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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 보스톤 공항을 떠나 예정보다 한 시간 더 늦게 이곳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한 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이제 저의 일과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먼저 보스톤 공항에서 기다리면서 쓴 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지루하고 빈자리 없이 끼여서 16시간 가까이 날아온 상공에서 다음 글을 썼습니다.
[영성계발] 지구적 시각에서 본 우주와 시간: 신학, 과학, 그리고 인류 인식의 여정” » 부제: 창조와 우주의 진리를 향한 변증적 사유» 김종필 선교사 »
어드메 가는 길인가?
가슴 뛰게 하는 것
미지로의 여행
두근거림의 환희엔
새로이 각인되는 나그네 길
시름 곂음 머금은 곳엔
깊게 내린 이별의 흔적
아스라히 떠오른 얼굴들
만남이 영겁처럼 얽혀 있음이라
길다란 굼벵이 같은 터미널엔
발씨익은 여행객들
부슷그리는 어린아이
사맛하는 연인들
바쁘게 오고 가는 길손들
섞다니는 무리들속
수릿날 속 홀로 먼 길 가네
모두가 거쳐가는 길이건만
도착지는 달라도
가는 길 정해져 있다네
어떤 이는 길을 잃고
다른 이는 길을 찾던가
걷다 보면
가다 보면
헤멜수도
찾을수도 있건만
해 아래
창조주를 찾아가는 발걸음
단 한걸음도 헛된 적이 없음에
가다가 쉬어 가듯
숨고름에 피어 나듯
바듯함 저만치 밀어내는 여유로움이라
<시어풀이>
발씨익다: 여러 번 다니어서 길에 익숙하다.
부숫그리다: 소란히 떠들다
사맛하는: 사랑하는 옛말
섞다니다: 섞여 다니다
시름겹다: 못 견딜 정도로 시름이 많다.
바듯하다: 어떤 한도에 차거나 꼭 맞아서 빈틈이 없다. 어떤 정도에 겨우 미칠 만하다.
저의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목차를 올려 드립니다.
• 서론: 우주의 광대함과 인간 인식의 한계
• 우주를 가로막는 선입견과 진리를 향한 탐구
• 기독교적 시간 이해와 히브리어 ‘욤’의 다층적 의미
• 고대 인류의 세계관과 문화적 상상력
• 고대 문명 속 우주관의 흔적들
• 우주의 질서와 과학적 발견의 진보
• 지구적 시간의 상대성: 행성과 별의 다양한 시간 개념
• 과학과 신학의 접점: 빅뱅과 창조의 해석
•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오만함
• 결론: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 인간의 겸손
“지구적 시각에서 본 우주와 시간: 신학, 과학, 그리고 인류 인식의 여정”
(부제: 창조와 우주의 진리를 향한 변증적 사유)
<글을 시작하면서>
허블 망원경, 전파망원경, 제임스 웹 망원경 등을 통해 현대 천문학의 발전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인식이 얼마나 확장되었는 지를 설명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늘과 땅, 그리고 시간의 개념이 얼마나 지구 중심적이고 제한적이며, 인간의 선입견에 의해 가려질 수 있는 지를 말해 줍니다. 이제 좀 더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를 보는 시각을 갖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구를 대하고 계시고 우리는 지구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주를 가로막는 선입견과 진리를 향한 탐구>
인류가 허블 망원경을 발견하고, 전파 망원경을 사용하고, 이제는 제임스 웹 망원경을 지구밖으로 보내어 별들과 은하계와 성단들을 탐색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얻는 정보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우주는 우리의 상상 보다 더 크고 무한하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우주의 끝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으며, 천문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우주 배경 복사를 통해, 배경 복사 부분은 이후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할 것임)은 우주는 무서울 속도록 팽창하고 있으며 아직도 인간은 우주 탐험을 하는 미지의 여행 중, 시작점에서도 아주 미약한 시작 부분에 있다는 점입니다.
