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사람(儿)인 대제사장 위에 불(火)이 있는 모습으로, 장차 메시아가 이 어두운 땅에 세상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을 보여주고 있는 글자.
[갑골문자해설] 빛 광-光 » 송태정 박사 » 이 죄악의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메시아에 대한 글자이다.
빛을 발하다는 광(灮)자의 최초의 글자인 갑골문은 무릎 꿇은 사람(儿)의 머리 위에 불(火)이 있는 모양을 본 뜬 글자인데, 여기 사람 인(儿)자는 갑골문에서는 무릎 꿇은 사람인 절(卩)자이다. 위의 글자를 보면 무릎 꿇은 사람 위에 타고 있는 세 개의 불이 보이는데, 그것이 세 개의 획으로 생략되어 위의 소(小)자의 모양이 되었고, 아래의 둥근 획은 가로획(一)으로 변형되었고, 무릎 꿇은 절(卩)자는 인(儿)자로 변형되어 지금의 광(光)자 되었다.
갑골학자들은 사람(儿)의 머리 위에서 불(火)이 타오를 수는 없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둠을 비추는 빛 광(光)이라는 뜻이 나오게 된 것일까? 나무를 태우는 불의 의미를 가진 불사를 분(焚), 사람을 불에 태워 희생한다는 붉을 적(赤), 곡식을 삶아 드리는 불 땔 찬(㸑)자는 모두 불(火)이 아래에서 타고 있는 모양인데, 대부분 밝은 대낮에 행해졌던 것들이다. 그런데 빛 광(光)자는 불이 무릎 꿇은 사람의 위에 있는 모양으로 이것은 어둠이라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글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일까?
빛을 비추는 광(光)자는 어두운 가운데 비추는 빛(光)을 의미한다. 후한(後漢) 허신(100년)의 《설문해자》에 “광(光)은 밝음이다(明). 화(火)가 사람(人) 위에 있는 모양이다. 합하여 ‘밝은 빛’의 뜻을 표시하였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밝은 빛’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무릎 꿇은 사람(儿)이 빛으로 올 것이며, 이 분이 바로 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B.C 700년 경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죄악의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이 큰 빛(光)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 9:2절). 결국 이 분은 이 어두운 죄악의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함으로 세상의 빛이 되고, 생명의 빛이 되어 주실 것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광(光)자는 등불을 의미한다. 서호(徐灝)는 “빛 광(光)은 사람(人)이 등불(火)을 잡고 있는 모양이며, 본뜻은 등불(火)로 사물을 환희 비추다”라고 하였고, 진위담(陳煒湛)은 “광(光)자는 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 불씨를 전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백천정(白川靜)은 이에 대하여 “광(光)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상징적으로 불빛을 표시하여 불씨를 관장하는 사람을 표시한다. 불은 고대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신성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성직(聖職:거룩한 직분)으로써 관장하는 사람이었다.”라고 하였다. 이 신성한 불(火)을 간직하고 유지하는 것은 대제사장이 수행해야 할 가장 큰 사명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면 등불을 잡고 그 등불로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는 사람, 불씨를 가지고 불씨를 전해 주는 대제사장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것은 뱀인 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주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창 3:15절)이 모든 고대문명의 전승 속에 전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도 결국 그의 자손인 메시아를 통한 등불이었다(왕하 8:19절). 예수님도 자신은 이 땅에 불(火)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하셨는데, 이 불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눅 12:29절).
구약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막은 대낮에도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장소였다. 여기에 일곱 개의 관을 가진 금등대가 있었고, 여기에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 등불(火)을 보살피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출 27:20-21). 결국 이 영원한 등불은 해나 달의 빛이 쓸데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비추는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계 21:23절).
더 나아가 광(光)는 별을 상징하고 있다. 상정광(常正光)은 광(灮)자에 쓰인 불 화(火)자를 연구하였는데 “화(火)는 대화성(大火星)이며, 춘추시대 혜성(彗星)은 대화성 주위의 별들이 공중에 출현하는 현상들과 관계로 별의 현상들을 통해 십분 주의하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실 징조를 나타내실 것이라고 하셨는데(창 1:14절), 이 별(火)은 결국 메시아의 탄생에 있어서 동방박사를 인도했던 별을 상징하기도 한다(마 2:7절). 또한 출애굽 당시에 발람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와서 원수를 멸하신다고 하시는데(민 24:17절), 이 예수님은 광명한 새벽 별이기도 하신다(계 22:16절).
《삼국사기》 박혁거세 본기 54년 ‘봄 2월 기유일에 혜성(彗星)이 하고(河鼓: 견우성)에 나타났다.’라고 하였는데, 신라의 기원을 B.C 57년으로 잡으니까 박혁거세54년은 B.C 4년으로 예수님의 탄생 연도와 같다. 그리고 이 견우성(牽牛星)의 견우(牽牛)는 ‘소를 치는 목동’이란 뜻으로 목자인 예수님을 상징하고, 혜성은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옛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예수님의 탄새은 결국 죄를 사하여 없애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새롭게 하는 사역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광(光)자는 햇빛을 상징하고 있다. 양수달(楊樹達)은 “불이 사람 위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광(光)자에서 화(火)는 태양을 말함이다.”라고 하였고, 정산(丁山)은 ‘하늘 위에 있는 불의 신’이라고 했다. 세계 모든 고대 문명에서는 해와 달과 별들을 다 신으로 여겨서 섬겼다.
성경은 이것을 우상이라고 하며, 우리도 오직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경은 메시아의 사역을 두고 가장 밝은 햇빛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게 되는데 그들이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죄 용서함의 은혜로 기뻐 뛸 것이라고 하신다(말 4:2절).
그렇다면 창세기 1장에서 첫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여 있게 된 빛은 어떤 빛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光)을 우리 마음에 비추신 빛을 의미하는 것이다(고후 4:6절).
태초의 빛은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메시아가 우리의 생명의 빛(光)이 되심은 그분이 죽기까지 복종(儿)하심으로 우리에게 빛(火)이 되어 주셨다. 우리도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이 땅에 복음의 빛(光)을 발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겠다.
필자소개: 송태정 박사/ 갑골문 해석연구 교육학 박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성경적 갑골문자해석연구소 대표, 순복음해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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