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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아테네처럼 여러 번에 걸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번에 하려고 한다. 당연히 아주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루하지 않기를 바라며…
[미션저널] 신화와 역사의 고향 델피 » 김수길 선교사 » 그리스 이야기(30회) » “어느 곳이 하늘이고 어느 곳이 물인가? 00사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 모 음료 회사의 광고이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사이다의 청량함을 광고하기 위한 것인데, 필자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성공한 광고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어느 것이 역사이고 어느 것이 신화인가?
‘역사와 신화’는 혼돈하기 쉬운 주제이고 까딱 잘못했다가는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는 것은 ‘역사적 기록이 있고 없고’ 차이이다. 힐카르나소스 출신의 헤로도토스(Ηρόδοτος ο Αλικαρνασσεύς 기원전 48– 425년경)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그의 ‘역사’(Ἱστορίαι)라는 저서 때문이다. ‘역사’(Ἱστορίαι)의 본뜻은 ‘조사하다, 조사해서 읽다’라는 것으로 상상(想像)속 생각이 아닌 직접 조사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쓴 기록이라는 것이다.

신화 속의 델피
그리스 지역의 대부분이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기 힘든 곳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델피(Δελφοί)는 신화와 역사를 믹스한 도시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스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면 수학여행 등으로 한두 번은 필수적으로 다녀왔을 장소이다.
테살로니키에서 델피로 가는 길은 아테네에서 가는 길보다 험하고 힘들었다. 쎄르모필라이(Θερμοπύλες)에서 암피사(Άμφισα)경유하여 가는 길은 운전하는 나 역시 멀미가 느껴질 정도의 굽이굽이 길을, 돌고 돌아 올라가야 한다.
마치 아폴론이 죽인 이곳의 본래의 주인인 왕뱀 삐톤의 신화가 생각날 정도이다. 뱀 같이 구불한 길을 오르고 오르다보면 파르나소스(Παρνασσό ς) 산 중턱 절벽에 매달린 듯이 자리 잡은 델피가 나온다. 큰 길을 가운데 두고 길게 박물관과 호텔 그리고 식당을 비롯한 상가들이 즐비하게 도열하고 있다. 이 길은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한 아라호바 지역의 시계탑(Ρολόι Αράχωβας)까지 이어져있다.
신화 속의 델피 그리고 아폴론
다음은 델피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이다. 신들의 왕 제우스(θεος)가 지구의 중심이 어느 곳인지를 알기 위해 동쪽과 서쪽 끝에서 그의 상징인 독수리들을 날려 보낸다. 두 마리 독수리가 만난 곳이 바로 이 “델피”라는 것이다. 그는 이곳이 지구의 중심이라고 선언하고 바위 하나를 세운다. 대지의 배꼽이라는 뜻의 옴팔로스(Ομφαλος) 이다.
그러나 신화의 속성상 하나의 사건이 여러 이야기로 생성되는데 이 옴팔로스는 제우스 탄생 신화 속에는 다르게 등장한다. 아버지 우라노스(Ουρανός)를 거세하고 왕위를 차지한 크로노스(χρονος)는 아들에 의해 쫓겨난다는 신탁을 받고,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뱃속에 삼켜버렸다.
자식을 잃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던 아내 레아(Ρέα)는 한 명이라도 구하고자 여섯 번째 아이를 출산할 때 아이대신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넸다. 그 돌덩이의 이름이 바로 옴팔로스라고 한다.
다시 이야기는 델피의 신화 속으로 돌아가면, 아폴론은 제우스와 리토(Lito)사이에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Άρτεμις)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제우스의 부인인 이라(Ήρα)의 사주를 받아서 어머니 리토를 괴롭히는 피톤(Πυθών)을 아폴론이 제거하는 신화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신탁소가 있는 델피에 아폴론(Απόλλωνας)이 신탁소를 지으려고 하자, 거대한 뱀인 가이아의 아들 피톤이 이를 저지한다. 아폴론이 화살로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탁소를 세웠다고 한다. 신화의 아이러니는 활로 거대한 피톤을 죽인 아폴론이지만 아폴론 역시 활로 어려움을 겪는다. 피톤을 죽인 아폴론은 자신의 활솜씨에 한껏 들떴을 것이다.
올림퍼스 신족(神族)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미의 신 아프로디테(Αφροδίτη)의 아들 에로스(Έρως)의 활 때문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두 가지 화살을 갖고 있다. 날카로운 금 화살로서 신이든 인간이든 맞으면 사랑에 완전히 눈이 먼다. 또 다른 하나는 납 화살로 이 화살을 맞으면 사랑을 혐오하게 한다.