땅과 하늘과 바다는 우리 인간 눈에 제일 먼저 보이는 세계이며, 우리가 눈을 뜨고 대하고 접하는 실재의 세계입니다. 지구 대기권 건너편 우주를 우리가 보고, 알고자 한다면, 우리 육안으로만 관찰할 수 없기에 망원경을 비롯한 수많은 문명의 이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조차도 오직 다가오는 빛을 관측함으로 연구할 뿐이지 실제로 그러한 천체에 직접 가서 조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빛을 통해 바라보는 우주는 천체 망원경보다 훨씬 더 발전된 망원경을 통해 보려고 해도 실제로 광대하고 무한한 우주를 인간이 가진 계측과 수학적 산술을 적용해도 실재의 세계를 자세히 관측하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실재 우리 은하 넘어선 무궁무진한 우주를 관측하려면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 안에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을 넘어서야 상상조차 안되는 광활한 우주의 별들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학자들에게는 첫번째 방해거리(?)이자 장애물인 셈입니다.
밤 하늘 불꽃처럼 쏟아질 것 같은 그 많은 별들의 대두분은 우리 은하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은하 밖을 보려면 그 수많은 별들을 지나, 그 빈공간이 보이는 곳을 너머서 측량해야 우리 은하 밖에 있는 우주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밤 하늘에 보이는 거의 모두 우리 은하 별들이지만 짐작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별들이 있는 우주의 세계는 촘촘히 그리고 빼곡히 들어선 우리 은하 별들 뒤에 감추어져 있는 셈입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 가운데 우연히 그 많은 별들이 모여 있는 지점 하나를 우연히 집중적으로 관찰한 결과 점과 같은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관찰한 결과 그 작은 점 하나에 3천개의 은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모든 진리가 만물 앞에 다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도 실제 그 진리를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천문학자들에게 우리 은하의 수많은 별들이 장애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때론 진리를 알기 위해 탐구하던 우리에게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의외로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왜 일까요?
이미 우린 안에 자리잡은 편견과 좁은 지식과 오해와 선입견과 같은 세계관 때문에 사실은 진리를 보고도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너머 실체를 보고자 하면, 장애물을 넘어서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주를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도구가 개발되어 우주 탐험을 더 깊고 넓게 할 수 있을지 기대합니다. 이처럼 진리를 알기 위한 우리의 탐구는 먼저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한 꺼풀 한 꺼풀 제거한 뒤에, 진리 앞에 우리 자신을 겸허히 비우는 작업이 있는 다음에야 실재하는 진리의 세계 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최상의 조건과 환경이었던 에덴 동산으로부터 내쫓김을 당하였고, 인류는 그 동산의 잃어버린 기억을 따라 Dante Alighieri의 Divine Comedy 그리고 John Milton실락원(Paradise Lost)과 밀락원과 같은 문학을 통해 인류가 상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동산, 수명의 제한이 없는 곳,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도 않고, 해충과 자연재해의 위험이 도사리지 않는 세계를 고대하며 그려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천국, 즉 하늘 나라는 물리적으로 어떤 곳일까요?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펼쳐질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우리의 관점에 그러한 천년왕국의 땅은 어떤 땅이고, 새 하늘은 어떠한 하늘이며, 새 예루살렘은 어떤 곳일까요? 앞으로 다가 올 새 하늘과 새 땅은 물리적인 세계일까요? 아니면 영적인 세계일까요? 아니면 물리적이며 동시에 영적 세계일까요?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하늘과 땅은 어떤 것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 역사의 대부분 기간동안 사람들은 단순히 물질적 환경에서만 살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형성한 정신적, 영적 틀 안에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볼 수 있는 자연세계인 하늘과 땅 그리고 만물을 보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고 작용을 통해 해석함으로 그 생각과 이해를 표현하는 정신 세계와 영적 이해를 종교와 신화라는 이름으로 그려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문명의 의미, 도덕과 윤리, 형이상학을 탐색하는 데 사용한 “보이지 않는 그림” 역할을 했습니다. 망원경이나 인공위성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인류는 질서 있는 우주를 믿었고, 종종 그 중심에 지구가 있었습니다. 이 지구 중심적 패러다임에서 목적과 신성한 설계에 깊이 뿌리박은 세계관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태양 중심주의와 진화론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그 세계관은 붕괴되었고, 그와 함께 인간 삶에 대한 창조론적 이해의 중심성도 붕괴되었습니다. 이 말은 태양 중심주의의 천동설이 틀렸고, 진화론은 당연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인간의 인식 세계가 더 실재를 이해하는데 과거보다 나은 세계를 살고 있는 현재에도 인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창조의 섭리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받아 들이지 않고 도리어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고대 인류의 세계관과 문화적 상상력>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은 단단히 견고히 서 있는 바위보다 든든한 곳이고, 하늘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뻗어 나가는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땅은 사각형으로 고정되어 있어, 땅 끝 바다 건너편에는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곳으로, 바다는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주전 6세기 고대 바벨론에서 제작한 세계 지도(Babylonian Map of the World, 대영박물관 소장)에 따르면, 지구를 평평한 원반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원형의 “쓰라린 강(bitter river)”(아마도 대양를 나타냄)이 있고, 삼각형 지역(“Nagu, 나구”라고 함)은 바다 너머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신화적인 땅을 나타냅니다. 