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도 금식이 주는 축복

2025년을 시작하는 벽두부터 많은 일들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아들 사무엘이 필리핀과 보스톤. 재정 문제를 위해 자신이 먼저 금식하겠다고 했습니다. 3일을 금식하는 15세의 아들 사무엘의 얼굴을 보니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성숙하게 되는 것만이 아님을 사무엘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션필드] 고난 속에서도 금식이 주는 축복 » 김종필 선교사 »

요셉, 사무엘, 다윗, 다니엘은 어릴 적부터 심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올곧은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삶을 살고 있었음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금식 중에 사무엘에게 저의 어릴 적 애기를 해 주었습니다. 3일, 5일, 7일, 21일 금식 등 수많은 금식을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때에 했는데, 가장 힘든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방학 중에 하는 금식은 그나마 낫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하는 금식은 시간이 갈수록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체육시간이 그러했습니다.

때론 그러했을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금식의 날들을 회상해 보니, 어릴 때부터, 목회 초년병 시절, 필리핀 사역, 심지어 영국에서 공부하면서도, 그리고 보스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금식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40일 금식 네 번, 21일 금식 70여차례, 그 외의 금식은 셀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금식이 많았을까요? 돌이켜 보면 왜에 대한 답변보다, 금식의 유익이 너무 컸습니다. 하늘문을 여는 기적을 체험했으며, 저의 자아가 깨어지고 속사람이 강건해졌으며, 육신의 소욕을 벗어나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 갈 수 있었으며, 오로지 말씀만을 읽고 묵상함으로 성경말씀에 깊게 착념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어릴 때는 가정의 구원과 민족 복음화와 남북 통일 그리고 세계 선교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한국에서 목회할 때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저 자신의 자아를 깨트리고 하나님 앞에 굴복되기 위해 금식하였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금식 밖에는 다른 길이 없어서 금식을 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교회 바닥에서 금식 할 때에, 쥐들이 다니고, 전기와 수도도 없고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자동차 배터리를 연결해서 등불을 키면, 날파리와 풀벌레가 입으로, 귀로 그리고 눈 속으로 수도 없이 들어 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수많은 금식 가운데 금식이 힘든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과 바퀴벌레, 도마뱀, 쥐와 뱀들이 수도 없이 들어오는 환경이 더 힘들었습니다. 한 번씩 금식을 하고 나면 보호식을 불과 며칠도 하지 않았는데 또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전도집회, 세미나, 목회자 훈련 등을 하기 전에는 어김없이 금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집회들이 끝나고 나면 저는 또 다시 금식을 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의 금식으로 점철된 필리핀 사역을 하고 영국으로 건너 갔습니다. 당시에 만나 뵌 적도 없는 LA의 모 장로님께서 저의 학비를 후원해 주셨지만, 월세와 생활비 그리고 교통비 등은 스스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공부하던 도시에는 유서 깊은 Cadbury 초콜릿 공장이 있었습니다. 이 공장 임금이 지금의 한국 공시 시급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유학생은 법적으로 주당 20시간을 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을 한다 해도, 한달 내내 일한다 해도 월세는 커녕 생활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금식 먼저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의 금식은 하늘 문을 여는 놀라운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전의 바닥과 내부공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왔기에 필리핀에 있는 아내도 21일 금식을 하던 시기입니다. 필리핀이나, 영국이나 다 비상사태였습니다. 저의 딸은 처음에는 베이비 시터로 일을 하더니, 영어 번역, 피아노 레슨, 타이프라이팅등 일을 하면서 때론 새벽 두시까지 일을 하곤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던 딸이 지금의 사무엘과 비슷한 나이에 그토록 힘든 일들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젊었을 때에는 학문에 온 몸을 던지고자 했으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제 40이 넘은 나이에 이 학문이 무슨 소용이며, 박사학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주님 필리핀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아내가 21일 금식을 하며, 하혈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의 딸이 너무나 고생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영국에서의 박사학위는 사치일 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이러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네 아내에게는 네 아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고, 네 딸에게는 네 딸이 짊어 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 그 십지가는 그 누구도 대신할 없다. 영국에서의 너의 삶은 네가 지어야 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 주님 그렇다면 제가 지어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유럽의 기독교가 무너진 원인과 전체적 상황을 너는 연구해야 한다.
영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부흥을 연구하라!
기독교를 대체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을 연구하라!
영국 전역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여 그 교회들의 현재의 모습과 기독교 쇠퇴의 원인을 파악하라!
Judaism을 뿌리 깊은 곳까지 연구하라!
유대인 회당을 방문하여 유대교의 전체를 파악하라 (저는 실제로 Ultra-Hasidim, Ultra-orthodox, orthodox, moderate, progressive, liberal and secular 회당을 방문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다시 공부하라! 너에게 세계 최고의 교수를 붙이리라!
너는 공장을 다니며 그 돈을 벌어서 공부하려 하지 말고 오직 무릎으로 나아가라!
그리하면 너의 필요를 채우리라!”
놀랍게도 저는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딸은 두 개, 세 개, 네 개의 잡을 뛰었고, 당장 필리핀 성전의 마무리 공사 대금이 필요한 때에 역설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학문에만 정진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지만 박사 학위에 있는 사람은 버밍엄 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 내에 어떤 과목이든 합법적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영국 교회사, 이슬람 역사, 코란 형성(Quranic Formation), 기독교 이슬람 비교 연구, 히브리어 원어 연구, 헬라어 신약 성경 원어 연구, 유대교(특히 할라킥 유대교), 포스트 모더니즘, 부흥운동사 등 일주일 내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수업이 끝나고 다른 강의실로 가려면 쉬는 시간이 없어서 뛰어야 했습니다. 점심을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고, 히브리어, 헬라어, 코란 연구 등은 새벽 두 세시까지 복습하고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매일 하루에 두시간 반을 자면서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습니다.