아폴론은 자신의 궁술을 자랑하면서 자기보다 작은 에로스가 활을 가졌다고 놀린다. 화가 난 에로스는 아폴론을 자신의 황금 화살로 쏴서 다프네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다프네에게는 납 화살을 쏴서 아폴론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다프네는 아폴론을 피해서 도망 다니다가 잡히기 직전 그의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이오스(Πηνειός)에게 부탁해 월계수로 변해 버린다.

아폴론과 디프네의 월계수 신화
아폴론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굳어버린 월계수를 끌어안는다. 아폴론은 다프네가 나무로 변한 뒤에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 월계수를 자신의 나무로 정한 뒤 월계관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아폴론은 월계수를 꺾어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오늘날 그리스어로도 월계수는 Δ άφνη(다프니)이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승자에게 월계관을 수여했다.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전통에는 이 같은 신화의 속성이 자릴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델피에는 그리스 어느 곳보다 월계수 나무인 다프니가 많이 있는 곳이다.
역사 속의 델피
고고학의 발달로 델피는 미케네(Μυκηναϊκή) 시대(기원전 14~11세기)부터 테살리아의 아카이아인(Αχαιοί της Θεσσαλίας)들이 델피지역에 정착하여 나름 조직화된 도시를 세웠다. 이곳에서 미케네 정착지와 묘지의 유적이 발견 됨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신화 속의 아폴론 숭배를 했다. 아폴로 숭배가 성행하던 8세기부터 델포이 성소는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력은 지중해 동부의 더 넓은 지역에 까지 퍼졌다. 델피에서 발견된 상당수의 공물은 시리아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온 것으로 성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한다.
삼발 의자에 앉아 에틸렌(αιθυλένιο) 가스를 흡입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여사제 피씨아(Πύθια)의 신탁(Μαντείο/ Oracle)의 능력으로 이곳이 범 그리스의 중심지이자 고대 그리스인의 성지로 발전했다. 피씨아는 50대 즈음 여자가 선출되어 맡았다고 한다.
초기에는 어린 소녀가 맡았는데 트라키아인 한 명이 그녀를 겁간하는 크나큰 불경을 저지른 이후, 당시에는 노년인 경수가 끊긴 여인이 예언자 일을 맡도록 하되 옛 기원을 존중해서 처녀의 복장을 입도록 했다는 전승이 있다. 이후 이 도시는 테살리아인들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더욱 발전하게 된다. 범 그리스인의 모임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기원전 7세기 중반부터는 이곳 델피가 중심이 되었다.
기원전 6세기 초에는 이웃 도시인 크리사(χρυσα)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1차 성전이라 불리며 크리사의 패망으로 끝났다. 전쟁의 승리는 종교적,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켰고 규모도 커진다. 전쟁이 끝난 후 4년마다 범 그리스인이 참여하는 제전인 피씨아(Πυθία)제전이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기원전 586년에 조직된 최초의 피씨아 제전에서 승자에게 크리사의 전리품을 금전적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다음 경기부터는 우승자에게 월계관만 주어 진다.
페르시아 전쟁 기간 동안 델피의 신탁은 그리스 도시들에 대해 몇 가지 불리한 신탁을 내놓았는데, 헤로도투스는 델피가 페르시아인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 어쩔 수 없을 것 이라고 했다. 아테네가 포키아 연맹(Φωκικός Σύ νδεσμος)에 델피 성소를 포함했을 때, 스파르타는 보복했고 2차 성전이 발발 했다. 아테네의 승리로 델피는 포키아에 반환된다.

델피(Δελφοί) 유적
기원전 356년 가까운 도시 씨바이(Θήβα)가 통제하면서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을 때 이 사건은 제3차 성전의 발발로 이어졌다. 이 전쟁 동안 델피의 모든 보물은 포키아 군대의 자금 조달을 위해 약탈당했다. 10년 후 델피는 필립 2세(Φίλιππος Β’)의 마케도니아에 지배권으로 들어간다.
기원전 339년 네 번째 성전이 발발한다. 델피는 남부 그리스지역의 새로운 강대국인 아이톨리아 연방(Αιτωλική Κοινοπολιτεία)의 지배를 받게 된다. 갈리아인의 그리 스 영토 침공으로 위험에 처할 때, 아이톨리아는 성공적으로 이 도시를 보호 한다. 이 기간의 대부분의 공물은 아이톨리아 연방의 도시에서 보내온 것들 이다.