바깥쪽 지역은 신비롭고 종종 위험하거나 신성하다고 표시됩니다. 그리고 바다 끝에는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평한 지구에 바다가 저 너머로 떨어지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던 인간은 무한하게 확장된 땅과 미지의 세계, 바다를 상상하며 철학과 문학과 예술, 조각과 건축을 통해 그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그들이 인식하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고 그들의 세계관을 수많은 문화와 문명 속에 반영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표현합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Parthenon, 에베소의 Artemis Temple,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도의 힌두 사원, 공포스럽고 흉악한 마귀상을 하고 있는 불교 사찰 입구 사천왕문에서의 사천왕상 등처럼 인간의 만물 인식과 세계관의 원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신화를 만들어 냈으며, 그 신화를 그려내는 스토리텔링의 대상과 통로는 땅과 바다와 지하세계와 하늘이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상력은 종교와 문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 발전과 지리상의 발견의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명나라의 작가 오승운이 당나라 승려 삼장 법사가 장안에서 10만8천리 떨어진 서역으로 가서 불경을 얻는 길에 81가지 어려운 일을 겪고 결국에는 불경을 손에 쥐게 된다는 서유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심청전에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져 바다 용왕이 연꽃에 태워 인당수로 다시 보내고, 심청은 왕과 혼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봉사였던 아버지를 만나 눈을 뜬다는 상상의 세계를 그려냈습니다. 그토록 깊게만 느껴지는 바다 지배자인, 바다 용왕이 그려지는 폭풍우, 그리고 광활하게 보여지는 아득한 수평선 너머의 그 바다가 지도를 보면 큰 연못처럼 가두어져 있는 황해 바다와 현대 기상학의 발전을 보면, 인류의 상상이 대부분은 무지와 오해였던 것도 상당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우리 문학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로 그려지는 달은 우리의 마음을 투영한 상상의 세계일 뿐 실재하는 달의 본 모습은 아닙니다.
아라비아 나이트의 신밧드의 모험에는 바그다드에서 살고 있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소년 신밧드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는 항해길에 오르게 과정을 그립니다. 여기에는 북극 모험의 세계, 바다 괴물의 세계들이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고대 문명 속 우주관의 흔적들>
기원전 8세기경에 호메로스(Homeros)가 지은”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는 기원전 13세기경의 그리스 세계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대서사시입니다.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 중에 있었던 일을, “오디세이”는 그 후의 사건들을 각각 다루고 있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를 올려 외눈박이 사이클로스 종족과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사이렌, 머리가 여섯 달린 기괴한 괴물 스킬라가 등장합니다. 심지어 희랍 신화에서는 천하의 바람둥이며 난봉꾼이며 또한 천둥과 번개는 제우스가, 바다에는 포세이돈, 땅은 여신 가이아가 주관하고, 땅 아래는 하데스가 주관하는 신들의 세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땅과 바다와 하늘과 땅 아래 세계를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발현된 상상력은 지극히 비과학적이지만 인간 정서에 공감을 주는 산문적 문학과 운문적 시학과 시각적 회화와 청각적 판소리와 음악과 아리아와 오페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바다를 묘사할 때, 수평선 너머 바닷물이 떨어지는 폭포수가 있는 곳이 아니라 구슬처럼 굴러가는 공모양의 지구였기에 사실은 땅끝은 없었던 것입니다. 상상의 무지개로 그림을 그렸던 북극과 남극은 탐험가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았지만 막상 발견된 북극과 남극에는 상상의 신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한하게 펼쳐져 있던 저 바다는 인류가 발견한 마젤란는 무장한 상선 (Carracks)을 타고 비로서 지구는 둥글며, 바다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밝혀 냈습니다. 그리고 증기기관, 그리고 엔진이 발견되고, 이제 땅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하늘을 나는 항공 시대를 열었고, 20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비로서 달에 착륙하고, 태양을 비롯해 수성과 금성과 화성과 목성을 탐사하고, 태양계를 벗어나는 탐사선을 보내기에 이릅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의 인간과 생명체를 붙들어 주는 가장 원리가 중력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뉴턴때의 일입니다. 물론 전세계이 이러한 뉴턴의 만유인력도 모르고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했습니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전세계의 지식을 공유하게 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인류는 보편적 지식의 공유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시간 이해와 히브리어 ‘욤’의 다층적 의미>
사실 우리가 딛고 사는 이 땅도, 농구공처럼 생긴 둥근 구이며, 이 구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렇게 오래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하루에 한 바퀴를 돌고, 달은 지구 주위를 한 바퀴를 돌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한 바퀴를 도는데 우리는 이를 일년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는 이것을 이렇게 구분해 줍니다.