필리핀의 긴박한 상황, 여러 일을 하면서 학교 다니는 딸을 보면서 빨리 박사과정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돌아가서 사역에 임함으로 아내에게 짐을 덜어 주고 저의 딸에게 그 고생을 마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2년 3개월 만에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논문 심사 결정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주님께서 저의 아내에게, 그리고 저에게 명령을 주셨습니다. “너의 필리핀 사역은 끝났노라! 이제 미국 보스톤으로 가서 지구상 최대의 부흥이 일어날 터인데 그곳에서 나의 부흥을 이루라!” 이해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상황에서 저는 또 다시 금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시는 응답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저는 졸업을 앞두고 2004년 2월에 보스톤에 왔습니다. 당시를 돌이켜 보니 2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의 딸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와, 고등학교를 한 학년 낮추어서 SAT를 준비하고, Northeastern University에 입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학비를 준비하지 못해 딸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루에 두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필리핀에 가서 한국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자신이 약속한 기도의 제목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보스톤으로 돌아 온 딸은 보스톤 최대의 회사에서 Writing specialist로 일을 하다가 불현듯 공부하겠고 했습니다. 그리고 Harvard Univ. Columbia University, MGH Institute에서 공부했습니다. MGH Institute에서 2,500명의 졸업생 가운데 최고의 상을 받아 보스톤 신문에서 기사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영국 Cambridge University에서 의학박사(PhD in Medical Science)로 입학하여 빌 게이츠가 이끄는 Bill and Melinda Foundation의 장학금을 받고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2025년 3월 1일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저는 보스톤에 와서 사역을 하다가 2004년 5월인가 6월에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는데 그 이후 21년이 지나 딸이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제가 만약 그 몇 푼 안되는 돈을 위해 공장에서 주 20시간을 일했다면 유대교와 이슬람과 부흥운동과 유럽 기독교 쇠퇴를 연구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은 그 시기와 그 상황에 맞는 일을 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이나 이성을 초월한 일들을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순종의 결과는 늘 기적같은 역사였습니다!

보스톤에서의 일들은 꿈만 같습니다. Emmanuel Gospel Center에서 보스톤 부흥을 위한 사역을 한 것이 미국과 전세계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의 보스톤 캠퍼스인 CUME에 세계 기독교, 부흥운동, 후기 종교 개혁 교회사 등 수많은 과목들을 가르쳤습니다. 영어로 된 책도 출간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필리핀에 대학을 설립하고, 세계 선교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었습니다.

영국으로 건너가 하루에서 여러 개의 일을 하던 딸이 학교에서는 인종 차별과 구타를 당했던 일들을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충격이 큰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딸을 강하게 하시고 모든 일을 선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아빠가 공부하던 곳에서 다시금 공부하고 싶다던 딸이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중 뜻밖에 손자 소식을 전해 주고 저의 삶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이라 할 수 있는 손자를 제 품에 안게 해 주었습니다.

10년 전, 20 년 전, 30 년 전, 40 년 전, 그 시기마다 뿌리고 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심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에 돌아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딸은 그토록 고생을 했지만 돌이켜 보면 역시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고 보상해 주셨음을 봅니다.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저의 집에서 Boston United Worship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 설교로 인해 쌓인 눈 위에 비가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 하는 바램에 모두 얼음이 되었습니다. 얼음을 깨트려 눈을 치우는 일은 몇배나 힘들었습니다. 저의 아들 사무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려와 거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지만 요셉과 같은 다니엘과 같은 지도자를 키우는 일은 학교에서 또는 어떤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되지 않음을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 성정이 깨끗하고 거룩함입니다. 저의 아들이지만 사무엘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함이 가득함을 봅니다. 마치 20여년 전 저의 딸의 모습처럼 이렇게 다시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오늘이 3일째 금식입니다. 금식을 할 때마다 예전에 주셨던 은혜들이 새록 새록 생각납니다. 필리핀에 전기가 끊기고, 보스톤도 재정적자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이지만 다음주에는 딸의 졸업식을 위해 잠시 다녀와야 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로마서 2:6-7)

보스톤에서 김종필 선교사 올립니다.

필자 Dr. Elijah Kim(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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