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위에 세운 교회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매 주일마다 드리는 예물을 어떤 자세와 원리를 가지고 드려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예물은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되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는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교훈하셨 듯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시면서...

[목양저널] 감사 위에 세운 교회 » Eine Kirche, die auf Dankbarkeit gebaut ist » 고후9:5-15 / 주일설교 새벽묵상 새벽묵상  »

고려 충렬왕 때 ‘정삼품’ 벼슬을 받은 누런 개가 있었다고 한다. 사연인즉은 개성 진고개라는 마을에 눈먼 어린아이 하나를 두고 부모가 갑자기 죽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 눈먼 아이가 동냥을 하러 나갈 때마다 황구는 자신의 꼬리를 잡혀주어 길잡이를 해주었다.

이 소문이 흘러 충렬왕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왕은 그 기특한 개에게 벼슬을 내리고 그 개와 눈먼 아이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재물과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사람도 먹을 게 없어 굶기가 다반사였던 가난한 집에서 주인이 그 개에게 먹을 걸 주었다면 얼마나 주었겠는가? 그런데도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고 자리를 지키다가 주인이 죽자 눈먼 아들에게 다시 보답하는 개의 모습에서 우리는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배우게 된다.

감사란 짐승도 사람 되게 만들 수 있지만, 배은망덕이란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자로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 여리고를 지나시던 예수님을 뵙기 위해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뽕나무에 올라 간 적이 있다. 얼마나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면 나이든 삭개오가 점잖지 못하게 나무에 올랐겠는가? 그때 주님은 삭개오에게 한 마디 하셨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감격하여 급히 내려와 주님을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 지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회개한다. 회개란 슬프게 하는 법인데 삭개오는 기쁘게 했다. 자기 같이 비난받고 버림받고 소외된 왕따에게 주님이 찾아오실 뿐 아니라 하룻밤 유하시겠다는 말씀에 너무나 감격해서 드린 감사의 회개다.

하물며 하루가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살아주시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가 너무나 인색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 새로운 교회시대를 열게 한 성령강림은 오순절 날 이루어졌다. 오순절은 원래가 율법을 받은 것을 감사해서 드린 감사절이기도 하다. 유월절로부터 오십일이 되는 날이 오순절인데 칠칠절, 초실절, 초막절이라고 한다. 모두가 감사와 관계가 있는 날이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초대교회는 감사 위에 세워진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단이었다면 신약의 예배는 이미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해서 우리의 최상과 최선을 드리는 감사절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매 주일마다 드리는 예물을 어떤 자세와 원리를 가지고 드려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예물은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되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는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교훈하셨 듯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시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셨는데 곧 하늘 은행에 저축하라는 말씀이다.

은행에 많이 저축한 사람이 나중에 많이 찾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다.

▮ 고린도 교회는 극한 가난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오히려 예물은 더욱 많았다. 좋은 신앙은 환경이 좋을 때가 아니라 드림이 좋을 때이며, 많은 예물을 드리는 것은 재물의 부요가 아니라 신앙의 부요에 있음을 증명한 교회였다.

고린도 교회가 많은 것을 드려 소아시아의 모든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그들이 가난 중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넘치게 드린 것을, 하나님은 사랑하셨고 사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울은 애절하게 말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 재물이란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드려서 부요케 되는 것이다. 돈은 벌어서 내 것이 아니라 써야 내 것이다. 써도 어디에 쓰느냐가 문제인데, 자기와 세상을 위해 쓴 것이 소모라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은 영적 저축이다.

모든 재물은 주님으로부터 왔다. 나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계산해야 할 청지기일 뿐이다. 사람의 출생과 장례식에서 우리는 인간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숱하게 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떡을 만들어 자녀에게 준 어머니가, 아, 하고 “한 입 달라”고 할 때, 그 의도를 알던모르던 웃으며 한 입 드리는 자녀가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자녀인 것이다. 진리와 사랑은 멀리 있지 않다.

필자 한은선 목사/ 베를린선교교회 담임목사 / 코스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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