창세기 1장의 욤(יוֹם)은 일반적으로 “하루”로 번역되지만,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욤은 물리적 24시간 기간으로, 종종 저녁과 아침으로 표시됩니다. 창세기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יוֹם אֶחָד)… 둘째 날(יוֹם שֵׁנִי)…”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각 “하루”는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아침에 끝납니다. 창세기의 욤이 실제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표면 아래에 의미의 층을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욤이라는 용어는 때때로 문자적 의미 외에도 우화적으로, 예언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시편 90:4의 말씀처럼 천년을 하루같이, 람밤 마이모니데스(Rambam Maimonides)는 창조의 기록은 반드시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며 신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날들”은 반드시 24시간 기간이 아니라 순서가 있는 단계를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토라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사용했다라고 말합니다.
יוֹם (yom)이 일 또는 시기 그리고 어느 정한 기간을 말하기도 하며, שָׁעָה (sha’ah)는 시간 또는 하루의 일부(예: 아침, 정오, 저녁)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דֶשׁ(chodesh)는 월(출 12:2)을,שָׁנָה(shanah)는 년(1년, 2년 하듯, 창 5:5)을, עֵת (et) 는 계절과 지정된 시간을, זְמַן (zeman)는 시간과 기회를 말합니다. 위의 두 단어가 전도서 3장에서 사용되었는데 “모든 것에는 시기(et)가 있고 모든 목적에는 시간(zeman)이 있고”에서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정리하자면 욤은 기본적은 하루를 의미하지만 어느 시기, 기간, 또는 상징적으로, 때론 예언적으로 사용합니다. עֶרֶב (erev) 와 בֹּקֶר (boker)는 저녁과 아침을 말하고, ערב 와 בקר 는 욤의 경계를 표시합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창세기 1장의 핵심 구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어느 날이었다.” 그럼으로 아직 온전한 태양계의 시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욤을 24시간의 개념으로 한정해서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날(욤)은 1년 365일의 하나일 뿐이지만, 창세기 1장에서 지금 1년 365일이 되기 전에 1년은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그 욤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시간으로, 우주의 시간 개념으로는 몇 백만년 또는 몇 천만년 또는 몇 십억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구가 온전한 지금의 시간대를 갖추기까지 “욤”의 개념은 인간이 이해하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척도일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념을 인간이 물리적 24시간으로 계산한다면 어찌될까요?
<지구적 시간의 상대성: 행성과 별의 다양한 시간 개념>
수성(mercury)에서의 하루는 지구 시간으로 치면, 176일이지만 공전이 더 짧아 88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수성의 하루가 1년보다 더 깁니다. 우주 공간 어디에서 지구의 24시간, 낮과 밤이 교차하는 같은 시간대를 운행하는 별이 있을까요? 우리는 24시간이라는 지구적 시간에 갇혀 있으면, 우주의 시간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행성은 태양이 두 개(binary system)인 곳도 있는 알파 센타우리(Alpha Centauri)가 그렇습니다. 더 많은 태양(multiple star system)들이 있는 곳도 있는데, 시리우스(Sirius)는 태양이 두 개, 캐스터(Castor)에는 태양이 6개, 케플러 47은 태양이 두 개이지만 다른 행성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토성에는 달이 145개 이상, 목성에는 달들이 95개 이상, 천왕성에는 달이 27입니다. 어떤 별은 여러 개의 태양과 여러 개의 별들로 인해 낮만 존재하기도 하고, 아예 밤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빛을 내는 태양이 아예 없는 별들은 밤만 있습니다. 이들에게 낮과 밤 그리고 24시간이라는 지구적 잣대를 적용해서, 과연 지구 시간만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요? 낮이 없거나, 또는 밤이 없거나, 아니면 공전할 수 있는 태양도 없기에 그저 그 별은 존재할 뿐, 1년이라는 개념도 아예 없는데 어찌 우리가 그 별들에 시간을 말할 수 있을까요?
