이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고, 잔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56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 15장 7절**의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이를 상징하는 떡과 잔은 포도즙과 빵입니다. 저희 교회 성찬 떡은 아무것도 섞지 않고 정성을 다해 곱게 빻아 쪄서, 입안에서 쉽게 풀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씹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져, 입안에서 풀어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입니다. 포도즙 역시 설탕과 포도만 넣고 알코올 성분 없이 열처리하여 준비합니다.

**57절**에서 예수님은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의 떡과 피에 관한 교훈이 주어졌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과 논란이 벌어집니다. 52절만 검은 글씨로 되어 있는데,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헬레니즘(철학적 지식)**의 최고의 학문을 자랑했지만, **히브라이즘(영적 세계)**의 원리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영적 세계에 눈을 뜨는 신앙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함께했던 제자들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60절**에서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이해가 되지 않고 믿지 못하면서 성찬을 받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죄를 회개하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와 영적 진리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유대인들이 다투었던 것처럼, 육적인 감각으로 이해하려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한 선교지에서는 목사님이 성찬을 하면서 “이 떡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이 잔은 예수님의 피입니다”라고 설교했을 때, 신문 보도에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교회”**라고 보도되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성찬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만 의지하면 영적이고 신령한 일에 대한 분별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인 것에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소리**입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이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영적인 소리를 듣지 못하면 10년, 100년을 예수 믿고 장로, 목사가 되어도 육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모르면 이성적, 철학적, 분석적 설교는 사람의 마음을 달콤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생명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때 각 사람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심을 보았고, 각 사람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평택순복음교회는 세상 학문과 지식도 겸하되,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고 영의 소리를 듣고 영의 능력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성과 합리성의 한계를 넘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논쟁한 것처럼, 모든 것을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인 사고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인간 불행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17세기,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인 사고를 성행시켜 놀라운 물질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 합리적 사고체계의 가장 큰 피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선진국과 복지 사회라는 이름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교회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신령한 일은 인간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인 사고 체계로는 도저히 이해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은 주일 성가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다가 버스에서 내릴 때 사고를 당해 뇌를 다쳤습니다. 긴급 수술 중이었는데, 저는 중환자실 옆 계단에 앉아 기도할 때, 수술 중인 집사님의 **뇌가 새까매지는 것(죽음을 상징)**을 영적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이 새까만 뇌를 제 가슴에 안고 15분 동안 영적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자 새까맣게 덮고 있던 것이 싹 사라지고 아주 깨끗한 뇌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는 수술 후에 나와 “준비하십시오. 죽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의사는 포기했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십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결국 집사님은 정상으로 회복되어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세계**입니다.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사고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과 쾌락을 위한 장치는 마련될 수 있지만, **행복은 꿈의 이상일 뿐 귀중한 영혼들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불행이 나타날까요? 그것은 바로 굳을 대로 굳어버린 인간의 이성, 합리적 세계로는 신령한 세계, 영적인 세계를 신앙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것들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44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듣고 믿으려고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굳어진 이성주의, 합리적인 사고로 신령한 하나님의 일을 보고 느끼려고 하는 것은 지독하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의 **한계**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신령한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성경이 믿어지고 말씀이 믿어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내라

인간의 지혜를 절대화하면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6절**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생각, 그리스도의 신성**을 우리가 가졌을 때 깨달아지고 믿어지고 아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가야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보혜사 성령 그가 오셔야 우리를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성적, 합리적 사고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고를 가질 때 영적인 세계를 인지하고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세상 마음을 다 벗어버리고 예수님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이럴 때 성만찬이 성도의 **참된 생명의 양식이자 음료**가 됩니다. **54절과 5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만이 참된 양식이요 음료이심을 거듭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는 자는 살고, 마시는 자는 참된 음료가 되어 세상의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직접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성만찬에 관한 말씀**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의 떡과 잔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주님의 대속이 나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갈 힘과 능력도 예수님과 함께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떡이 예수님의 살인 줄 믿고, 이 잔이 예수님의 피인 줄 믿고 먹고 마실 때 우리는 힘을 공급받고 갈증을 해소하며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56절**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피의 공동체, 교회의 회복

이 힘으로 죄인을 변화시켜 의인이 되게 하고, 추악함을 발견하지 못하던 죄인의 눈을 밝혀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합니다. 더 이상 살아갈 용기도 없던 사람들이 성만찬의 떡과 잔을 대함으로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때 춤을 추며 환희에 젖어들어 갑니다. 이는 성만찬에 담긴 **예수님의 살과 피의 능력**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깨뜨려 희생을 지불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떡과 잔을 사모합니까? 감사하고 감격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음식을 사 먹기 위해서는 백 리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면서, 이 성만찬의 자리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까? 습관적이거나 의식으로 끝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만찬의 떡과 잔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나 침례를 받은 교인들에게만 주는 이유는 **그 가치를 아는 자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와 소중함을 충분히 숙지하시고 귀히 여기며 사모하여, 영원한 생명과 이 땅에서의 힘을 공급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해 주님과 하나 되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만 생명이 있고, 예수님만이 길이요 부활이 되십니다. 성찬을 받는 사람들의 속에는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56절). **살과 피가 튀기는 살벌한 상황이 되면 사람이 달라지듯이, 피를 본 사람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리아 난민 꼬마의 익사체가 전 세계 80억 인류의 가슴을 안타깝게 했던 것처럼, 하물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눈이 뒤집히는 영적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행하여 기념하라고 하신 것은, **죽음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그 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찢긴 몸과 살을 직접 느끼고, **’나는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로 살라’**는 주님의 간곡한 당부가 성찬에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며, **”나는 매일 매일 죽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 합리적인 사고, 이성적인 생각들이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온몸에 흠뻑 뒤집어쓰고 그에게 미쳐 한 평생 살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를 고상하고 우아하며 세련미가 넘치는 종교로 만들지 마십시오. 교회는 세련된 사람들이 모여 사교를 나누는 사교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를 나누어 마신 **피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의식하고 사랑하게 될 때, 예수님께서 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신앙은 더욱 뜨거워지고, 살아나고,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각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 사랑을 갚으며 사는가**가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받은 그 사랑에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내면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되고, 썩어가는 세상이 하나님의 생명의 삶으로 바뀔 줄로 믿습니다. 내 신앙의 연조가 오래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직분이 높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 이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사람은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형제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나눌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교회는 행복한 교회이고, 이런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속히 저 휴전선이 무너지고 남북한 8천만이 모여서 이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깊이 자신을 돌아보시고, 성찬에 임하는 복된 시간, 거룩한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동영상 말씀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qSzwgikVn1Q

핵심 키워드:
생명의 떡, 성찬의 은혜, 그리스도의 마음, 영적 분별, 피의 공동체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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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헌식 목사/ 본지 목회저널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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