그리스의 보물창고인 델피는 기원전 168년 로마의 지배를 받는다. 미트리 다테스(Μιθριδάτης)전쟁 동안에 로마 장군 실라(Σύλλα)는 델피의 봉헌물을 탈취해갔다. 기원전 83년, 트라키아(Θράκη)인들이 방어능력을 상실한 델피를 공격하여 사원에 불을 지르고 성소를 약탈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델피의 신탁은 이미 쇠퇴했다. 적은 무리의 방문객들의 관심의 초점은 종교적 필요성이 아니라 이곳의 인상적인 건축물을 보러 왔다. 그러다가 이곳을 두 번 방문한 것으로 보이는 하드리아누스(Αδριανός) 황제 치하에서 다시 부활하는 듯했지만 서기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Θεοδό σιος Ι)의 칙령에 의해 영구적으로 폐쇄된다. 델피의 신탁과 아폴론신의 신앙은 이교적으로 암암리에 지속된다. 7세기 초까지 델피는 건재했다고 한다.
12세기 동로마 역사가 게오르기오스 케드레노스(Γεώργιος Κεδρηνός)에 의하면, 4세기 중엽 반 그리스도교 정책을 시행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율리아누스(Ιουλιανός)가 362년에 개인 주치의 오리바시우스(Οριβάκιος)를 델피로 보내어 아폴론의 뜻을 물어보고자 했다. 오리바시우스가 찾아갔을 때 이미 델피는 많이 쇠락한 뒤였는데, 그가 삐씨아로 부터 받았던 신탁이 델피의 ‘마지막 신탁’이었다고 한다.
“다이달로스 궁전이 땅으로 추락하였다고 황제에게 전하라. 포이보스(아폴론의 별명)는 더 이상 자기 방도, 점술의 월계수도, 예언의 샘도 없노라. 재잘거리는 물 또한 이미 조용해졌느니라.” Είπατε τω βασιλεί χαμαί πέσε δαίδαλος αυλά. Ουκέτι Φοίβος έχει καλ ύβην, ου μάντιδα δάφνιν, ου παγάν λαλέουσαν, απέσβετο και λάλον ύδω ρ.
신화와 역사의 고향 델피(Δελφοί)는 1410년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수세기 동안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었지만, 고대 체육관의 폐허 위에 동정녀(Παναγία)수도원이 세워진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오늘의 카스트리(Καστρί)마을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안코나의 키리아쿠스 (Ciriaco de’ Pizzicolli 1391 – 1453) 가 1436년 이곳을 방문하여 기록한 그의 저서와 그림들이 나중 발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766년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이자 작가인 리처드 챈들러(Richard Chandler)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니콜라스 레벳(Nicholas Revett)과 화가인 윌리엄 파스(William Parse)와 함께 델피를 방문했다. 이들의 연구는 1769년에 “아이오니아의 고대 유물”(Ionian Antiquities)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리스 여행기”(Greece travelogue)는 1775년에 출판된다.
이후 영국 시인인 바이런은(Lord Byron)은 그의 친구 존 캠 홉하우스(John Cam Hobhouse)와 동행했다. 델피와 그리스를 사랑한 그는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바이런은 그리스 메솔롱기(Μεσολογγίου)에서 병으로 죽을 때까지 그리스를 사랑했다.
1829년 3월 22일 런던에서 그리스를 독립시키는 의정서가 발효되어 그리스가 터키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그리스가 독립을 한 후 제일 먼저 시작한 일들 중 하나가 모든 그리스인들 속에 집단적으로 기억되어 있던 델피의 고고학 발굴이었다.
그리스 이야기 (30) 신화와 역사의 고향 델피(Δελφοί) 편은 한번으로 끝을 내려고 했지만 결국은 한편 더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한편으로 끝낸다면 나중에 후회 할 것 같아서…
가장 최근에 델피에 간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었다. 늦가을 바람이 상큼해서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쉬었다. 역사의 고향에서 역사의 재취를 느끼려고… 그러나 바람에 실려 온 것은 역사가 아닌 신화 속의 아폴론의 긴장된 화살 촉이었고 그 화살에 맞아서 흘러내리는 피톤의 피 냄새였다.
글쓴이: 김수길 선교사/ 본지 미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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