아인스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우주에서의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은 이유는 중력 왜곡 시간(gravity time dilation) 때문인데, 예를 들면 블랙홀 가운데 흐르는 강력한 중력장으로 말미암아 공간도 왜곡되고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관찰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구적 관점에 1년은 12개월 365일이며, 하루는 24시간입니다. 한 시간은 60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1분은 60초입니다. 영어로는 year, month, day, hour, minute, and second이 됩니다. Year의 의미는 태양을 도는 365일의 공전 주기를, month는 달의 공전 주기를 말하고 있으며, Day는 자전하는 지구를 낮과 밤으로 나누고, 24등분한 것이 hour입니다. “분(minute)”이라는 용어는 라틴어 pars minuta prima에서 유래되었으며, “첫 번째 작은 부분”(즉, 시간의 작은 구분)을 의미합니다. pars minuta secunda(“두 번째 작은 부분”)에서 유래된 “초(second)”는 그 다음으로 세밀한 구분인 분(minute)의 60분의 1을 말합니다. 그러나 측정 가능하고 표준화된 시간 단위로서 분과 초의 정확한 개념은 중세 시대에 기계식 시계가 발명되고 발전하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일출, 일몰, 천체의 움직임과 같이 더 광범위하고 자연스러운 주기로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낮도 없고, 밤도 없으며, 공전할 항성계도 없고, 자전도 없으며, 우주 어느 공간에 홀로 떠 있는 별에 거한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수 천년, 수 만년, 수 억년을 낮도 없고, 밤도 없고, 년도 없이 지내온 그 별에서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제가 이해하는 시간의 개념은 무엇보다 매우 지구적이고 지구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대는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시간대가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구 시간대에 맞게 이해하도록 지구 시간대를 통해 그분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지구와 같은 생태계를 만드시고 낮은 주관하는 태양, 밤을 주관하는 달로 우리의 시간의 개념을 형성해 주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셔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지구상의 과학의 발전이 있기 전에도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엄청난 시간의 간격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를 우리는 신학적으로 gap theory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Young earth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6일 창조와 6천년 지구 나이를 말할 때에, 하나님의 창조와 긴 역사를 볼 때 영원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시간 개념을 너무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주 입장에서 보면 6천 년은 자동차 헤드 라이트를 잠깐 비추는 것보다 짧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접점: 빅뱅과 창조의 해석>
먼저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의미를 상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어찌 보면 천체 물리학이 말하는 우주 배경 복사의 의미를 돌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주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를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64년 아르노 팬지어스(Arno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벨 전화국 천문대에서 발견했으며, 이들은 이를 빅뱅의 잔재로 보았습니다. 우주 배경 복사란 천체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빅뱅이 있었고, 빅뱅 후 약 38년만 후에 우주가 식으면서, 빛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며, 우주 안에 가득 채워진 이 빛은 마이크로파 복사로 의해 관측된다고 말합니다. 우주배경복사는 약 마이너스 270.3도로 우주의 식어진 온도가 균일하게 우주를 채우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주에 빅뱅이 있어서 엄청난 에너지로 팽창이 있었고, 그리고 우주가 식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천체 물리학에서는 빅뱅 – 플랑크 시기 – 급팽창 시기 – 핵 합성 시기 – 우주 재결합 시기로 진행되었다고 말합니다.
플랑크 시기(Planck epoch)는 빅뱅 이후 10 의 43승 초 동안 물리 법칙들이 통합된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급팽창 시기(Inflation epoch)는 10의 32승 초 동안 우주는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팽창하며, 거대한 크기를 형성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급팽창은 우주의 균일성과 대규모 구조를 조성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핵합성 시기(Nucleosynthesis epoch)는 빅뱅 후 3분 동안 기본 원소인 수소와 헬륨을 생성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빅뱅 후 38만년 후에 우주 재결합시기(recombination epoch)가 있었는데 전자와 핵이 결합하여 원자를 생성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빛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빅뱅의 잔재로서 CMB 즉 우주배경복사를 생성했다고 말합니다.
천체물리학에서 말하는 수학적 수치라든지, 플랑크시기부터, 급팽창 시기와 핵합성 시기에 이르는 3분이라는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저로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즉 빅뱅이 있을 때 이미 존재했던 물질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셨지만 그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창세기 1장 1-3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물리학, 천체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에서는 태초에 빛이 있게 된 사건과 관련하여 빅뱅을 자주 언급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빅뱅 이외에 과학자들이 달리 우주의 시작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빛의 한계 안에서 가장 오래된 별의 역사와 우주의 나이가 비슷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의 사실 가운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시작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의 과학자들은 빅뱅 이전에 시간도 공간도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인정하는 (다른 이론이 현재로는 없음) 바에 따르면, 우주의 시간은 약 138억년 전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로 빅뱅 이전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빛을 창조하신 최초의 원인자이신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을 창조하실 때에 빛을 내게 하는 현상 그리고 빛의 시작으로부터 우주의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주에서의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중력과 속도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아인스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빛에 관한 부분은 이후에 따로 다룰 것입니다.
조금만 더 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 허블 망원경을 통해 관측하니 은하들이 점점 더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었으며, 이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허블 법칙(Hubble Law)에 따르면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속도는 거리와 비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주의 팽창을 거리와 비례하여 산출한 것을 허블 상수(Hubble constant)라고 부릅니다.
우주 과학자들은 빛을 비추는 항성이 창조되었다고 바로 빛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있어서 빛을 내는 별들 즉 항성들이 창조되었어도, 그 빛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우주가 식으면서 빛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주 과학자들은 빅뱅이 있은 후 38만 년 뒤에야 자유롭게 빛이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고 신학자이기에 이 부분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설명을 듣고 보면, 저로서는 성경이 더 이해되어집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니라고 읽고, 이 하늘들은 지구(아직 지구는 나타나지 않고 있음) 대기권을 포함된(태양계나 우리 은하나 다른 은하까지 구분하기 전 단계) 우주 공간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하늘들 가운데 땅을 만드시고자 하시는데, 땅은 공허하고 흑암은 깊음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최초의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만드실 때, 땅을 만들고 별들을 만드시는 기초적인 물질들이 공허한 상태 즉 무질서의 상태에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이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사건에 대하여, 신학계에서는 천상계 즉 지음을 받은 천사들 가운데 루시퍼의 반란이 있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과 기술 방법으로는 우리가 이 광대하고 무한한 것처럼 보이는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광대한 우주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숨을 쉴 수 있어야 하고, 먹고 생존할 수 있어야 하며, 우주를 여행할 때 필요한 최소한 보호 장치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엄청난 장비, 도구와 식량과 에너지를 싣고 여행하려면 과연 인간의 과학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야 이룰 수 있을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오만함>
백 번, 천 번, 만 번을 재고해서, 우리 인류가 그 무한한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 해도, 생명체를 찾는 일, 우주 안에 인간과 같은 고도의 지능을 갖춘 생명체와 문명을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칼 세이건이 1990년 보이저 1호가 방향을 완전히 틀어 인류 최초로 태양계 외곽 쪽에서 지구와 태양을 향해 찍은 사진을 보고 지구를 창백한 “파란 점(pale blue dot)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간이 만든 가장 빠른 탐사선이 지구로부터 37억 마일을 달려 계속 밖으로 전진해야 하지만 그 많은 경비와 시간을 감수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그는 작은 별 지구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그 점을 보세요. 여기 있습니다. 여기가 (우리 인류의) 집입니다. 저 지구는 바로 우리입니다.”
“Look again at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태양계에서, 우리 은하에서도 지구는 점처럼 작고 작은 것이지만, 우리 인간이 그 많은 별들 속에 어떻게 생명체가 있는 환경, 그리고 고도의 문명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별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인 Milky way galaxy 만 해도 별들의 숫자가 10만개를 넘습니다. 이 별들을 다 발견하고 연구한다 해도 몇 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며, 몇 천명, 몇 만명의 연구인력이 다 붙어서 지도를 완성하고 그 별들을 분석하고, 상세한 정보를 다 제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백 년, 천 년, 만 년?이 필요할까요? 아직도 인류는 우리가 속한 은하계의 1%도 탐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와 같은 은하수가 천억개나 됩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지구와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에는 빛을 내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천억개 정도라고 합니다. 지구나 화성과 같은 행성들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들입니다. 밤 하늘에 별들이 빛나는 이유는 저들이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빛을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저와 같은 탐사선들이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을 관측할 수 있는 이유는 태양의 빛을 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들은 쉽게 관측하기 어렵습니다. 우주에는 태양계가 속한 은하의 숫자가 천억개라고 하니, 우주 안에서 빛을 내는 태양과 같은 항성은 천억 곱하기 천억은 100조에 해당하니, 그 광대한 수의 빛을 내는 태양과 같은 별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요?
이처럼 광대한 우주가 상상이 됩니까? 이 작은 지구에도 220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있는데, 이 모든 나라의 문화와 인종과 삶을 우리는 다 알고 파악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우리 지구가 속한 은하계를 연구하는 데 쏟을 시간과 인력을 상상만 해도 수천 또는 수 만명의 연구 인력이 필요할 것인데, 천억개의 은하를 어떻게 다 연구할 수 있으며, 천억 곱하기 천억개에 달하는 항성(태양과 같은)들을 어떻게 다 계수하고 알 수 있을까요?
천억개의 은하수를 다 발견한다 해도 그 누가 은하수의 이름을 다 지을 수 있을까요? 천억개의 은하수의 좌표와 위치와 크기와 거리와 특징 등 만을 간단히 기록한다 해도 몇 천권, 몇 만권의 책으로 그 많은 정보를 다 기록할 수 있을까요?
1989년 하바드 천문대라 불리우는 스미소니언 천체 물리학을 이끌고 있는 게러 박사와 팀은 인류 역사상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주의 만리장성(Great wall of universe)이 있다는 것입니다. 게리 박사와 팀이 발견한 별들과 은하단 그리고 초은하단등에 관한 지도를 작성하다가 수천개의 은하가 벽처럼 퍼저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우주의 만리장성이라고 명명합니다. 그 길이는 5억 광년에 이르고, 높이는 2억 광년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구에 관한 책만 해도 수천, 수 만권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만약 가장 축소한다 해도 한 은하당 한 권의 책으로 기술한다 해도 천억권의 책이 필요합니다. 세계 최대의 도서관인 미의회 도서관(Library of US Congress)에는 총 1억 7천 3백만의 자료가 있습니다. 인쇄된 책만 5천 백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과 자료에 사용된 언어만 해도 470개 이상의 언어입니다. 그렇다 해도 천억개의 은하를 한 권 씩만 기술해도 5천배 크기의 장서가 필요할 것이며, 인간이 아무리 독서를 한다 해도 우주의 기본 정보의 몇 %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이 이토록 많은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 147:4)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우리의 머리카락 개수도 세워본 적은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십니다.(마 10:30) 이러한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우리의 앉고 일어나는 것, 자고 깨는 것, 심중에 생각하는 것을 모르실리 있을까요?
시편 139편 1-18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하나님의 광대하심은 하나님을 더 이해하고 아는 만큼 더 커지고 깊어 집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로와도, 그 엄청난 지식이 많아도, AI 를 능가하는 지식을 소유하여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다 읽는다 해도,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의 부요함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인간 스스로 어디에서 와 있는 지를 모르면서도, 자연 발생을 말하고, 그 수많은 별들 가운데 사람이 살아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인간을 창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알량한 지식과 지혜와 경험으로 “하나님은 없다” 그리고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서 무지한 것이며, 오만한 것입니다.
시편 14편 1-4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글을 맺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을 향한 섬세한 관심을 성경을 통해 발견하지만 실제 관측되고 확인되는 자연과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DNA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섭리와 은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우주를 탐구해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의 교만은 무지와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진리는 겸손과 신앙 안에서만 온전히 드러남을 기억해야 합니다.
3월 30일 이른 새벽에 김종필 목사 씀
PS 저의 글을 다시금 읽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다음 링크를 올려 드립니다.
두 권의 책 한 명의 저자 (창조론 대 진화론: 신앙과 과학): https://ucdigin.kr/?p=101948
하늘 덮개 같은 하나님의 은혜: https://ucdigin.kr/?p=101922
하나님의 창조와 진화론에 대한 단상: https://ucdigin.kr/?p=10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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